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식탁 -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권지현 옮김 / 판미동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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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도서는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입니다


# 1. 먹을 거리를 믿을 수 없다.


색소를 넣은 고춧가루, 숙성이 아닌 썩은 젓갈, 향신료로 범벅이 된 불량식품,한동안 떠들썩했던 쓰레기 만두, 공업용우지를 넣었다던 라면..심하게는 다른 나라의 일이지만 멜라민 분유파동까지..

조금만 되짚어보면 참 많은 것들이 우리의 식탁을 위협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대처방법은, 불매. 그것으로 마무리되곤한다. 하지만 늘상 식탁을 고정으로 차지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대체식품을 찾을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유기농으로, 혹은 국내산으로 친환경으로 그렇게 조금씩 주류를 벗어나보기도 한다. 조금 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농약이 없는, 지렁이가 사는 밭의 것을 고르려고 애쓰게 되고, 그것이 마치 현명한 주부의 선택인양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러나..그 모든 노력들이 별 소용이 없는 것이라면 어떨까?

애써 평온을 찾아가는 식탁에 슬쩍 미소를 띤 채로 수류탄 하나를 던져넣는 손이 있다면 말이다.


# 2.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할 진실


2004년부터 시작된 언론인 마리 모니크 로뱅의 추적(?)은 충격적인 실태를 보여준다.

이미 파괴되어진 토양이 생태계가 어떻게 그 죽음을 공유하고 있는지 그녀는 피해자들의 실례와 기업과 국가의 유착, 기업과 학자들과의 거래, 기업과 기타세력과의 야합등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 어느것도 안전하지 않다는 결론 앞에 망연자실하게 만들지만, 결국 인간이 어떻게 건강하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반문이며 실천의 대안을 내놓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총 4부로 구성된 내용들의 제목만으로도 우리는 커다란 틀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1부 농약은 독이다.

2부 의구심을 생산하는 공장

3부 기업을 섬기는 규제

4부 내분비계 교란물질 스캔들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문제제기들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매체들이 이야기를 했었고 적당한 결론없이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지방 작은 동네의 아주머니들도 '무농약 사과'를 이야기하고 '환경호르몬의 피해'를 이야기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나 그런 피해들이 생겨나는 이유를 몰라도 말이다. 이렇게 많이 퍼져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피해들에는 어떤 이유들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주 쉽다. 

농약의 피해가 생겼을 때, 그 피해의 근원이 '농약'임을 밝혀내는 것은 피해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합적으로 사용된 여러 농약들 중 어떤 것에서 기인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은 '농약'이라는 표현대신 '식물약제'라는 표현을 쓴다.

<농약이라고도 불리는 식물약제>, <식물약제라고도 불리는 농약>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쓰는 기업과 속절없이 당하고 마는 피해자들..

자, 이제 이 피해자들이 농부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움찔하게 해보자.

농약을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이들은 농부가 맞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농약을 쓴 식물을 초식동물들의 먹고,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고, 그렇게 생태계 상위자리까지 오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초식동물들이 먹는 식물의 양은 얼만큼인지, 육식동물이 먹는 초식동물의 양은 얼만큼인지, 내게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농약들이 희석되거나 배출되지 않은 채 그들의 지방에 고스란히 축적되어 전달되는지를 깨닫는다면 오금이 저리지 않을 수 없다. 



# 3. 수많은 화학물질의 위협속에서 살아남기.


화학물질이 우리들의 삶에 끼어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차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적극적으로 연구되고 시행되었다. 인류의 역사를 놓고보면 이는 매우 짧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대량생산과 개발을 위해 제초제가 보편화되고,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 살충제가 개발되었다. 대표적으로 DDT같은 것들이 얼마나 쉽게 사람에게 사용되었는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휴전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머릿니를 없애기 위해, 혹은 장티푸스등의 병원균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에게 직접 DDT를 뿌리곤 했었다.



심지어..전쟁과 가난으로 힘겨운 이들은 이렇게라도 병균을 없앨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을 고마워하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이미 교란이 시작된 생태계와 그 결과로 환경호르몬들이 중세의 흑사병보다 참혹하게 번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방법은 찾아질 것이다.

더 이상 피해갈 곳이 없는 식탁의 안전을 개인의 노력과 방비로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매일매일 독을 먹고 있다>는 사실과, 그 독들이 해소되거나 희석되지 않고 몸 속에 쌓이며 다음 세대에게 태중에서부터 전달되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이다.




#4. 빨리 온 만큼 천천히

해충을 빨리 박멸하고 순식간에 대량생산을 해내고, 빠른 농지를 개발한 댓가는 죽음의 식탁이라는 결과를 내어놓았다.

다른 종들을 죽이고 올라온 생태계의 끝자리에서 인간은 자신의 종이 변이를 일으키거나 단종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것이다.

그렇다면..이제 돌려놓아야 한다. 이익과 지배와 통제가 아닌 공유할 수 있는 자연으로 말이다.

국가가, 기업이, 과학이, 그리고 인간이 공동의 책임을 지고 이 과오를 수습해가야만 한다.

무너뜨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으나, 되돌리는 시간은 아주 오래걸릴 것이다.

1000조각 퍼즐을 흩어놓고 다시 맞추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동안, 다시 조급증과 탐욕이 편리성이 틈탈 수 없는 규제와 원칙, 견제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누가 해야할 것인가.

감히..

몸 속에 0.000001마이크로그램이라도 농약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자이며 가해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해본다.

이 틀에서 자유로울 인류는 아마 없을 것이다. 어딘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오지에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바람을 타고 물을 타고 퍼져 온 지구에 속속들이 배어있는 화학물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막연히 조심해야지..이러면 안되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막연한 의지로 끝나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 도서다.

전문용어들이 가끔 나오긴 하지만, 그리 어렵지않게 읽어낼 수 있다. 시리즈물로 나온 다큐멘터리처럼말이다.


식사는, 가장 존엄한 일이며, 식탁은 가장 고결한 장소여야 하지 않을까?

삶의 기초적인 것이 보장되어지지 않는다면..

무엇이 웰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길어진 평균수명..건강하게 살아남고 싶다는 건..과한 욕심인건가..책을 덮으며 고민이 시작된다.


결과가 없다는 사실이 위헙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은 위험을 분명히 밝힐 수 없다는 의미일 때가 많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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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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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맹가리..이 죽도록 예술적인 이름을 앞세운 글들은 얼마나 편파적 애정과 기대를 품게 하는가.

에밀 아자르..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 역시도.

 

"새들이 왜 먼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p12)"

 

그렇다면 당신의 설명은?

이라는 호기심으로 새들이 날개를 접는 그곳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시도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단순한 생리적 분비 현상으로 연구되리라(p13)"는 그의 말에서 기대를 품는다.

 

그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여자의 대화는 참으로 묘했다.

 

"이 새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먼바다에 섬들이 있소. 조분석 섬들이오. 새들은 그곳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서 죽소."

"왜요?"

"모르겠소. 갖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럼 당신은요? 당신은 왜 여기로 왔죠?"

"저 카페를 운영하고 있소. 여기 살아요." (p17~18)

 

어떤 대상에게는 죽음의 좌표가 되는 곳이 어떤 대상은 삶의 좌표가 되어지는 것.

희망은 절망의 밭에서 피어나거나, 혹은 절망의 변종으로 싹을 틔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희망이 고문이 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 태생의 비밀때문이 아닐까?

 

 

# 2.

단지 "새"라는 소재 때문이었을까?

새들이 죽어가는 해변을 떠올리자 히치콕의 <새>가 자꾸만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새들이 잔뜩 내려앉은 공포의 해변..이 새들도 어쩌면 어두운 어느 밤을 선택해 자신이 날개를 접을 페루로 날아갈까?

하필이면 새였을까?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장소를 정하는 코끼리나 고래가 아닌 새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작품의 시작에서부터 되뇌이며 반복되는 말처럼 "이유가 있는" 일이었을까?

 

어쩌면 그 가녀린 날개를 접음으로 추락하는 순간의 마지막을 그려내고 싶었을지도 모를일이다. 추락이 곧 죽음임을..절망이 곧 죽음임을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 애처로운 날갯짓처럼 퍼덕이는 민망한 희망을 파도를 핑계삼아 지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새와 바닷가..그리고 세상이 끝인 리마의 어느 바닷가를 선택한 것이 설명되지 않을까?

세상의 마지막 지점까지 따라오는 희망이라는 것과 날개를 접는 순간까지 타협하고 거래를 해야하는 절망을 말이다.

 

 

#3

역시나 히치콕의 포스터 하나를 본다.

 



 

여자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날아오르는 새들.. 멋지다.

 

 

#4.

 

새들은 혼자 날아오르고 혼자 떨어져내린다. 무리를 지어 날더라도 다른 새의 날갯짓을 대신 해 줄 수는 없다.

태초의 생명이 올라왔을 바닷가 언저리 어딘가에서 삶의 끈을 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제가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고독의 끝에서 절망과 타협하며 희망을 지키는 것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댓가를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지독한 관계를 로맹가리는 눈물겹게 그려낸다. 열여섯개의 단편 중 첫번째 표제작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시작을 서늘하게 해서인지..쉽게 다음작품으로 넘어가기 힘들기도 하다.

로맹가리와 히치콕과 새

남자, 그리고 여자..무표정하게 이 모든것을 지켜보며 흔적을 지우는 바다.

이 푸르고 시린 그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곧 바람이 불고 해일이 일어 모든 흔적을 지운 채 새로 배치한 캔버스처럼 새초롬한 표정을 지을것만 같다.

그리고, 새와 사람과 고독과 희망으로 그려지는 풍경이 채워질것 같다.

왜?

"모든 것엔 이유가 있으니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도 있는 법이니까.

중요한 건..<이유>가 있다는 것.

사람들 쓰러뜨리고 뒤엎고 바닥으로 내던졌ㄷ가, 두 팔을 뻗고 두 손을 들어올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가, 지푸라기가 눈에 띄는 순간 매달릴 시간만 남겨놓고 놓아버리는, 먼바다에서 다가오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고독의 아홉번째 파도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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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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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차

 

황정은 - 상류엔 맹금류  (황현경 - 터프해라)

조해진 - 빛의 호위  (박인성 - 감각의 디아스포라)

윤이형 - 쿤의 여행  (금정연 -with or without 쿤)

최은미 - 창너머 겨울 (전소영 - 창 안쪽 상흔)

기준영 - 이상한 정열 (이재원 - 뛰고 또 다시 뛰는)

손보미 - 산책  (신샛별 -나는 잠들고 있는데, 너는 산책을 떠나네)

최은영 - 쇼코의 미소 (양재훈 - 그들은 다시 만나야한다)

 

각 작품 뒤에 작가의 말과 해설.

작품을 낳은 작가들의 필력이야 더할나위없이 건강하고 뜨겁지만, 그 작품의 해설을 적어내린 이들의 역량 또한 대단했다는 것을 감출 수 없다.

특히나 금정연의 해설과 전소영의 해설은 잘 쓰여진 수필이거나 간질거리는 편지같아서 웃음을 지은채 읽어내리며 무릎을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렵지 않은 말들로 작품의 정서나 작가의 목소리를 따라 쓰여지는 해설은 잘 만든 브라우니처럼 부드럽고 달콤했다.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해설자들의 역량을 운운하다니, 좀 우습지만 사실 작가들의 작품은 기대감과 어느정도의 가늠치가 있었다면 해설자들의 해설은 뜻밖의 당첨선물같은 느낌이었으니 더 생생하게 남았는지도 모를일이다.

우리 문단은, 참 건강한 작가들과 쌈빡한 평론가들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한껏 뻐근했던 책이었음을 고백한다.

 

 

#2. 밑줄

 

- 답이 없다고 질문을 버리면 그 보통의 존재는 마침내 괴물보다 더 위험해진다. 그런 이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도 만드는 게 다름아닌 '나'들이다. (p41 황현경의 황정은 해설)

 

- 전쟁의 비극은 철로 된 무기나 무너진 건물이 아니라, 죽은 연인을 떠올리며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젊은 여성의 젖은 눈동자 같은 데서 발견되어야 한다. (p49 조해진 빛의 호위)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소문자 역사 (history)의 형태로만 기록될 수 있는 삶에 다가서기 위한 최소한의 입구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가. 문제는 그 입구에 들어서는 자의 불안이 구체화되는 순간이다 (...) 서술자 '나'의 두 눈이 집안의 어둠 속에서 그저 암순응만을 기다려야 했던 것처럼. 그러한 희미하고 불확실한 감각에 스스로를 내맡길 때에만 비로소 구체화되는 삶의 순간이 존재한다. (p72~73 박인성의 조해진 해설)

 

- 오래전 내가 쿤을 만난 날도 꼭 이랬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를 모두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 날, 거울에 비친 나는 잘못되어 보일 만큼 불완전했고, 그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p108  윤이형 쿤의 여행)

 

- 상흔이라는 것이 결국 우리가 지닌 가장 진솔한 공감의 장소라는 것을 말이죠. 고통(passion)이 공감(com-passion)의 가장 순수한 매개라는 건 외롭고 슬프고 또 다행스러운 일이예요.(p169 전소영의 최은미 해설)

 

- 사건의 진실이 하나일 때에도 사람의 진실은 여럿일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얽혀 만들어낸 관계에 오해와 의심과 해명이 끼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36 신샛별의 손보미 해설)

 

- 자신의 삶으로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사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어야 쇼코는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었다. (p224 최은영 쇼코의 미소)

-나는 그냥 쇼코의 가상 친구나 일기장 정도였는데, 쇼코는 그냥 그 일기장에 일기 쓰기를 그만둔 것뿐인데, 일기장주제에 쇼코의 삶에 개입하려고 했다. (p260)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p261)

-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p271)

-슬픔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결국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엄마였다. 평생을 함께 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눈물을 풀어낼 수조차 없는 사람, 울고 게워내서 씻어낼 줄을 모르는 사람, 그저 차가운 손과 발, 두통처럼, 보이지 않는 증상으로만 아픈 사람이 엄마였다.(p286)

 

# 3. 영양가 없을 댓글

 

*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

: 황정은에 대한 기대감은 늘 크다. 그의 이름이 주는 즉각적인 느낌은 거침없음이다. 감추고 숨기며 말랑하게 돌려 이야기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고집스러움이 보인다. 황정은의 ettitude인 것이다.

존중받아 마땅하고 그녀의 것으로 두는 것이 예의이다. 물론 그 영역을 깨뜨리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기대감은 곧잘 실망이나 질투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잔영이 너무 깊에 남은 까닭에 기대감은 더없이 커졌고 사실은 살짝 질낮은 숨이 삐져나오기도 했다. 저급한 독자의 조급한 기대감인것이다.

CREEP을 불렀던 RADIOHEAD를 떠올렸다. CREEP의 성공으로 그들의 이름이 회자되고 아마도 오래도록 같은 노래를 불렀을게다. 자신에게 명예를 안겨준 노래..하지만, 그들은 어쩌면 High and dry나 Just를 부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노래의 주인으로서 어떤 평가도 없이..상류엔 맹금류를 쓰는 황정은의 모습과 톰 요크의 모습이 부채의 앞뒷면처럼 번갈아 펄럭거린다. 시리다.

 

 

*조해진 - 빛의 호위.

:조해진, 이 책을 읽으며 이름을 적어놓은 젊은 작가다. 눈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 마치 내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속에 투영된 내 표정을 읽어낼 줄 아는 것처럼..그는 자신의 작품의 끝에 이런 말을 남겼다 '대단하고 위대한 삶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인간다워지는 순간에 대해서 쓰고 싶어서였다고요.'

대단하고 위대하지 못한 삶들의 부딪힘과 그 산란이 엮어가는 빛의 세계, 그 대단하고 위대함을 그는 보고 있는 것일까? 야무지지만 결코 느슨하지 않은, 냉철하지만 차갑지만은 않은 작가를 만나게 된것이 더없이 좋다.

누군가 몇권의 책 제목을 말해주며 "참 좋다~"는 내 말에 격하게 동의해주어 더 좋다.

책을 읽으며 가장 좋은 때는 이렇게 보석같은 작가를 발견하는 일일게다.

오래도록 입안에 굴리는 말..디아스포라..디아스포라...

 

*윤이형 - 쿤의 여행

: 참신한 이야기. 윤이형의 서사력. 마치 기담인양 현실인양 현실과 은유의 미묘한 간극을 오가며 적절하게 끄집어내는 내면의 소리가 매력적이었다. 도대체 '쿤'은 무엇일까?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어디에도 속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정체불명의 단어. 단순한 사람들이 늘 그렇듯, 뭔가 하나 안풀리면 골똘히 생각을 꽂아두고 꼼짝을 안하게 되는..바로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쿤은? 언제쯤 만난거지? 나는 쿤을 떼어내야하는건가? 이녀석을 떼어두고 휘적이면서라도 내 힘이란걸 믿으면서 살아낼 수 있을까? 이사람 좀 용감한데? 이런 생각들이 문장을 따라 흐른다.

마치 잘 쌓여진 산성의 담을 따라 기어가는 오래묵은 구렁이처럼 스멀스멀..

 

* 최은미 - 창 너머 겨울

:장난기였겠지만, 산울림의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라는 노래를 틀어놓고 한참을 흥얼거리다 책을 폈다. 책 속의 온도는 낮다. 건조하고, 햇살이 쨍하다. 북서계절풍이 부는 그런 느낌.

아주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작품을 위해 적절하게 쓰이고 자신이 쓰임받은 그 자리에서 온몸으로 빛나는 글이다.

억지로 안간힘을 써서 짜낸 글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금은 서늘하지만 쨍한 햇살 덕에 서럽기만하지는 않는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피식 웃음이 터지는 대목까지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는가. 떨잠을 사고 싶어졌다.

 

*기준영 - 이상한 정열

: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담담하다는 건, 담백하다는 건 이런것이겠구나 했었다. 감정의 과잉이나 너절한 감정의 소비없이 담담하게 그려내는 힘. 자칫 맥이 풀려버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단단히 조여 쥐는 이야기의 긴장. 기준영의 글은 그렇다. 노련한 사공이 젓는 호젓한 나룻배처럼 한창 일렁이기도 하지만 뒤집힐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뱃사공이 어찌할 것인가가 가늠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의 노하우는 비범한 무엇이니 말이다.

다만, 그를 믿고 그의 배에 오르는 것,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비경에 감탄하며 혹은 눈물을 찍어내며 그의 풍경을 읽어내면 되는 것이다.

쌈빡하다는 말..이럴 때 쓰는거지 싶다.

 

*손보미 - 산책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라는 책으로 작가를 처음 알게 된다. 여러 리뷰어들이 그녀의 경쾌하고 맑은 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도 듣는다. 호기심은 생겼으나 그다지 호감을 갖진 않았지만, 이렇게 만나는 손보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의 작품에 해설을 맞은 신샛별은  '손보미가 누구보다도 관계의 속살을 면밀하게 이해하고 있는 작가'라고 이야기한다.

딱 떨어지는 평이다. 진부하거나 식상한 관계의 설정이 아닌 관계속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투영해내는 힘이 있다.

어정쩡하게 펼쳐놓은 관계 속의 갈등이 아니라, 가지런하게 펼쳐놓고 조목조목 짚어가는 느낌이다. 이거는 이거랑..저거는 저거랑..그래서 말이지..하는 식으로..

그래서 화려하거나 거창한 문장으로 치장하지 않아도 좋을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담요'를 읽고 많이 울었다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손보미의 글을 읽고 싶어졌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단정한 진실과의 마주서기란 얼마나 깔끔한 자세인가..

 

*최은영 -쇼코의 미소

나와 쇼코와 나의 할아버지와 쇼코의 할아버지와 나의 엄마.

거의 대부분의 글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아니 읽어냈다. 정말 잘 짜여진 구성과 관계.

쇼코의 미소를 필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몇번이고 다시 되짚어 읽게 되는..책을 다 읽었지만, 아직 다 읽은 것 같지 않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쇼코와 나의 이야기가 책갈피 어딘가에 전달되지 못한 편지처럼, 엽서처럼 꽂혀있을것만 같아서 말이다. 최은영을 알게 된것은 아주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 4.

젊은 작가라서 다행이다. 노련함을 뽐내지 않고, 글 속에서 보여지는 매너리즘도 없다. 담담하고 당당하게, 그러나 매끈하지는 않게 그려낸다. 매끈하지 않다는 건 숙련이 덜 되었다기보다는, 그들이 고민하고 품고, 다시 고민하고 글과 함께 살아낸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는 것이다.

축축한 흔적이, 서러운 눈물 자욱인지, 긴 하품 끝에 나온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의 설움과 잠을 헤집고 다녔을 그놈의 글이 제법 단단하고 야무진것이다.

<젊은>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

아직 한참 더 기대를 갖고 읽을 것들이 많이 나타날테니 말이다.

다음 해에도 개최 될 것이 분명한 축제를 잘 즐기고 돌아서는 느낌이다.

괜찮다. 축제는 또 열릴테니까. 좀 더 뜨겁고 세련되고 젊고 힘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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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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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이 사유의 박제가 아닌 삶의 결과물임을 증명하는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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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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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길치의 비애.

 

한 번 갔던 길을 용케도 기억하는 남자가 있다. 어디든 자신이 발을 디뎠던 곳은 어떤 방법으로든 실수 없이 찾아가곤 한다. 네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지도를 한 번 훑어보곤 서울 친정집까지 차를 운전하여 간 사람. 내 짝지다.

한 번이 뭐야. 두 번, 세 번 간 길도 늘 헷갈려하고, 아무데서나 '여기 우리 왔었지?'를 남발하며 길치임을 부정하려 드는 사람이 있다. 나다.

어디를 가든, 미리 갈 곳을 점검하고 가는 짝지와 달리, 나는 대충 어디쯤인가만 (이 역시도 불확실할 때가 대부분이다) 확인하고 일단 간다. 그리곤 곧 길을 잃고 하염없이 걷고, 살피고, 아무데나 들어가서 한 숨 돌리고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약속시간을 한참 지나쳐버리거나, 골이 난 짝지가 찾으러 오곤 한다.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찾아가는 것. 그것이 좋은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길을 잃어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은 실로 엄청나다.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생겨난 곳을 다시 찾아가보고 싶지만, 찾을 수 없다. 그 근처를 맴돌거나 아주 엉뚱한 곳으로 가고 마는 것. 길치의 비애다.

 

이즈미 로안은 길치다.

그는 길을 건너는 순간에도 길을 잃는다. 분명 산길이었는데 어느새 바닷가에 들어서 있거나, 동굴 속에 들어가 있거나, 남의 집 창고에 들어가 있기도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다. 길치라면 말이다.

 다시 찾아갈 수 없는 곳에서 벌어진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모여 엠브리오 기담이 시작된다.

 

 

 

(야첵 예르카( jacek yerka))

 

자신의 삶에서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은 있는가? 어차피 길을 잃게 되어 있다면, 그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 2. 이런 목차

 

-엠브리오 기담

-라피스 라줄리 환상

-수증기 사변

-끝맺음

-있을 수 없는 다리

-얼굴 없는 산마루

-지옥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역자 후기

 

역자후기를 목차와 더불어 적어야만 하는 책이다.  또 하나의 에필로그처럼 적어 내려간 역자 후기 또한 일품이다. '이 사람..멋지다'하게 만든 후기. 뭔가 정형화되고 분석적인 후기가 아니라, '정말 책과 소통하며 내용에 담뿍 젖어들어서 번역을 했구나, 그러니 재미있을 수 밖에..; 라는 생각이 과하지 않다.

 

주운 태아를 품에 안고 키우는 이야기, 파란 구슬을 받아들고 몇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온천의 수증기 속에서 만나는 오래전의 인연들, 모든 것이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는 마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다리 위의 사람들, 잔인함이 뚝뚝 떨어지는 살아있는 지옥, 빗 하나로 벌어지는 사건, 나와 이즈미 로안의 인연..

모든 이야기의 도입부가 비슷하게 시작되어진다. 앞서 읽은 에피소드가 자연스레 연결되는 묘한 구조다. 다른 이야기지만 결코 다른 이야기가 아닌, 개별적 사건이지만 시,공간적으로 치밀하게 얽혀있다.

 

라피스 라줄리의 환상. 나는 이 이야기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다시 태어나는 삶. 이전의 삶 속에서 만나고 겪었던 일들을 고스란히 기억한 채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이것이 축복일것인가. 스스로 자살을 하지 않는 이상 다시 태어날 수 밖에 없는 기막힌 이야기. 갖고 싶어졌다. 라피스 라줄리..나는 몇번의 삶을 겪어내면 더 이상은 원하지 않아. 라고 결심할 수 있을까? 내 욕심의 끝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라피스 라줄리-청금석)

 

# 3. 이즈미 로안

 

이즈미 로안은 여행서적을 쓰는 일을 한다. 그는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그곳의 이야기를 적어내는 것이다. {도중여경}이라는 여행 안내서를 쓰는 작가이다.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건, 이즈미는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하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인다. 이즈미의 길잃기가 어쩐지 의도된 것일 거라는 생각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뭐라고 정의 할 수 없는 존재. 그러나 아직 덜 풀린 이야기들, 저들의 앙금과 아픔, 혹은 오해와 고통을 어루만져주고 해소해 주는 길을 찾는 어떤 사람. 그들의 못다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어떤 사람. 이즈미는 그 어떤 사람인 것은 아닐까.

길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이즈미..삼손처럼 그의 이야기도 그 머리카락 속에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일까?

 

책 속에서 만나지는 관경은 실로 참혹하기도, 두렵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상황이 아주 섬세하게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던져 놓은 환상의 버튼이 작동 되는 순간, 몇가지의 설명 코드만으로도 실로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된다. 속이 울렁거릴만큼의 참담함..같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즈미 로안의 탄생은 언급되지 않지만- 이즈미는 붓을 들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고통을 적어내야 하는 천형을 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길에서 벗어나기는 어쩌면 잘 프로그래밍 된 행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Jim Warren)

 

 

# 4. 밑줄.

 

- 죽어서 다시 태어나길 반복해, 여태 살아온 세월이 백년을 넘었다.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헤아릴 수도 없다. 그래도 제 손으로 키운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은 기억했다. 어느 아이가 어떤 성격이었는지도 잊이 않았다. 천 년이 넘게 산다 해도 품에 안았던 아이의 무게를 기억할 것이다. (70쪽) - 라피스 라줄리의 환상

 

- 사라진 사람의 얼굴을 언제까지나 기억하는 게 가능할까? 하루하루 무언가를 새로이 보고 듣는 나날 속에서 옛날 일은 윤곽을 잃고 어렴풋해진다. 머릿속에 수증기가 끼는 것처럼 사라진 사람의 얼굴이 흐려진다.(101쪽)- 수증기 사변

 

-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증오였다. (..)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모든 감정과 사랑은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 노파를 걷어찼을 때 느낀 감촉이다. 나 혼자만이라도 살아남고 싶었다. 남을 밀어내서라도. (179쪽) - 있을 수 없는 다리

 

- 글을 쓴다는 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걸 누군가에게 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글도 쓸 줄 알아야죠. (309쪽) - "자, 가요 ." 소년이 말했다.

 

 

 # 5. 길을 잃어도 괜찮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현실이 팍팍하고 서럽다고 좌절할 일도 아니다. 단지 길을 잘 못 든 뿐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금방 도착할 길이었는데 너무 오래 헤매고 있다고 노여워 할 일도 아니다. 가끔은 오래 걸릴 길을 금방 찾아내기도 하지 않는가.

중요한건,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올바른 지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삶 속에 미처 태어나지 못했던 이야기, 태어났지만 너무 약했던 의지들, 몇번이고 다시 태어나도 온전히 만족하지 못했던 이야기, 이게 정말 내 이야기인지 믿기 어려운 자신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처 다 듣지 못하고 묻어둔 이야기..차마 꺼내지 못하고 마주 하지 못한 이야기..세상의 평가가 두려워 없는 척했던 이야기..그 이야기들은 그렇게 묻히고 잊혀지고 사라지게 되는걸까?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전개되고 드러날 것이다. 맺히고 풀리는 것이 순리라면 말이다. 저마다 살아가는 일은 모험이고 낯선 여행이다.

누구에게나 현재는 처음 맞는 시간이고, 처음 마주하는 상대일테니까..

백만명의 사람들이 백만가지의 방법으로 현재를 살아낼것이다. 그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억울해하거나 두려워 하지 말일이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되니까 말이다.

 

 

 

(Joel Robison 사진)

 

이즈미 로안이 한 마디 건넨다.

 

"자네는 꽤나 비관적이군. 나는 조금도 불안하지 않아. 그냥 산에서 길을 잃은 것뿐이잖아." (185쪽)

*P.S​

각 이야기들 사이에 끼어있는 나비가 그려진 간지가..정말 멋지다는 귀뜸을 꼭 하고 싶었다.

정말..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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