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
야콥 하인 지음, 배수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어제, 좋아하는 사람과 짧은 이별을 했다. 안녕, 잘 지내 따위의 말들과 함께. 그리고 다른 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밥을 먹고,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고, 강의도 들었다. 잠깐의 이별이었다. 몇 개월 후면 잠깐이나마 얼굴을 볼 수도 있는. 그런데도 마음이 휑했다. 그 때 나보다 길고 완벽한 이별을 만났다. 야콥 하인의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영림카디널.2007).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죽음 앞에서 써내려간 기록이다.

 

'어느 날 어머니가 우리에게 전화를 해서 저녁때 집에 좀 들르라고 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유는 어머니 병의 재발. 죽음과 맞닥뜨린 마지막 시간 앞에서 야콥 하인은 어머니와의 추억을 돌이켜본다.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둔 기억들을. 특별한건 없다. 어느 집에서나,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을 법한 이야기. 어머니를 떠올리는 건 엄청난 사건이 아닌, 소소한 삶의 에피소드들이다.

 

이별.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을 반기는 이가 있을까. 어떻게해서든 미루고, 거부하고 싶어지는 게 마땅하다. 그러다보니 이별을 주제로 삼은 책들은 슬프다. 눈물이 주룩주룩까지는 아니더라도 읽고 나면 짠해진다. 괜시리 마음이 저려와 애초부터 기피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 꽤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었지만 읽지 않고 미루던 이유가 그러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야콥이 이별을 받아들이고 겪어내는 과정은 담담하다. 책 어느 장면에서도 '마음 아프지? 눈물 좀 흘려봐. 슬프잖아.' 라며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슬그머니 웃음도 나오고, 모자의 부러운 모습에 시샘도 하게된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 얘기하듯 써내려간다. 심지어 나도 모르게 '아, 야콥 어머니 꼭 한 번 만나뵈고 싶다.'란 생각까지 했으니.  

 

그렇다고 이 책이 하염없이 즐겁기만하냐고 묻는다면 또 다른 얘기. 어느 새 눈엔 물방울이 어른어른. 야콥만의 이별 공식에는 어느새 그의 어머니대신 나의 이별 대상이 들어가 앉아있다. 그리고는 야콥과 꼭 같은 방식으로 이별을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이야 이렇게 한줄씩 풀어쓰고 있지만 읽는 순간에는 이 모든 게 자동적으로.

 

여기서 살짝 야콥식 상처 어루만지기 노하우를 공개해볼까? '어머니의 죽음을 알려온 소식은 다른 슬픔을 한꺼번에 집어삼켜 버리는 요란한 천둥번개가 아니라, 그런 슬픔들 곁에 또 하나의 슬픔의 모자이크를 가만히 더해 높은 것이었다.' (197) '그날, 나는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일터로 나갔다.' (197) '나는 서서히 깨달았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임을.' (212) 그리고 그는 계속 살아간다. '왜냐하면 나는 그래야 하므로. 삶이 언제까지나 예전과 똑같을 수만은 없는 일이니까.' (212) 

 

그렇다. 삶은 변화하고 우리도 언제나 똑같을 순 없다. 이 모든 건 삶의 과정. 야콥 하인은 그걸 이겨내는 방법을 현명하고 유쾌하게 일러준다. 2006 서울 젊은 작가들에 초청받은 야콥 하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한다. '시간은 비극을 유머로 만들었으나... 슬퍼도 아름답게... 그래야 문학이다.' 살아가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다. 슬퍼도 아름답게. 그렇게 기억하고 이렇게 살아가는거다.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이별, 아니 삶을 대처하는 바람직한 방법을 보여준 책. 책도 예쁘고. 가을의 첫머리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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