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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늘 다른 인간이 되려고 했던 것 같아. 나는 늘 어딘가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하곤 했어. 거기에서 새로운 인격을 갖추려 했다고 생각해. 나는 이제까지 몇 번이나 그러기를 되풀이해왔지.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성장이었고, 어떤 의미로는 인격의 가면을 교환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지. 하지만 어쨌든 나는 또 다른 내가 되는 것으로서 이제까지 내가 안고 있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야. 나는 정말로 그러길 원했고, 노력만 한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어. 하지만 결국 나는 어디에도 다다를 수 없었던 거 같아.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일 수 밖에 없었어. 내가 안고 있던 뭔가 빠지고 모자란 결핍은 어디까지나 변함없이 똑같은 결핍일 뿐이었지. 아무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풍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의 톤이 바뀌어도 나는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어 ....<p.325>
하루키의 작품들을 읽고 나면 웬지 몸서리치게 고독해진다. 딱히 끄집어 표현할 수 없는 이 무력감...
그리고 인간이란 누구나 다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한 존재이고 누구나 각자 그런 공허함을 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인간이란 존재의 나약함과 인생 자체의 허무함에 대해 슬퍼진다. (하루키 이사람은 왜이렇게 삶을 맥빠지게 만들까? 지난번 에세이처럼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면 좋을텐데...) 하지만 그런 무력감 속에서도 나름 자신을 재발견하고 현실을 바로잡는 과정은 약간은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희망적이라는 것이 그다지 높은 기대치가 아니라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이라는 점이 매우 현실적이여서 또 한번 무력감에 빠져버리지만...
이 소설 속의 하지메와 시마모토의 불륜적 사랑이 안타깝긴 하지만 결코 공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정만을 따라 살기에 우리의 삶은 그렇게 녹록치 못하다. 각자 책임이란 것이 있으며 내 마음가는대로 세상을 살기에는 희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런 꿈같은 과거의 환상을 좆아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 불완전한 현재의 자아를 찾고자 하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