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공부법 - 40대만의 암기법은 따로 있다
우스이 고스케 지음, 양금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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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스이 고스케

삿포로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학업 성적이 좋지 않아 학력 수준이 앉은 공립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공부법을 연구한 결과 획기적이고 효율적인 암기법을 창안해냈다. 자신만의 암기법으로 간사이가쿠인대학 법학부에 진학했으며, 대학 재학 중 법무사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했다. 졸업후에는 공부를 시작한 지 14개월 만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현재는 법무사로 일하고 있다.

 

새해가 되면 나는 마흔으로 성큼 다가선다. 누군가는 마흔이면 젊다고 할지 모르나, 서른을 앞둔 마음과 마흔을 앞둔 마음은 또 미묘하게 다르다.

 

30대의 중반 무렵에 임고를 준비하던 때가 있었다. 둘째 임신을 알고 순식간에 접어버린 공부지만, 그때 나는 시간과 입장의 차이를 여실히 겪었다. 쪼개고 쪼개도 시간이 부족했고, 상황이 달라진 것을 인정하자니 무력해졌다. 마흔의 공부법이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공부란, 한마디로 정의하면 자기 투자입니다. 지식을 습득하고 두뇌를 단련하여 자신의 시장가치를 높이는 일이니까요. 특별한 기술을 익혀두면 연봉 협상이나 승진, 이직 등의 상황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죠. p.6

 

변화의 속도가 이전 어느 때보다 빨라진 오늘날에는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신지식을 습득하지 못하면 성과를 낼 수조차 없습니다. AI블록체인사물인터넷 등으로 대표되는 신기술이 경제 환경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현재, 그 변동의 틈새에서 자기 투자를 외면한 사람은 과거의 경험에 갇혀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즉 격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면서 성과도 내야 하는 연령대가 40대인 거지요.

그런 40대가 공부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앞으로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50, 60대가 되어서도 세상이 필요로 하는 직업인으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40대인 지금열심히 공부해 무너지지 않는 경력의 아성을 쌓아두어야 합니다. p.7

 

이 책에서 말하는 공부는 다양한 분야를 포괄합니다. 업무상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것,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인정받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창업을 위해 블루오션을 탐색하는 것 등 무척이나 광범위합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자기 투자는 그 자체로 훌륭한 공부입니다. p.7

 

공부공부 하는 세상에서 공부가 지겨웠다. 그 지겹고 하기 싫은걸 누군가에게 권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딜레마였다. 나는 과연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렇다면 공부는 어떤 이유로 필요한 건지 나부터 설득시켜야 했다. 맞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공부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니, 새로이 업그레이드하며 살지 않으면 오래된 지식을 울거먹으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진정한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것. 나를 알아가는 공부, 나만의 지도를 그리며 하는 공부는 마흔즈음에 시작하기에 딱 적합하다.

 

그렇다면 왜 40대는 50대나 60보다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50~60대는 부족한 암기력을 공부의 양으로 채울 수 있는 반면, 40대는 그것이 불가능할 만큼 몹시 바쁜 사람이 많아서다. 50~60대는 현역에서 은퇴했거나, 아직 재직 중이라 하더라도 40대 때 하던 방식대로 몸 사리지 않고 야근하는 일이 거의 없다. 가정 면에서도 자녀가 이미 독립했거나 부모의 손길이 크게 필요치 않을 만큼 성장한 경우가 태반이다. 따라서 암기에 필요한 공부의 양을 늘리는 데 별다른 장벽이 없다. 공부의 효과는 ×로 결정되므로, 양을 늘리면 암기력 부족이라는 고민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p.20

 

외우려는 정보의 요점을 찾아 압축하는 것이 정보 표적화.

불필요한 정보에까지 생각의 가지를 늘리는 습관은 표적화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허튼짓이다. 표적화는커녕 암기할 정보의 한계를 확장시켜 암기를 더더욱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p.26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40대가 시간을 만든다고 해봐야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생각을 짜내고 짜내도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24시간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상책은 될 수 없다. 수면 부족으로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셈이기 때문이다. p.29

 

여기서 중요한 건 확인은 대강한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오늘 공부의 메인은 기출문제가 아니라 교재이며, 기출문제는 확실한 정보 표적화를 위한 참고 자료일 뿐이다. 기출문제를 슬쩍슬쩍 넘기면서 , 이렇구나. 이런 식으로 출제되는구나하고 감을 잡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p.52

 

중복해서 등장하는 게 확인된다면 그 키워드를 기록해둔다. 메모 수첩에 적어도 좋고 노트에 정리해도 좋다. 주의할 점은 가능한 한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 기록은 작업적 요소가 강한 행위인데 그런 시간은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만 아는 약자를 사용하거나 휘리릭 갈겨쓰거나 하는 등으로 시간을 덜 들일 방법을 찾자. p.59

 

내 말이 그 말이다. 양으로 승부하는 공부는 10대나 20대의 공부방식이었다. 그 방법이 그때도 적합한지는 모를 일이지만, 40대에겐 본업이 있기에 양으로 승부하다간 정작 중요한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그러니 전략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선택하고 집중하기 위해 무언가는 빼야 하고, 대강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없는 40대는 선택과 집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한된 시간을 선정한 정보에 반복 투여함으로써 중요한 부분부터 확실하게 암기해나가자. p.62

 

공부는 최소한의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지식을 수용하는 단계에서 눈앞에 주어진 정보가 아닌 선까지 사고의 범위를 확대하는 건 난센스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눈앞의 정보를 암기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자. 사고는 중요 정보를 암기한 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정보를 선별하고, 제한된 시간을 암기해야 할 정보에 투자하는 정보 표적화를 명심하기 바란다. p.86

 

명심하기 바란다. 공부해서 그 효과를 실감하게 되는 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다. 쉬지 않고 공부하는 가운데 어느 시점을 지나면 문득 전문서적을 술술 읽을 수 있게 되거나 모의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게 된다. 공부의 성과는 계속해서 상승선을 타는 게 아니다. 계단처럼 층계참이 있고 그곳을 벗어남과 동시에 1단계 성큼 발전하는 양상을 보인다. 공부의 성과가 계단식인 이유는 성과로 이어지는 지식 대부분이 지식의 복합체로 변용되어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99

 

마중물이 차오르기까지 티가 안 나는게 수학이다. 그때까지는 지속하는 힘이 관건이다. 즐기며 지속하며, 함께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 자신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함께 살지만 혼자여야할 시간이 필요하고, 무쏘의 뿔처럼 홀로가지만 혼자만은 살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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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대한민국 트렌드 - 1인 체제가 불러온 소비 축소
최인수 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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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로밀 엠브레인

2018년 서울형 강소기업 인증 및 2016년 청년친화 강소기업 인증을 받은 회사. 2014년 가족친화경영대상을 받더니 2017년 노동부로부터는 일가정 양립 우수 중소기업 사례로 선정된 꽤(진짜) 괜찮은 회사. 국내 최대 130만 여 명의 소비자 패널을 보유하고 있는 종합 리서치 회사로, 4,500개가 넘는 정성정량 프로젝트를 수행, 다양한 소비자 분석 방법을 통해 깊이 있는 소비자 이해를 지향한다.

 

2019년을 미리 읽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카더라 통신보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미래예측을 보다보면, ‘... 내가 혼자가 아니었구나’, ‘... 내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 ‘... 그런 일들이 이런 변화의 단초가 되는구나를 알 수 있다.

 

전망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전망하는 근거를 확인하는 것이다. 어두운 부동산 전망의 근거가 되는 원인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폭등이나 급락은 일시적인 것일 수 있고, 그 주장은 여전히유효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장이 되는근거(팩트)’를 읽고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훈련하지 않으면 중요한 판단의 시기에 권위를 빙자한 남들의 주장에 항상 흔들릴 수밖에 없다. p.6

 

이제 대중 소비자들의 10번째 삶의 기록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 내 취향과 성향에 맞는 정보가 나도 모르게 내 앞에 날아오는 시대,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를 구분하기 위해 굉장한 수고를 들여야 하는 시대, 그리고 결정적으로 단 10분 이상을 집중하기 힘든 이 디지털의 시대, 데이터가 꽉 들어찬 이 빡빡한 종이책한 권을 들이미는 의미를 찾아야 했다. p.14

 

맞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전망이 난무한다. 통계를 조작하기는 쉽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얘기들 속에서 우린 선택해야 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팩트를 체크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거였나 보다. 그러면 끊임없이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건가.

 

2013년 이후 2018년까지 지속적으로 추적해서 조사한 대중적 감정들의 동선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발견된다.

2018년 사람들이 가장 자주 경험한 감정은 귀찮다라는 감정이다. 각종 사회적 이슈가 넘쳐나는 최근 상황을 고려해볼 때 매우 독특한 감정이지만, 2018년 분석을 통해 제안한 개인의 삶에 대한 통제권 강화의 관점에서 볼 때 의미 있게 해석해볼 만한 감정이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슈가 있어도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면 이런 문제들을 귀찮아한다.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막연하게 걱정도 많고(3순위), 답답하고(2순위), 불안하고(5순위), 심란해(4순위)하지만, 그럼에도 내 문제가 아닌 주변의 상황들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p.10

 

또한 긍정적 감정인 행복재미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2015년 이후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고, 반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급증했던 화나다라는 감정을 경험한 비율은 최근 2년 동안 낮아지고 있었다. 전체적인 데이터의 흐름을 통해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하지만, 조금씩 긍정적인 감정을 회복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p.11

 

2013년부터의 집단적 감정 리스트를 보고 크게 위로 받았다. 나의 감정 변화와 도표가 너무 일치해서... 헬 조선이라고는 해도 조금씩 행복과 재미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크게 반길 일이다.

 

한편 매슬로의 욕구 단계로 최근 3년간의 한국 사회의 욕구 변화를 분석해본 결과, 대중 소비자들은 보다 원초적인 부분에 대해 강한 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17년에 비해 생리적 욕구의 결핍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많아진 것이다. 전염병이나 전쟁위협과 같은 외부의 위협에 대해서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라들이 늘어났으나, 보다 근본적인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불안과 결핍은 더 증가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기본적인 결핍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매슬로우의 주장처럼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는 줄어든다. p.12

 

또 한가지 크게 공감하는 한 가지. 내 눈에도 재미나 소확행을 추구하는 사람은 많지만, 독서나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가 빈익빈 빈익부현상이 보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력단절이나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컸는데, 이제는 공부하는 사람은 더 공부하고,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욱 안전을 추구하며 사회에 벽을 쌓고 있다. 세월호나 기득권의 비리, 최근의 흉흉한 사건들이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다시 역사의 흐름을 역행하고 싶지 않다면, 세상에 지지 않으려면, 자신을 잘 지키려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정주(定住) 의사에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1년 사이에 크게 줄어든 것이다. p.25

 

대체로 현재 가장 많이 즐기는 취미 활동은 남들도 많이 하는 대중적인 활동들, 예컨대 영화 감상이나 음악 감상, 독서 등이지만 보다 다양한 종류의 취미 활동에 대한 갈증이 크고, 이를 직접 배워보고싶어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왕이면 남들과는 다른취미 활동을 갖고 싶다는 마음도 내비치고 있어, 대중적인 취미 활동보다는 좀 더 독특하고 특별한 활동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요즘 분위기를 확인해 볼 수 있다. p.197

 

결국 대중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꼰대 되지 않기의 핵심에는 조직 내의 인간관계 상황에서 후배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소통해야 한다는 관점이 깔려 있다. 그리고 늘 그렇게 잘하고 있는지 자기 성찰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최소한, 구성원들의 감정이 집단적인 악의로 변하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꼰대 선배의 최후를 막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상식적인 수준의 자연스러운 인간관계 속에 이미존재해 있던 것일 수 있다. p.220

 

나도 2019년 목표 중 하나를 꼰대 되지 않기로 잡아봐야겠다. 짧은 시간 마음만 먹으면 꼰대가 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에게 쏟아놓는 것이 바로 그 꼰대 초보자요. 심지어 그 말을 상대를 위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문가로 가는 지름길이다. 꼰대보단 유연한 사람 개구진 사람으로 허허실실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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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워가는 시간들 - 그래도 내 생애에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황상열 지음 / 마음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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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열

현재 도시계획 엔지니어/토지개발전문가

직장인이고, 자기계발작가/동기부여강연가로 활동 중이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 영화를 즐겨보고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에세이를 읽거나 슬픈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눈물이 나는 감성적인 남자다. 늘 새로운 것을 찾고 들이대는 인생이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싶은 순수한 사람이고 싶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된 세실님. 이번에 셋째 아이와 함께 책도 출산하셨다. 한 번의 책출산도 힘든 나에게 부럽기도 하고 뒷걸음치고 싶기도 한 도전들을 묵묵히 하고 계심. 아이를 키우고 본업을 하며 내가 살고자 하는 바를 향해 뚜벅뚜벅 걷는다는 길에는 끊임없는 돌부리가 있다. 가장 큰 돌부리는 스스로와의 싸움이고, 현실과의 싸움이다. 그 길을 걸어가며, 이번엔 또 어떤 얘기를 세상에 하고 싶었던 걸까 궁금해진다.

 

무궁화를 타고 가다 보면 몇 번씩 덜컹거리기도 했다. 철로가 합쳐질 때나 분리될 때 그 덜컹거리는 소리가 참 정겨웠다. 자동차보다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갈 수 있고, 길게 늘어선 열차가 달려 나가는 모습도 어릴 때는 신기했다. 무궁화호보다도 더 느리게 가고 모든 역마다 섰던 통일호, 비둘기호도 있었다. 이젠 이 무궁화호가 비둘기호처럼 가장 느린 열차가 되었지만 말이다. p.30

 

나도 결혼하고 거의 영화관을 찾지 못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를 즐겨본다. 영화광까지는 아니지만 결혼 전에는 개봉하는 영화는 그날 찾아서 볼 정도였다. 영화 잡지를 구독하면서 정보는 줄줄이 꿰차고 보고 나선 그 감상을 따로 노트에 적을 정도였다. p.45

 

블로그 이벤트에 응모해 작가님의 책을 제공받을 기회를 얻었다. 나에게는 네 살 많은 오빠가 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터울의 오빠와 뭔지 모를 세대차이를 느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중간지대를 경험했다고나 할까. 지금은 둘다 결혼해 한 가정을 책임지는 부모로서 역할을 하느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오빠가 중간중간 생각났다. 오빠가 글을 썼다면 이런 글을 썼을까? 본인의 시간들에는 내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을지.

 

극장에 도착했다. 그 때 극장은 좌석이 꽉 차게 되면 목욕탕에서 쓰는 의자를 통로 쪽에 놓아두었다. 영상시작과 동시에 들어가다보니 원래 있는 좌석은 빈자리가 없었다. 있어도 앉을 수는 없었다. 앉는 순간 통증이 시작되니까.... 오히려 목욕탕 의자가 편했다. 목욕탕 의자를 땡겨서 엉덩이만 걸친 채 허리를 쭉 펴고 다리를 벌린 상태의 자세로 끝까지 우뢰매’4편을 시청했다. 에스퍼맨과 데일리의 액션과 가끔 터지는 심형래식 유머에 아픈 줄을 모르고 봤다. p.47

 

초등학교 시절에 근처에 살던 역 근처에 모라라는 경양식 음식점이 있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내 주위에 양식을 먹어본 게 자랑일 정도로 경양식 최고의 외식이던 시절이다. 입학이나 졸업, 생일 등 특별한 날에만 가던 곳으로 조용하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나오던 경양식 음식점들은 나름 우아하고 격조가 있었다. p.49

 

어느 날인가 아빠 손을 붙잡고 나갔던 오빠는 종이컵의 용도를 다르게 쓰고 있었다. 궁금해하는 나에게 묻지마라며 퉁퉁거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살던 동네는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마을을 휘젓고 다니던 마을버스의 존재가 참 반가웠던.... 막내이모가 첫 월급을 탔을 때 영웅처럼 나타나 칼질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 시절 경양식 레스토랑의 입지는 지금으로 치차면 호텔부페정도 됐으려나... 젓가락과 수저질만 하던 나에게 포크와 칼질은 새롭고도 신기했다. 그 뒤로도 칼질을 하고 싶다면 며칠을 별러 엄마가 데려가 주곤 했는데, 당신껀 빼고 시키는 일관성을 보였다. 요즘은 배부르다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푸짐하게 주문한 깨적거리는 신공을 내가 발휘한다. ‘이 맛있는 걸 왜 남기냐며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는 엄마. 엄마란 그런 존재인가.

 

남이섬을 처음 갔던 11살이 되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소풍이었다. 말이 소풍이지 극기 훈련 명목으로 4학년 학생 전체가 단체로 가게 되었다. 그 시절도 버스룰 타고 춘천에서 내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다. 사람이 많다보니 배가 몇 번을 나누어서 태우고 남이섬에 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학생들은 이미 빨간 모자를 쓴 선생님 인솔아래 줄을 서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그 당신 1반이라 첫 배를 타고 들어가서 친구들과 멀리 가는 첫 소풍이란 생각에 떠들다가 선착장에 도착할 때 쯤 빨간 모자 아저씨들이 자 이제 조용히 하고 줄을 맞추어서 내립니다! 여러분은 놀러온게 아니라 극기훈련으로 온 거니 이 조교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하고 소리쳤다. p.56

 

응답하라 1998을 보면 한 시대를 같이 살았다는 일관성이 생각보다 큰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문득문득 유년의 기억과 20대의 추억이 떠올랐다. 남이섬. 그곳은 겨울연가에 배용준이 나오며 외국인들의 관광지로 급부상된 그곳이 아니던가. 서울 정독 도서관 근처의 모 고등학교 앞에도 배용준 사진을 진열해 놓고 팔던데... 언젠가 남이섬에 갔을 때, 겨울연가 포스터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부삽으로 흙을 떠가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극기훈련.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돌아서고 보니 강압의 문화가 정말 많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었음을 알게된다. 왜 단체행동과 규율 폭력들을 의심없이 바라봤던 건지.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맞으며 공부했다면 요즘 아이들은 왜 신고를 안했냐고 묻겠지.

 

작은 체구에 사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도 했던 생물 선생님은 개구리 한 마리씩 꺼내어 마취통에 넣었다. 개구리가 마취가 되어야 배를 갈라 해부가 가능하다는 건 지난 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었다. 한 마리씩 마취통에 들어가 기절하는 모습만 봐도 나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서 나중에 가져온 2마리 개구리는 그 시절에도 유명했던 황소개구리였다. 보통 개구리보다도 1~2.5배가 크고 작은 개구리도 잡아먹는 잡식성으로 유명한 개구리다. 8마리가 모두 마취통에 들어갔다. 크기가 작은 참개구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했다. 선생님은 6마리를 차례대로 꺼내어 우리 조부터 시계방향으로 한 마리씩 뒤집어서 나눠 주셨다. (……)

황소개구리를 받은 다른 조 친구들도 배를 갈라서 장기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황소개구리가 마취에서 깨어난 것이다! 핀으로 고정되어 있는 앞다리가 움직였다. 조금씩 움직이더니 다리에 꽂힌 핀을 뽑아버렸다. 반대쪽 앞다리도 같은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뒷다리에도 힘을 주더니 꽂힌 핀을 다 뽑아버리고 뒤집혀 있는 몽을 다시 돌렸다. p.66

 

원래 개를 무서워하고 싫어해서 개를 키우는 것에 무지 반대했다. 그러나 여동생이 너무 키우고 싶다고 했고,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한 번 키워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되어서 이름은 아지라고 지었다. 강아지에서 강만 빼고 불렀는데, 어감이 좋아서 계속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꼭 모습이 영화 그램린에 나오는 기즈모처럼 생겨 정말 귀여웠다. p.77

 

결국 가족회의를 한 끝에 아지를 안락사 시키기로 했다. 따로 살고 일이 바빴던 시기라 여동생과 매제, 아버지가 가서 주사를 맞히고 안락사시켰다. 죽어가는 아지를 보며 여동생은 엄청나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화장터에 가서 화장을 하고, 안양천변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p.79

 

개구리가 꿈틀거릴 때,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는... 나 역시 미끈거리는 것들, 다리가 많은 것들은 질색이다. 벌레 싫어하고, 어두운 거 질색해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은 꿈도 못꾸는 1. 그런 나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이웃집 강아지가 새끼를 많이 낳았다고 하얀 발바리 한 마리를 선물로 주셨다. 오는 날부터 감기가 걸려 골골 거리던 녀석이 광동탕 골드를 먹고는 기침 뚝. 가족들의 빨래를 베고, 부뚜막에 누워 잠을 청하곤 했다. 부엌에서 칙칙폭폭하는 압력솥의 냄새를 가장 먼저 맡아서 멍멍거리면, 첫 밥공기를 받아 누구보다 먼저 식사를 시작했다. 엄마에겐 꼬리를 살랑거리더니, 단 둘이만 있으면 어찌나 으릉대던지. 몇 달이 지나자 엄마는 커가던 녀석을 부담스러워 하셨고, 외가집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오빠와 엉엉 울면서 매주 강아지 보러가자고 약속했는데, 얼마뒤 가보니 웬 똥개 한 마리가 우리를 보고 짖는데 뒷걸음질치는 내가 실망스러웠다. 나에게 강아지는 그런 기억을 준다. 6살 첫째도 강아지를 키우자고 자꾸 조르는데 나는 조심스럽다. 아이 둘을 치다꺼리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생활은 벅찰뿐더러 누군가에게 정을 들이고 헤어지는 일이 두렵기만하다. 일단은 강아지 인형으로 협상중.

 

1996년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마치고 부모님께서 새 컴퓨터를 장만해주셨다. 그 전에 쓰던 컴퓨터는 사촌 누나에게 받은 컴퓨터로 오래 사용하였다. 새로 컴퓨터가 오는 날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밤새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그렇게 대입을 준비하면서 남은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오면 그 당신 유행했던 PC통신으로 채팅이나 동호회 활동을 처음 즐겨보게 되었다. p.105

 

누나가 새로 테이프를 사면 공테이프를 하나 사설 더블카세트에 넣어 녹음을 했다. 녹음을 한 테이프는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 그때 유명했던 가수들이 박남정, 양수경, 김완선 등 지금은 다 중년을 지나 원로 가수분들이 최전성기를 누릴 때였다. p.109

 

요즘 아이들은 모를 거다.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꼭 리어카 한 대가 있었다. 최신가요 테이프가 빼곡하게 꽂혀 음악을 울려대던... 그때 그 아저씨들은 다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테잎아저씨 옆에는 군고구마 아줌마가 커플처럼 있었는데 둘은 얼마나 친했던 걸까.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의 이야기를 적었다. 그때 당시 바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은 지금도 추억하면 참으로 지분이 좋아진다. 우울할 때나 힘들 때 이 추억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인생을 살아가게 하고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인생을 살다보니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 행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늘 미루다가 그때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지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 이 순간순간에 집중하여 즐겁게 행복하게 보내야 한다. p.147

 

부모가 되고서야 부모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나. 불평불만 많았던 엄마아빠의 처사는, 그들도 처음이라 그랬고, 그들도 그들 자신을 어쩔 수 없어 그랬던 거였다. 모든 여건을 갖추고 사는 사람은 없다. 모든 여건이 갖춰지는 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이 자리에서 부족한대로 행복하게 살면 그뿐. 그렇지 않으면 미래의 과거는 항상 불안하고 후회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오늘을 채우는 것, 오늘 이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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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 책사랑과 삶사랑을 기록한 열두 해 도서관 일기
최종규 글.사진, 사름벼리 그림 / 스토리닷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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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도서관이라는 곳은 1988년에 중1이던 때에 처음 만났습니다. 고등학교에서 학교 도서관을 처음 구경했으나 갖춘 책이 매우 적었습니다. 오히려 우리 집에 제가 그러모은 책이 더 많아 동무들한테 제 책을 빌려주는 서재도서관노릇을 했어요.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대학교를 그만두고 신문을 돌릴 적에도, 출판사 일꾼으로 지낼 적에도,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일할 무렵에도, 둘레에서 으레 책을 빌려갔습니다. 때로는 잃어버렸다면서 책을 안 돌려주더군요. 이러다가 2007년에 전남 고흥으로 터전을 옮긴 뒤에는 사전짓기를 한결 알차게 돌보고 보금자리를 숲집으로 가꾸는 길을 새로 배우려고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로 이름을 바꾸었어요. “사진책도서관+한국말사전 배움터+숲놀이터라는 세 갈래 배움마당을 누립니다. 그동안 시골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비롯해 온갖 책을 썼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꼬리를 물며 읽게 된다.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를 읽다 시골에서 살림짓는 즐거움이란 책을 읽었고, 이번에 최종규 작가의 신간이 나오는 걸 알고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다. 이렇게 스토리닷 출판사의 세 번째 책을 접한다. 작가의 글도 출판사의 책도 지문과 같아서 그들만의 스타일이 있는 게 신기하다.

 

처음 최종규 작가의 책을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참 예사롭지 않은 글과 말이었다. 나도 신랑과 통화를 할 때면 주변 사람들이 놀라곤 하는데, 이분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고운 말, 우리 말을 연구하려는 본인의 노력이 삶의 태도도 그렇게 바꾸었나 보다. 이번 책은 십여년 간의 도서관 일지(?)랄까 일기를 모은 책이다.

 

어떠한 책이든 갓 태어나 새책집에 깔린다 하더라도 오래된 이야기를 담아요. , 새책도 헌책이요, 헌책도 새책이면서 모두 책입니다. 왜냐하면, 헌책집에서 찾아내어 읽는 묵은 책도 제가 오늘 처음 만나 펼치면 새로운 이야기이기에 새책이거든요. p.7

 

저는 글하고 책을 써서 얻는 돈을 모아서 도서관을 꾸리며 살림돈을 보탭니다. 우리 도서관을 아끼고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기에, 이분들이 다달이 보태 주시는 돈을 얹어서 하루하루 즐겁게 책삶을 일구었습니다. p.10

 

첫 장을 넘기며 일기라는 것에 놀라고, 두 번째 장을 넘기며 2018년 일기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아니... 2018년에 쓴 일기가 아직 달력을 세 장이나 남긴 시점에서 나오다니. 그런데 세 번째 장을 넘기며 알았다. 날짜가 역순으로 배열되었다는 것을. 순간, 뒤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을까? 하다 이것 역시 이유가 있겠지 싶어 앞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일기글을 거꾸로 읽는 것도 묘한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로 과거로 더 깊이 떠나는 여행같았다.

 

일기에는 차마 못 적었습니다만, 인천에서 도서관을 꾸리면서 빌린 임대보증금은 달삯을 치르느라 0원이 되고 빚까지 졌습니다. 도서관을 고흥으로 옮기고서 2012년 가을부터 2016년 봄까지 저희 통장은 30만 원에서 5000원 사이를 오락가락했습니다. 빈털터리로 다섯 해를 살던 셈인데, 이때에 형이 틈틈이 목돈을 선뜻 내어주어서 임대삯이나 여러 살림돈을 대었습니다. 철수와영희출판사는 아직 필리지 않은 책을 놓고 글삯을 먼저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내주신 글삯은 책이 고맙게 꾸준히 팔리면서 시나브로 다 메꿀 수 있더군요. 이 방에는 아름다운 이웃님이 곳곳에 상냥하게 많으시구나 하고 깨달은 나날이었습니다. p.15

 

그래도 제 마음은, 꿈으로 가는 길을 그대로 적고 싶었어요. 꿈으로 가면서 가시밭길을 얼마든지 지나가야 할 수 있거든요. 가시밭길을 걷되 울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가시밭길을 노래하면서 춤추는 몸짓으로 걷자고 생각했지요. p.16

 

책을 가지고 다니는 동안 주변 지인들은 다들 제목에 호감을 보였다. ‘시골에서 하는 도서관그것에 대한 묘한 환상이 그 까닭이었을거다. 그러나 부족한 책을 한권 내본 경험으로 그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나는 감히 상상이 된다. 그 가시밭길을 기꺼이 즐기며 십년이상을 걸어온 길들을 읽고 있자니 존경심이 절로 든다.

 

교사이든 교육행정가이든 가르치거나 일을 맡기만 할 뿐 아니라, 어린이푸름이여느 어버이한테서 늘 새롭게 배우며 이야기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배우려 하지 못한다면 고인물이 된다고 느껴요. 배우려 하기에 맑게 흐르는 샘물이 된다고 느껴요. 누구한테서 배워야 하느냐는 따질 일이 없어요. 누구한테서나 다 배우니까요. (……) 큰아이랑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운이 없습니다. 힘든 몸을 누이며 생각합니다. 삶길이란 배움길이요, 배움길이란 살림길인데, 살림길이란 사랑길이 된다고. p.22

 

다섯 마을 이장님이 둥그렇게 앉으셨습니다. 종이 한 장을 바닥에 펼쳐 놓고 도장을 찍으라 하십니다. 닷새 앞서 고흥교육지원청에서 왔을 적에 내밀던 그 종이입니다. 닷새 앞서는 다섯 마을 이장님이 도장을 안 찍어 주셨는데, 오늘 갑작스레 도장을 다 찍어 주셨습니다. 이 도장은 저희 사전 짓는 책숲집이 폐교 흥양초등학교에서 한 해 더 임대를 할 수 있다는 확인서 도장입니다. 다만 한 해 동안 임대는 더 해 주되, 한 해가 지나면 매각을 하겠다는 확인서예요. 도장을 찍고서 자리를 물러납니다. p.56

 

제법 책을 냈지만 저는 늘 앞으로 낼 책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낼 책이 많은 사람이지 낸 책이 많은 사람은 아니고 싶어요.” p.59

 

그에게 모든 책은 나무가 자라는 숲에서 왔기에 숲책이다.

그냥 흔한 책과 많은 책으로 채워진 도서관이 아니라, 건물로 짓는 도서관이 아니라, 조용하고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차분하게 그 책을 배우며 누릴 수 있고, 책이 되어 준 아름다운 나무를 느낄 수 있는 도서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p.62

 

상대의 결과를 보고 말하기는 참 쉽다. 자신다운 일을 찾아내기 위해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랜시간 고민하고 현실과 투쟁하며 길을 냈는지는 알아보기 어렵다. 작은 점포 하나를 내면서도 얼마나 많은 마음이 오락가락 하는지... 꿈꾸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쉼 없이 자신의 꿈을 확인해야 하고, 현실과 투쟁하며 갈림길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사전을 쓰고 짓는 일은 한두 해나 서너 해로 그치지 않고 평생 해야할 일, 평생 가는 일, 영화로도 만들어진 일본 소설 배를 엮다의 주인공 이름이 마지메’(성실이란 뜻)인 것처럼 말에 대한 집념과 끈기, 열중할 수 있는 재능과 성실함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인내심 강하고,꼼꼼한 작업을 두려워하지 않고, 넓은 시야로 함께 가진 젊은이가 요즘 시대에 과연 있을까요?”(배를 엮다중에서)

마지메말고도 그가 있다! p.63

 

책을 만나려고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는 온갖 책이 골고루 있으나, 우리는 늘 책 한 권을 만나려고 간다. 때로는 두 권이나 스무 권을 만나기도 할 텐데, 무엇보다 가슴에 남을 한 가지 책을 마주하고 싶어서 도서관에 간다. 책방에 갈 적에도 이와 같다. 책방마실을 할 적에 백 권이나 천 권이나 만 권을 장만하려고 찾아가지 않는다. 누구는 한꺼번에 백 권이나 천 권쯤 장만하려고 책방에 갈는지 모르나, 마을책방이라는 곳은 자주 마실을 하면서 마음에 되새길 책을 한두 권씩 꾸준히 만나는 이음터라고 느낀다. 도서관도 이와 같아야겠지. 자주 드나들면서 책 한 권에 깃든 숨결을 헤아리는 이음터가 도서관이 되어야겠지. 커다란 건물로 짓는 도서관이 아니라, 자그마한 마을마다 자그마한 쉼터처럼 예쁜 도서관이 늘어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 p.135

 

인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되는 것이 본질이지요. 이를테면 전기가 끊어지고 인터넷이 안 되더라도 스스로 먹을 수 있는 길을 알아 가는 것, 공장이 돌아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옷을 지어 입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 돈을 모아 집 한 채를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무를 얻어 집을 만드는 것이 인문학이 아닌가... 여기에 와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p.158

 

사진책 읽기를 사랑스레 하자면 만화책 읽기를 사랑스레 할 줄 아는 눈빛이 있어야 한다. 사진책만 들여다본대서 사진책을 잘 읽지 못한다. 사진기만 잘 다룬대서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돈만 많대서 기부나 이웃돕기를 잘 하지 못한다. 글만 잘 쓴대서 신문들을 잘 쓰거나 우리 이웃 이야기를 널리 알리지는 못한다. 마음이 있어야 사진을 찍고 사진책을 읽는다. 마음이 있어야 아름다운 빛을 글로 담고 이웃들이 쓴 글을 읽을 수 있다. p.205

 

도서관이라 할 때에는, 사람들이 즐겁게 읽으며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북돋우거나 돕거나 이끌거나 가르칠 만한 책을 알맞게 갖추어야 한다고 느낀다. 때로는, 이 사람이 바라고 저 사람이 바라는 책을 도서관에 둘 수 있으리라. 그러나, 도서관이라 한다면, 사람들이 바라는 책을 갖추기 앞서, 사람들이 챙겨 읽을 만한 책을 갖추어야 올바르리라 느낀다. 도서관은 대여점이 아니다. 도서관은 복지센터가 아니다. 도서관은 어느 한 갈래나 여러 갈래에 걸쳐 삶을 북돋우는 책을 갖추는 자리이다. p.225

 

도서관이란 백만 천만 억만 사람 누구한테나 열린 곳이기는 하지만, 도서관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가슴속 깊이 꿈을 사랑스레 품는 사람뿐이라고 느낀다. p.236

 

2009.3.29

415일까지 살림집을 빼야 한다. 그러나 새로 옮길 살림집을 아직 얻지 못했다. 동네에 마땅히 들어갈 만한 작은 방이 나타나지 않기도 하지만, 나타났어도 붙잡지 않았다. 그 집은 보증금 100에 달삯 15였는데, 도서관 달삯을 묶어서 헤아리면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다. 보증금 20010이라든지, 보증금 5005짜리 집을 찾기란 이제는 거의 꿈 같은 노릇일 테지. 4층 살림집에 있는 책을 꾸리고, 책꽂이 몇을 도서관으로 내려보낸다. 정 마땅한 집이 나오지 않는다면 살림살이는 죄다 도서관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고 집없는 살림을 꾸려야 한다. p.304

 

저는 돈이 되는 사진을 안 합니다. 돈이 되도록 하라는 소리를 자주 듣지만, 굳이 돈을 일찌감치 붙잡을 마음이 없습니다. 먹고 살 만큼 돈을 벌기는 하지만, 우리 먹고사는 틀을 넘어서면서까지 돈을 쌓아둘 마음이 없습니다. 내 삶이 묻어나는 사진을 오래오래 즐기면서, 이러한 사진을 우리 두 사람과 아이한테 살며시 남기고 흙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입니다. p.306

 

우리는 모두 도서관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도서관을 열어서 꾸린다는 뜻이 아닌, 우리가 저마다 걸어가는 길이 도서관 같다는 뜻이에요. 이런 일을 겪고 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온 대로 숱한 살림 이야기를 우리 삶자리에 놓았을 테니, 우리는 참말 도서관사람입니다. p.338

 

사람은 누구나 도서관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누구나 그 사람이 책을 읽든 안 읽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만약 그 사람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머릿속 한 귀퉁이에 그가 읽은 책장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나만의 서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많은 책을 품지는 않아도 누군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서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웃음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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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것을 알고 있다면 - 작은 스승에게 배우는 지혜로움
변성우 지음 / 프로방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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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우

드림캡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평범한 삶을 꿈으로 가득 채워 주는 일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서로의 꿈을 연결하고 이루어주는 드림 네트워커로서의 삶을 지향하며 함께 꿈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소중히 여긴다.

 

변성우 작가님의 책이 나왔다. 일전 출판 기념회에서 뵈었었는데 그동안 열심히 쓰셨나 봅니다. 오랜 시간 아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 속에서 삶의 교훈을 일궈내신 그 성실함에 존경을 표합니다.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고 함께 하는 누군가의 인생에 소중한 자양분이 되어 주는 힘의 비밀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단지 모르고 외면함을 외면하기만 한다면... 아는 것을 알고 있다고 인정하고 지금 자신의 삶에 녹여내기만 한다면 원하는 꿈으로 가득 채워진 삶을 쌓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p.8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네 가지 상황을 생각했다.

 

1. 아는 것을 알고 있다면

2. 아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3.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면

4. 모르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가장 최악은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는 것.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알아야 삶이 억울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다음 차악은 아는 것을 모르는 것. 내 안에 있는 답을 알지 못할 때, 답을 자꾸 밖에서 찾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 역시 인생의 지혜는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 알았다. 그래서 형아가 ...!”이라고 말했구나. 사랑하면 행복해진다고. 와우~! 형아 정말 최고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 갑자기 생각 난건데, “...”은 사랑하면 행복해진다는 뜻이잖아. 내 생각에는 ...”사랑하면 행운이 온다라는 뜻도 있는 것 같아. 어때? p.46

 

: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내 안에 있구나. 하늘이 만들어 놓은 하트모양을 찾은 것이 아니라 형아 두 손으로 원하는 하트모양을 먼저 만든 다음에 하늘을 바라보니 하트모양 구름이 보였던 것처럼. p.62

 

남매를 키우며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정확히는 일상을 바라보는 나를 기록한다고 해야하나. 빡치던 하루도 다음날이 되면 보다 담담하게 바라보는 나를 보며 결국 생각하기 나름인가. 그렇다면 한시라도 빨리 다른 시각으로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곤 한다.

아이들의 말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귀기울이다보면 틈틈이 인생의 지혜를 깨닫게 되고, 삶에서 지켜야 하는 것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가장 큰 스승이 된다.

 

: 근데 형아 저번에 보니까 엄마가 형아한테 책을 많이 보면 생각 주머니가 커진다.”라고 하던데 무슨 뜻이야? 생각 주머니? 그게 뭐야? 주머니가 커지면 뭔가 좋은 것 같긴 한데. 많이 담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p.190

 

술 담배를 하는 신랑에게 1호가 다가가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아빠 술,담배를 하면 생각주머니가 작아져서 바보가 된대.” 아이들의 어휘는 작은 것에서 큰 것을 깨닫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 역시 책을 읽어 생각주머니가 커지길 바란다. 그러면 일상의 일들을 보다 담담하게 바라보고, 문제해결력을 키워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 그래 우선 나처럼, 그리고 엄마와 아빠처럼 카메라에 담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아. 내가 장난감들을 담아보았는데 장난감이 없어도 이 사진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구. 내가 알기로는 엄마와 아빠가 너와 나의 어릴 적 사진들을 차곡차곡 담아오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너의 과거가 고스란히 담기고 있으니까. p.227

 

: 이번 방법은 우리가 좀 더 자라서 글씨도 배워야 가능한 방법이야. 나도 아직 해보자는 않았지만 엄마랑 아빠는 연필이나 볼펜을 가지고 종이에 뭔가를 적더라구. 요즘은 스마트폰에도 적던데. 이렇게 지금을 남기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나중에 글씨를 배우게 되면 한번 해보려구. 연필하고 종이만 있으면 될 것 같아 꽤 간단해 보였어. p.227

 

1호는 종종 아기 때 얘기를 해달라고 하고, 사진을 보여달라 한다. 나 어릴 적엔 앨범을 넘기며 얘기했지만 이제는 조용히 핸드폰을 검색하게 된다. 사진에 덧붙여 작년 재작년 오늘 얘기를 해주면 그렇게 좋아한다. 기록의 쓸모.

 

: ~ 촉촉해지면서 힘이 생기는 그 느낌 알지.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야 하나봐. 저번에 정말 일찍 일어난 적 있었거든. 햇님도 뜨지 않아 밖은 깜깜했어. 목이 말라 물 마시러 가는데 아빠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거야. 문을 살짝 열어서 보니까 아빠가 책을 읽고 있는 거야. 아빠는 분명히 전날 늦게 자서 피곤했을 텐데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어. 피곤한 기색도 없었고. p.256

 

: 하고 싶은 것을 조금씩이라도 하고 있는 삶이 건조한 하루를 더욱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대부분의 어른들 표정에는 촉촉함을 찾을 수가 없어. 근데 건조한 삶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하는 어른들은 밝은 표정과 함께 너무나 행복해 보여. 표정에서 촉촉함이 묻어난다니까. p.257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은 행복하기만 할까. 나는 수학을 좋아하지만 수학을 가르치는 일이 즐겁기만 하지는 않다. 내게 오는 학생들 중 수학을 좋아하고, 즐겨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성적이 좋지 않던지, 수학을 싫어하든지 적어도 하나엔 해당하는 경우가 태반. 아픈 사람을 매일 봐야하는 의사와 비슷한 듯. 혼자 잘하면, 문제가 없으면 나에게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읽은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는 효율이나 성과를 바라는 직장에서 나다움을 추구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겠지요. 이런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처방은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퍼센트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일에 임하는 자세도 그렇고, 삶의 방식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 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상의 틈틈이 나다움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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