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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어릴 때 나는 헌책방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를 좋아했다. 빳빳한 종이와 잉크가 어우러진 새 책의 냄새와는 달리 헌책방의 손때 탄 책들은 왠지 마음을 편하게 하는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그냥 헌책 냄새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어쩌면 '사람'을 담아서 나는 체취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헌책방이라는 정겨운 이름보다는 '중고서점'이라는 명칭이 더 잘 어울리는, 깔끔한 인테리어와 그만큼 깨끗한 헌책들을 구비한 곳들이 눈에 더 많이 띈다. 새 책 같은 헌책들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중고서점에서는 헌책방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 정감어린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곳이 이제는 거의 없다. 

헌책방은 책이 여행하는 곳이다. 책이 여행한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은 그 놀라운 사실 앞에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고 겸손해진다.(149쪽) 
깨끗한 중고서점에서는 책 속표지에 편지나 메모가 쓰여진 책을 만날 수 없다. 그런 책들은 아예 매입이 안되기도 하거니와 내 이야기가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읽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분 좋지만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각박한 세상이라서.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도 책 속표지에 깨알같이 편지가 쓰여진 책을 선물받거나 선물한 적도 많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책 안쪽에 편지나 메모를 쓰는 대신 포스트잇을 사용한다. 

손으로 쓴 글씨는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109쪽)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참 반가웠다. 주로 1970~1990년대에 쓰여진 책 속 글들은 마치 인쇄한 것처럼 바르고 정갈하게 쓴 것도 있고,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듯 휘갈겨쓴 것도 있다. 하지만 청춘이라는 이름이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버거웠던 시절, 책을 읽고 한 생각과 삶에 대한 고민과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한 글자 한 글자에 빼곡히 담겨 있다. 

글뿐만이 아니다. 책갈피에 납작하게 숨어있는 네잎클로버나 빛바랜 편지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심지어는 대여학자금 신청서까지. 나도 헌책 속에서 바삭하게 마른 작은 은행잎이나 단풍잎을 발견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소소한 마음 혹은 소원을 담고 있을 그 작은 잎들은 잊고 살았던 감성을 되살려주는 선물 같아서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청춘(靑春)은 말 그대로 푸른 봄 같은 시절이다. 그러나 "정말 푸름은 푸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푸르게 하는 것에 있(73쪽)"다. 20~30년 전의 젊은이들은 아마도 이것을 무척이나 고민했던 것 같다. 그들은 "문학을 토론하고, 역사를 보는 눈을 닦아 현재의 의미를 성찰하며, 자신의 존재 또는 사유의 근거를 철학에서 찾으려 노력(139쪽)"했다. 그 근본이 바로 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노트 한 귀퉁이에, 아끼는 책 한 켠에 자작시 몇 줄쯤 부끄러움 없이 끄적일 줄 알았다(181쪽)." 지금의 청춘들은 더 풍요로운 시절을 살면서 그 푸름을 잃어가고 있음을 이 책은 아쉬워하고 있는 것도 같다. 

책의 내용보다 훨씬 더 생생한 당시의 현실을 보여주는 책 속 글씨들. 그 글을 쓴 사람들은 아파하고 고민하면서도 작은 메모에 마음을 담을 수 있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것이 부러웠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점점 치열한 낭만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이 암담하긴 마찬가지이고, 청춘은 여전히 청춘인데 과연 변한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 젊은이들은 그때의 젊은이들처럼 책을 읽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할까.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속의 글씨들은 내게 추억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말을 걸어왔다. 왜 그때처럼 책 속에 글을 쓰지 않지? 왜 책으로 마음을 전하지 않지? 왜 책을 읽고 울고 웃고 생각하지 않지?라면서 말이다. 나는 아직 그런 헌책의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다. 다만 소중한 마음을 담은 이 책들은 왜 주인의 품이 아니라 헌책방에 오게 되었던 것일까라는 궁금증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나타난 것은 아닐까, 라고 조심스럽게 답을 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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