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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주의 : 다소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책 읽기를 앞두신 분들은... 다시 한번 주의 요망.
이 답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Aw:
주의. 변경된 이메일 주소입니다. 보내신 주소에서 수신자가 메일을 불러올 수 없습니다. 전달된 새 이메일들은 자동으로 삭제됩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시스템 관리자에게 문의하십시오.' (p.382. <새벽세시, 바람이 부나요?>)
새벽 세시. 밤잠을 설치게 했던 달콤한 연인들, 에미와 레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거다.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만남이 무산된 후 에미는 해명 메일을 쓴다. 그리고 10초 후. 바로 이 답신이 왔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마지막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 이야기엔 분명 다음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베일에 가려졌던 그 뒷 이야기가 공개된다. 넘울거리는 파도를 타고 사라졌던 레오가 돌아왔다. 다시 시작된 에미와 레오의 이메일 사랑을 <일곱번째 파도>(문학동네.2009)에서 만날 수 있다.
아직 새벽 세시를 뜬눈으로 맞이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잠깐의 설명. 우연히 벌어진 이메일 오전송으로 이메일 친구가 된 에미(가정 있는 여인)와 레오(여자친구 있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단순히 친구에서 시작했으나 점점 애틋한 감정이 섞이기 시작한다. 결국 그들은 만남을 약속하나, 에미는 지키지 않는다. 떠나버린 레오. 바로 그 시점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다시 돌아온 레오와 에미는 더 이상 자신들의 감정을 속이지 않는다. 그리고 만남. 이어지는 메일, 만남. 그들의 사랑은 점점 솔직해지고 거침없어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삶이 있었다. 에미에게는 가정이, 레오에게는 여자친구가. '삶과 사랑, 둘 다 동시에 하고 싶어요. 하나 없는 다른 하나는 싫어요.'(p.79) 라는 레오. 결국 에미와 레오의 사랑은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해진다. 메일 속의 환상이 현실이 되면서 그들 주위로 다가오는 주변 인물들. 과연 그들은 애타는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전편이 사랑이 막 시작될 때의 두근거림과 마법으로 가득차있다면, 후속작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사랑의 농도는 진해졌으며, 갈등은 고조된다. 사귀기 전 혹은 2~3개월 된 풋풋한 연인과 1년쯤 된 농익은 연인의 차이랄까. <일곱번째 파도> 속의 표현들은 전보다 강렬하다. 톡톡 튀는 재치있는 감각이 사라진 자리에는 에로틱한 사랑의 고백이 자리를 잡았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장 연인에게 달려가 해주고 싶을만큼 사랑스러운 말이 가득하다.
그래서 잠깐. 우리의 사랑이 좀 정체기인가봐요, 라며 고민하는 커플. 우린 진한 사랑의 표현이 필요해요, 라며 안달난 커플. 그 외 등등의 사랑중인 커플. 더해 사랑에 빠진 여인네들과 작업중인 남정네들에게 권한다. 그대로 갖다 써도 모자람 없는 수많은 글귀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에미와 레오는 첫 번째 파도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둘, 셋(!), 넷, 다섯, 여섯... 에미는 남편과 간 여행지에서 보낸 메일에서 '일곱번째 파도'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일곱번째 파도는 거리낌 없이, 천진하게, 반란을 일으키듯, 모든 것을 벗어내고 새로 만들어놓아요. 일곱번째 파도 사전에 '예전'이란 없어요. '지금'만 있을 뿐.' (p.256) 예측할 수 없는 일곱번째 파도. 모든 걸 새로이 만들어내는 일곱번째 파도. 그것에 모든 걸 맡긴 사람만이 그 이후를 알 수 있는 일곱번째 파도. 살짝 귀뜸해주자면 에미와 레오는 폭풍 끝에 일곱번째 파도를 탄다. 그러면 그 후는? 직접 만나보시길. 그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두근반 세근반의 달콤함을 뺏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단숨에 읽어내려가고 싶지만 두 사람의 살떨리는 작살사랑표현에 허우적대느라. 그들이 달려가는 결말을 궁금해하느라 가슴이 콩닥콩닥 뛰느라. 절대 빨리 읽을 수 없었던 책. 외로운 사람이든, 사랑에 푹 빠진 사람이든, 어떤 사람이든 읽어도 좋다.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거다 촉촉하게.
읽고 나면 키스하고 싶어지는 책.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하면 .... N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