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 1.

 

로맹가리..이 죽도록 예술적인 이름을 앞세운 글들은 얼마나 편파적 애정과 기대를 품게 하는가.

에밀 아자르..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 역시도.

 

"새들이 왜 먼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p12)"

 

그렇다면 당신의 설명은?

이라는 호기심으로 새들이 날개를 접는 그곳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시도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단순한 생리적 분비 현상으로 연구되리라(p13)"는 그의 말에서 기대를 품는다.

 

그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여자의 대화는 참으로 묘했다.

 

"이 새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먼바다에 섬들이 있소. 조분석 섬들이오. 새들은 그곳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서 죽소."

"왜요?"

"모르겠소. 갖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럼 당신은요? 당신은 왜 여기로 왔죠?"

"저 카페를 운영하고 있소. 여기 살아요." (p17~18)

 

어떤 대상에게는 죽음의 좌표가 되는 곳이 어떤 대상은 삶의 좌표가 되어지는 것.

희망은 절망의 밭에서 피어나거나, 혹은 절망의 변종으로 싹을 틔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희망이 고문이 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 태생의 비밀때문이 아닐까?

 

 

# 2.

단지 "새"라는 소재 때문이었을까?

새들이 죽어가는 해변을 떠올리자 히치콕의 <새>가 자꾸만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새들이 잔뜩 내려앉은 공포의 해변..이 새들도 어쩌면 어두운 어느 밤을 선택해 자신이 날개를 접을 페루로 날아갈까?

하필이면 새였을까?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장소를 정하는 코끼리나 고래가 아닌 새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작품의 시작에서부터 되뇌이며 반복되는 말처럼 "이유가 있는" 일이었을까?

 

어쩌면 그 가녀린 날개를 접음으로 추락하는 순간의 마지막을 그려내고 싶었을지도 모를일이다. 추락이 곧 죽음임을..절망이 곧 죽음임을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 애처로운 날갯짓처럼 퍼덕이는 민망한 희망을 파도를 핑계삼아 지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새와 바닷가..그리고 세상이 끝인 리마의 어느 바닷가를 선택한 것이 설명되지 않을까?

세상의 마지막 지점까지 따라오는 희망이라는 것과 날개를 접는 순간까지 타협하고 거래를 해야하는 절망을 말이다.

 

 

#3

역시나 히치콕의 포스터 하나를 본다.

 



 

여자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날아오르는 새들.. 멋지다.

 

 

#4.

 

새들은 혼자 날아오르고 혼자 떨어져내린다. 무리를 지어 날더라도 다른 새의 날갯짓을 대신 해 줄 수는 없다.

태초의 생명이 올라왔을 바닷가 언저리 어딘가에서 삶의 끈을 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제가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고독의 끝에서 절망과 타협하며 희망을 지키는 것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댓가를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지독한 관계를 로맹가리는 눈물겹게 그려낸다. 열여섯개의 단편 중 첫번째 표제작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시작을 서늘하게 해서인지..쉽게 다음작품으로 넘어가기 힘들기도 하다.

로맹가리와 히치콕과 새

남자, 그리고 여자..무표정하게 이 모든것을 지켜보며 흔적을 지우는 바다.

이 푸르고 시린 그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곧 바람이 불고 해일이 일어 모든 흔적을 지운 채 새로 배치한 캔버스처럼 새초롬한 표정을 지을것만 같다.

그리고, 새와 사람과 고독과 희망으로 그려지는 풍경이 채워질것 같다.

왜?

"모든 것엔 이유가 있으니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도 있는 법이니까.

중요한 건..<이유>가 있다는 것.

사람들 쓰러뜨리고 뒤엎고 바닥으로 내던졌ㄷ가, 두 팔을 뻗고 두 손을 들어올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가, 지푸라기가 눈에 띄는 순간 매달릴 시간만 남겨놓고 놓아버리는, 먼바다에서 다가오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고독의 아홉번째 파도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p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