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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신간 소개글에 '체공녀 강주룡'의 작가 박서련이라는 것을 읽고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책을 구입했다.
체공녀 강주룡. 숨가쁘게 읽어내린 작품이다. 음성지원이라도 되는 듯 리얼한 서사는 실로 압권이었다. 강주룡의 이야기를 여러군데에 인용해서 쓸만큼 깊게 각인된 작품이었음을 고백한다.
그 기대가 너무 컸던걸까. 마르타의 일을 읽으며 몇번인가 작가를 확인했다. 서로 다른 결의 서사이고 주제의식이라 그럴 수 있다고 수긍하면서도 그 단단한 결기는 다 어디로 간거지? 싶은 아쉬움이 내내 남았다.
페이스북에 그런 서비스가 있다. 내가 죽으면 내 계정을 닫아줄 사람을 지정하는..그 서비스를 처음 알았을 때 생각이 많아졌었다. 과연 누구에게 내 삶의 흔적을 닫아달라고 해야할지 바로 떠올라주지 않았다. 쉽게 '가족'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많았고 (농담처럼 가족끼리는 친구 맺는거 아니다~라고 자주 말한다) 스쳐가는 인연일 수도 있는 온라인의 관계들은 미덥지 않았다. 단 한명의 친구. 그 친구밖에는 없겠다 싶었지만 선뜻 등록하지 않았다. 친구의 의견도 들어봐야할것 같아서...
살아가는 동안 남기게 되는 나의 흔적들은 죽어서 서서히 휘발되어버리겠지만 어느 공간에든 기록되어 있는 흔적은 시간이 지나도 동굴 속 벽화처럼 먼지를 덮어쓰고 남아있을게다.
연년생의 자매. 동생의 죽음을 파고드는 언니의 이야기.
그 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단함, 사람들의 평가와 비교, 가족들의 관계, 환락을 좇는 소위 지도층과 그의 자제. 사랑. 이 모든 이야기들이 떠돈다.
잘 응축되었다고 표현할 수 없어서 정말 아쉽지만 나는 읽는 내내 이야기들이 떠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배치하고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던 작가의 욕심이었을까.
개연성을 놓친 건 아닐까? 의심되는 지점도 있었다.
매니저 언니의 작중 포지션 같은...
어쨌든 문제제기는 탁월했다.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였고, 가시화 된 사건들도 있었던 것 같고..그것을 하나의 틀로 묶어낸 데에는 작가의 힘이 작동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누구나 생각했을 법한 문제는 양날의 검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격한 공감을 끌어내거나 빤한 이야기에 김이 새거나.
김이 새지는 않지만 마지막으로 치달아가며 뭔가 힘이 빠지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작가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완성도로 따지자면 전작만 못했다고 매정하게 평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대를 타고넘을 수 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몇번의 만족스럽지 못함을 겪는다해도 기어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낼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까닭이다.
어제 읽은 '단순한 진심'의 잔상이 남은 탓에 나도 모르게 비교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밑줄을 여러개 그었다. 작가의 개성과 목소리가 드러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예리한 눈매가 겹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서..
아쉬워서..어쩌면 부당한 내 기대를 탓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적어야 할 것 같았다.
조금 빼고, 조금 더 밀도있게..였으면
색이 고와서 한 입 베어 문 아주 조금 덜 익은 감을 먹은 것 같다.
달고 폭신한데 살짝 떫어서 잠깐 찡그리게 되는...그래도 색이 고와서 다행이다.
잘 익어가고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