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사용법 - 텃밭부터 우쿨렐레까지 좌충우돌 DIY 도전기
마크 프라우언펠더 지음, 강수정 옮김, 소복이 그림 / 반비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일단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보다 '무엇을 사면 될까?'로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싶어서 기타가 갖고 싶으면 직접 만들기보다 어떤 기타를 사야하는지 고민한다. 이런 건 산업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길들여진 탓이지다. 하지만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필요한 물건 또는 '도구'를 만드는 능력은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 모두 다 원래부터 지니고 있다.


'내 손 사용법'이란 제목도 끌렸지만, 책을 자세히 보니 기타를 직접 만드는 것이 제일 궁금해져서 책을 골랐다. IT 버블 시기에 최고 호황을 누리던 약간 괴짜인 듯한 이 가족의 아빠는 버블 붕괴와 함께, 이러한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없을 위기감에, 그리고 보다 잘 살자라는 생각으로 DIY 실험의 목표를 정한다.


 한 이국적인 섬에서 태초의 열정을 지닌 듯한 멋진 인생을 사는 것은 무참한 패배로 끝난다. 아직 문명의 이기를 벗지 못하고 어색한 걸음으로 걷는 아이처럼 저자는 순진했던 것 같다.그 뒤로 극렬하게 외치는 혁명가보다는 놀이를 하듯 즐기면서 자신의 삶을 조금씩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삶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삶인 것 같다.


 내 손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생태적 삶을 묵묵히 따르는 수도자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타를 만드는 재미와 숟가락을 며칠 동안 만드는 재미, 에스프레소 머신을 직접 개조하고 맛잇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것은 오히려 더 좋은 스펙의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나만의 것이 담긴 물건, 나의 확장된 새로운 세계'를 호기심 있게 즐기는 삶의 한 방법이다.


 또한 저자가 한 것 처럼, 닭똥을 처리할 방법을 고심하던 중에 그의 친구 켈리 코인이 알려준 '깔짚 깊이 깔기'로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노스이스턴대학 기술프로그램 팀장인 존 비티가 만든 자동 커튼 장치(전류가 통하면 모터가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는)를 이용하여 자동 닭장문 만들기, 광속 측정 장치로 빛의 속도나 지구의 크기, 지구에서 달의 거리, 중력 가속도 구하기를 알아내는 엄청난 만족감을 갖는 내가 꿈꾸던 과학자의 삶을 직접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도 기쁘다. 


밈스의 전자공학 키트나 마이크로 컨트롤러를 이용해 천연 당콩버터 병을 하루에 한 번씩 뒤집어 재료가 골고루 섞이도록 하는 장치를 위한 프로그램 짜기 등 새로운 도구를 내 스스로 과학을 즐기는 방법을 통해 내 삶도 조금씩 하고 싶은 대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학문이라는 이름의 과학은 너무 앞섰지만 우리 자신이 그만큼 진보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다행히도 이러한 스스로 즐기는 과학, 아마추어 과학을 이미 맛본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자동으로 울리는 알람이나, 귀찮은 것을 조금 해결할 수 있는 기계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것도 괴짜 과학자가 아닌 우리가 직접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손을 사용하는 것은 전문가적 자질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분업이 가져다 준 엄청난 생산성을 이미 맛보고 있다. 조금은 어색하고 서툴더라도 해냈다는 자신감과 내 인생의 즐거움을 아이폰이나 남이 만들어준 기기로 내 삶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재미를 창출해내는 본연의 삶, 혹은 우리가 알지 못햇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 마크 프라우언펠더의 진지하지 않은 경쾌한 목소리를 따라가는 일을 나도 하려고 한다. 


닭과 꿀벌들과 함께 자연과 만나고, 문명이 끝낸 듯한 에스프레소 머신의 기능을 내가 조금 손댈 수 있다면, 내가 듣고 싶은 기타의 소리를 내가 직접 만든 기타로 냄으로써 오로지 나만의 것이 된 듯한 음악을 가질 수 있다면 불편쯤이야 조금 눈감아줄 만 하다. 또한 나 혼자 고생하는 것보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걷는 새로운 사람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기타를 직접 만드는 것,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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