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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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거기에서 생기는 수십년 동안의 이념적 갈등...
시대가 변하고 세계 정세와 사회가 변함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도 화합모드로 통합하려는 노력에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이념이 다르다는 그 그본적인 갈등은 해결되기 어려운 듯 싶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아직도 높은 장벽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작가 조정래님은 분단문제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어쩔 수 없는 이념문제를 한 인간의 인생을 통해 이야기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남파 간첩으로 체포되어 30년간 전향을 거부하고 옥살이를 한 노인 윤혁이다. 이념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한 사람의 인생을 거기에 모두 묵어둘 만큼인 것일까? 실제로 전향을 거부하고 죽어간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 소설도 한 남자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주인공 윤혁의 동지로 같은 이념을 두고 평생 전향을 거부하며 살았지만 소련의 붕괴와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그리고 그런 이상주의라 생각되었던 이념 속의 북한 주민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죽는다. 그 모습을 보며 윤혁은 평생을 바쳐 믿었던 자신의 이념에 대한 허무와 회한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감옥에서 함께 지냈던 운동권 출신 강민규와 교류하고 고아원 출신 아이 두명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부터 남한 사회에서의 희망과 밝은 미래를 보기시작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서의 시민운동을 계획하는 강민규를 통해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되고 자신의 수기를 출판하면서 새로운 삶에의 적응을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분단된 조국이 슬프고 이런 비극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념이라는 것이 두려웠다. 다큐멘타리를 통해 예전에 비전향자들의 비극적인 삶을 본적이 있다. 그들은 무엇때문에 그렇게 이념에 얽매이는 걸까? 그들에게는 국가만 존재한고 그 자신 개인의 삶은 없는 것인가? 전향을 했다고 해도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관대하지 못하며, 그들의 삶은 전향을 했건 안했건간에 어려울 수 밖에 없은 것이 현실이었다. 또한 분단된 것은 조국이나 이념 뿐만이 아니다. 그로 인해 가족끼리도 생이별을 하며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전쟁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난 전쟁이라는 자체의 슬픔과  분단된 조국에서 가족들과 헤어져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진심으로 헤아리지 못한다. 이 책속의 주인공도 평생동안 북에 두고 온 아내를 잊지 못한다. 다행히도 이 소설은 해피앤드로 끝나고 있지만 이 소설 속 이야기를 넘어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도 이런 분단된 현실에서 남아있는 많은 아픔과 고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을 보면서 통일을 향한 과정에서 풀어야할 과제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삶에 점차 적응해 가는 윤혁의 모습을 보며 삶은 이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고자 하는 의지, 즉 삶의 희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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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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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그의 작품들은 조금 신경을 써서 읽어야 하는 그다지 편하지 않은 것들이었던 반면, 이 책은 비교적 가볍고 재미있게 읽었다. 하루키식 환상 문학(?)이라고 해두자. 유령, 녹색의 짐승, 얼음 인간 등 다소 공포영화나 괴기영화 속에 나올 법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얼핏 읽을 때는 모두 황당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이 들리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와 전혀 무관한 다른 나라 이야기는 아닌 듯 싶다. 인간 내면 속에 잠재되어 있는 어떤 본성 같은 것들을 끄집어 내어 정말 재미있게 잘 구현하였다. 모두 혼자가 된 사람들의 고독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공포"이다.
7가지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렉싱턴의 유령>은 하루키의 자전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재즈 레코드 콜랙션의 소유자인 어떤 사람의 집을 며칠간 봐주게 되었을 때, 밤새 유령이 나타나났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실제로 유령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공포 때문에 직접 내려가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래층에서 들리는 여러가지 소음들로 인해 주인공은 유령이 나타났다고 믿게 된다.

<녹색의 짐승>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녹색괴물에게 공포를 느낀 한 여인이 생각만으로 그 괴물을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는 내용이다. 여인이 마음 속으로 상상하는 생각이 실제로 녹색괴물에게 작용하는 것이다. 꼭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도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짧은 내용이었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게 한 작품이다.

<침묵>은 학창시절 지독한 따돌림을 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이지메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나게 한다. 
"내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아오키 같은 인간이 내세우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믿어버리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맛에 맞고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무리들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무의미한 행동히 누군가에게 결정적인 상터를 입힐 수도 있다고는 짐작도 하지 못하는 무리들이지요.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p.93>

<얼음 사나이>는 말그대로 얼음사나이와 결혼한 한 여자가 그에 매력을 느껴 결혼하지만 남극으로 떠난 여행에서 영영 고립되고 만다는 내용이다. 평범한 한 인간이 자신과 다른 이질적인 인간에게 조금씩 조금씩 지배당하게 되어 결국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 이야기다.

"지금 내게는 마음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내 온기는 아주 멀리 사라져 버렸다. 때때로 나는 내가 지녔던 그 온기에 대해서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다. 나는 이제 정말 외톨이다. 이 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고독한, 차디찬 곳에 남겨진 것이다." <p.120>

<토니다키타니>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와이의 헌옷파는 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한 "TONY TAKITANI"라고 쓰여진 티셔츠의 문구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하는데, 토니라는 이름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주인공이다. 순탄할 것 같은 인생에 아버지와 아내가 차례로 죽는다. 단순히 참을 수 없어서 마구 사들였다는 아내의 수많은 옷과 구두를 처분하고, 아버지의 유품은 레코트 마저 처분하면서, 또다시 외톨이가 된다는 이야기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다.

<일곱번째 남자>는 어릴 때 태풍이 몰고 온 파도 속에서 친구를 잃고 30년 동안이나 그 공포에 쫓겨 살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 공포는 마음만 먹었으면 구할 수 있었던 친구를 파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뒷걸음질 친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자책에서 온 것으로, 그때문에 젊은 시절을 악몽과 비탄 속에서 보내게 된다. 우연히 어린 시절 죽은 친구가 그린 그림을 꺼내보며 자신을 평생 따라다녔던 공포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우리의 인생에서 정말로 무서운 건, 공포 그 자체는 아닙니다."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렇게 말했다. " 공포는 확실히 인생의 내부에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서 때로는 우리의 존재를 압도해 버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 공포를 향해서 등을 돌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무엇인가에 주어버리게 됩니다. 그건 바로 파도였습니다." <p.200>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장님 버드나무 꽃가루를 묻힌 파리가 여자를 잠재운다는 내용으로, 앞의 여섯가지 이야기와는 조금 성향이 다른 이야기이다. 하루키가 예전에 썼던 작품을 짧게 개작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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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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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통브는 외교관의 아버지를 둔 덕에 어릴 때부터 아시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특히 오래살았던 일본은 그녀에게 더욱 친숙한 나라이다. 그녀의 몇몇 작품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속에는 그녀가 바라보는 일본이나 아시아 나라에 대한 시각이 곳곳에 묻어있다. 일본을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그녀는 오히려 일본과 가까운 동양인인 나보다 일본을 더 잘 이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서양인으로서 느끼는 문화적 관점의 차이는 같은 동양인으로서 느끼는 나의 관점과 비교하면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저건 서양인으로서 보는 편견같은 거야'라고 느껴지며 좀 언짢게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목숨을 구해주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만큼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에, 누구든 절대로 목숨은 구해주지 않는다는 일본의 오랜 전통에 충실한 나머지, 가만히 서서 나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p.86>] 外
하지만 이런 면은 오히려 내가 그녀의 소설 속에 몰입할 수 있는 흥미를 일으켰고, 톡톡튀는 개성있는 문체와 세상을 바라보는 냉소적인 철학은 노통브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내가 그녀의 소설 속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책 또한 일본을 배경으로 외교관의 아버지를 둔 세살짜리 아기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노통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판으로 구상하지 않았나 싶다. 이 아기는 자신을 '신'이라 믿으며 자기 자신을 스스로 찬양하며,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주위의 모든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조롱한다. 물론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이 아인 상상을 초월할만큼 영악하고 발칙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이 세살짜리 아이가 아니라 이 책 그리고 노통브 자체가 영악하고 발칙하다.

"아빠! 엄마!"
엄마가 자신에게 이런 바보 같은 흉내를 내보라고 한다는 사실에, 그는 화가 났다.
그러니까, 엄마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얘긴가? 언어의 주인이 누구인가?
다름아닌 그였다. 결코 '엄마','아빠'를 따라하는 비굴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복수의 의미로, 그는 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주 흉하게 울었다. <p.32>

내가 세살이었을 때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여느 아기들처럼 울고 웃고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가끔 어린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 아기는 지금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세살 짜리 아기의 눈을 통해서 본 세상...그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유쾌했다. 재밌다.

사람들은, 한살 먹은 아이에게 걷고 싶은 마음에 없다는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 
인간이 두 발로 걷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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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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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타고난 신분보다 능력에 의해 평가받는 세상이 왔다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개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인도의 카스트 제도로 인해 생긴 불가촉천민, 달리트다. 카스트 제도에 4계급이 있다고는 알았지만 그 4계급에 속하지도 않는 그 아래 계급 달리트가 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인간 이하로서의 최악의 삶을 살지만, 그들은 그 자체를 순응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이들이 바로 책의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신도 버린 사람들' 이며, 인도 국민의 여섯 사람 중의 한명이 바로 이 계급에 속한다. 이들은 가장 비천하다는 직업에 종사하며, '불가촉천민'이란 말 속에는 닿기만해도 부정해진다는 인도인의 생각이 들어있다. 이 책을 보면 처절한 달리트들의 삶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하다.

<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허리춤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 수도 없습니다. 사원에 들어가 신께 기도드릴 수도 없습니다. 신성한 곳이 더럽혀진다는 이유로 그곳에 그림자도 드리울 수 없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권리는 오직 하나, 구걸할 수 잇는 권리입니다. 우리가 천하게 태어난 것은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와 닿는 것만으로도 오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은 불가촉천민, 달리트 입니다.>

이 불합리한 카스트제도는 1947년 인도가 독립하면서 법적으로 페지되었다. 하지만 인도인들의 정신 속에 깊이 뿌리 박힌 이 관습은 현대 사회에서도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현세에서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내세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는 힌두 사상의 영향으로, 인도인들은 불합리한 제도나 현재의 곤궁함에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세의 비참한 삶도 그 자체로 순응하며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런 불합리한 제도와 인도 사회에서의 개혁을 인식하고 직접 운동하며 개혁의 지도자가 된 사람이 바로 이 책을 쓴 달리트 출신의 나렌드라 자다브란이다. 이 책은 그의 아버지 다무와 어머니 소누가 들려주는 그들이 걸어온 인도의 삶과 나렌드라 자신의 이야기이다. 책의 전반부는 다무와 소누가 결혼하여 달리트로서 인도에서 사는 비참한 모습들이 이야기되고, 중반부는 그런 생활 속에서도 사회의 잘못된 제도를 인식하고 투쟁해 가는 내용이 나오며, 후반부는 그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자식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그런 부모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위치까지 오게 된 나렌드라 자신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를 통해 인도의 생활, 사회, 계급제도를 이해할 수 있었고, 비비시헤브를 주축으로 하는 계급제도 타파를 위한 투쟁의 역사와  간디, 암베드카르 등의 인물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나렌드라 자다브는 달리트 출신임에도 현재 인도의 '살아있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국제적 명성을 지닌 경제학자임과 동시에 인도 미래를 이끌어갈 차기 대통령으로까지 평가받는다고 한다. 이런 현제의 나렌드라가 있기까지 부모 세대로부터 이어지는 인도 제도에 맞선 투쟁은 정말 놀랍다. 그의 아버지는 달리트들의 기본권을 위한 투쟁을 했던 바바사헤브를 정신적 신봉자로 여겨 그의 투쟁에 앞장섰으며, 불합리한 사회에를 이겨내기 위한 원동력으로 자식들의 교육에 힘썼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이런 가족을 뒤에서 묵묵히 지키며 뒷바라지 했던 어머니 소누의 힘이었다.

사원출입이 금지되었던 잘리트 출신의 나렌드라가 인도 국민들의 추앙과 사제들의 환영을 받으며 힌두 사원 권력의 심장부와 같은 비토바 신당에 들어서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불합리한 제도에 오랫동안 투쟁했던 것에 대한 승리의 순간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온 그들이 감동적이었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울린 것은 불합리한 제도에 과감히 맞설 수 있었던 그들의 용기였다.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그들은 이뤄낸 것이다.

우리 세대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우리 할아버지와 암베드카르 박사의 노력이 우리 세대에 이르러 결실을 맺었다. 나는 달리트를 나타내는 어떤 표식도 달고 있지 않으며, 내 또래와 다르다고 생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우리 조상들은 내가 이 세상 모든 소녀들과 똑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피땀을 흘렸다. 나는 그들이 나를 위해 밝힌 횃불을 맏아 들었고, 이제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아푸르바 자다브(나렌드라 자다브의 딸)> P.364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우리나라의 역사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합리한 신분제도라 하는 것이 우리와 그다지 먼 이야기가 아니니깐 말이다. 우리나라고 노비제도가 페지된지 불과 백년정도 밖에 안됐다. 우리나라의 노비또한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았고 인도의 달리트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노비 뿐만아니라 서얼들 또한 평생 관직에 나갈 수 없었던 불운한 계급이었다. 인격과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그런 사회가 과연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의 어떻게 살고자하는 자유의지가 단지 타고난 출신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도 난 현대 사회에 살고 있다. 내가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는 그 댓가를 바라볼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사회이 불합리한 구조에 의해 비리가 난무하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애초부터 시작조차 불가한일은 거의 없지 않는가.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며, 지적 탐구야말로 내 삶의 지표에 당당한 밑거름이다. 이 책을 통해 몇가지 습득한 새로운 지식과 깨닮음은 내 삶에 작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당당히 도전해 보는 그 용기야 말로 가장 중요한 항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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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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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모들과 선생님들은 누구나 다 자식들과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한다. 사회적으로도 독서를 장려하고 있으며, 오히려 현대인들이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경향을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러한 독서를 비도덕적이고 위험한 것이라 간주하여 억압했던 시기도 있었다. 무의미한 낭비이고 양심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이며 삶에 실증을 내는 것, 즉 때이른 죽음이라고 까지 하였다. 또한 신체활동의 부족으로 각종 질병이 생기며, 여자의 경우 생식기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했단다.

오늘날과 같이 책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독서가 자율화되기까지는 여러가지 시대적 상황들을 거친 결과인데, 특히 여자들이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는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위험하다'는 우려의 경향이 높았다.

왜?? 어째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걸까? 이 책의 제목은 책읽기를 특히나 좋아하는 나에겐 도발이었다.

이 책은 책 읽는 여자에 대한 격양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미술사를 통해서 본 책읽는 여자의 그림을 통해 책과 독서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역사 속에서 여성이 책 읽는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사회적 풍조와 시대적 상황들을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으며, 대부분 남성 화가들이 그린 여성의 책읽는 모습은 그다지 관대하게 보이지 않았음을 몇몇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활자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의 시대에는 책은 귀족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물이었다. 중세 후기로 들어오면서 독서는 종교 서적 위주로 이루어졌는데 진리는 남자와 연관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여자가 책을 읽는 것은 천성을 거스르는 것이라 여겨 허용되지 않았다.
18세기 시민 계급의 성장으로 계몽주의 의식이 고조되면서 신문이 보급화되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갔지만 이런 진보 사상의 주체인 엘리트적 남성 우월주의자들은 여성의 독서를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여자를 포함한 교양이 없는 대중들은 계몽의 주체가 아니라 계몽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몽하고자 하는 대상에게 독서를 하지 못하게 하다니 매우 모순적이다. 
여자들이 읽은 것을 배운 순간부터 여자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었다고 한다. 여자들이 읽을 줄 안다는 것은 그만큼 똑똑해진다는 것이었고, 그만큼 사회적 발언권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자신의 독자적 생각을 갖게 되고, 그 독자적인 생각은 대열에서 벗어나게 되고 대열을 벗어나는 자는 적이된다'는 생각이다. 남성의 전유라 생각했던 각 사회 계층의 엘리트 남성우월주의자들에게 있어 여성이 책을 읽는다는 자체는 곧,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이 독서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으며, 따라서 끊임없이 독서를 했다. 책을 단순히 읽는 단계를 넘어 이젠 쓰는 시대까지 온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여전히 독서의 부정적 측면을 우려한다.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 뿐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을 위험 속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분별한 독서와 책속에 너무 빠져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우려이다. 요즘 시대에는 책과 더불어 대중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다양한 영상매체들을 무분별하게 흡수함으로써 여러가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것은 생각없는 독서와 생각없는 영상매체의 흡수 때문이다.

난 독서를 좋아한다. 미친듯이 독서에 빠져 내려야할 역을 지나친 적도 많다. 하지만 독서에 빠져 내 할일을 안한다거나 책속에 빠져 책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분별이 없지도 않다. 오히려 나와 생각이 맞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비판도 서슴없이 한다.

이제는 여자들도 숨어서 책을 보는 시대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비판받는 시대도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생각있는 독서의 자세다. 우리가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는 책을 비롯하여 다양하다. 그것을 분별없이 받아들였을 때 잘못된 사상이나 편견으로 위험한 여자, 위험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여 '책읽는 여자가 위험하다'라기 보다는 '생각없이 책읽는 사람이 위험하다'라는 제목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독서 자체는 절대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을 갖고 그 지식을 조금은 분별있게 받아들인다면 독서는 많이 할수록 좋은 것 같다.

이 책은 사실 미술사를 통해서 본 여성 대상의 독서의 역사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수많은 화가들의 책읽는 여자의 작품들이 시대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책읽은 여자의 그림을 보면서 앞에서 설명했던 시대적 사실들을 유추해 내기는 조금 개연성이 떨어져 보인다. 그림에 대한 설명이 각각 되어 있긴 하지만 그 그림 자체들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주제와는 조금 연관짓기 어려운 부분들이 더 많았다. 단순히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관점에 있어서는 좋았으나 주제와의 개연성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번역가의 설명들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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