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직언하고 가차 없이 탄핵하다 - 조선은 어떻게 부정부패를 막았을까
이성무 지음 / 청아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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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어떻게 부정부패를 막았을까?」를 읽고

어떤 국가든지 한 국가에 있어서 가장 평화롭고, 국민들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물론 오늘 날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선진국의 국가들이 해당이 되겠지만 예전에는 솔직히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지역이 절대 왕권의 시대가 많았고, 독재자에 의한 독재 정권도 곳곳에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조선 왕조도 절대왕조 시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왕의 독주에 대해서 여러 견제 장치를 두고 있었으니 다른 지역의 절대 군주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바로 우리만이 갖는 독특한 정치 형태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조선 왕조는 500년을 넘는 전통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세계 역사에서도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의 장수국가인 셈이다. 이런 오랜 동안의 역사의 전통 유지에는 역시왕권과 신권을 견제함으로써 국가의 기틀을 자지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서도 이런 왕의 독주를 막기 위한 제도로는 대간과 감찰, 암행어사 제도가 있었는데 이런 제도들은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의 감사제도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 날에도 정부가 국민들을 위하여 일하는 정책에 대한 매 년 감사하는 감사원의 역할도 이런 감사제도의 역할과 함께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이다. 대간은 삼사 중 사헌부와 사간원을 가리킨다. 사헌부는 관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대관이고, 사간원은 국왕의 독주를 간쟁하는 간관이다. 바로 왕의 독주와 고위관료의 비리를 막는 조선왕조의 파수꾼이었다. 감찰은 사헌부의 하급 관원이다. 원래 사헌부에는 대관과 감찰이 있다. 대사헌 집의 장력, 지평은 대관이라 하여 언론을 장악하였고, 감찰은 실제 감찰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곳곳에 파견되어 일반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적발하였다. 어사 박문수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암행어사 제도는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선왕조의 남다른 노력이기도 하였다. 특히 암행어사제도는 조선밖에 없었던 제도로 국왕이 민정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당하 시종문관을 몰래 파견한 것으로 중종 조 이후에 정착되었다한다. 특히 암행어사는 왕의 뜻을 잘 아는 시종신 중에서 의정부가 암암리에 선발했고, 국왕이 파견하였다. 왕으로부터 마패 1개와 유척2개, 봉서와 사목을 받고, 파견 군현을 추첨한 다음에, 동대문이나 남대문 밖에서 열어보고, 지정된 군현을 갔다. 물론 변장을 하고, 수하도 거느리지 않았고, 여비도 지급받지 않았다. 정보 수집을 위해 몸종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갈 뿐이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왕에게 복명을 하는 민본정치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관리들의 청렴결백을 장려할 목적으로 국가의 감사제도와 병행하여 청백리제도를 두어서 관리들을 표창함으로써 명실공이 조선왕조에 있어서 부정부패를 끊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왕권과 신권을 잘 조화시킨 현명한 정치 제도가 있었기에 조선왕조가 유지가 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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