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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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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여러 장르 중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추리소설이지만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선구자라는 유명작가도 모를 만큼 얕은 독서력에 잠시 심란해진다. 하지만 이런 기회에 거장을 또 한 명 알게 되는 기쁨도 크지 않냐고 스스로 위로하며 책을 펼쳤다.  이 책,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라는 제목부터 참 매력적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팬뿐 아니라 글쓰기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라면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다. 그에 덧붙여, 좋아하는 정유정 작가가 챈들러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어느 시대 어느 때건 가장 좋은 소설은 언어로 마법을 부리는 소설이다.

챈들러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꾸미지 않은 챈들러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희대의 대작가들에 대해서도, 거대자본과 권력으로 무장한 할리우드에 대해서도, 자신의 책을 읽는 평론가와 독자에 대해서도 그는 거침없는 독설을 퍼붓는다. 예를 들면 '요즘 비평가들이라면 피곤한 놈, 잘난 척하는 놈, 자기 직업의 공허함에 당황해하는 정직한 사람뿐'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칭찬도 비판도 분노도 옹호도 담백하고 직설적이다. 심지어 자신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오 개월이나 걸려서 쓴 소설에 대해 작품 전체가 망할 허세로 가득하다고 평가하는 걸 보면 말 다했다.

나는 돈이나 어떤 특권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랑 때문에, 어떤 세계에 대한 이상한 미련 때문에 글을 쓰는 거죠. 사람들이 치밀하게 생각하고 거의 사라진 문화의 언어로 말을 하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나는 그런 세계가 좋습니다.

무심하고 시크해 보이는 챈들러지만 굉장한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아내 시시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고양이 타키에 대한 경애가 그의 편지에서 절절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창조한(본인은 부정하지만) 탐정 필립 말로에 대한 애정 또한 무척이나 깊고 끈끈하다.


그래도 역시 작가로서의 챈들러가 가장 매력적이다. 자신은 '제대로 읽고 쓸 줄 알고 지적이기까지 한' 작가라며 엄청난 자신감을 표출하면서 '나는 거만한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싫어하기도 힘들다. 그러면서도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과 겸손함뿐이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문장과 단어에는 하나하나 진정성이 묻어난다.  


전업 작가라면 글쓰는 시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 동안 글쓰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언도 인상적이다. 작가 지망생도 아니고 글쟁이 노릇으로 돈을 벌고 있지도 않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싶은 입장에서 이 말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글쓰기는 엉덩이와의 싸움이라는 모 작가의 말도 생각나고. 글을 쓰는 자세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이 삶의 목적이죠. 나머지는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떻게 실제로 글 쓰는 일을 싫어할 수가 있습니까? 싫어할 만한 요소가 뭐가 있다고? (중략) 어떻게 문단이나 문장이나 대화나 묘사를, 창조적인 무언가로 만들어 내는 마법을 싫어할 수가 있습니까? 글쎄, 분명히 그러면서도 성공할 수 있나 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우울하군요.

'글쓰기'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소설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니. 당장 읽어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하다. 이 책 덕분에 온라인서점 장바구니가 한층 더 풍성해질 것 같다. 챈들러 씨,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제 소설로 당신을 만나볼 생각이니까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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