부코스키의 시집을 샀다.

 

  보들레르와 브레히트, 랭보와 백석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부코스키를 선택했다.

 이런 날것같은, 의미라고는 1도 없을 것 같은 글을 쓰는 부코스키가 좋았다.

 그의 소설도 좋지만 시는 더 꿀렁거린다.

 시집을 샀는데 그냥 좋았다고 했더니 친구가 심각하게 (?) 카톡을 보냈다.

 -부코스키가 왜 좋아?

 라고..

 -그냥 좋아 왜? 라고 반문하자.

친구는 불편하다고 했다. 우체국을 겨우 읽고 여자들을 읽다가 덮었다고 했다.

 오버스럽기까지 한 마초같은 글이 소화되지 않는다고 했다. 덧붙여 롤리타를 읽으며 거북했었다고 했다.

 나보코프를 아주 좋아하는 나..

-내가 아마 피학적이거나 변태적일만큼 적나라한걸 좋아하나봐..

 라고 대답을 하고 한참 웃었다.

 

절친인데, 서로 멀리 떨어져있어도 언제나 사랑하고 서로를 읽고 기댈 어깨를 내주는 친군데 이렇게 취향이 다르다니..

 

 

 

 

 

 

 

 

 

 

 

 

 

 

우체국을 읽고, 여자들을 읽고 얼마전 호밀빵 햄 샌드위치를 배송받았다.

항해사 일을 오래했다는, 바다 위의 일을 호메로스의 오딧세이보다 환상적으로 이야기하시는 우리 동네 백씨 할배와 닮았다.

할배는 막걸리 한 잔을 묵묵히 드시고, 두 잔 째를 마시며 주위를 살피고 세번째 잔을 따라놓으시면 멀고 먼 바다의 이야기를 하신다.

어쨌든, 부코스키가 왜 좋아? 라는 말에 나는 날것이라서 좋다고 했다. 모순적이며 마초적으로 보일만큼 허세 가득한 유약함을 들켜서 좋다고 했다. 삶의 진실이랄지 의미랄지 하는 것에 묶이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 오히려 애틋하리만치 끌어안은 삶에 대한 애정으로 읽혔다.

 

부코스키가 왜 좋아?

라는 물음이 자꾸 들린다.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그러고보니 나는 사드도 매우 좋아한다.

 

   내 책꽂이 한 쪽에 나란히 세워져있는 책..그 옆에는

  

 

 

 

 

 

 

 

 

 

 

 

 

 

 

 

참 맥락없이 읽는다. 닥치는대로..잡히는대로..

어쨌든..아직 부코스키는 본능의 해방구같은 의미인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호감으로..자주 선택될 부분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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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10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어떤 책이 읽고 싶은 마음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있는 경험인 것 같아요. 여성 혐오,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으니까 갑자기 사드나 성을 주제로 소설을 읽고 싶어졌어요. 포르노 규제를 찬성하는 페미니스트와 이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를 비교해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제가 몸과 마음은 여전히 팔팔한 청년이라서... ㅎㅎㅎ

나타샤 2016-06-10 17:04   좋아요 1 | URL
청년이라면 한번쯤 읽어봄직한..^^
 

학생회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딱 이 시간 쯤.

"Y(연대)에서 학우 하나가 직격탄을 맞았어. 의식이 없대. 다들 그리로 와. 봉쇄중이니까 알아서 들어와. 철야할꺼야."

 

이한열이었다.

박종철의 죽음이 도화선이 된 싸움의 불은 그렇게 폭발하게 되었다.

산을 넘고 기어기어 들어간 학교는 난리도 아니었고, 학교를 에워싼 경찰들이 더 많지 싶었다.

세브란스를 지켜야한다고 학우들은 조를 나눠 순찰을 돌았다.

빼앗길 수 없었다. 연대 도서관 복도에서 아무렇게나 누워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광주의 어느 하루를 꿈꾼것 같기도 했다.

경찰들이 세브란스를 침탈하려 한다는 말이 밤새 몇번인가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눈물이 범벅이 된 채 그들 앞에 눕겠다고 뛰어나가곤 했다.

 

밤은 길었다. 점점 단단한 봉쇄가 이루어졌는데 점점 많은 학우들이 모였다. 우리는 '한열아 일어나'라고 외쳤고 '한열이를 살려내라'며 울었다.  이 가슴저미는 현장이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먼지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은 흡사 어느 섬나라 원주민의 문신처럼 얼굴에 가득했고 애통함과 간절함과 분노가 서로 앞에 서겠다고 내 속에서 싸웠다.

 

 

 

 

 

 

 

 

 

 

 

 

 

 

 

 

  6월 10일 뜨거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세브란스를 지킬 학우들을 남기고 모두 거리로 나섰다.

  항쟁의 시작이었다.

  솔아 푸르른 솔아를 쓴 박영근의 글들이 전집으로 엮였다. 참 다행이다. 6월을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웅얼거리게 되는 노래다. 어쩐지 이한열을 부르게 되는 노래. 그랬다.

  그 해와 그 다음해,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분신을 했고, 투신을 했고, 진압 도중 죽고..그렇게 생때같은 목숨들이 거리를 들끓게 했다. 막연한 분노가 아니라, 어제까지 같이 구호를 외치던, 노래를 부르던 친구의 주검을 마주한다는 건 두려움이었다. 이 세상이 살아도 좋은 세상인가 묻게 되었고,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올것이 두려웠던거다.

 

  달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도 모든 달력마다 비명이 넘쳐난다.

4월의 달력도, 5월의 달력도, 6월의 달력도...매번..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아룬다티 로이의 우리가 모르는 인도를 이야기 해준다. 아이들은 "쌤, 좌파에요?"라고 묻는다.

"어째서?" 라고 되물으면,

"우리나라 자꾸 욕하잖아요. " 한다.

"아닌데? 이거 인도 이야기야" 라고 하면, 아이들은 일제히 외친다.

"와~ 대박, 소름, 우리나란줄..도플갱어각.." 등등..

 

  너무나 닮은 인도의 이야기.

 더 닮은 책이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나면 또 뭐가 보일까 싶다.

 

 

 

 

 

 

 

 

 

 

내년이면 30년. 변화의 격랑이 몰아친후 답보상태이거나 심지어 퇴행중인 나의 조국을 어찌해야할까.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를 한동안 바라본다

 

따르릉 ..전화가 올 것 같아서..

Y대 학생이 쓰러졌대..

떨리는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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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6-09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29년전 오늘 1987년 6월 10일
자신이 뭘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그날의 냄새와 소리를 기억해요
˝한열이를 살려내라˝

-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어야만 하는지..
- 낡은 타이거 운동화..

오늘 하루종일 머리속에 떠 다니는 생각.. 생각

나타샤 2016-06-09 23:32   좋아요 0 | URL
기억이 동력이 되길 바랄뿐입니다..생각이 많은 날입니다.
 

기말고사 대비 기간이 시작되었다. 수학강사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 역사과목을 가끔 짚어주곤 한다.

지난 중간고사 기간..중3 아이들은 열강의 침략부터 독립운동까지..임시정부수립까지 시험을 봤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설명하고 간도지방을 이야기하다 윤동주 이야기를 했고, 문익환선생 이야기를 하다 문성근씨 이야기를 했고, 그것이 알고 싶다를 끼워넣고 그 때 뜨거운 감자였던 세월호를 이야기했다.

시험을 망하게 하려고 한 건 아닌데..늘 그런식이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떻게든 삼천포로 빠지고 그렇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아이들은 집중해서 듣곤한다.

기말고사는..해방부터 현대사다.

 

 

 

 

 

 

 

 

 

 

 

 

 

 

 

 

 

 

 

 

 

 

 

 

 

 

 

내가 가장 정확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6.10 민주화항쟁의 이야기까지 시험범위이다.

대장정이 될것이지만 읽어내야겠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해주기 위해서..아이들과 함께 빠진 삼천포에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를 공유하는 비밀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교과서의 빈 행간을 채워줄 사실들을 이야기해주는 것. 그것은 선생이라서가 아니라 한 걸음 먼저 걸은 어른으로서의 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사코 비밀스럽게 역사를 만들고 손대려는 자들이 그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를 알려주어야할거다.

국정교과서 따위가 더럽힐 역사가 아니란걸 말해주어야 할게다.

역사는 오독되어서는 안되며 오기되어서는 더더욱 안되는 것임을 말해주어야 할게다.

 

이렇게 할미가 옛날이야기 해주듯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100점을 받아오는 녀석들이 신기하긴 하다.

-쌤, 이번에도 정리 해 주실거죠?

라고 당연한듯 묻는 녀석들과 역사를 공부하려한다.

 

 

 

덧붙여 읽을 책들이 더 많을것 같지만..일단 시작하자.

역사는 권력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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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하는 식물의 뇌 - 식물의 지능과 감각의 비밀을 풀다
스테파노 만쿠소.알레산드라 비올라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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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며 문득 식물이 되고 싶었던 여자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연이 되고자 했던 여자의 이야기..그 이야기는 큰 상을 받았고 그 후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고 읽혀지고 있다. 상처와 분노와 절망 속에서 여자가 선택한 일, 쏟아지는 햇볕 아래서 가슴을 열어젖히는 일,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뿌리가 내려지길 기다리는 일, 기어코 식물이 되어간 일..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아름다웠다. 거칠게 조각된 목판화를 보듯 읽었다.

이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첫 마디는 '맨부커상을..'이었고 '매혹하는 식물의 뇌'를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이 이야기를 끌어왔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단단하게 보호되고 있는 동물의 뇌가 벌이는 일이다.

아마도 내 신체의 윗부분은 지금 수없이 많은 신경물질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반짝이고 있을것이다. 외부의 충격이 없는 한 그럴 것이다. 한순간의 공격으로 박살이 난다면 더 이상 그 어떤 연상도 사고도 하지 못할 것이며 운이 좋다면 '식물인간'이 되어 연명하게 될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왜 이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던 것일까. 식물이 되고자 했다면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을텐데..위험부담이 컸던 탓일지도 모른다. 충격이 조금만 세도 식물인간이 되기 전 동물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테니까..


책의 첫머리에 '식물인간'이라는 말이 식물에게 얼마나 모욕적인 말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쩌면 가장 진화한 생명체일 수도 있는 식물.

모듈화 되어있는 감각기관과 생명장치는 일부가 훼손당한다해도 치유되고 확산된다. 동물계에서도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재생되고 번성하는 힘. 지구의 식량이며 산소와 에너지의 창출존재로서의 식물의 이야기. 너무나 많은 곳에 너무나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그 어떤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식물의 참 가치에 대한 역설이라고 읽힌다. 때론 과하게 칭송하는 건 아닌가 싶어지기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당하는 어찌보면 모든것이 파괴되고 부족해지는 현실에 인간과 지구의 생존에 마지막 보루처럼 남겨질 식물에 대한 문제제기로는 흥미롭다.


식물은 조너선 아이브(애플 디자이너)의 디자인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세계의 완벽한 디자인.

'디자인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것' 가장 완벽한 생태계의 디자인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눈치채지 못하는 것, 현혹되지 않는 것, 그래서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생물들이 생태계를 완벽하게 구성하도록 하는 디자인..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검증과 규명이 필요할까. 그것이 생각만큼 다각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지적이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 그리 딱딱하지 않은 문체와 간결하게 서술되는 식물의 이야기는 쉽게 읽혔다.

찬반의 격론이 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전문적으로 파고든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겠다. 정말 이래? 라고 의문을 품게 만드는 구석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라고 말하는 순간 식물에 대해 엄청나게 공부하고 학습해야할게 분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막연하게 식물을 인식하길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자연. 이라고 말하는 순간 떠오르는 초록의 이미지. 그 정도로 ..


흥미로운 책이었다. 어쩌면 식물이 되고 싶었던 그녀는 이런 비밀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든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죽었으나 결코 죽지 않는..그런 존재로서의 식물. 가장 완벽한 자유를 품은, 공생과 영생의 경계를 서성이는 식물의 비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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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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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에 수록된 단편들중 무작위로 하나씩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미진이'를 받았다.

미진이.

짧은 단편을 오래 읽는다.

살아내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에게 가혹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족을 만들고, 친구를 만들고, 연인을 만들어 견디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장할수록 나의 외부도 성장하며 여전한 힘으로 공격해 온다.

어른들은, 그나마 얄팍한 경험에 의지해 그 때는 그런거라고 말을 하지만, 지문처럼 각기 다른 삶의 형체를 단순하게 규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도 없는 시기. 미진이의 방황과 엄마의 우울증, 더이상 응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 하루아침에 밀려난 느낌.

미진이는 가출을 하고, 학교마저 자퇴를 하고 제 세상을 찾아보기 위해 애쓴다. 두려움.

혼자 서야하는 막막함. 서툴고 힘겹지만 해내야 한다.

당당하게 '내 삶이야.' 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청소년기의 혼란과 정체성의 모호함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일. 김려령 특유의 섬세함이 담뿍 배어있다.

쌓인 경험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예상한 틀을 완전히 깬건 아니지만 그렇지..그래야지 응원하게 되고 어쩜 좋니, 덩달아 안타까워지는 단편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거나 보호해야만 할 대상이 아니라 어른과 다름없이 세상에 맞서는 동지이거나 전우일지도 모른다.

철없다고 말해버릴 수 없는 이유다.

조금 미숙하고 덜 단련되었을 뿐이며 타협하는 법을 모를 뿐이다.

중력이 모두에게 공평하듯, 세상은 모두에게 가혹하다.


미진이를 읽는다

미진이를 얻었다.

수많은 미진이가 어디든 있겠다.

같이 살아내자 친구!

어깨를 토닥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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