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 1년 살기 - 소설처럼 읽는 고대 그리스 생활사
필립 마티작 지음, 우진하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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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1년 살기

필립 마티작 지음 | 우진하 옮김 | 타인의 사유

익숙한 세상에서 벗어나는 일은 모두가 꿈꾸기도 하고,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기도하다. 사실상 여행이 그러하다. 단출한 짐만으로 떠나는 여행... 길을 나선 순간 세상은 낯설어지고, 그 낯설음 자체가 두렵기도 하지만 두려움을 넘어서는 설레임...아마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은 기꺼이 낯설어지기를 감행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여행길... 좋은 기억만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은 경험도 많다. 사람들은 기억을 미화시키니 아마 나쁜 경험은 축소하고, 좋은 경험은 드러내기에 여행이란 아마도 좋은 측면,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면이 있다. 여행 생활자... 요즘 들어 이런 타이틀을 지닌 유튜버들이 많이 보인다. 일찍이 경제적으로 독립을 이룬 후 세계 각국을 떠돌면서 살아가는 이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아마도 생활이라는 것... 떠남도 어찌보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이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을 떠나도 우리는 먹어야하고, 잘 곳을 찾아야한다. 그 여행지에도 사람이 산다. 여행자에게는 그곳이 신기한, 낯설은 여행지겠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매일 매일 마주해야하는 터전이다. 그렇다. 여행도 그냥 삶이다. 일상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일상을 추가한다. 바로 우리가 염원하지만 갈 수없는, 지난 시간대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로의 여행....

어떤 신비로운 것을 기대하겠지만...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시대 또한 사람이 살았으며 사람이 사는 모습들은 다 비슷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는 고민들을 그 당시에도 했었고, 먹고 사는 것, 정치에 대한 것, 체력 단련에 대한 것, 또 결혼과 같은 중대사... 모두 다 비슷하다. 그리고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는 위로 아닌 위로를 얻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을 측정하는 것은 복잡했다고 한다. 현재처럼 표준시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시점에 맞추어 시간이 차곡 차곡 쌓여가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는 특별한 지도자가 등장하거나, 전설적인 사건이 일어난 해를 기준으로 각기 다르게 연도를 계산했다. 연도는 숫자가 아니라 국왕이나 당시 지배자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고, 지역마다 달랐다. 거기다가 열두 달의 길이가 각기 다르고 유동적이였다니... 지역 행정의 책임가들은 그 달의 일정이 빡빡하다고 생각되면 나름 달의 길이를 늘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시간에 대한 상대적인 태도인가... 재미있는 부분이다.

또한 책 속에서 자식의 혼사를 걱정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식이 하도 고집이 세고 말을 안들어서 상대 처녀가 임신을 할 수 있을만한 건강상태이고, 자신의 아들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무슨 도적의 딸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역시 어머니는 어머니이다. 그 당시에도 자식 문제는 중요하고 또 부모에게 있어서는 골칫거리였나보다. 다른 한가지 더 흥미로운 부분은 그 당시 존재했던 크세니아라는 관계였다. 피가 섞인 관계는 아니지만 필요할 경우 서로를 돌봐주는 전통적인 관계라고 하는 크세니아는 당시 중요한 대인관계 수단이었던 것같다. 크세니아로 이어진 사람들은 크세노스라고 불리고 이는 평소에도 유용하고 혼인할때 역시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로의 떠나는 여행길... 이런 여행길은 위험하지도 않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거기다 그 당시의 모습상을 통해서 오늘날의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말이다. 다음엔 어디로 여행을 가볼까나.... 고대 이집트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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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볼루션 - 어둠 속의 포식자
맥스 브룩스 지음, 조은아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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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볼루션

맥스 브룩스 장편소설 | 조은아 옮김

며칠 새 비가 미친듯이 내렸다. 특히 수도권과 충청권 중 몇 곳은 비 피해가 심하다고 한다. 차들이 잠기고, 사람들이 급류에 휩쓸린다. 온갖 예산을 쏟아부어도 자연의 심술을 감당해낼 수는 없다. 아마 가장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연이 아닐까한다. 이쯤되면 비로 인해 세상이 잠기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노아의 방주가 등장한 것도 이상치 않을 일이다. 인간의 문명이란 자연 앞에서는 그 얼마나 나약하고도 허무한 것일까... 일평생을 다해 이룬 것도, 금이야 옥이야하면서 애지중지 했던 물건들도 자연의 콧방귀 한방이면 저멀리로 곤두박칠 쳐버리니 말이다.

책 [데볼루션]은 바로 그 자연의 이야기이다. 얼핏보면 호러물, 기이하고도 생소한 사스콰치, 일명 빅풋과 인간의 사투처럼 보여지만 그 이면에는 자연을 정복하려한 인간의 어리석음이 그려져있다.

그린루프란 일명 전원공동체이다. 전원에서의 삶과 도시에서의 편안함을 동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듀런트 부부의 안전망 아래로 모였다. 이곳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최첨단... 모든 배송은 드론을 통해 이뤄지고, 차들은 자율주행을 한다. 그린루프에서 사용되는 에너지는 태양열을 이용하거나 자체 생산되는 바이오 가스를 이용한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다. 자신들의 터전은 안전할 것이라는 것...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는 것... 소설은 프랭크 맥클레이가 동생 케이트의 행방을 물으면서 시작된다. 그린루프에서의 삶을 영위하던 동생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그에게 들어온 동생의 일기장... 그는 그 일기장을 나 (아마도 맥스 브룩스)에게 전하면서 책으로 내줄 것을 부탁한다. 독자는 케이트의 일기장을 맥스 브룩스와 같이 보면서 그린루프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추측하고, 경악하고, 놀라워한다. 일기 컨셉이라서인지 소설은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일인칭 시점의 묘미...바로 사건 주체자가 독자인듯한 느낌이 물씬 살아있는 책이다.

레이니어 화산 폭발로 황폐해져버린 때... 비교적 피해상황이 덜했던 그린루프에는 이상한 손님들이 몰려든다. 온갖 야생동물은 물론이고 정체를 알수 없는 빅풋 역시... 이제는 자연과의 교류는 끝이 났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과연 자연이란 극복해야하는 대상일까...아니면 공존해야하는 대상일까... 소설은 말한다. 자연은 극복, 이용, 공존도 아닌 그냥 그 자체일 뿐이라고 말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모든 것은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어찌보면 이것은 생존게임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 지구라는 거대한 행성에 빌붙어있는 제 1 생명체이고 말이다. 그리고 자연은 위기의 순간에는 결단코 조화롭지 않다. 절망적인 순간이 닥치면 모두는 생존만을 생각한다. 생존... 바로 그것이 자연의 첫번째 본질이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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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 가정 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주디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 사람의집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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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가정 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주디스 루이스 허먼 지음 | 최현정 옮김 | 사람의 집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한가.... 책 표지에 서린 트라우마라는 낱말이 빨간 핏줄처럼 내겐 보였다. 그 줄이 얽히고 섥혀서 알게 모르게 이어내려오는 것... 그것이 바로 피의 힘이다. 절대 잊혀지지않는다. 잊혀지기는 커녕 그 트라우마는 유전자에 박혀서 되물림되는 것이다. 흔히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이 얼마나 헛소리인지... 또 아픔은 가시지만 상처는 남는다는 말도 한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 사라진다. 하지만 폭력의 흉터는 내내 그 자리에 남아 그 속에 상처가 있음을 알려준다. 트라우마는 일종의 방어 기제로 인간을 보호하는 작용 역시 하는 것이다. 이는 흡사 스릴러 영화의 표제작과도 같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 여운이 긴 영상을 보는 것만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어린 의뢰인]이라는 한국 영화가 생각났다. 칠곡 계모 사망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그 영화는 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한 소녀를 통해 탐구해 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다시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그 기억들... 아동에게는 살기위해서 기억을 해리하고, 다시 조립해내는 능력이 있다. 일종의 그것은 뇌의 방어기제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자신의 두뇌를 어딘가에 보관해놓는다고 생각하고 잠시 최면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고통스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 일명 가상세계의 일이 되는 것이며, 끔찍했던 기억은 영화나 소설 속 한 장면으로 귀속된다. 일어났는데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고통스러운데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 온 몸에 철갑을 두른듯...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먼 훗날 그 자신이 가정을 꾸리거나, 그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때 어떤 트리거가 되어서 그 자신을 공격한다. 절대 잊혀질수도 없다.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만큼 폭력의 상흔은 무섭다. 그리고 그것이 아동기에 벌어지는 학대라면 너무도 끔찍하다.

얼마전 영화 [세자매]를 보았다. 어린 시절에 한 공간에서 아버지의 폭력을 온 몸으로 당해가면서 어른으로 성장해 온 그들은 겉보기에는 멀쩡해보인다. 하지만 자매들은 나름대로 그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큰 언니는 항상 주눅이 들어있고, 생활력이 없는 남편에게 그녀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외적인 폭력은 아니지만 언어적인 폭력을 당한다. 둘째는 가장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잘 사는 듯 보이나 바람 피는 남편에 외적인 면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지만 정작 그녀는 빈 껍데기로 남아있다. 셋째는 그 중 스스로가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알콜 중독자로 술 없이는 생활하지 못한다. 막내 아들도 등장하는데 그는 아버지의 학대로 정신적으로 이상해졌으며 병원 생활을 지속중이다. 이처럼 학대의 기억은 세자매의 삶을 밟아놓았고, 커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멍에로 남는다. 후에 바닷가에서 세 자매가 서로 엉기어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은 결국 헤쳐나갈 힘은 자기 자신 밖에, 그리고 그 자신을 이해해주는 가족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슬프다. 학대의 트라우마, 강간의 트라우마, 가정 폭력의 트라우마, 테러의 트라우마, 자연재해의 트라우마... 각종 트라우마가 넘쳐나는 이때 우리는 안다. 절대 그 굴레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도망칠 구멍이 없다면 맞서야한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직시해야한다. 구덩이에 빠졌을때는 왜 빠졌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덩이에서 빨리 나와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질 힘 역시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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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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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 신유희 옮김

청아하다. 에쿠니 가오리하면 떠오르는 단어이다. 이제 그녀도 흐르는 세월을 비켜가지는 못하겠지만 글은 나이를 먹지를 않으니...여전히 청아하다는 말은 유효한 단어이다.

이 책은 그녀의 책 [반짝반짝 빛나는] 이후의 뒷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등장인물들 모두가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아마 그 연장선에 있는 거라서 그런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책 마다, 글 마다 자신의 지문이 들어있다고... 그리고 내 생각에 에쿠니 가오리의 지문은 그 누구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챕터, 어느 단락을 읽어도 그녀임을 알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아내를 위해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기꺼이 되어주는 남편이 등장하는 가 하면 신문의 부고란을 탐색하면서 듣도 보도 못한 이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부부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고, 그 사랑을 확신하면서도 한 여자는 여러 남성들과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떠난 동성의 애인이 남긴 나무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여성도 등장한다. 하나 같이 평범한 감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일상적이다. 자신들의 삶에 조용히 녹아들어가 있다. 앞으로 가는 자전거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자동차처럼 속도는 낼 수 없지만 어찌됐든 한 방향으로는 가고 있는 것이다. 왠지 가오리가 그린 이곳에는 나쁜 사람들은 없는 것같다. 적어도 그녀가 그리는 최소 이 세계의 사람들은 말이다. 다소 이해가 안가는, 이상한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여름에 꼭 보는 영화가 있다. 고레에다 감독의 [폭풍이 지나간 후에] 와 [ 바닷마을 다이어리]이다. 왠지 보고나면 마음이 한결 가볍고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한여름날 사우나를 하고 나온 듯... 여름이지만 방금 담근 뜨거운 물의 기운이 식어가면서 시원해지는 느낌... 그리고 여름에 읽기 딱인 소설들...내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이 그러하다. 그녀의 책의 주인공들이 사는 세상은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세상과 닮아있다. 왠지 두 세계가 통하는 느낌이다. 일상의 진한 향기, 그 여운... 모든 억울함, 혹은 불공평을 감수하고서도 스스로 개척하고 살아내야하는 것...

소설가 김중혁님은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풍경을 자신 옆에 두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작은 세상, 그 따뜻한 세상, 비록 주인공들은 상처투성이에 이해안되는 모습도 있지만...그래도 선하고, 따뜻한 뭔가가 풍기는 사람들... 가오리의 글 속 사람들도 그러하다. 모두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변함없이 살아간다.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밥상을 차리고, 모두가 둘러앉지만 서로 각자의 식사를 한다. 사는 것이란...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이 저마다 어리석은 짓을 하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쇼코와 무츠키, 곤의 일상이 그저 그렇게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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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의 맛
구효서 지음 / 문학사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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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의 맛

구효서 소설집 | 문학사상

소설을 읽는 내내 감각이 그려졌다. 특히 미각에 대한 감각은 총체적인 오감이라고 생각된다. 보고, 냄새를 맡고, 음미하는 모든 감각을 사용하게 되니까 말이다. 소설가 구효서님의 오감에 대한 소설집... 시도 자체가 색다르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집 소제목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이미지... 하지만 막상 그 감각에 의지하여 읽다보면 절대 하나의 감각만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대표적으로 [은결-길편지]에서는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의 시각적 감각이 요라는 남자에게 생의 마지막 기회를 줬다고 한다면 여기에 나오는 도다리 쑥국이나 무 등 등의 것 역시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오히려 난 [웅어의 맛]보다 [은결-길편지]에서 진한 쑥내음과 도다리의 맛을 느꼈으니까 말이다.

소설가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거기에 살을 붙이는 과정은 나에게는 참 낯선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렇게 실험적인 시도는 소설 읽기에 또 다른 재미를 부여한다. 한 작가는 의도적으로 특정 받침을 제거하는 글쓰기를 시도하기도 하고 말이다.

문득 소설을 읽다가 생각난 것은 구효서 작가의 결이 왠지 김승옥 작가와 닮아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노래하는 것,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 섬세한 묘사 등 등이 두 작가를 묶게 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중 계속해서 화면이 연상되는 것 또한 말이다. 자꾸 그 도다리 쑥국도 생각나고, 웅어도 생각나고, 윤슬 혹은 은결도 생각난다. 왠지 단편극장에 어울리는 하나의 시나리오로 탄생시켜도 꽤 훌륭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말하지 못하는 무엇을 한가지씩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 때문에 살고 사람 때문에 죽는다. 사람만이 사람을 날카롭게 한다. 이 소설 속 주인공 모두는 저 마다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결코 마지막 선을 안넘는다는 것... 그 정도일까... 아마 모두들 바다의 교훈을 잘 깨닫고 있는 듯하다. 절대 건너오지 말고, 묻어두고 돌아가라는 것...

책을 덮어도 자꾸만 피맛이 올라온다. 요가 계속해서 칼로 잇몸에 상처내기를 멈추지 않는 것... 그것 때문일까...아니면 삶에 대한 어떤 해답도 사는 동안에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그것도 이제서야...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가? 인간을 살게하는 것은 상당히 단순한 것이라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죽더라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고 표현했으며, 다른 한 누군가는 손 밑의 거스름같은 뭔가 사소한 걸림으로 표현했다. 모든 것이 오감하고 맞닿아있다. 인간은 오감이 있으므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의 재미이다. 어느 잇몸 약 광고처럼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고 하면서... 그런 감각에 바로 사는 맛, 사는 멋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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