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는 목소리
한정선 지음 / 불란서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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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는 목소리 -한정선 산문집

양극성 장애와 불안장애, 수면장애와 메니에르등등을 앓고 있는 저자. 사실 이런 복합적인 증상들이 발현하게 되면 삶은 피폐해지고 희망이나 의지는 절망, 좌절과 치환되기 시작한다. 절망과 좌절의 양적 팽창이 희망과 의지를 넘어서는 건 일도 아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죽음과 코를 맞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죽을 각오로 살면 되지. 라고 누군가는 말하고 '선택'이라는 말도 종종 들려오지만 선택의 순간이나 선택의 기준은 없이 무의식, 무의지적으로 극단적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산 자들의 온갖 소리는 사실 무의미한 일이다.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것. 그 시작은 매우 어렵다. 마치 얇고 얇은 잠자리 비늘 같은 터널을 단 하나의 손상도 없이 지나가야 하는 일을 앞에 둔 사람처럼 머뭇대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적어도 잠자리날개같은 터널을 지나보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훌륭하고 대단하다.

고통 속에서 겸허해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감각이 있는 상태다. 매우 좋은 상태. 고통조차 감각되지 않는 우울의 상태에서는 겸허해지거나 자극이 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당위는 꿈쩍도 않는 등을 자꾸만 밀어댄다.
사람의 소리, 그 소리들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할 때 감각은 깨어나기 시작한다. 들리고, 보고, 만지고, 쓰다듬고..
책을 읽는 내내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에게도 중요하겠지만 스스로에게 다정해지고 싶다는..
자신에게 엄격한 삶은 고단하고 서럽다. 한계치까지 자신을 몰아붙여야 뭔가 증명이 되는 삶은 피로하다.
나를 돌보는 일.
그것은 생존의 문제다. 수많은 우울과 양극장애 호소글(?)들을 봤지만..이 저자가 찐이다. 아직은..

[흔들림 없는 삶이 가능한가 하는 것은 여전히 내겐 주요한 질문거리이다. 가만히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듯 지난 세월을 상기하면, 평생을 흔들리고 흔들리면서 살아온 시간만 떠올라서 묵직하고 깊은 중심을 갖는다는 게 애초에 내게는 불허된 것 같았다. (...) 산은 못돼도 바위 비슷한 것은 되고 싶었는데, 큰 나무는 못돼도 갈대처럼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작은 돌멩이고 강아지풀이었다. (..) 자신을 감당하기도 힘들어하면서 어떻게 타인을 감당해 내겠는가.(247쪽)]

다정해지자. 다정하다는 말이 몹시 좋아진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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