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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 칼로 지음, 안진옥 옮기고 엮음 / 비엠케이(BMK) / 2016년 6월
평점 :
프리다 칼로, 이름을 웅얼거리는 순간 작은 전율이 시작된다. 불꽃으로 태어나 불길이 되고 기꺼이 불 속으로 사라진 여인.혹은 예술가, 혹은 사람.
반으로 접힌 표지를 열면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이 펼쳐진다. 창문으로 조심스레 밖을 응시하던 여자는 진한 눈썹을 한 채 ' 내 일기를 읽은 댓가를 치를 준비는 되었지?'라고 되묻는 것 같다.
프리다 칼로를 이야기 할 때, 같이 떠올려지는 이름들. 나혜석, 까미유 끌로델.
어떤 이들은 그녀들이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고도 하고, 고통과 절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도 하고, 비극적이라고도 했다.
단 하나도 동의하지 못하겠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녀들은 시대를 선택할 수 없었고, 선택할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시대 따윈 그녀들의 삶과 창작에 간섭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고통과 절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과연 그럴까? 그녀들은 자신의 상황을 예술적 창작물로 남기려고 안간힘을 썼을까?
단지 그녀들은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냈을 뿐이다. 인간이 품은 가장 순수한 것 까지, 희고 말랑하며 공격당하기 쉽고 방어가 되지 않는 감정들을 치장없이 진술했을 뿐이고 그것이 그대로 드러난 것 뿐이다. 고통과 절망, 상실과 불안이 그녀들을 관통하는 순간을 저항없이 그대로 보여낸 것. 그것이 예술로 승화한 것인가? 그녀들 자체가 예술이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나?
47년간의 세상의 시간을 견딘 프리다 칼로. 그 뜨거운 사랑과 열정. 수없이 반복되는 사고와 수술로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도 그녀는 고스란히 제 몫의 고통을 받아낸다.
프리다 칼로가 죽기 전 10년간의 기록, 스페인, 라틴미술 전문 기획자로 잘 알려진 안진옥이 옮겼다.
그대로.
그대로 옮기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프리다의 그림과 일기장 뒷면에 배어난 잉크, 물감까지 재현해 낸 편집. 프리다가 지운 부분은 같이 지우고, 밑줄 친 부분은 같이 밑줄 치고..
당시 프리다의 상황과 그림에 대한 해설이 작은 글씨로 예의바르게(?) 쓰여있다.
아이들의 탐정소설처럼 앞페이지의 어느 부분과 연관되어 있는 그림. 뒷쪽 어딘가에 쓰인 글과 연결된 그림..하는 식의 안내(?)는 참으로 유용했다.
매일 매일 한페이지씩 차곡차곡 써내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예측했을테고, 아무데나, 혹은 이전에 쓴 일기 위에 덧쓰거나 오려붙이거나..프리다의 자유로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기장.
알지 못하는 언어임에도 번역과 함께 한 단어씩 짚어가며 읽는다. 프리다의 일기를 필사해보기도 한다. 그림 속에 샅샅이 숨겨진 암호같은 상징들을 찾아낸다. 크게 보고 세심하게 보며 오래오래 읽는다.
책을 금방 읽어내는 편이다. 오래 읽는다고 해서, 더 깊이 있게 읽어내지 못할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이해되는대로만 읽는다. 새로운 것이 들어가면 딱 그만큼 있던 것이 나가는 총량을 지켜내는 단순한 기억장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더 넓히거나 늘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어쨌든, 이 책은 닷새나 걸려서 읽었다.
허우적거린거다.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게 아니라, 거기 더 있으려고 버둥거린 거다.
끈끈이에 붙은 파리가 날아가려고 버둥대는게 아니라 더 단단히 달라붙어 있으려고, 기꺼기 거기서 죽어도 좋겠다고, 끈끈이가 너무 좋다고 파닥거리는 꼴과 닮았으려나?
끈끈이를 좋아하는 파리가 있을 수도 있잖아? 파리가 좋아하는 냄새로 유인하는거니까..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장. 엄청난 책을 읽었다. 한동안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
실려있는 그림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그 속에서 단단하게 드러나는 프리다. 사랑과, 이념과, 다양한 연구들..그림그리는 프리다가 아니라, 디에고를 사랑한 프리다가 아니라, 고통에 신음하던 프리다가 아니라, 말 그대로 충분히 살아낸 프리다를 보게 된다.
아마, 사람들은 이 책을 읽게 될것이다. 어쩌면 이 시대의 해방구같은 그녀를 말이다. 위로가 아니라, 힐링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
그녀의 불행을 앞에 두고, 이렇게 절망적인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을 해내다니..라든가, 그녀의 온전치 못했던 육신을 두고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은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따위의 비교가 아니라..'프리다'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날개를 단 프리다. 제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프리다. 사랑을 당당하게 외치는 프리다..
운이 좋다면 재쇄를 찍을 수도 있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좋았으니까. 좋으니까.
몇군데의 오류를 관계자에게 보냈다. 여기저기 물어보고..오지랖이다. 그 작은 오류로 괜히 말이 나오는게 싫었다. 요즘 독자들 어지간히 깐깐해야 말이지.
우연히 책을 보고, 친구를 졸라 강탈한 책 한권이 한 주일 동안 같은 꿈을 꾸게 한다.
날개를 달고 한쪽 다리를 절단한, 부서진 척추의 프리다가 노란 하늘에 암청색으로 쓴다. "나의 디에고"
(노란색과 암청색. 프리다에겐 색이 갖는 의미와 상징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모두가 수근댈 것이다 : 불쌍하군!그녀는 미쳤어. 무엇보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것이다. 나의 세계를 건설할 것이다. 사는 동안, 내 것이 될 것이다 = 동의한 대로 = 모든 세상과 일(日). 시(時), 또는 분(分), 삶은 내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의 것이 될 것이다. 나의 광기, 그것은 "작업"으로의 도피는 아닐 것이다.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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