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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책들은 '읽기에 적당한 때'가 있다. XX세 미만 구독불가처럼 제도적으로 정해진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고 이런저런 일들을 직접 겪어봐야만 그 의미를 깊이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책들이 있다는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에세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도 그런 책 중 하나이다. 문학적 동지이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의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낸 이 에세이는 소중한 사람과 사별하거나 평생의 동반자를 만난 경험이 없는 내게는 가까이 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단순히 감성부족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읽고 나서 크게 느낀 건 없으니까(쓸데없이 두꺼워서 읽기 불편했던 책의 장정도 한몫했다).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열기구 위에서 지상의 사진을 찍고자 했던 사진가 나다르의 이야기, 여행가 버나비와 여배우 베르나르의 러브스토리, 아내를 잃은 반스의 이야기가 독립된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 하늘-지상-지하로. 꿈-사랑-상실로. 역사적 사실과 허구와 자전적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고, 중심을 잡기 위해서인지 문체는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마치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매우 당황했다. 죽은 아내를 그리는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사진과 항공술의 결합을 꿈꾸던 실존인물 나다르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어내려갔다. 두번째 챕터에서는 나다르의 사진모델 중 하나였던 여배우 베르나르와 여행가 버나비의 러브스토리가 뜬금없이 펼쳐졌다. 208쪽밖에 되지 않는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중요한 이야기들일 텐데 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의문은 마지막 챕터인 「깊이의 상실」에 이르러서야 풀렸다. 드디어 반스가 자신의 아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앞의 두 이야기가 다양하게 인용되고 변주된다. 앞의 두 글을 주의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마지막 챕터에서 익숙한 글귀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앞의 두 이야기가 꼭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새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마지막 챕터에서 인용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넣은 글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나의 비탄이 다른 비탄을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둘은 서로 겹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별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 사이에는 은밀한 공감이 존재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아는 이는 오로지 당신뿐이라는 점이다.(117쪽) 

이 문장이 답이 될 수도 있겠다. 결국 반스가 알고 있는 것을 아는 이는 오로지 반스뿐인 것이다. 게다가 사별의 고통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 '은밀한 공감'마저 공유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나다르, 버나비와 베르나르의 이야기가 쓰인 이유를 모르는 건 당연할지도. 한 가지 공감하는 것은 슬픔을 겪은 이를 섣불리 위로하거나 격려하려는 주변인들의 무심함에 대한 반스의 일침이었다. "세상이 그녀를 구할 수도 없고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면, 도대체 (...) 뭣 때문에 세상을 살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비탄으로 인해 바뀌어버린 시간과 공간 속에서 지금까지 당연했던 일들이 다 무슨 소용인지, 아픔을 겪은 사람이 왜 위로해주는 사람의 기분까지 신경써야 하는지. 반스는 솔직하게 자신이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쏟아낸다.

 

누군가의 고통은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자신의 잣대로 남의 고통을 판단하여 어쭙잖게 위로하려 들거나 너만 힘드냐며 기운내라고 강요하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만도 못하다. 때때로 보이는 반스의 냉소적인 말투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디까지나 외부자였다. 언젠가 상실의 고통을 겪게 된다면 이 책이 달리 읽힐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이 책은 조금 아껴두기로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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