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 책 제목을 보고 섬찍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얼마나 하는 일이 위기에 봉착한 순간이기에 ‘칼날 위’로 표현했을까? 하고 말이다.
우리의 평소 삶이 일반적이고도 보통의 삶을 살고 있다면 이런 표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현재 딸만 셋이지만 원래는 큰 딸 다음으로 아들이 있었다.
둘째였지만 아들이어서 남다름을 느꼈고, 모든 게 남아다운 모습이어서 기대를 크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감기 기운을 계속 달고 지내길래 개인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하고 있었는데 큰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지나서 개인 병원 원장이 대학병원에 가서 종합 진료 받기를 권하였다.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에 가서 종합진단을 받았는데 아니 이럴 수가 ‘아주 희귀한 심장병으로 진단받았다.
그때부터 이제는 대학병원으로 계속 진료를 받으면서 다녔다.
결국 주치의로부터 희귀한 경우라도 수술을 권유 받았다.
당시 심정으로는 어린아이에게 칼을 대어 배를 열어 수술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6개월 정도를 계속 대학 병원에 다니는 것도, 그렇다고 차도를 보이는 것도 아니길래 결국 아들 수술에 동의 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로서는 몇%의 승부가 보인다 하더라도 이에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경우는 매우 귀해서 어려운 케이스라고 강조를 한다.
그래도 어찌할 것인가?
계속 안고 가야 할지 아니면 단 1%라 할지라도 열어서 고칠 수만 있다면 어디에 승부를 걸어야 할지 아마 모든 부모에게 물어보아도 답은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수술일이 잡혔다.
수술일에 일과 시작 이전에 준비를 하여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08시 경 입원실에서 나와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진정 잘 되기만을 기도하면서 들여보냈다.
그러면서 대기실에서 수술을 잘 마치고 나오기만을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이때 만큼 심란했던 때가 언제 또 있을까 할 정도였다.
그런데 점심시간 전은 물론이고 오후가 되어도 나올 생각을 않는다.
참으로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들이 수술실에서 나온다길개 달려갔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인공호흡기를 꽂고 있어 잘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저 부모로서는 수술이 잘 되어 지금 편하게 쉬고 있는 줄 알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대기실에서 얼마를 기다리는데 부모 호출이 왔다.
그러면서 들은 말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수술은 잘 되었는데 후유증이 나타나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느냐?
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고, 차분하게 기다림을 갖다가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의 둘째 아들과는 생이별 하게 된 전력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이뤄지는 수술의 모습을 생각이나 상상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 때 모습이 떠오르면서 당시의 담당의사가 생명을 다루는 전공의로서 얼만큼의 최고 최선의 칼날을 쥐고 수술에 임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어린이를 가지고 하루종일 수술실에서 데리고 있었다면 무슨 곡절이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다 40여 년 전 지난 이야기이지만 죽은 아이 부모로서 갖는 솔직한 마음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아프면 병원에 찾아가 진료를 받는다.
정성으로 환자를 대하면서 마음으로 소통하는 대화를 통해서 진료해주는 의료진에게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바로 그러한 정신과 자세가 절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칼날을 쥐고 있는 전공의사들이야말로 틀림없이 가져야 할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