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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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 신유희 옮김

청아하다. 에쿠니 가오리하면 떠오르는 단어이다. 이제 그녀도 흐르는 세월을 비켜가지는 못하겠지만 글은 나이를 먹지를 않으니...여전히 청아하다는 말은 유효한 단어이다.

이 책은 그녀의 책 [반짝반짝 빛나는] 이후의 뒷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등장인물들 모두가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아마 그 연장선에 있는 거라서 그런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책 마다, 글 마다 자신의 지문이 들어있다고... 그리고 내 생각에 에쿠니 가오리의 지문은 그 누구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챕터, 어느 단락을 읽어도 그녀임을 알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아내를 위해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기꺼이 되어주는 남편이 등장하는 가 하면 신문의 부고란을 탐색하면서 듣도 보도 못한 이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부부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고, 그 사랑을 확신하면서도 한 여자는 여러 남성들과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떠난 동성의 애인이 남긴 나무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여성도 등장한다. 하나 같이 평범한 감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일상적이다. 자신들의 삶에 조용히 녹아들어가 있다. 앞으로 가는 자전거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자동차처럼 속도는 낼 수 없지만 어찌됐든 한 방향으로는 가고 있는 것이다. 왠지 가오리가 그린 이곳에는 나쁜 사람들은 없는 것같다. 적어도 그녀가 그리는 최소 이 세계의 사람들은 말이다. 다소 이해가 안가는, 이상한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여름에 꼭 보는 영화가 있다. 고레에다 감독의 [폭풍이 지나간 후에] 와 [ 바닷마을 다이어리]이다. 왠지 보고나면 마음이 한결 가볍고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한여름날 사우나를 하고 나온 듯... 여름이지만 방금 담근 뜨거운 물의 기운이 식어가면서 시원해지는 느낌... 그리고 여름에 읽기 딱인 소설들...내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이 그러하다. 그녀의 책의 주인공들이 사는 세상은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세상과 닮아있다. 왠지 두 세계가 통하는 느낌이다. 일상의 진한 향기, 그 여운... 모든 억울함, 혹은 불공평을 감수하고서도 스스로 개척하고 살아내야하는 것...

소설가 김중혁님은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풍경을 자신 옆에 두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작은 세상, 그 따뜻한 세상, 비록 주인공들은 상처투성이에 이해안되는 모습도 있지만...그래도 선하고, 따뜻한 뭔가가 풍기는 사람들... 가오리의 글 속 사람들도 그러하다. 모두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변함없이 살아간다.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밥상을 차리고, 모두가 둘러앉지만 서로 각자의 식사를 한다. 사는 것이란...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이 저마다 어리석은 짓을 하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쇼코와 무츠키, 곤의 일상이 그저 그렇게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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