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서 온 편지 삶창시선 49
김수열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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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의 시>
                  -김수열

내 시에는 거추장스러운 데가 많다

거추장스러워 가려야할 데가 많다

가려야할 데가 많아 입고 또 입어야 한다

하여, 나탈리 망세의 파격 같은 선율이 없다

내 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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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물에서 온 편지의 첫 시다.
언뜻 비장하기까지하다.
내 시는 이렇다. 일종의 선언처럼 읽혔다. 날 것 그대로 꾸밈없던 그의 시에 어떤 변화가 있는걸까.
훗.
여전히 갓 낚여 올라온 운수 사나운 물고기처럼 퍼덕거린다. 비린내가 절고 절은데다 종일 땀흘린 할매에게 나던 구수한 젓갈 냄새처럼 입맛이 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생선 손질로 평생 멕이고 입혀 키워 내다 '새댁이 니 세상에 질로 귀한 젓국이 뭔중 아나? 사람 젓국이다 . 짠 바람에 폭 삭아 눈물까지 비렁내가 나는 젓국말이다. 그라다 죽아삐믄 송장 썩는 내가 아이고 잘 삭은 내가 나는기라. 내는 반쯤은 젓국이 된거 같으다. 하모 됐고 말고' 혼잣말인듯 아닌듯 읊조리시던 할매의 목소리처럼 편안하다.

거추장스러워 입고 입는다는 거짓말과
거추장스러운데 자꾸 입는다는 어리숙함 사이에서 싱긋이 웃고 있는걸까. 아무렇지도 않은 읊조림 속에 마주하기에 거북할 수도 있는 설움이, 그리움이, 사람살이의 변명이 있을거라는 경고였을까.

시집을 덮고서야 거추장스러워졌다.
나탈리 망세의 파격같은 선율은 아니지만 삶의 깊은 구석에 박힌 수열은 있었다.등비수열도 등차수열도 아닌 조화수열이다.진동하며 극한으로 발산하는.

얼마나 거추장스러워져야 사람다워 보일까 생각했다. 불가능하다. 천둥벌거숭이로 살아야겠다.
시집..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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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렸고, 드디어 나왔다.  태평양 위에 떠 있는 두 섬. 한국과 오키나와. 이명원의 책이다. 나는 그의 책을 딱 한 권 읽었다. '타는 혀'

 

 김현의 비평에 한동안 매료되어 있을 때 이명원의 타는 혀는 그야말로 신선했다. 당시 2000년에, 21세기에 막 들어선 그 때, 19세기 말을 섭렵하던 비평가들의 이야기를 새롭고 날카롭게 써냈었다.

 그렇지, 이제야 제대로 세기가 바뀐 실감이 나네..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시간의 때가 잔뜩 묻어버려 누렇게 변색된 책등을 가진 책을 오랜만에 들여다 보았다. 한동안 찾지 않던 후궁을 찾는 황제의 오만함같은 것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의 글이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동안 더 날카로워졌을까? 기대가 증폭된다 기대가 너울처럼 번진다.

저 시퍼런 표지가 기대를 부추긴다.

 

 

어쨌든 책은 한국과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쓰인 것 같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의 전초기지로 선택된 두 지역. 오키나와로 끌려갔던 조선인. 위안부. 모든 문제와 역사적 비극들이 두 지점에서 교차된다. 어쩌면 거기서 일제에 항거할 수 밖에 없었던 순수한 저항의 뿌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거기서 이 오랜 역사적 잘못에 대한 사죄의 고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그 뿌리에서부터 더듬어 와야 할 것이다.

막연히 좋은게 좋은거라는 생각으로 양비론을 들고나와 혹은 그랬다더라 하는 불분명한 사실로 강제 화해를 종용하는 부류들에게도 들이밀기 좋은 '처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올곧은 역사관.

고개 돌리지 않고 마주보고 샅샅이 보아야 한다.

 

출판사제공 책 소개에 쓰여진 " 한국과 오키나와는 비트겐슈타인의 조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일종의 '가족유사성'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거시적인 역사의 국면에서 보면, 한국과 오키나와는 동아시아 역내에서의 패권/헤게모니 이행기에는 한상 '인질 상태'와 유사한 국면으로 이행하곤 했다 " 라는 부분에서 멈칫 했다.

바로 그거다.

인.질.상.태.

하지만 협상을 위해 살려두는 인질이 아니었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인질을 내세워 지위를 확보하고 인질과 협상상대를 모조리 진압하기 위한 인질상태.

그 위협적인 상황에 놓였던 멀지 않은 과거의 조상들, 아직도 생생하게 입으로 전해지는 그 이야기들의 근원을 들여다 보아야겠다.

 

두 섬.

기대가 크다.

도착할 때 까지 기대감은 더 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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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춤 비판세계문학 3
오까 루스미니 지음, 이연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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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적인 표지가 춤을 춘다. 인도네시아의 작가 우까 루스미니. 사실 잘 모르는 작가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아시아의 작가들의 책은 단편으로 엮인것 정도만 읽었으니까..요즘 부쩍 베트남,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대만등의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간다. 동양적 정서? 호기심? 그런 것이라고 뭉뚱그려 말할 만큼의 기초지식도 없는까닭에 딱 잘라 말하긴 뭐하지만..잘 읽힌다. 마치 한국만의 고유한 무엇인양 말하는 '한(恨)' . 그 한을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읽는 느낌이랄까? 물론 번역되어 한번 걸러진 것일테지만 말이다.

작가의 글은 투박하고 때론 엉성하다. 그렇게 느끼는 건 아직 완성도를 기대할 만큼의 공력(?)이 있는 작가는 아닌듯 싶다는 짐작과,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들에 독자가 쉽게 동화되지 못할만큼 정보가 적다는 한계가 함께 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게 되고 응원하게 되고 더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아시아 문학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춤 추는 여인들, 카스트 제도, 신분 상승, 여성, 신의 축복, 차별, 희생, 복종, 거부.. 이런 단어들이 두서없이 들어박히는 책이다.

읽는 내내 '짙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무슬림들이 많은 인도네시아에서 유난히 발리에는 힌두교가 자리 잡았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이어지는 시험문제 보기에서 골라야 했던 계급의 이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들, 요즘 말로 태어나보니 브라만이었어..태어나 보니 수드라였어..라는 상황에 수긍하며,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하려는 노력. 혹은 자신을 위해 신분을 버리는 선택을 하는 춤추는 여인의 이야기라면 흥미롭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수드라 출신이지만 브라만의 남자와 결혼한 엄마 스까르, 귀족의 신분을 얻었지만 여기에도 순수 귀족이냐 신분 상승한 귀족이냐에 따라 이름 앞에 붙이는 수사들이 달라진다. 어쨌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뜰라가. 귀족으로 태어난 뜰라가는 결국 귀족의 신분을 버리게 된다. 온전히 수드라의 여성으로 되돌아가는 딸.

이야기의 흐름은 그렇다.

춤이 매개가 되어 이 모든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무희의 피를 이어 받은 뜰라가. 단순히 재능이 아니라 그것을 신의 축복으로 여기는 사람들. 신의 선택이 있어야 사원에서 춤을 출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덕분에 작품 속에는 다양한 발리의 춤들이 소개된다. 어떤 춤일까, 상상하다, 급기야 동영상을 찾아보고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만든다.

아름다운 춤. 날렵하고 유연하며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춤을 그저 관광상품이 아닌 신께 드리는 제사로, 저 춤을 추기까지 무희들의 기도와 노력을 되짚으며 보게 된다.


계급이란게 뭘까?

그것이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간에 계급이 유지되었던 사회에서 계급, 신분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후세로 갈수록 차별과 계급성은 모호해지겠지만 그것이 과연 사라지고 평등한 관계라는 것이 가능한가? 라고 말이다.  차별과 신분은 다양한 변종으로 모습을 바꾸며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얼마전 읽은 고용신분 사회에서 공감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고용형태가 신분이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으니까..

삶 전반에 깊숙하게 파고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계급을 인정하고 복종하게 되는건, 혹은 자신의 신분과 계급을 지키고자 (그것이 지금은 기득권이라는 말로 표현되겠지만) 온갖 술수를 쓰게 되는 건. 이 관계가 쉬이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어떤 반증처럼 읽힌다.

그 어떤 사상이나 이념보다 강고한 것이 어쩌면 계급 아닐까. 그런 구분이 시작된 때로 돌아간다면 계급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


신의 선택을 받아 춤을 추는 이 조차 계급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존중하며 살아내는 삶.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의 춤이 있었을까. 어쩌면 뜰라가의 춤은, 발리의 춤은 구분하는 것으로 우위를 점하는 인간사회의 부조리를 딛고 일어서 신과 직접 소통하는, 그렇게 소통하고 온전히 자신을 쏟아낼 수 있는 관계에 대한 희망같은 것은 아닐까.


좁고 어두운 방에서 관습처럼 옷감을 짜는 늙고 야무진 손마디가 떠올려지는 작품이다. 씨실과 날실 사이를 교묘하고 날래게 움직이며 춤추듯 붉고 푸른 옷감을 짜내는 몸짓. 눈길이 닿지 못한, 손길이 미처 잡아채지 못한 코가 투박하게 몇군데 빠지거나 연거푸 짜여 볼록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보드랍게 쓰다듬다 부드러움이 지루할 즈음 손끝에 걸리는 매듭이 있는 옷감을 마주한 것 같은 작품이다.

귀족사원에 거드름을 피우며 제사를 올리는 콧대높은 이들의 몸을 감싸기 보다 폭폭한 훍먼지가 날리는 길 위에서, 혹은 녹음이 우거진 숲속 신전에서 기도하듯 축제를 하듯 나풀대는 여자애가 입을만한 밝고 아릿한 옷감 같은 작품이다.

짙고, 짙은 영상들이 눈 앞에 자꾸 어른거린다. 꽃잎 같기도 하고 햇살 같기도 한..발리 의 춤조각이 자꾸 나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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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친절한 미술이야기
안휘경.제시카 체라시 지음, 조경실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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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자의는 아니고 그저 가까운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들리는 것이다.

지난 번 커피 숍에서 몇몇의 젊은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현대 예술, 현대 미술, 그런 단어들이 오갔고 그들이 얼마전 보고 온 전시회의 작품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현란한 단어들이 넘실댔고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 미술학도이며 나름 진지했다는 것만 오롯이 기억된다.

그림 보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화가가 누구고 그림의 사조가 무엇이고를 알지도 못할 뿐더러 들어도 잊는 걸 보면 나는 예술적 감흐이라곤  없는게 분명하다. 그것도 미술쪽에선 더더욱..

그래도 가끔은 궁금하긴 하다. 특히나 '현대미술'이라고 칭해지는 작품들에서는 말이다.

그 현대미술이라는 규정을 시기로 구분하는 것인지, 내용으로 구분하는 것인지 형태로 구분하는 것인지 역할로 구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만 하면 다 아는 (사실, 나는 잘 모르는) 화가의 전시회나 이제 갓 데뷔하는 화가의 전시회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집구석에 틀어박혀 읽기에 몰두하는 내게는 좀 먼 이야기였다.


나는 예술과, 특히나 미술과는 거리가 먼 예술적 감흥이라곤 약에 쓰려해도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해버릴 즈음 그림 하나가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행복한 눈물". 제목에서 느닷없이 정현종의 '고통의 축제'를 떠올렸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 작품을 행복한 고통, 고통의 눈물 따위로 오독했던것 같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었던 행복한 눈물은 고가의 그림이었고 소장자 사이에 석연치 않은 이유들을 뉴스에서 보게 되었다. 기존에 보았던 그림과는 사뭇 다른 그림. 현대 미술이 저런 거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 끝에 떠오른 많이 들어보고 스치듯 알게 된 앤디 워 홀. 아. 그 사람도 있었지.

팝아트라고 했던가? 이전의, 예전의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들, 그러고 보면 백남준이라는 걸출한 예술가도 있었지. 이전엔 생각하지 못했을 것들, 그리고.. 그리고.

모 쇼핑몰 광고에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차용되기도 했다. 호퍼의 그림은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 그 영화를 좋아했었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

그것 말고도 좋아하는 작가인 제임스 설터의 책 표지도 근사했다. 올 댓 이즈, 스포츠와 여가, 어젯밤 등에 그려진 던컨 한나의 작품들..

이렇게 생각을 따라 가다 보니 미술이라는 것이, 현대 미술이라는 것이 그리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형태로 놓여있어 그것을 미술, 혹은 예술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건 아닐까?

마치, 어머니를 늘 보면서도 위인전을 찾아 읽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들을, 작품들을 더 잘 이해 해 보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조심스레 운을 뗀다.

"저,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미술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책은 어떻게든 읽힌다. 같은 책을 서로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서로 다른 길을 걷다 만나게 될 게 분명하다. 저마다의 요구와 지향이 다르고 궁금한 것과 알고 있는 것이 다르다면 이건 백퍼센트 다르게 읽힐 수 밖에 없다. 개념, 혹은 혼란스러운 부분마다 A~Z로 이어지는 다양한 목차로 이동할 수 있게, 참고할 수 있게 표시를 해 두었다. 그렇다보니 굳이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 메뉴판을 읽듯 차례를 죽 읽어내리다 흥미로운 부분에서 시작하면 되겠다. 결국은 한바퀴를 다 돌게고 한 권을 다 읽고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대표적 현대 미술을 훑어볼테니까 말이다.

큐레이터의 글은 일단 믿음직 하다.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를 읽으며 그것은 거의 확신이 되었다.

작품과 관객을 연결해 주는 그들은 작품의 언어나 화가의 언어를 관객의 언어로 전환시켜내는 능력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별히 열정이 그득하고 자신 역시 창작품을 만들어내는 큐레이터라면 더더욱 작품을 잘 설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고도 남을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열정이 읽힌다. 군데군데 안달이 나서 참을 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본 적이 있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분명히 있는 작품들을 책 속에서 만난다. 하나도 모르는 게 아니었고, 어설프게 알고 적당히 보아왔던 것이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책을 다시 펴고 메뉴를 선택한다.

Art, what For? What`s all this about?

시작해보자. 이것 저것 물어보며 이것 저것 만져보며 때때로 따져가며 말이다.

예술은 어떻게 남는가. 남기는가. 남겨지는가..무엇이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가. 하는 본래적 의문이 남지만, 그것보다 먼저 즐겨보는게 어떨까?


현대 미술은 커녕 미술을 잘 모르겠다면 읽어볼만하겠다.

읽다보면, 자신이 얼마나 미술, 혹은 예술 속에 숨쉬고 있었는지를 알게 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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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깡패 -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생각에 시비를 걸다
노야 시게키 지음, 김경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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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부터 흥미롭다. 깡패'라는 말이 폭력적인 의미가 아닌 두드러짐의 의미로 읽히는 것은 여러 의미를 품고 있다. 단지 시대의 변화라고 치부하기엔 부족하다. XX깡패. 반론을 허락하지 않으며 도전을 잘 헤아려 결정하라는 암묵적 경고처럼 읽히기도 한다. 일단 장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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