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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두 번 떠난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어느 여성 작가보다 더 달콤하고 아릿하게 남녀의 관계를 그려냈던 요시다 슈이치. 오랜만에 슈이치표 사랑소설을 만나게 됐다. 그런데 잠깐. 남녀의 사랑 이야기란 점에서는 분명 연애소설이 맞는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다. 밝고 사랑스러운 감정보다는 쓸쓸하고 우중충한 분위기가 소설을 감싼다. 신작 <여자는 두 번 떠난다>에서 요시다 슈이치는 어떤 사랑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총 11편의 단편중 한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 화자가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성공과는 조금 거리가 먼, 썩 즐거운 인생들은 아닌 것 같이 보인다. 그저 시간 때우는 학생, 적당히 일하는 회사원. 길거리를 돌아다니다보면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인생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한 명씩의 그녀들이 나타난다.
예쁜 사랑은 완성될 수 있을까? 아니다. 남과 여가 만났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다. 여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사라지고, 무언가를 했기에 사라지기도 한다. 남은 남자들의 고백은, 바보같고 처량맞다.
사람 사이 관계라는 게 행복만 존재하지 않듯 남녀의 관계도 어긋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사랑들을 단순히 어긋난 사랑이라고 보기에 남자들의 행동은 '찌질'하다.
여자의 애정을 시험하기 위해 그녀를 홀로두는 남자(장대비 속의 여자), 협박 아닌 협박으로 하룻밤을 보내곤 결국 자기도 똑같은 인간임을 고백하는 남자(공중전화의 여자), 스스로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가버린 여자의 잔영만 갖게 된 남자(죽이고 싶은 여자), 애꿎은 망상으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남자(꿈속의 여자), 괜시리 나쁜 남자 흉내한번 내보는 남자(평일에 쉬는 여자), 용기없이 피해버린 못난 남자(울지 않는 여자), 솔직하지도 약속을 지키지도 못했던 남자(CF의 여자).
세상 살다가 이런 남자들만 안 만났으면 좋겠다 싶은 총 집합이다. 저자 본인도 남자면서 이렇게까지 속속들이 파헤쳐 긁어내다니 놀라울뿐이다. 그렇다고 소설 속 여자들은 번듯하고 멋진가 하면 그렇진 않다. 그럼에도 책 전체를 둘러싸는 분노의 화살은 남자를 향한다. 왜 이렇게 못난 짓만 하냐면서.
다 읽고 난 후에는 왠지 비 온 후 마시는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의 느낌이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앞으로는 나아질 수 있으리란 감싸안는 마음 덕분일까. 마지막 단편 <연애잡지를 읽는 여자>에서 손을 뻗어 만진 그녀의 손이 따스했듯이 말이다.
남자에 대한 냉소가 눈에 띈 단편이었지만 역시 관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가가고 다가옴의 정도를 알 수 없는 힘겨운 시간들, 그러나 그렇기에 그 열매인 사랑이 더 아름다운 건 아닐까. 오늘도 그 쉽지않은 시간과 고군분투중이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화이팅을 외치며 요시다슈이치의 책을 조심스레 덮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