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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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건축사를 바라보면 참 뚜렷하게 말할만한 양식사가 없음은 나도 동감한다. 서양의 건축 하다못해 중국이나 일본의 특징적인 건축양식에 비해 우리의 건축은 자연에 숨어있는 듯, 드러나면서 드러나지 않는다. 치기어린 시절에는 이런 우리 나라의 소극적 건축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배우다 보면 양식사의 부족은 당대 철학이 투영된 건축이기 때문에 뚜렷한 양식 보다는 자유로운 건축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이해하려면 매우 많은 노력과 또 감상할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직 건축가이자 시인인 저자가 이야기하는 옛집은 이래서 귀기울일 수 밖에 없다. 심오한 건축세계를 이해하려면 건축가의 공간을 보는 눈이 필요하고 또한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 역시 필요하다. 그래서 다른 일반 건축책과는 달리 이 책은 이야기가 많다. 건축가의 친절한 도면이나 스케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다못해 저자가 들려주는 이 옛집들의 이야기를 할 때에 건축을 이해할 떄 필요한 평면도마저

과감하게 없어진 듯 하다. 그래서 책을 보기 위해서는 도면보다는 내 머리 속에서 다시 공간을 구성해야만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위대한 학자들의 옛집이 평면도 없이 글만으로 상상할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들이 성리학을 공부한 학자였기 때문이고  그 건축 기반이 우리의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건축이 각각 달라 보이는 것도 성리학에 기반을 둔 그들의 사상이 자연에 살포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평면도는 문제가 아니다.


 흔히 기술을 천시했을 법한 당시 조선시대의 문인들이 중앙 정치무대에서 벗어나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유배를 간 후에 지은 그들의 집은 고통을 잊기 위해 하지만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지어졌다. 자유로운 건축은 그 곳에서 나온다. 단순히 학문의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부조리한 정치사나 권력의 암투의 피해자들은 학문만이 아닌 건축가로 변해서 자신의 또다른 세상을 지었다. 


 이런 건축이 지금은 가능할까? 요즈음 만약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우리는 조선시대의 학자들의 철학이 담긴 옛집보다는 현란한 파사드와 구조에 압도당할 듯 하다. 아마도 그들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건축물을 만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우리는 조선시대 학자들에 대해 행동이 부족한 사람들이라 평가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사상을 건축물로도 훌륭히 풀어낼 수 있는 학자이자 또한 기본적인 건축가들이었다. 이상세계를 현실세계에 구현하려 했던 예술가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런 철학이 담긴 그들의 건축은 단순히 집만을 보아서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그 집이 위치한 자연을 보아야 하며 마을의 풍수지리, 산, 강, 개울을 모두 보아야만 이해가 된다. 자연을 집으로, 집 또한 자연으로 이해하는 그들의 놀라운 공간의 전이는 상상력이 부족한 양식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건축물의 양식을 뛰어넘는 위대한 생각의 구체적인 대응물이다.


 회재 이언적이 위치한 마을은 勿를 닮았으며 후대에 이를 관통하는 도로가 놓일 때에도 이 글자가 血자로 변한다 하여 반대하였다고 한다. 꽤 재미있는 상상이다. 풍수지리라는 도가의 사상이지만 그렇게 성리학에 집중했던 학자들이 수용한 것도 신기하고, 단순한 한자의 형태마저 마을의 공간의 기본적인 배치도, 설계라고 생각하면 꽤 현대적이고 지금 기준에서 급진적이다.


 또한 이 책에 나온 옛집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집들은 자연과 근접하여 아니면 자연의 일부로 위치하여 지어졌다. 갯물 위에 물소리를 담을 수 있는 정자, 또는 그들의 수양처는 그 장소, 그 자연이 아니면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물 자체로 그 집을 이해하려는 기존의 생각을 깨고 자연이, 주위의 풍경이 어떻게 그 집에 놀러왔을 것인지를 상상해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책은 침착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조용한 해설서이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당시 성리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성리학자들의 집이기도 하지만 당시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집주인들의 사상이 어떻게 공간에 반영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한국사 공부에 소홀했던 나를 탓하면서 다시 책을 펼쳐보아야 한다. 책을 읽기전에 이러한 단순한 준비운동 정도는 필요하다. 또한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마음에 드는 어떤 집이라도 직접 방문에 보기를 권한다.


그들의 집에 가면 자연과 벗하는 그들의 집을 직접 볼 수 있고 또한 주인은 세상을 떠나가고 건물을 낡았어도 아직도 생명력이 가득한 아름다운 자연이 보여주는 과거의 주인들의 모습 또한 상상해 볼 수 있다.  그 정자에 직접 올라가 눈을 감고 물소리를 들으며 괴로움을 잊고 꿋꿋하게 선비의 기개를 지키려 했던 옛집의 건축가들이 되어보기를 바란다. 그들의 옛집을 방문해서 각자가 담아올 수 있는 게 사진이건 공간을 채우는 자연의 소리 또는 스케치든지 책을 뛰어넘는 사상을 구현하는 철학이 담긴 옛집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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