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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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장드르Le Gendre가 누구인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미셸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1강 각주 16번에 나타난다. 다르장송 후작과 튀르고의 텍스트에 등장하는 그는 자유방임laisser-faire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도 사사키 아타루가 논문을 쓴 르 장드르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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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vernment of Life: Foucault, Biopolitics, and Neoliberalism (Paperback)
Vanessa Lemm / Fordham Univ Pr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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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서문이 진짜 잘 쓰였다. 통치성과 생명정치에 대해 단순히 영미권의 통치성 연구의 견해만을 다루지도 않고, 유럽의 견해도 균형있게 다룬다. 이 견해들의 공통점은 규범적 질서, nomos이다. 초반에 읽지도 않고 별 기대 안한 게 미안하다. 생명정치 관련하여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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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대우학술총서 신간 - 과학/기술(번역) 598
조르주 깡귀엠 지음, 여인석 옮김 / 아카넷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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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주의를 한 번이라도 접한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견지할 것이다. <독일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실제 사물에 대한 상, 이미지가 거꾸로 맺히는 것처럼 현실의 실제 관계를 왜곡하여 표상하는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사물과 인식의 관계의 역전"(42)을 일컬을 때 이 개념을 사용했다.<자본>에서 실제 노동자가 생산품에 자신의 노동을 통해 가치를 부여한 것을, 화폐는 마치 그 가치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처럼 마술같은 효과를 내세움으로써 현실을 왜곡한다고 마르크스가 말한 것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실제로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이데올로그들이 만들어 낸 용어이다. 이데올로기는 "관념의 생성에 관한 과학"이다. 오히려 관념들의 연합을 연구하고 실증적으로 다룸으로써 당시 신학이나 형이상학에 반하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보이기도 했다.(42)

 여기서 말하는 이데올로기가 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만을 띄는 것은 아니다. 캉길렘은 자신이 미셸 푸코와 루이 알튀세르 이론에서 영향을 받아서 과학적 이데올로기 개념을 도입한다고 말한다. 특히 알튀세르에게 이데올로기는 현실과는 다른 상상적 인식에 관한 것이며 마르크스와 동일한 궤를 이루는 용어이다. 하지만 캉길렘이 말하는 이데올로기는 "과학성을 성립할 수 있는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조건"(46)이다. 한마디로 과학적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빌려온 과학성의 기준을 넘어서서 대상에 적용되는 설명 체계"(53)이다.

 캉길렘은 과학철학과 과학사를 연구한 의사이다. 먼저 철학을 공부한 후 다시 의학박사를 받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며, 물리학과 화학에 기반을 두어 과학철학을 연구한 가스통 바슐라르와 후에 광기, 성, 감옥, 규율권력, 생명정치, 신자유주의, 통치성 개념을 연구한 철학자 미셸 푸코를 잇는 계보에 속한다. 이 계보는 역사적 인식론으로 불리며, 흔히 가정하는 연속적인 과학적 진보를 믿기 보다는 과학사는 불연속적으로 진행하며 각 과학적 영역에는 고유한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한다.

 특히 이 글에서 캉길렘이 개진하는 주장 하나는 생물학적 합리성을 다른 합리성을 가진 다른 영역에 확장시키는 것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개체는 다양한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유기체이며 유기체의 생명과 질서에 관한 은유에 빗대어, 사회에도 동일한 규칙과 합리성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 역시 과학성을 벗어난 담론이다. 또한 우리가 영구불변한 진리로 여기는 물리학의 합리성을 생물학의 영역에 적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캉길렘은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현상은 물리학에서는 마이너스 엔트로피의 양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차이가 없다고 말하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생명체는 정상적 기능을 할 수 없으며, 자가생식이 불가능하고, 생존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지적한다(158). 
 
 이 글에서 꼭 읽어봐야 할 부분은 제2부 3절 생명과학의 역사에서 정상성 문제이다. 생물학에서 왜 정상성 개념이 중요한지 짚어내며, 나온지 200년을 겨우 넘긴 새로운 학문의 과학성을 성립하는 과정의 역사를 다룬다.

 이 리뷰는 이 책의 가치를 단순히 어렵다고 폄하한 한 리뷰어의 글을 반박하고자 쓴다. 이 책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책은 아니고, 당대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하며 정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의 학술적 작업은 역사적 인식론의 계보에서 생물학과 의학의 역사에서 과학성이 어떻게 성립하는지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철학적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글이 어렵기만 하지는 않다. 전문서를 기준으로 한다면, 문체도 그렇고 번역자의 노고 덕분인지 꽤 깔끔하게 잘 읽힌다. 책도 본문만 친다면 160쪽 내외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철학적 사유는 많아도 이에 관한 과학사적 사유, 과학철학적 관점은 대중적으로 접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특히 질병이란 무엇인지, 건강이란 무엇인지,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사유가 궁금하다면 난 캉길렘의 저서를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미 과학철학이 널리 알려진 와중에, 생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세운 캉길렘의 관점은 단순히 의학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관한 새로운 앎을 열어줄 것이다. 특히 정상과 병리를 규정하는 것에 관한 캉길렘의 박사학위 논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은 그의 대표 저작이자 우리에게 정상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되묻게 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캉길렘을 68 혁명 세대의 철학, 부르디외나 자신의 철학, 라캉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캉길렘의 사유를 이해해야 한다고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영어판 서문(1978)에서 주장한다. 생명체에게서 오류의 역할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러한 생명체인 주체가 과연 불변하는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옳은건지 묻게했기 때문이다. 푸코의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물리학과 화학에서의 과학적 엄밀성이 지배하는 것 같지 않은 생물학과 의학의 문제를 탐구한 캉길렘의 글이 더 많이 읽히기를 바라며 도서관에서라도 많이 대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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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가 가까워지니 당연하게 서두르게 된다. 성의 역사 1권 5장 죽음의 권리와 생명에 대한 권력을 읽는 중이다.

1976년 발간된 <성의 역사> 1권에서 생명권력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게 된다. 또한 같은 해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인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도 마지막 강의 11강에서 생명권력을 언급한다.


 최원의 논문 <인종주의라는 쟁점>(?, 제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에서도 푸코가 인종주의라는 언급했다고 말한다. 인종주의라는 쟁점을 텍스트에서 추리기 위해서는 현재 번역본에 의지해서는 정확하게 집어내기는 힘들 것 같다.


번역본에서는 race를 민족이라 번역하고 있다. race를 인종이라 번역했으면 좋았겠다. 또한 148~149(불어판 180쪽)에서는 다음 구절이 등장한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합법적이다."


원문은 On tue legitimement ceux qui sont pour les aurtres une sorte de danger biologique.

다른 이들에게 생물학적 위험인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이게 된다.. 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크게 봐서는 의미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명에 대한 중시를 특징으로 하는 생명권력과 생물학의 관계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구절이라서 이런 번역은 아쉽다.(푸코가 지식-권력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호적이라는 주장을 한 것을 명심하면 말이다.)


 18세기 자본주의 발전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정확히 생명이 역사에서 정치 기술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게 되는 현상이었는데, 이 현상으로 내가 의미하는 바는 인간이라는 종의 생명에 고유한 현상이 지식과 권력의 영역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153)



 인종주의도 나한테나 내가 속한 인구의 집단에 생물학적 위험이 될 만한 이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한다는 점에서 위 문장이 생명권력이 인종주의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population도 인구, 민족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요새 관행으로는 인구로 번역한다.


생명권력이 생명정치를 포함하는 용어라는 걸 이차 문헌을 통해서만 봤는데 다시 보니 이 책에 나왔다. 전에도 읽었는데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생명권력은 17세기부터 두 극의 주요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첫째는 17세기 부터 규율권력을 통해 신체를 훈련시키고 능력을 증대하고 이 힘을 착취하는 규율권력, '인체의 해부-정치'이다. 둘째로 이보다 늦게 나타난 '인구의 생명-정치'는 종espece으로서의 신체, 생물학적 과정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신체, 즉 이 신체의 증식, 출생률과 사망률, 건강 수준, 수명과 더불어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조건을 중심으로 한다. 생명권력의 조직화는 신체의 규율과 인구의 조절이라는 두 극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권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에워싸는 것이다.


생명정치와 자유주의의 직접적 상관관계를 명시한 구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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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산 책인데 번역이 안된 부분이 분명한데 이걸 교환해줄지 모르겠다. 예전에 제본한 어느 책도 나중에서야 보니 페이지가 잘못되었다.

3쇄나 찍은 책인데 교정이 부실하다니
책은 좋은데...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지은이이고
양윤옥씨가 옮긴이인
웅진지식하우스에서 나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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