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 한 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
고향갑 지음 / 파람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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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 저의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을 읽고

‘쫌’‘씩’‘헛’‘똥’‘늘’‘툭’‘쉿’‘저’‘그’‘첫’‘숨’‘끝’‘컹’‘볕’‘인’‘옆’‘들’‘론’‘절’‘졸’ 등등등 한 글자 제목으로만 이루어진 총 69편의 글로 된 작품은 나에겐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 중에는‘꽃’‘산’‘책’‘강’‘흙’‘꿈’처럼 익숙함 속에 다가오는 글도 많았지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이면의 느낄 수 있는 각종 애틋하고, 명징하며, 저자만의 농밀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솔직히 일반적으로 한 글자 제목 사용은 보기 드문 경우다.

한 글자를 작품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박한 지식과 그에 관한 풍부한 실제 경험이 갖춰지지 않는 한 풀어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글자는 앞뒤 좌우로 무한정 이용 가능한 최고 글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한 글자 주제로 이와 같은 최고 멋진 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필력이라면 정말 대단한 저자임에 틀림이 없다.

저자는 대학을 중퇴하고 글을 쓰며 노동현장을 전전했다.

조선소와 그릇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으며, 노동야학에 참여하며 ‘삶의 시울 문학’에서 습작했다.

민예총이 설립되고 전남지회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9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었다.

이후, 오래도록 글 쓰는 일을 찾아 ‘글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

역시 저자의 그 간의 살아온 생생한 삶의 이력들이 작품들의 글에 힘을 실어준다.

짙은 서정성과 주변을 향한 따뜻한 시선, 무엇보다 빼어난 문장이 빛을 발하는 산문집이다.

경기신문에 ‘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라는 타이틀로 연재 중인 글과 미발표 글을 가려 뽑아 작품집으로 만들었다.

저자는 연극과 뮤지컬 시나리오를 주로 써 온 희곡작가이지만, 그보다도 우리 시대의 탁월한 에세이스트임을 이 책에 담긴 글들이 증명하고 있다.

이 책이 첫 산문집인 탓에 우리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운문과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혹적인 문장과 가슴의 밑바닥으로부터 스며오는 정서적 울림이 주목할 만한 작가의 출현을 예고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우리에게 한때 밑줄을 긋고 입으로 되뇌던 산문 읽기의 기쁨을 다시 누리게 한다.

가히 산문 미학이라 할 만하다.

소중한 한 글자에 주목해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가 되었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법한 것들을 관찰했고, 누군가는 무심한 시선으로 보았을 그것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온기를 더했다.

책머리에 저자는 무모한 결정이었다고 했지만, 속으로 깊이 영글지 못한 탓에 쉬 말을 뱉지 못하고 더듬거렸다고 했지만. 예순아홉 꼭지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 꼭지마다 글을 통해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어 줄 것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이 매우 시끄럽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한 글자 ‘쫌’이라는 제목의 글이 아주 교훈적이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쏜다.

밤나무 숲 어디쯤이다. 수십 번의 두드림이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멈추고 하지만 원하는 결과물을 얻었을까?

하면서 문득 사람의 일에 대비시킨다.

끝도 없이 두드리는 머릿속에서 얻으려는 것은 무얼까.

그렇게 쉼 없이 두드리다 보면 채워지긴 하는 걸까 하면서 정치판을 비판한다.

“정치하는 사람의 룰에는 나눔이 없다면서 대부분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그들의 말에는 국민이 없고 국민 위에 우뚝 서고픈 욕심만 가득하다.

그런 말, 말, 말들이 온라인 공간에도 넘쳐난다.

넘치는 꼬리 변기에 역류하는 그것 같다.

행사장 높은 곳에 앉아 사진 그만 찍고, 세상 밑바닥으로 내려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들으시라. 그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 비로소 그 사람들과 함께 활짝 웃는 사진을 찍으시라.

그것이 정치하는 사람의 밥값이니.

이제부터라도 제발.

쫌!”(232-233pp)

얼마나 통쾌한 표현인가?

반드시 정치하는 사람은 명심해야만 한다.

바로 이런 당당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저자만의 그간의 쉽지 않은 인고의 과정을 통해 숙련시킨 체험에서 나온 울림을 주는 멋진 글을 만날 수 있는 고마운 산문집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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