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 책사랑과 삶사랑을 기록한 열두 해 도서관 일기
최종규 글.사진, 사름벼리 그림 / 스토리닷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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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도서관이라는 곳은 1988년에 중1이던 때에 처음 만났습니다. 고등학교에서 학교 도서관을 처음 구경했으나 갖춘 책이 매우 적었습니다. 오히려 우리 집에 제가 그러모은 책이 더 많아 동무들한테 제 책을 빌려주는 서재도서관노릇을 했어요.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대학교를 그만두고 신문을 돌릴 적에도, 출판사 일꾼으로 지낼 적에도,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일할 무렵에도, 둘레에서 으레 책을 빌려갔습니다. 때로는 잃어버렸다면서 책을 안 돌려주더군요. 이러다가 2007년에 전남 고흥으로 터전을 옮긴 뒤에는 사전짓기를 한결 알차게 돌보고 보금자리를 숲집으로 가꾸는 길을 새로 배우려고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로 이름을 바꾸었어요. “사진책도서관+한국말사전 배움터+숲놀이터라는 세 갈래 배움마당을 누립니다. 그동안 시골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비롯해 온갖 책을 썼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꼬리를 물며 읽게 된다.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를 읽다 시골에서 살림짓는 즐거움이란 책을 읽었고, 이번에 최종규 작가의 신간이 나오는 걸 알고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다. 이렇게 스토리닷 출판사의 세 번째 책을 접한다. 작가의 글도 출판사의 책도 지문과 같아서 그들만의 스타일이 있는 게 신기하다.

 

처음 최종규 작가의 책을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참 예사롭지 않은 글과 말이었다. 나도 신랑과 통화를 할 때면 주변 사람들이 놀라곤 하는데, 이분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고운 말, 우리 말을 연구하려는 본인의 노력이 삶의 태도도 그렇게 바꾸었나 보다. 이번 책은 십여년 간의 도서관 일지(?)랄까 일기를 모은 책이다.

 

어떠한 책이든 갓 태어나 새책집에 깔린다 하더라도 오래된 이야기를 담아요. , 새책도 헌책이요, 헌책도 새책이면서 모두 책입니다. 왜냐하면, 헌책집에서 찾아내어 읽는 묵은 책도 제가 오늘 처음 만나 펼치면 새로운 이야기이기에 새책이거든요. p.7

 

저는 글하고 책을 써서 얻는 돈을 모아서 도서관을 꾸리며 살림돈을 보탭니다. 우리 도서관을 아끼고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기에, 이분들이 다달이 보태 주시는 돈을 얹어서 하루하루 즐겁게 책삶을 일구었습니다. p.10

 

첫 장을 넘기며 일기라는 것에 놀라고, 두 번째 장을 넘기며 2018년 일기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아니... 2018년에 쓴 일기가 아직 달력을 세 장이나 남긴 시점에서 나오다니. 그런데 세 번째 장을 넘기며 알았다. 날짜가 역순으로 배열되었다는 것을. 순간, 뒤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을까? 하다 이것 역시 이유가 있겠지 싶어 앞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일기글을 거꾸로 읽는 것도 묘한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로 과거로 더 깊이 떠나는 여행같았다.

 

일기에는 차마 못 적었습니다만, 인천에서 도서관을 꾸리면서 빌린 임대보증금은 달삯을 치르느라 0원이 되고 빚까지 졌습니다. 도서관을 고흥으로 옮기고서 2012년 가을부터 2016년 봄까지 저희 통장은 30만 원에서 5000원 사이를 오락가락했습니다. 빈털터리로 다섯 해를 살던 셈인데, 이때에 형이 틈틈이 목돈을 선뜻 내어주어서 임대삯이나 여러 살림돈을 대었습니다. 철수와영희출판사는 아직 필리지 않은 책을 놓고 글삯을 먼저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내주신 글삯은 책이 고맙게 꾸준히 팔리면서 시나브로 다 메꿀 수 있더군요. 이 방에는 아름다운 이웃님이 곳곳에 상냥하게 많으시구나 하고 깨달은 나날이었습니다. p.15

 

그래도 제 마음은, 꿈으로 가는 길을 그대로 적고 싶었어요. 꿈으로 가면서 가시밭길을 얼마든지 지나가야 할 수 있거든요. 가시밭길을 걷되 울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가시밭길을 노래하면서 춤추는 몸짓으로 걷자고 생각했지요. p.16

 

책을 가지고 다니는 동안 주변 지인들은 다들 제목에 호감을 보였다. ‘시골에서 하는 도서관그것에 대한 묘한 환상이 그 까닭이었을거다. 그러나 부족한 책을 한권 내본 경험으로 그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나는 감히 상상이 된다. 그 가시밭길을 기꺼이 즐기며 십년이상을 걸어온 길들을 읽고 있자니 존경심이 절로 든다.

 

교사이든 교육행정가이든 가르치거나 일을 맡기만 할 뿐 아니라, 어린이푸름이여느 어버이한테서 늘 새롭게 배우며 이야기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배우려 하지 못한다면 고인물이 된다고 느껴요. 배우려 하기에 맑게 흐르는 샘물이 된다고 느껴요. 누구한테서 배워야 하느냐는 따질 일이 없어요. 누구한테서나 다 배우니까요. (……) 큰아이랑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운이 없습니다. 힘든 몸을 누이며 생각합니다. 삶길이란 배움길이요, 배움길이란 살림길인데, 살림길이란 사랑길이 된다고. p.22

 

다섯 마을 이장님이 둥그렇게 앉으셨습니다. 종이 한 장을 바닥에 펼쳐 놓고 도장을 찍으라 하십니다. 닷새 앞서 고흥교육지원청에서 왔을 적에 내밀던 그 종이입니다. 닷새 앞서는 다섯 마을 이장님이 도장을 안 찍어 주셨는데, 오늘 갑작스레 도장을 다 찍어 주셨습니다. 이 도장은 저희 사전 짓는 책숲집이 폐교 흥양초등학교에서 한 해 더 임대를 할 수 있다는 확인서 도장입니다. 다만 한 해 동안 임대는 더 해 주되, 한 해가 지나면 매각을 하겠다는 확인서예요. 도장을 찍고서 자리를 물러납니다. p.56

 

제법 책을 냈지만 저는 늘 앞으로 낼 책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낼 책이 많은 사람이지 낸 책이 많은 사람은 아니고 싶어요.” p.59

 

그에게 모든 책은 나무가 자라는 숲에서 왔기에 숲책이다.

그냥 흔한 책과 많은 책으로 채워진 도서관이 아니라, 건물로 짓는 도서관이 아니라, 조용하고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차분하게 그 책을 배우며 누릴 수 있고, 책이 되어 준 아름다운 나무를 느낄 수 있는 도서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p.62

 

상대의 결과를 보고 말하기는 참 쉽다. 자신다운 일을 찾아내기 위해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랜시간 고민하고 현실과 투쟁하며 길을 냈는지는 알아보기 어렵다. 작은 점포 하나를 내면서도 얼마나 많은 마음이 오락가락 하는지... 꿈꾸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쉼 없이 자신의 꿈을 확인해야 하고, 현실과 투쟁하며 갈림길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사전을 쓰고 짓는 일은 한두 해나 서너 해로 그치지 않고 평생 해야할 일, 평생 가는 일, 영화로도 만들어진 일본 소설 배를 엮다의 주인공 이름이 마지메’(성실이란 뜻)인 것처럼 말에 대한 집념과 끈기, 열중할 수 있는 재능과 성실함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인내심 강하고,꼼꼼한 작업을 두려워하지 않고, 넓은 시야로 함께 가진 젊은이가 요즘 시대에 과연 있을까요?”(배를 엮다중에서)

마지메말고도 그가 있다! p.63

 

책을 만나려고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는 온갖 책이 골고루 있으나, 우리는 늘 책 한 권을 만나려고 간다. 때로는 두 권이나 스무 권을 만나기도 할 텐데, 무엇보다 가슴에 남을 한 가지 책을 마주하고 싶어서 도서관에 간다. 책방에 갈 적에도 이와 같다. 책방마실을 할 적에 백 권이나 천 권이나 만 권을 장만하려고 찾아가지 않는다. 누구는 한꺼번에 백 권이나 천 권쯤 장만하려고 책방에 갈는지 모르나, 마을책방이라는 곳은 자주 마실을 하면서 마음에 되새길 책을 한두 권씩 꾸준히 만나는 이음터라고 느낀다. 도서관도 이와 같아야겠지. 자주 드나들면서 책 한 권에 깃든 숨결을 헤아리는 이음터가 도서관이 되어야겠지. 커다란 건물로 짓는 도서관이 아니라, 자그마한 마을마다 자그마한 쉼터처럼 예쁜 도서관이 늘어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 p.135

 

인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되는 것이 본질이지요. 이를테면 전기가 끊어지고 인터넷이 안 되더라도 스스로 먹을 수 있는 길을 알아 가는 것, 공장이 돌아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옷을 지어 입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 돈을 모아 집 한 채를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무를 얻어 집을 만드는 것이 인문학이 아닌가... 여기에 와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p.158

 

사진책 읽기를 사랑스레 하자면 만화책 읽기를 사랑스레 할 줄 아는 눈빛이 있어야 한다. 사진책만 들여다본대서 사진책을 잘 읽지 못한다. 사진기만 잘 다룬대서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돈만 많대서 기부나 이웃돕기를 잘 하지 못한다. 글만 잘 쓴대서 신문들을 잘 쓰거나 우리 이웃 이야기를 널리 알리지는 못한다. 마음이 있어야 사진을 찍고 사진책을 읽는다. 마음이 있어야 아름다운 빛을 글로 담고 이웃들이 쓴 글을 읽을 수 있다. p.205

 

도서관이라 할 때에는, 사람들이 즐겁게 읽으며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북돋우거나 돕거나 이끌거나 가르칠 만한 책을 알맞게 갖추어야 한다고 느낀다. 때로는, 이 사람이 바라고 저 사람이 바라는 책을 도서관에 둘 수 있으리라. 그러나, 도서관이라 한다면, 사람들이 바라는 책을 갖추기 앞서, 사람들이 챙겨 읽을 만한 책을 갖추어야 올바르리라 느낀다. 도서관은 대여점이 아니다. 도서관은 복지센터가 아니다. 도서관은 어느 한 갈래나 여러 갈래에 걸쳐 삶을 북돋우는 책을 갖추는 자리이다. p.225

 

도서관이란 백만 천만 억만 사람 누구한테나 열린 곳이기는 하지만, 도서관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가슴속 깊이 꿈을 사랑스레 품는 사람뿐이라고 느낀다. p.236

 

2009.3.29

415일까지 살림집을 빼야 한다. 그러나 새로 옮길 살림집을 아직 얻지 못했다. 동네에 마땅히 들어갈 만한 작은 방이 나타나지 않기도 하지만, 나타났어도 붙잡지 않았다. 그 집은 보증금 100에 달삯 15였는데, 도서관 달삯을 묶어서 헤아리면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다. 보증금 20010이라든지, 보증금 5005짜리 집을 찾기란 이제는 거의 꿈 같은 노릇일 테지. 4층 살림집에 있는 책을 꾸리고, 책꽂이 몇을 도서관으로 내려보낸다. 정 마땅한 집이 나오지 않는다면 살림살이는 죄다 도서관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고 집없는 살림을 꾸려야 한다. p.304

 

저는 돈이 되는 사진을 안 합니다. 돈이 되도록 하라는 소리를 자주 듣지만, 굳이 돈을 일찌감치 붙잡을 마음이 없습니다. 먹고 살 만큼 돈을 벌기는 하지만, 우리 먹고사는 틀을 넘어서면서까지 돈을 쌓아둘 마음이 없습니다. 내 삶이 묻어나는 사진을 오래오래 즐기면서, 이러한 사진을 우리 두 사람과 아이한테 살며시 남기고 흙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입니다. p.306

 

우리는 모두 도서관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도서관을 열어서 꾸린다는 뜻이 아닌, 우리가 저마다 걸어가는 길이 도서관 같다는 뜻이에요. 이런 일을 겪고 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온 대로 숱한 살림 이야기를 우리 삶자리에 놓았을 테니, 우리는 참말 도서관사람입니다. p.338

 

사람은 누구나 도서관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누구나 그 사람이 책을 읽든 안 읽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만약 그 사람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머릿속 한 귀퉁이에 그가 읽은 책장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나만의 서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많은 책을 품지는 않아도 누군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서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웃음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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