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 글쓰기 수업 -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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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내 To Do List 1순위는 '글쓰기'였다. 지금보다 더 많이, 내 삶을 기록해보자고 연초마다 굳건히 다짐하지만 언제나 작심'1'일 조차 못하는 의지박약자. 그래서 나는 항상 '읽는 자'와 '쓰는 자' 경계에서 머뭇거리며 과감하게 발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부터 읽은 책이라도 글로 남기자 싶어 참여하게 된 서평단 활동은 글쓰기 습관을 들이는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나의 감상문'과 시시콜콜하기 짝이 없는 '나의 고백'은 한 발 앞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내 삶은 누군가에게 가닿을 이야기가 되지 못했다.



솔직히 소설보다 에세이나 르포를 쓸 때 더 빛나는 작가 장강명,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글을 쓰는 작가 은유. 그리고 '오발 하라리'라 불리는 글 빚는 참재주꾼 작가 오후. 이 세 사람의 추천사가 앞에 떡하니 붙은 작법서라니, 안 읽을 수가 없다. 



이 책의 저자 잭 하트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보도상인 퓰리처 상의 심사위원이자 170년 전통을 자랑하는 잡지 <오레고니언>의 편집장이라고 한다. 35년 간 그의 가르침을 받은 수 많은 기자들이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이 책은 정말 '찐'이다. 사실 그동안 일상을 다루는 에세이나 소설 작법서는 자주 접했지만 대놓고 이 책처럼 '논픽션 스토리텔링' 글쓰기를 알려준다는 책은 흔치 않았던 것 같다. 하긴 미국은 논픽션 자체가 거대한 장르이고, 미치는 영향력도 어마어마한데에 반해 한국은 잘 쓴 논픽션은 물론 논픽션 전문 작가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물론 요즘들어 다양한 층위의 삶을 다룬 에세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기자들이 심층취재해 건져올린 괜찮은 주제의 책들도 조명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논픽션은 폭로 위주의 선정적인 글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반면 작년 독서모임에서 읽은 <깃털도둑>은 논픽션임에도 소설을 읽는 듯한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면서 '동물권'에 대한 깊은 토론을 이끌어냈다. 거기서 논픽션이 가진 강력한 힘을 경험하며 생각했다. 우리의 인식을, 그리고 세상을 확실히 움직이려면 마성의 스토리를 갖춘 논픽션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 낼 갖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국어시간에 흔하게 배웠던 '발단-전개(상승)-위기-절정-하강(대단원)'의 내러티브와 시점이 풍부한 예문과 기자들의 생생한 작성 과정을 만나 살아 숨쉬듯 와닿는다. 캐릭터에 살을 입히고,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 스토리의 틀을 짜고 장면들을 골라 넣는 것. 어떤 디테일을 건져올릴 것인지 기준을 정하는 것. 논픽션이라 해도 픽션 못지 않은 세심함이 필요하다. 



적절하게 삽입된 도표들은 마치 열정적인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글로만 쭉 풀어놓는 것보다 플롯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스토리의 절정은 어떻게 완성시키는지, 장면들은 어떤식으로 삽입하면 좋을지, 마치 영화 시나리오를 짜듯 눈에 그려졌다. 


 




"스토리는 모두 똑같은 것 같지만 저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눈송이를 닮았다."

존 프랭클린-퓰리처상 두 차례 수상




어떤 식으로 내러티브를 완성할 것인가, 어떤 장면을 쓰고 어떤 장면을 버릴 것인가. 스토리 내러티브는 글을 완성시키는 결정적 키이다. 대체적으로 호흡이 긴 논픽션 글쓰기 강의지만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는 팟캐스트도 다루고, 다양한 내러티브에서는 칼럼, 경수필, 다큐멘터리 영화 등도 다룬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필드에서 오래 글을 쓴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논픽션의 윤리를 다루며 더욱 사려 깊은 강의를 완성한다.



'좋은 스토리는 가르침을 준다'는 저자의 말은 백번 옳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내 삶에 맞닿아 있기에 더 큰 용기와 감동을 준다. 그리고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이어지는 저자의 '문장력보다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은 미천한 글 재주를 가진 나에게도 기회의 땅이 저기 있다고 가르키는 구원의 손길 같다. 제대로 된 주제만 있다면, 이 책이 알려주는 방법론을 따라 글을 써보면 좋겠다. 



벌써 도구는 마련되었다. 이제 사용하는 일만 남았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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