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나스다 준 지음, 양윤옥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를 읽고

내 자신 나이 오십대 중반이다. 그 옛날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참으로 남녀관계가 비교적 엄격한 시대였다. 그리고 시골에서 학교에 다니면 솔직히 여러 사람의 눈에 바로 띠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만나고, 활동할 수도 없었다. 내 자신도 원래 성격이 내성적인 데다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 아버님의 사업 실패로 인하여서 기가 죽어지낼 수밖에 없었다. 왠지 자신감이 없어지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다. 이러다보니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인천에서 서울로 전동차로 통학을 하면서 다녔지만 여학생하고 한 번 이야기를 해보거나 시간을 같이 한 추억을 갖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바로 하게 되었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로 학창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쑥맥 그 자체였던 것이다. 정말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고, 일부러 피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바로 이런 힘든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나중 교직에 들어가서는 우리 학생들에게 내 경험을 이야기해주면서 자연스럽게 남학생과 여학생 간에 교류가 이어지도록 장려도 하고, 중간에서 다리도 놓아주는 역할도 하였다. 예를 들면 한 여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이유 없이 성적이 떨어져서 면담 결과 전학 오자마자 교실에 있는 한 남학생이 눈에 들어 왔고, 속으로 관심과 함께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어떻게 표현한 방법이 없어서 고민을 하였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에 별도로 시간을 내어 학교 인근 공원 벤치에서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하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 원만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바로 사랑이란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청소년기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독일 키르 지방에 전해 오는 ‘사랑나무’전설에서와 같이 사랑하는 마음은 아무리 험난한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 할지라도 어떻게든 표현하고, 다가서게 되는 것이라는 사랑의 정령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정말 순수한 사랑을 향해서 서로가 고민을 하면서 엮어 나가는 사랑의 모습들은 하나의 멋진 최고의 예술 작품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요즘 주변을 보면 의외로 노총각과 노처녀들이 많다. 물론 여러 사정들이 있어 이렇게 혼기를 놓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곤 한다. 사람의 짝꿍이란 것은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고. 그러나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고,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해 나간다면 반드시 짝꿍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어쩌면 소꿉장이 친구들을 포함하여 학창 시절의 친구들을 생각하고, 그 인연을 이어보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작품을 통해 순수한 사랑이야기 속으로 들어 가보는 꿈도 꿔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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