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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의 과부 2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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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운명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오지 않을까?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순간일수도 있고, 잊지못할 친구일수도, 스승일 수도 있다. 누가 되었건, 어떤 장소가 되었건, 무엇이건간에 죽을때까지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간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때로 그 시간이 불행을 가져온다해도.

 

페이지터너(page turner)라는 말을 들으며 천재적인 스토리텔러로 인정받는 미국의 소설가 존 어빙. 그가 새로운 소설로 우리를 찾아왔다. <일년동안의 과부>(2008.사피엔스)에서 그는 거침없는 이야기를 쏟아낸다. 하나의 사건에 운명처럼 매여버린 사람들. 시간이 흘러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 속에서 그들은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지만, 얽히고 설킨 과거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소설의 말미, 운명은 아름답게 맺어질까?

 

소설에는 여러 명의 인물들이 나온다. 잘 팔리는 동화작가이면서 여자 꼬시는 게 일인 남자 테드, 그의 부인이자 죽은 아들들에 매여사는 매리언, 그들의 어린 딸 루스, 매리언의 어린 애인이 된 에디(시간이 흘러도 연상만을 쫓게되는), 루스의 둘도없는 친구 해나, 루스에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선사해준, 그러나 그녀를 일년동안의 과부로 만든 앨런, 그리고 과부생활을 청산케해준 암스테르담의 경찰 하리.

 

이야기는 현재로부터 사십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아들을 잃고 딸을 낳은 테드와 매리언 부부, 그들 사이의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 고용된 에디는 매리언과 야릇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어느 날 매리언은 딸과 에디, 남편을 버리고 증발해버린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작가가 된 루스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판촉행사를 하고, 그 가운데 어린 시절의 인연이었던 에디를 다시 만나며 엄마의 모습을 쫓는다. 그리고 새로운 소설 '나의 마지막 나쁜 남자친구'와 암스테르담 유곽에서의 사건. 이야기는 어느 한 지점 버릴 것 없이 엮이고 엮여 독자의 눈을 붙잡는다.

 

그들의 인연은 우연인 듯 빠져나올 수 없는 매듭처럼 묶여있다. 긴 삶 속에서 스쳐 지나가듯 잊혀졌던 사람이 불쑥 나타나곤 하고, 어떤 인연도 없을 듯한 사람과 기분 좋은, 때론 험악한 인연이 되어 얼굴을 마주치기도 한다. 과부. 평생을 과부로 살아가겠다고 호언장담하던 한 노인과 루스와의 만남도 그러했다. 알지도 못하며 과부의 삶을 그렸다고 공격하는 노부인 앞에 움찔하던 루스는 이후 과부로서 다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노부인과 마주치는데. 삶의 아이러니란 이렇게 문득 새삼스레 찾아온다.

 

그러나 이 소설의 백미는 무엇보다 그 긴 시간을 인내한 마지막에 있다. 남은 비참한 시간동안의 과부도, 남편을 잃고 일년 동안의 과부였던 루스도, 사십여년을 기다려온 에디도, 오랜 시간 죽은 자식들에 매여있던 매리언도. 그들 모두에게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다. 인고의 시간을 참아낸 자들에게 찾아온 마지막 행복.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외에 더 큰 행복이 존재할까?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 고통스럽고도 아름다운 순간의 백미를 끝내주게 표현한 작가의 작품을 만났다. 이 겨울, 옆구리가 시리다면 이 책으로도 잠시나마 당신의 쌀쌀함을 막아줄 수 있을지도. 세상의 모든 이들이여, 기다림을 슬퍼하되, 괴로워하지 말길. 그 끝에는 아름다운 만남이 당신을 기다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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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Pourquoi Jimmy Fantasy 3
지미 글.그림, 원지명 옮김 / 샘터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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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지는 글에서는 수도 없이 물음표와 질문과 왜? 가 등장할 것이다. 왜? 그렇게 많은 물음표가 따라다녀야만 하는지, 궁금하다면 따라오길.

 

언제부터였을까. 어른이 된 나는 더 이상 "왜?" 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그들의 입에서는 "왜?" 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왜? 시계를 거꾸로 돌려 어린시절로 돌아가볼까? 지금은 침묵을 지키는 수많은 어른들도 한 때는 입에 물고 다녔을지 모른다. 이 짤막한 한 단어 '왜?'를.

 

일단 시작했으니 "왜?"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고갈까? 이 짤막한 단어만큼 도발적인 단어가 또 있을까?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상황을 묻고, 그럴수 밖에 없던 이유를 묻는다. 때론 명확한 답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많은 양의 왜? 에는 답이 없을 수도 있다. 아니 너무나 다양한 답이 있을 수도 있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가령 이런 것.

왜 사랑은 사람의 이성을 잃게 하고, 몽롱하게 하고, 유치하게 만들고, 달콤한 행복을 느끼게도, 고독하게도 하며, 바보로 만들기도 하며, 마음을 무겁게... ...할까? 사랑이니까! (18p)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사랑이라는 것에 대부분 사람들은 동의하겠지만, 과연 그게 답일까? 사랑을 다른 말로 다시 풀어쓸수는 없을까?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이길래? 왜 사랑이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건데? 왜? 왜? 왜?

왜라는 질문은 어떻게로, 무엇으로 바뀌고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니 이보다 도발적이고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우리는 "왜?" 라는 질문 하나로도 긴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알았고, 끊임없이 어른들을 귀찮게 했다. 그런데 어느 새 그랬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자신들의 과거는 싸그리 잊어버린 듯 하다. "왜?" 라는 질문과 함께.

 

궁금한 것은 점점 사라져가고, 어떤 일에서든 궁금하기보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간다. 사회 또한 원한다. 질문하기보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그러나 잠깐! 세상은 다시금 변하고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물어보는 사람을 좋아하는 쪽으로. 시대가 원하는 바뀐 인간상은 창조적 인물. 그 중심에 질문하기, 바로 "왜?" 라는 궁금증이 보물처럼 숨겨져있다.

 

그러니 이제는 자기 속의 "왜?" 를 꺼내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자기를 솔직히 들여다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설사 자신이 꼭꼭 숨겨두고 싶더라도. 허울 좋은 겉모습과 달리 우리는 실제로 세상의 아주 조금만을 알고 있는건 아닐까? 그러면서도 나는 잘났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라고 자신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수 있다. 괜히 질문했다 쓰잘데기 없는 데 관심 끄라고 타박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 좀 어때? 이 세상은 궁금한 거 투성이고, 일년 365일 물어봐도 다 못 물어볼텐데. 그러니 지금이라도 아끼지 말고 해보는건 어떨까? 지금 당장. 제일 궁금했던 것부터.

 

왜 아이는 어른이 되는걸까? 어른은 다시 아이들의 세계로 갈 수 없는 것일까?

자, 이젠 당신의 질문타임. 그 전에 내 질문에 하나의 대답을 추가해줘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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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그레이프
피터 헤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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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자신의 청춘에 회의를 느껴본적이 있나요? 몇 년 전만 해도 나와 같은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앞으로 훌쩍 나아가고, 나만 혼자 이 곳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들 때의 기분을 아나요? 당장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바뀌길 바래본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나와 함께 만나러가요. 길버트 그레이프를.

 

길버트 그레이프. 그레이프가(家)의 둘째 아들이자, 고등학교 졸업 후 동네 식품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별 특징없는 청년이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환경만은 평범하지 않다. 너무 비대해서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은 엄마와, 겉모습은 18세지만 속은 어린애인 모자란 동생 어니, 그저 착한 누나 에이미 누나, 겉멋 잔뜩 든 동생 엘렌, 집 떠나 일이 있을때나 찾아오는 누나 제니스와 형 래리까지. 그 구성원만 봐도 한숨이 푹 나오는데,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면 휴. 허구헌 날 가족이 싹 바뀌면 좋겠다고 푸념하는 길버트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다.

 

그러나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길버트는 자신이 할 일을 한다. 손재주 좋은 친구를 불러다 집을 수리하고, 온갖 말썽을 부리고 다니는 동생 어니의 뒤치닥꺼리도 도맡는다. 한 마디로 착한 동생, 착한 형. 돈을 많이 벌어오지 않아도, 유명인이 되어 TV에 나오지 않아도 그레이프 집에 없으면 안될 존재, 길버트.

 

소설은 그런 길버트의 일상을 담담히 따라간다. 이웃 연상녀와의 불륜장면도, 신비로운 이웃 소녀와의 만남도, 일하는 가게에서의 에피소드들도, 우상이 된 동창에 대한 질투어린 모습도. 무엇보다 미워하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가족들과의 이야기들까지.

 

요즘 내 감정이 무뎌진건지, 책 뒤의 온갖 찬사어린 말에도 불구하고 책이 와락 내 품에 와닿진 않았다. 그러나 장면 장면이 마치 영화를 보듯 화면으로 흐르는 착각이 문득 들곤 했고, 그 안에서 난 어느 새 오갈 곳 없이 방황하는 청춘 길버트가 되어있었다. 아, 이 책은 그렇게 잔잔히 나를 한갓진 마을 엔도라로 데려갔다.

 

가족의 사랑이니 뭐니 그런 걸 솔직히 긴긴 책을 읽는 내내는 느끼지 못했다. 툭하면 싸우고, 비꼬고, 화합이라곤 안되보이는, 그나마 한데 붙어사는 게 다행처럼 보이는 가족의 모습에서 그냥 무덤덤히 현실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 바로 그 마지막 장면은 400여쪽이 넘는 이야기를 한 편의 고전으로 탈바꿈시켰다.

 

지난 것을 깨끗이 보냄으로써 하나의 모습이 되는 형제자매들. 분명 누군가의 눈에는 매정하거나 생각없는 행동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렇게 함으로써 이 소설은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다. 소설 속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고 귀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사랑이란? 때로 버리고 비워내야 다시 채워넣을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비록 그들의 오랜 삶의 터전은 잿가루로 공기 중에 떠돌겠지만, 그 위에서 스물넷의 길버트는, 또 다른 가족들은 자신의 앞길을 향할 수 있지 않을까. 길버트 그레이프! 너의 앞날에 행운을! 함께할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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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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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눈물이 나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300여페이지의 책을 읽는 내내 내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맺히지 않았다. 내 감수성이 이렇게 메말랐던가 라며 책을 덮고 모니터 앞에 앉아 첫 글자를 쓰려고 하는데 눈물이 흘렀다. 한 방울, 두 방울, 주르륵. 난, 왜 울고 있는걸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다. 분명 엄마 또한 어린 시절, 소녀 시절을 지나 밝게 피어오른 20대를 보냈을텐데, 많은 사람들에게 엄마란 그저 엄마일뿐이다. 새삼 나 또한 나의 엄마가 아닌 엄마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언젠가 여자를 엄마로, 아내로만 봤던 전경린의 책을 보고 이러면 안된다고 분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닥해>도 주제를 따지자면 다르지 않을 듯 싶었다. 그러나 느낌만은 전혀 달랐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아들 둘, 딸 둘을 키워 서울에 안착시킨 부모가 생일을 맞아 서울로 올라온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서울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는 데 놓쳐버린 엄마. 그녀를 찾기 위해 아들들과 딸들은 서울 시내를, 어느 새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본다. 문득 치고 올라오는 과거의 이야기와 감정들 속에서 놓쳐버린 엄마의 모습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신경숙은 엄마를 내몬 자식들을, 남편들을 탓하지 않는다. 물론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 고통스러워하고, 반성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엄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고 우리에게 넌지시 전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책에서 그렇게 고생하고, 혼자 아프던 엄마는 불쌍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녀를 내버려둔 다른 가족들보다 행복해보이기까지 한다.

 

아직 엄마가 아닌 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도 어린 나는. 그 고생을 하면서도 싫은 소리 한 번 안하고 미소 지으며 살아온 '엄마'로서의 박소녀를 이해하긴 힘들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그 마음만은 부러웠다. 비록 자식들에게 쓴 소리도 듣고 남편한테 살가운 정 한 번 못 받았어도 왠지 그녀는 다 알고 있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엄마의 마음이란 게 이런걸까.

 

누군가 '소설은 참 어렵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난, 소설은 이야기인데 어렵긴 뭐가 어렵나며 타박했었는데. 문득 그 말이 따갑도록 나를 파고든다. 어려운 말 한 마디 없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소설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읽어내려갔지만 결국 다 읽고 나서도 한 마디 제대로 감정 표현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엄마' 라는 단어가 나를 목매이게 한 걸까. 성질 나면 전화를 끊어버리고, 마음과 달리 차갑게 내뱉던 첫째딸의 모습이 나와 오버랩되어 불편하기라도 했을까. 마지막 피에타 상을 보고 나와서야 차마 하지 못한 한 마디를 입술 사이로 내뱉던 딸의 모습이 내가 되지 않기를, 오늘이라도 살갑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바래본다. 그러나 또 다시 엄마의 얼굴을 보면 어색함에 툭툭거릴 내 모습이 그려져 창피해지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는 나에게 '엄마'라는 걸.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기에 난 아직은 조금 더 커야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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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1
츠츠미 미카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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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터졌던 국제 금융문제로 자국의 심각한 문제를 온처하에 드러냈던 미국. 미국의 문제투성이 속사정을 속시원히 긁어내 보여주는 책이 나왔다. 이를 분석한 건 미국인이 아닌 일본인 저널리스트 츠츠미 미카다. 과연 그녀가 바라본 아메리카란 나라의 한 꺼풀 벗겨진 뒷 모습은 어디까지 썩어있을까. 상상했던 이상의 문제들이 그녀의 입과 손을 통해 밝혀진다.

 

이야기는 총 5장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빈곤으로 인한 비만인구, 민영화, 자유화가 낳은 난민들, 아팠단 이유만으로 빈곤층이 된 사람들, 어쩔 수 없이 군으로 고개를 돌리는 젊은이들, 민영화된 전쟁으로 내몰리는 근로빈곤층. 우리가 아는 잘 먹고 잘 사는 미국인은 어디로 가고 이런 모습들로 가득찬 아메리카가 남은 것일까.

 

과거, 비만은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잘 먹으니 살이 찌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요로워진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잘 사는 사람들은 잘 먹으면서도 세련되게 운동까지 하면서 적당한 몸을 유지하고, 오히려 돈이 없어 매일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워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비만에 걸린다. 먹을 게 없어 햄버거라도 먹어야 사는 사람들. 배가 고프고 영양 균형도 맞지 않음에도 비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안쓰럽다 못해 화가 난다.

 

불과 몇 달 전 한국에도 몰아쳤던 민영화 바람, 그 처참한 결과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다루는 부서, 병원들이 민영화되면서 사람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안전조차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의 겉멋들이기 정책에 살 곳조차 잃어버렸다. 그 뿐인가, 몸 한 번 잘못 아팠다가 파산하는 사람들. 문득 몇 달 전 한국을 휩쓴 의료보험 민영화가 이루어졌다면 이란 생각이 떠오르자 끔찍함에 몸서리쳐진다. 그야말로 내 몸 맘대로 아프지도 못하는 세상인 것이다. 국민을 위한 국가란 이미지는 지금의 미국에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고학력 시대,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것은 비단 미국의 일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갈 곳 없이 빚더미에 앉은 젊은이들의 선택은 전쟁이다. 하고 싶은 공부조차 하지 못하고, 외지로 내몰리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나라 어디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아야 하는걸까.

 

몇 프로의 부유층을 위해 착취당하는 대다수의 빈곤층은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그 뿐이 아니다. 자유주의를 부르짖으며 단행한 자유화, 민영화로 인해 빈곤층으로 전락한 중산층의 모습은 더 이상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국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화살은 미국을 따르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을 향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읽는 내내 불편했다. 저 이야기가 곧 우리 나라, 우리 가족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될 것만 같아서. 겉포장만 잘 된 나라 미국, 그리고 그들을 따라가는 한국의 모습에 문득 몇 십년, 아미 몇 년 후의 미래가 무서워진다.

 

물론 이 책에 나온 이야기들만이 진실은 아닐 것이고, 여기서 다뤄지지 않은 좋은 점도 있을 것임은 안다. 그러나 분명히 지금 상태에 머무리는 것도, 이대로 나아가는 것도 옳지 않다. 단순히 국가 탓만을 할 것이 아니라, 보다 똑똑한 국민으로서의 개개인 의식의 변화 또한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조금 충격적이더라도 의식을 깨울 수 있는 이런 책을 종종 만나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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