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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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소설은 첫 장면부터 매혹적인 상황으로 독자를 이끈다. 만일 당신이 알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만 프랑, 우리나라 돈으로 천오백만 원 정도 누군가에 의해 주워지는 제안을 받았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말이다. 그깟 돈 없으면 그만, 벌면 되지 하겠지만... 소시민에게 그런 제안은 솔깃하기 마련이다. 루이즈가 굳이 누드모델의 지인을 예를 들지 않아도 그것은 한 번의 모델이 되어주면 그뿐인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가엾은 루이즈는 단골손님이었던 의사 티리옹을 그만 믿어버렸다. 그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덕분에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알몸으로 호텔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고, 티리옹은 반쪽 얼굴이 날아간 채 호텔 객실 바닥을 어지럽혔다. 후에 둘의 관계의 비밀이 밝혀지지만 초반에 읽어서는 도대체 티리옹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루이스 앞에서 그런 결정을 내려야 했는지... 자신이 그런 결정을 한 이후 루이스가 맞닥뜨려야 할 고통에 대해서는 왜 생각할 수 없었는지 말이다.

소설은 여러 가지 인물들의 시선에 의해 구성된다. 루이스의 시점이 있고, 우연히 탈영병으로 인연을 맺게 된 전혀 성향이 다른 가브리엘과 라울 병장에 의한 시점 및 페르낭의 비밀스러운 일에 관련된 것, 마지막으로 공보국에서 가짜 뉴스를 사람들의 입맛대로 주무르고 퍼나르는 데지레의 시점에서 이루어져 있다. 모두들 전쟁의 참상들이 만들어낸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다. 각기 다른 위치에서 시작되지만 소설 중후반부터 이들이 하나로 모아지는 장면은 소설의 백미 중의 백미였다.

이 글에서 놀라운 부분은 전쟁통에서 천여 명이나 되는 죄수들을 이동시킨 일이 바로 실화라는 점이다. 바로 [수감자 집단 이감]이라는 에피소드가 실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반란, 탈출 시도, 행군 거부의 죄목 등으로 죄수들은 사살되었고, 파리를 출발할 때는 1865명이었던 수감자 중 귀르스 기지에 도착한 인원은 무려 43프로에 달하는 845명이 빠져있었다는 점이다. 그 많은 죄수들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여기서 한 가지 더하자면 라디오 방송에서 데지레가 전하는 소식은 물론 대국민 선동 가짜 뉴스였지만 간혹 상당수가 괴상하게 느껴진 실제 사건들이라는 점 역시 놀라운 점이다.

루이즈의 임신에 대한 갈망 부분을 묘사한 대목은 왠지 계속 되짚어보게 된다. 루이즈는 임신을 하지 못한다면 결혼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원하지만 그 사람의 아이를 갖지 못할 경우 다른 사람과의 잠자리도 서슴치 않는다. 단, 이것은 그저 임신하기 위한 성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마지막 루이즈가 자신의 나팔관 이상을 알고 더 이상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 스스로의 여성성을 부각시키지 않으려고 머리를 짧게 깎은 부분들... (아이러니하게도 짧은 머리는 루이즈의 외모를 오히려 더 빛나게 해주었지만) 이러한 루이즈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화두들이 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산다면 왜 결혼을 하는 걸까? 그냥 그저 둘이 살아도 좋지 않으려나... 결혼으로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인간관계를 받아들이고 싶지않다면 그냥 사는 것으로, 보다 법적인 구속력으로 가지고 인간관계까지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결혼제도를 택하는 것도 있겠다. 더 나아가 과연 결혼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까지도 생각은 뻗어 나간다. (과연 무엇일까? 현대 사회의 가족제도에 대한 생각까지... 아, 머리가 복잡해지는군)

이 소설은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를 그린 3부작 중 하나라고 한다. [우리 슬픔의 거울]을 통해서 피에르 르메트르를 알았다. 그를 알고 나니 그의 나머지 두 소설 역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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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창세기 - 사회들의 기원에 대하여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김성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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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창세기』​​

에드워드 윌슨 (지음) | 데비 코터 카스파리 (그림) | 김성한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

당신은 진화론인가? 창조론인가? 다윈의 혁명적인 등장 이후 지속된 과학적 발달로 왜 인지 이런 논의 자체가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진다. 세상이 아담과 이브에 의해서 이뤄졌든지, 유인원에서 나왔던지 말해봐야 그저 해묵은 논쟁거리로 여겨진다. 하지만 에드워드 윌슨은 명백하게 책에서 밝히고 있다. 다윈이 제시한 혁명적인 이론, 유인원을 통한 인류 진화는 이제는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진화는 바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말이다. (어떤 것을 믿을지는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일 따름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이것은 믿음의 영역을 넘었다고 보는 듯하다.)

어떤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냐가 바로 당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서문에 총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한다. 그중 두 가지를 전제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만 마지막 하나를 답변할 수 있다고 윌슨은 말한다. 첫 번째 질문은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는 가이다. 두 번째 질문은 무엇이 우리를 창조했는가?이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은 (위 두 가지 질문에 답한다는 전제하에서) 미래에 인류는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이다. 인류가 언제까지 지구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바로 마지막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리라...... .

책에서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은 선택적 진화론적 관점에서 침팬지와 인간을 비교한 대목이었다. 침팬지들 집단에서 보이는 참혹할 만한 폭력성이 어떤 인류학자는 인간 행동을 따라서 모방한 결과라고 말하고, 다른 인류학자는 모방과는 별개로 나름 진화론적 학습이라는 것이다. 폭력을 써서 한 집단이 우세하면 그 집단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번식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인류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인류의 폭발적인 성장은 바로 수렵, 채집에서 벗어나서 작물을 재배하고 짐승을 길들여서 가축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아마 인류는 혈연적, 지리적으로 한 밴드 내에서 묶여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밴드를 지키고자 나름 폭력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사는 인류가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이나 마야 문명을 멸망시킬 수 있던 것도 단연코 정착하여 작물을 기르고 가축을 길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조직력이 그것이다. 조직이 잘 갖추어진 동물 집단들은 영구적으로 이어질 잠재력의 소유자들이다. 초보적인 사회들은 멸망한다. 아마도 엄청난 숫자의 사회들이 그 명을 다했을 것이다. 극소수만이 살아남는다. 저자는 이것을 바로 진사회성 사회라고 일컫는다. 진사회성은 진화에서 희귀하게 나타나는 것일 수 있고, 이런 사회에서 이타성과 복잡성이 나타난다. 이런 특성을 가진 집단이 개미집단과 인간들이다.

한쪽 눈은 실명하고, 소리까지 들리지 않게 된 저자의 생태학, 생물 다양성 연구에 대한 업적은 실로 놀랍다. 저자가 아마 한곳을 오로지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신체적 한계가 한 역할을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하게 된다. 곤충들의 페로몬 소통을 밝혀내고, 자연 선택이 사회성을 발달시켜서 진화를 일으킨다는 것, 진 사회성 집단이 아주 일부에만 나타난다는 점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을 통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한번 읽고 덮었던 적이 있었는데 [새로운 창세기]를 읽으니 [사피엔스]와 통하는 점이 무척 많은 것 같다. 새로운 창세기가 다시 쓰인다면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식으로 매듭지어져야 할까? 그리고 그곳에서 인류의 역할은 어떻게 다시 부여받아야 하는가?

다수의 과학자들은 지구에 남은 시간이 얼마들 없다고 한다. 그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인류의 역할을 다시 규정지어야 할 것 같다. 지구의 마지막 파괴자로서 남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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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없는 검사의 분투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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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없는 검사의 분투』​​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 (펴냄)

세상에 이런 검사가 어디에 있을까? 출세욕에 눈이 멀지 않은 검사라니... 그는 오직 한 가지만 집중할 뿐이다. 바로 기소할 것인지, 불기소할 것인지... 이렇게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접하고 자신의 이익을 하등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정말 국가적 일을 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 검사 관련한 드라마나 영화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행여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말 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검사들은 죄다 권력과 출세에 눈이 멀게 그려지는 걸까? 그리고 그 반대파로 나오는 정의로운 검사는 가난하고 악의에 맞서다가 결국 변호사로 전향해서 악에 대항하는 이야기이다. 나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미디어라는 매체는 객체를 너무 부풀리기도 하고 너무 극단적이게 묘사하기도 한다. 또 얼마 전부터는 검사를 영웅시한 미디어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우리나라에 검사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고 여길 듯하다.

여기에 이런 사람이라면 더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 검사가 존재한다. 바로 출세를 꿈꾸지 않는 검사,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검사, 후와 슌타로가 그 주인공이다. 전작에서 꽤 고난을 겪은 슌타로... 이번에는 과연 수월할 수 있을 것인가? 후와와 같이 짝을 이루는 이는 소료 미하루는 검찰 사무관이다. 후와의 무기가 있다면 그가 바로 포커페이스라는 것이다. 절대로 자신의 표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일이 없는 슌타로는 그 무기를 바탕으로 사건의 피해자들이 죄를 고백하게 한다. 하지만 이에 반해 모든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소료 미하루... 아, 이 둘의 케미스트리는 정말 볼 만하다.

사건은 오기야마 학원이 기시와다 국유지를 매입하는 것에부터 시작된다. 매입금액이 평가액의 40퍼센트에 밑돌 정도로 터무니없이 저렴했던 것이다. 곧 국유지 매입을 둘러싼 긴키 재무국 지원의 뇌물 수수 의혹이 제기되고, 그 중심에 있었던 국유 재산 조정관을 불러들여 수사하게 된다. 하지만 유능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다카미네 검사의 추궁에도 흔들리지 않는 야스다 조정관, 그 후 증거물로 제출된 긴키 재무국의 결재문서 24쪽이 조작된 사실이 발견되고 만다. 이는 과연 다카미네가 조작한 것인가?

후와 슌타로는 다카미네 검사와 야스다 조정관 사이를 밝히고 사건의 진실을 쫓기 위해 대검에서 이 일을 파견해서 맡게 되는데... 과연 우리의 슌타로 검사는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까? 그리고 이어서 시체 두구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점점 복잡하게 꼬이게 된다.

후와 슌타로가 사건을 열심히 분석하고 해결하려고 하지만 정작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소료 미하루는 전혀 사건 해결을 짐작하지도 못한다. 마지막에서도 슌타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하루를 보면서 웃음이 지어졌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다른 이가 이해하고 미하루에게 설명을 해 줬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ㅎㅎ 눈치 없는 미하루...그래도 사랑스럽다면 너무 오버일까?

무거운 추리 소설 형태가 아니라 언제나 그렇듯 나카야마 시치리는 사회 전체에 서려있는 부정을 고발하고 그 폐부를 건드린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도 존재할 법한 이야기들...... . 추리소설을 통해 현실을 반성한다는 점에서 나카야마의 소설은 왠지 한 편의 르포 같다. 다음번에 나올 표정 없는 검사 시리즈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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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박영원 옮김 / 새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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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에드거 앨런 포 (지음) | 박영원 (옮김) | 새움출판사 (펴냄)

어릴 적 나는 고양이 보다 항상 개가 좋다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왠지 가까이할 수 없는 동물이랄까? 뭔가 이기적이고, 혼자만 아는 뭐, 그런 식으로 생각되었다. 아마 난 철저히 책 속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진 고양이들의 이미지에 속은 것이리라...... . 지금은 한 고양이의 집사로 살아가고 있으니, 그동안 고양이에 대해서 몰랐던 어린 시절이 약간은 억울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느껴졌다.

나에게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 한 책이 있다면 바로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이다. 아주 어린 시절에 이 책 내용을 알게 됐는데, 마음이 심약한 지라 벽만 보면 왠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 이 들기도 했다. 물론 난 공포물을 아주 좋아하는 아이였다. 단, 무서워하면서 좋아하는 아이란 점이 함정이었다. 왜 있지 않은가? 전설의 고향 같은 대놓고 무서운 드라마를 볼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는 사람같은...ㅎㅎ (전설의 고향하니까.. 나이가 엄청 많이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지금은 더 많을 듯하다. )

앨런 포의 대표적인 단편들이 [검은 고양이] 말고도 [고자질하는 심장],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 [어셔가의 붕괴]까지 무려 열 편이 이 책에 들어있다. 대표적인 앨런 포의 걸작선이라 할만하다. 아마 앨런 포를 모르는 사람이 행여 있다면 이 책의 단편 10편들이 좋은 시작점이 될 것 같다. 왠지 진액만 뽑아놓은 것 같다고 할까...ㅎㅎ

앨런 포라는 작가는 천재가 아닐까 한다. 그의 필력과 상상력은 묘하게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같이 동반 성장하는 듯하다. 아마 앨런 포가 이 시대 사람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대표적인 추리 소설 작가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그의 소설들은 모두 영화화되거나 웹툰으로 제작되고, 여기저기에서 판권을 사들였을 것이다. 지금 다시 읽어도 이렇게 세련되고 천재적인 소설일 수 없다.

요즘은 스토리가 대세인 시대라고 한다. 어떤 스토리를 갖느냐에 따라서 그것의 파급력은 대단하다. 그만큼 상상력의 힘이라고 할 것이다. 앨런 포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현대 사회의 모든 검은 범죄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의 소설들에서는 모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심령적인 무언가가 읽힌다. 인간의 양면성에 던져진 양심에 묻는 물음 같은 질문들... 왜 보들레르가 자신이 쓰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는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인간의 양면성을 알고 싶다면 에드거 앨런 포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의 글들에는 도저히 설명되지 못하는 인간 심연의 어두운 면들이 치밀하게 구현되어 있으니 말이다. 앗,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다. 앨런 포가 현대에 살았다면 추리 소설가보다도 프로 파일러로 이름을 떨쳤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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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익명 소설
앙투안 로랭 지음, 김정은 옮김 / 하빌리스(대원씨아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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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소설』​​

앙투안 로랭 (지음) | 김정은 (옮김) | 하빌리스 (펴냄)

큰일이다. 만일 여러분이 출판사의 편집자인데 최고의 소설의 작가를 모른다면 어찌하겠는가? 편집자들은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바로 작품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심미안이다. 현대 각종 출판사의 편집자들의 이메일에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소설, 에세이, 기타 출간을 원하는 원고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그리고 흔히들 요즘 시대를 독자들은 점점 적어지는 반면 자신의 출판물을 출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진다고 한다. 읽어달라고 하는 책들은 쏟아지는데 정작 읽는 독자들은 희귀해지는 시대이다.

그런 때에 이건 딱 한눈에도 그럴듯해 보이는 소설이 등장했다면? 출판사 원고 검토부에서 일하고 있는 비올렌은 고민에 빠진다. 프랑스 최고의 문학 상인 콩쿠르 상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할 만한 소설이 탄생했지만 출판부에서는 작가 이름은커녕 성별조차 모르고 있다니 말이다. 익명의 작가인 카미유 데장크르... 비올렌이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것은 그의 이메일뿐이다.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계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도 잠시 곧 그녀에게 경찰이 찾아오는데...... .

소설 [익명 소설]은 소설이기 전에 사회문제를 포괄하고 있기도 하다. 누구나가 수긍하는 나쁜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나쁜 짓을 대놓고 하지 않고 모르게 한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들킨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면... 아마도 누구나 핏대가 솟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문제는 엉뚱한 이들의 숙제로 되고, 그들이 고통받는다. 내 생각엔 이 소설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따로 있다고 생각이 된다. 정작 피해자로 묘사된 엘렌보다도 더 한 피해자는 존재한다.

카미유는 소설에서 이런 대목을 써 놓는다. 책은 작가를 떠나서 스스로 살 것이라고 말이다. 솔직히 세상에 나와있는 모든 책들은 그러하다. 그리고 작가들은 출판을 하기로 한순간부터 그 책들의 해석은 독자에게 열어놓는다.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독자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하고 느끼기를 원한다. 아마 그것이 책이 스스로 살아 숨 쉰다고 느끼는 것, 누구나가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유가 아닐까... 내겐 이 부분이 와닿았지만 다른 이에게는 다른 부분이 인상이 깊을 수도 있고, 나눌수록 더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는 책의 마법 같은 생산성들...

책과 책 사이를 종횡 무단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익명 작가의 존재를 심연에서 떠올리게 된다. 소설 말미에 가서는 아마도 모두들 깨닫게 되겠지만 말이다. [익명 소설]과 소설 속 소설인 [설탕 꽃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왜 파비엔은 그 수첩을 발견했을까 하는 점이다. 파비엔의 삶은 결코 잘못된 삶이 아니다. 그의 존재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의 희생은 절대 옳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괜찮아... 괜찮아... 하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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