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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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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도 가지 않던 여름이 가고, 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이 왔다. 바람이 완전, 음악이다.(186쪽)

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 음악과도 같은 그 바람을 조금 즐기나 했더니 벌써 겨울이 새치기를 했나 보다. 쌀쌀맞은 바람이 창문의 틈이란 틈은 다 비집고 들어와 나를 괴롭힌다. 겨울에는 그저 따뜻한 핫초코 한 잔에 음악을 곁들여 이불 속에서 책이나 읽으면 파라다이스다. 그래서 겨울이 코앞까지 다가온 계절에 만난 김중혁의 『모든 게 노래』는 때이른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다.  

 

『모든 게 노래』는 음악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소설가 김중혁이 쓴, 노래에 관한 이야기들을 올망졸망 엮어놓은 산문집이다. 고등학교 때 라디오에 매달려 살다시피 했고, 외출할 때 이어폰이 없으면 불안에 시달리고, 드라마는 안 봐도 O.S.T는 찾아 듣는 성격인지라 이 책을 받아들고 무척 설렜다. 표지에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이름도 많이 보여서 더 두근거렸다.


좋은 음악은 시간을 붙든다. 현재를 정지시키고 순간을 몸에다 각인한다.(29쪽)


 

'좋은 에세이'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좋은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모든 게 노래』를 감히 평가하자면 10점 만점에 9점. 읽으면서 계속 '맞아, 나도 그런데'나 '나는 그렇지 않은데'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김중혁 작가가 좋아하지만 나는 잘 몰랐던 김정미의 <봄>이나 고찬용의 <무지개 나비> 같은 노래가 내 취향에도 맞다는 것을 알았고, 김중혁 작가의 취향에는 별로라는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노래방에서 남의 노래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사소한 날짜나 사건까지 기억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 어릴 적 "온몸을 뒤흔들면서 귀가 터지도록" 듣던 메탈과 록을 이제는 어지간하면 못 듣는 것은 나와 김중혁 작가가 비슷하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비슷한 점을 찾으면 퀴즈라도 맞춘 듯 뿌듯하고, 다른 점을 찾으면 새로운 발견을 한 듯 신기했다. 마치 내가 김중혁 작가와 음악에 대한 수다를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음악도, 사람도, 물건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정체성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사랑해) 그 사람에게서 알 수 없는 묘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풀기 위해(흠, 푼다니까 좀 야릇한 어감이 되어버렸지만) 반복해서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100쪽)

나도 공부를 하거나 리뷰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때 항상 음악을 듣는 편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뮤지션의 새 앨범이 나오면 일주일에서 길게는 보름 이상 주구장창 그 앨범만 듣지만 평소에는 최신곡부터 90년대 명곡까지 되는대로 재생목록에 걸어두고 무작위로 듣는다. 그러다가 귀에 탁 꽂혀서 마음까지 푹 찌르는 노래를 만나는 짜릿함이 좋다. 그래서 미처 몰랐던 좋은 노래를 알게 되면 보물이라도 찾은 듯 마음이 풍족해진다.


음악은 친구가 되어준다. 나와 함께 묵묵히 걷는다. 시간을 함께 붙잡아주고, 계절을 잘 느낄 수 있게 해준다.(44쪽) 

노래를 추천받는 것은 새로운 친구를 소개받는 것 같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친구 하자'는 말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말이나 글 대신에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낭만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노래 아니겠는가. 


작가로서 김중혁의 매력은 읽다가 무의식 중에 웃음이 터지는 문장을 쓸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런 문장이 전혀 과하다는 느낌 없이 자연스러워서 또 대단하다. 타고난 감각이든, 오랜 연습과 노력에 의한 것이든, 혹은 둘의 적절한 조화이든 간에 이 책에 소개된 노래들을 몰라도 글이 술술 잘 읽히는 것은 역시 김중혁 작가의 글솜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밤만 되면 스스로가 어쩐지 진화한 인간같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오후 1시쯤 잠에서 깨어나 머리를 쥐어박으며 이런 잠벌레 같은 인간이 다 있나 자학하고, 헐크에서 브루스 배너로 돌아오고 말지만 말이다.(203쪽)

글 속에서 무척 겸손한 김중혁 작가이지만 읽다 보니 재주가 너무 많다.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데, 기타까지 칠 줄 안다. 요즘 많이 쓰는 말로 '사기캐릭터'다. 음악가를 꿈꾸다가 재능이 없어서 소설가가 되었다니, 둘 다 못하는 사람으로서 샘이 나서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모든 게 노래』를 읽고 나니 김중혁 작가에게 고마워할 수밖에 없다. 올 겨울 남자친구 대신 옆구리를 따뜻하게 해 줄 노래를 잔뜩 선물받았으니까. 이제 책 속에 소개된 노래를 몽땅 모아서 새로운 플레이리스트를 하나 만들어야겠다. 리스트 제목은 물론 '모든 게 노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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