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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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이 뭘까...그리고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이 하나의 제목만으로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할 만큼 자극적이었다. 게다가 프랑스에서 비혼으로 낳은 아이를 안고 있는 표지의 그녀의 모습에서 규범과 관습에서 탈피하여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느껴진다. 이 사진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대한 당당한 도전이다. 시대와 사회가 변하여 싱글맘이란 신조어가 생기고,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관대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갖는 두려움의 실체는 결국 타인의 판단과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모든 판단과 평가가 내 안에만 있다면, 두려움 따윈 정복하고 살 수 있다." <p.309>

IMF의 경제적 위기와 개인적인 절망에서 탈출하고자 망설임없이 떠난 프랑스에서 자유로운 예술가와 사랑에 빠지고, 그의 아이를 낳아 키우며 자기 생활에 확신을 가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불만을 터트리고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단, 그 욕망은 자신의 욕망인지 남들이 그렇게 되길 바라는 욕망인지 가늠해 봐야한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은 누구나의 바램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바램들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이렇게 내가 살아도 남들이 날 괜찮게 생각할까?'라는 의식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될까 싶다. 그런 불안한 감정들이 마음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내 마음 속 생각과 충돌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겠느냔 말이다. 더군다나 아직 가부장적 가치관이나 유교의 관습들이 세상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더군다나 여성이라면 더욱더 자유의지가 구속되게 마련이다. 그녀가 프랑스로 떠난 것은 단순히 국경을 넘어간 것이 아니라 이런 규범이나 가부장적인 가치관에서의 떠남이었다.

나는 사회생활에 익숙해지다보니 꼭 결혼을 해야겠다는 필요성도 못느끼겠고 지금 생활에 100퍼센트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하면 행복해질까라는 확신도 없다. 그리고 혹여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아이르 낳아 키우는 내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결혼도 안하고 아이만 낳아 키우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들의 문화적 예술적 공감대와 자유로운 사랑의 감정이 느껴졌고 자신감에 충만한 삶과 확신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렇게 그녀 자신의 삶과 규범의 탈피..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선 삶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표출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녀는 단순히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사회적 가치관이나 제약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이다. 가부장적 중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어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진보란 어떤 커다란 개혁을 위해 개인의 욕망이나 가치관은 쉽게 희생되거나 포기되어지는 그런 맹목적이고 관념적인 '운동권'이 아니라 생활에서부터 작은 것을 실천하는 일명 '생활좌파'에 대해 이야기한다.

덧붙여서 그녀의 삶 뿐만 아니라 민주당노동당 문화담당 정책연구원으로서 문화와 예술이 많이 발전한 프랑스 사회와 우리나라 현실의 한계점을 비교하여 분석하고 우리에게 부족한 자유롭고 창조하는 정신을 독려하는 교육과 문화 정책...사회 제도까지 개선의 바람을 촉구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회를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또한 가부장적 가치관에 익숙해진 어쩔 수 없는 한국여성으로 그녀의 거침없는 진보적인 생각과 가치관에 감탄과 놀라움의 박수를 보낼 수 있을지언정 내 삶 자체에서의 실질적인 행동의 촉구나 생각의 방향을 빠르게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단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진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더 나은 내일과 나 발전된 나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어쨌거나 조금 막연하기도 하다. 내 생활의 하루하루를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생활좌파'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목수정' 그녀의 용기와 당당함이 다시한번 부럽게 느껴진다.

"나는 젊게 사는 방법을 안다. 그건 오래도록 철들지 않으면 된다. 그럼 남들한테 철들라고 잔소리 할 일도 없고, 도리어 세살 짜리 아이한테 종종 잔소리를 든는 호사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영원히 젊게.."  <p.9>

남들의 눈이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삶을 살아가겠다는 그녀의 당당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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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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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다지 바쁘지 않은 일상이지만 왜 이렇게 마음이 조급해지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여유가 없는지.. 
틈나는 대로 엄청난 양의 책들을 정말 미친듯이 읽어대고 있지만 그 책속 세계 마저도 사실은 좀 각박하다. 
하지만 난 이 책 속에서 간만에 따뜻하고 포근한 마치 타샤 할머니의 품속과 같은 휴식을 얻었다. 타샤 할머니의 집..정원...그리고 많은 동물 친구들...마치 어릴적 동화 속 상상의 세계처럼 그리운 꿈...난 그 속에서 잠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타샤 튜더는 미국의 유명한 동화 작가이자 삽화가로 버몬트 주의 시골에 집을 짓고 30만평이나 되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다. 19세기 생활을 좋아해서 옷도 19세기 옷을 입고 생활 주변의 모든 물건들이 모두 옛것이다.  "난 오래된 물건을 상자 속에 넣어두고 보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매일 쓰면서 깨지는 편을 택하겠어요" 이것이 타샤 할머니의 철학이란다. 그리고 옛날 방식으로 생활을 한다. 머릿수건을 쓰고 색 바랜 긴 드레스에 옥양목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의 모습이 정겹다. 집안은 촛불로 밝히고 어두컴컴한 속에서 골동품 사기그릇과 황동 장식품이 반짝인다. 아마를 키우고 실을 잣고 소젖을 짜고 정원을 가꾸고... 마치 한편의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다. 도시 속에 사는 나는 도저히 생각해 볼 수도 없는 19세기 전원생활 말이다. 또 새와 강아지와 고양이와 가족처럼 지내고 아이들을 위해 인형을 만들고 연극을 하고 동화를 짓는다. 그 모두가 타샤 할머니가 마음 가는대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란다. 그것이 바로 행복이란다.
생명을 가진 것들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타샤 할머니...정말 부지런한 분이다..정말 아름다운 분이다. 

행복이란 그다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 일상 속에서 작지만 소박한 것..그리고 마음 가는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거기에 조금이라도 만족을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바로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의 기쁨 같은 것 말이다..이것이 바로 나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타샤 할머니의 주름진 손, 그리고 주름진 얼굴 속에 묻어나는 편안한 행복감.. 그 모습을 닮고 싶다. 나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바랄 나위 없이 삶이 만족스럽다.
개들, 염소들, 새들과 여기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다.
인생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들에게 해줄 이야기는 없다.
철학이 있다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에 잘 표현되어 있다.
'자신 있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상상해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라면,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다..'
그게 내 신조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내 삶 전체가 바로 그런 것을.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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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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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똘이라는 강아지가 있다. 14년씩이나 된 녀석이 무슨 강아지냐 하겠지만..그 녀석은 영원한 나의 사랑스런 강아지 똘이다. 늘 생각나고 보고싶고 어떨 때는 눈물도 난다. 그 녀석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고 애틋하다. 웃는 모습, 자는 모습, 먹는 모습, 짓는 모습, 그리고 화가나서 이빨을 세우고 으르렁 거리는 모습조차 사랑스럽다. 결코 동물이라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내 가족이며, 내 소중한 보물이다. 똘이로 인해 길가에서 마주치는 모든 강아지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작은 한마리의 생명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다.

책표지에 아주 잘생긴 모습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가 바로 듀이다. 이 녀석은 사진도 잘 찍나보다. 우리 똘이는 카메라만 들이대면 슬금슬금 피하고 급기야는 성질을 내고 달아나버리는데...ㅎㅎ
어느 추운 겨울날, 날씨만큼이나 쓸쓸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스펜서란 어느 마을에 동상에 걸린채 도서관 반납함에 버려진 고양이...
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고양이를 주은 사람은 도서관 사서인 마이런으로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 딸과 함께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 고양이와 함께 그녀의 불행한 인생의 순간에 작은 행복이 시작된다. 상처받은 마음이 위로가 되었고 ..가정환경의 불화로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딸아이에게도 안정을 주었다. 
듀이는 경제한파와 여러가지 문제로 차갑게 얼어붙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희망을 잃고 삶에 지쳐 있는 이들, 실업자나 장애인, 그리고 외로운 노인 등 무기력하고 외로웠던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기쁨을 주었다. 듀이가 그들을 위해 한 일이라곤 무릎위에 가끔 올라앉는 것 뿐이었지만..이 작은 생명체의 존재만으로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정서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듀이는 이 도서관 뿐만 아니라 그 시골 마을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고 온 동네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사람들에게 웃음과 화합을 선사하며 이 작은 고양이의 존재감은 한 마을 전체를 뛰어넘어 점점 커지게 된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에 있어 작은 동물과의 인연에 대한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다.그리고 단순히 동물과의 교감을 넘어선 한마을 전체의 화합에 관한 이야기다. 한 마리의 동물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냐고? 이 책을 읽지 않고도 난 거기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해 줄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계속 우리집 똘이를 떠올렸다. 마지막에 듀이가 떠났을 땐 정말 가슴이 아팠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언제가 나도 똘이와의 이별의 순간이 올 때 그 과정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꺄'라는 생각에 다시한번 고통스러워진다. 
듀이를 통해 난 다시한번 마음 속 애틋한 감정이 솟아오름을 느낀다. 똘이와의 소중한 인연에 정말 감사한다. 정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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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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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늘 다른 인간이 되려고 했던 것 같아. 나는 늘 어딘가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하곤 했어. 거기에서 새로운 인격을 갖추려 했다고 생각해. 나는 이제까지 몇 번이나 그러기를 되풀이해왔지.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성장이었고, 어떤 의미로는 인격의 가면을 교환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지. 하지만 어쨌든 나는 또 다른 내가 되는 것으로서 이제까지 내가 안고 있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야. 나는 정말로 그러길 원했고, 노력만 한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어. 하지만 결국 나는 어디에도 다다를 수 없었던 거 같아.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일 수 밖에 없었어. 내가 안고 있던 뭔가 빠지고 모자란 결핍은 어디까지나 변함없이 똑같은 결핍일 뿐이었지. 아무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풍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의 톤이 바뀌어도 나는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어 ....<p.325>

 
하루키의 작품들을 읽고 나면 웬지 몸서리치게 고독해진다. 딱히 끄집어 표현할 수 없는 이 무력감...

그리고 인간이란 누구나 다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한 존재이고 누구나 각자 그런 공허함을 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인간이란 존재의 나약함과 인생 자체의 허무함에 대해 슬퍼진다. (하루키 이사람은 왜이렇게 삶을 맥빠지게 만들까? 지난번 에세이처럼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면 좋을텐데...) 하지만 그런 무력감 속에서도 나름 자신을 재발견하고 현실을 바로잡는 과정은 약간은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희망적이라는 것이 그다지 높은 기대치가 아니라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이라는 점이 매우 현실적이여서 또 한번 무력감에 빠져버리지만...

이 소설 속의 하지메와 시마모토의 불륜적 사랑이 안타깝긴 하지만 결코 공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정만을 따라 살기에 우리의 삶은 그렇게 녹록치 못하다. 각자 책임이란 것이 있으며 내 마음가는대로 세상을 살기에는 희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런 꿈같은 과거의 환상을 좆아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 불완전한 현재의 자아를 찾고자 하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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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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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어떤 이들은 무한한 영생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 죽지 않는다는 상황이 실제로 닥치면 어떻게 될까?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이런 상황을 소설 속에서 멋지게 재현해보였다. 소설이란 것이 어차피 꾸며낸 이야기라지만.. 이 사람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눈먼자들의 도시, 눈뜬자들의 도시 등)만 골라서 그럴 듯하게 표현해낸다.

어느날 갑자기 어떤 한나라에 죽음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사회는 급속도로 혼란해진다. 죽음만 존재하지 않는다뿐이지 병자에 사고로 너덜너덜해진 죽지않는 산 송장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정치 사회는 물론이고, 종교계, 보험업계, 장례업계, 요양업들은 큰 위기를 맞게 되고, 이 와중에 마피아라는 불건전한 단체가 정계와 민간 사이에 이익을 챙기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까지 발생한다. 병자들과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죽지 못하는 것이 고통이었다. 영생의 기쁨 같은 것은 찾아볼수도 없는 생지옥이 바로 죽음이 멈춘 사회였다. 이 사건은 7개월 뒤 죽음의 신이 다시 죽음을 개시하겠다는 편지 한통으로 또다시 혼란속으로 빠져든다. 죽음의 신은 본격적으로 인간 개인개인의 생활에 직접 개입하여 죽음을 직접 실행하기에 이른다.

죽음의 신'이라니 완전 만화같은 이야기다. 사실 요즘 나도 사신이라던가 사후세계 같은 내용의 책이나 애니메이션을 많이 접하다 보니 죽음이란 것에 대해 조금은 친숙해졌다. 친숙해졌다는 말에 오해가 없길 바란다. 단지 그런 꾸며낸 이야기들 속에 나 자신이 많이 빠져있는 것 뿐이다. 죽음이 무섭고 두려운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언젠가 우리 곁에 아니 내곁에 죽음의 신은 반드시 온다. 그런 죽음의 신이 이 책속에는 멋진 여성으로 등장한다. 이 죽음의 신은 사실 죽음에 문제가 있었던 어느 첼리스트의 죽음을 직접 실행하기 위해 그에게 직접 찾아가게 된 것인데, 어쩌다 보니 그와 사랑에 빠져 그는 죽음을 비켜가게 된다.  이 갑자기 웬 로맨스 소설의 둔갑인지..주제 사라마구가 나를 이렇게 웃길줄은 몰랐다. 
하여간 난 쌩뚱맞게 나에게 찾아올 죽음의 신은 기왕이면 '이치고' 같은 멋진 소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워~워~ 난 애니메이션을 너무 많이 봤나보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대충대충 읽어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이해를 못하겠다. 단지 죽음 속에 어떤 작은 희망의 메세지 같은 것을 남기려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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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タビ 2011-05-25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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