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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부모들과 선생님들은 누구나 다 자식들과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한다. 사회적으로도 독서를 장려하고 있으며, 오히려 현대인들이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경향을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러한 독서를 비도덕적이고 위험한 것이라 간주하여 억압했던 시기도 있었다. 무의미한 낭비이고 양심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이며 삶에 실증을 내는 것, 즉 때이른 죽음이라고 까지 하였다. 또한 신체활동의 부족으로 각종 질병이 생기며, 여자의 경우 생식기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했단다.
오늘날과 같이 책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독서가 자율화되기까지는 여러가지 시대적 상황들을 거친 결과인데, 특히 여자들이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는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위험하다'는 우려의 경향이 높았다.
왜?? 어째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걸까? 이 책의 제목은 책읽기를 특히나 좋아하는 나에겐 도발이었다.
이 책은 책 읽는 여자에 대한 격양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미술사를 통해서 본 책읽는 여자의 그림을 통해 책과 독서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역사 속에서 여성이 책 읽는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사회적 풍조와 시대적 상황들을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으며, 대부분 남성 화가들이 그린 여성의 책읽는 모습은 그다지 관대하게 보이지 않았음을 몇몇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활자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의 시대에는 책은 귀족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물이었다. 중세 후기로 들어오면서 독서는 종교 서적 위주로 이루어졌는데 진리는 남자와 연관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여자가 책을 읽는 것은 천성을 거스르는 것이라 여겨 허용되지 않았다.
18세기 시민 계급의 성장으로 계몽주의 의식이 고조되면서 신문이 보급화되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갔지만 이런 진보 사상의 주체인 엘리트적 남성 우월주의자들은 여성의 독서를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여자를 포함한 교양이 없는 대중들은 계몽의 주체가 아니라 계몽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몽하고자 하는 대상에게 독서를 하지 못하게 하다니 매우 모순적이다.
여자들이 읽은 것을 배운 순간부터 여자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었다고 한다. 여자들이 읽을 줄 안다는 것은 그만큼 똑똑해진다는 것이었고, 그만큼 사회적 발언권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자신의 독자적 생각을 갖게 되고, 그 독자적인 생각은 대열에서 벗어나게 되고 대열을 벗어나는 자는 적이된다'는 생각이다. 남성의 전유라 생각했던 각 사회 계층의 엘리트 남성우월주의자들에게 있어 여성이 책을 읽는다는 자체는 곧,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이 독서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으며, 따라서 끊임없이 독서를 했다. 책을 단순히 읽는 단계를 넘어 이젠 쓰는 시대까지 온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여전히 독서의 부정적 측면을 우려한다.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 뿐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을 위험 속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분별한 독서와 책속에 너무 빠져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우려이다. 요즘 시대에는 책과 더불어 대중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다양한 영상매체들을 무분별하게 흡수함으로써 여러가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것은 생각없는 독서와 생각없는 영상매체의 흡수 때문이다.
난 독서를 좋아한다. 미친듯이 독서에 빠져 내려야할 역을 지나친 적도 많다. 하지만 독서에 빠져 내 할일을 안한다거나 책속에 빠져 책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분별이 없지도 않다. 오히려 나와 생각이 맞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비판도 서슴없이 한다.
이제는 여자들도 숨어서 책을 보는 시대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비판받는 시대도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생각있는 독서의 자세다. 우리가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는 책을 비롯하여 다양하다. 그것을 분별없이 받아들였을 때 잘못된 사상이나 편견으로 위험한 여자, 위험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여 '책읽는 여자가 위험하다'라기 보다는 '생각없이 책읽는 사람이 위험하다'라는 제목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독서 자체는 절대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을 갖고 그 지식을 조금은 분별있게 받아들인다면 독서는 많이 할수록 좋은 것 같다.
이 책은 사실 미술사를 통해서 본 여성 대상의 독서의 역사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수많은 화가들의 책읽는 여자의 작품들이 시대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책읽은 여자의 그림을 보면서 앞에서 설명했던 시대적 사실들을 유추해 내기는 조금 개연성이 떨어져 보인다. 그림에 대한 설명이 각각 되어 있긴 하지만 그 그림 자체들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주제와는 조금 연관짓기 어려운 부분들이 더 많았다. 단순히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관점에 있어서는 좋았으나 주제와의 개연성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번역가의 설명들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