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라시압 이야기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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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에 대해. 지금 당신 앞에는 죽음이 서 있다. 작별 인사를 할 10분의 시간 후에 죽음을 따라가는 게 경우 1. 죽음과 내기를 해서 이기면 몇 십년의 생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게 경우 2. 물론 경우 2의 경우 내기에서 지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음을 따라가야 한다.

 

글쎄. 어떤 사람은 마지막 10분을 알차게 써서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내기를 할거란 생각이 든다. 50%의 확률이지만 이기면 몇 십년의 생을 더 살 수 있는. 그만큼 우리는 '산다'는 행위에 집착한다. 미지의 '죽음'은 공포 그 자체다. <에프라시압 이야기>(문학동네.2009)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 찾아오며 시작한다.

 

주인공은 우연히 건달과 죽음의 내기에 끼어들게 된 노인, 젯잘 데데. 죽음은 그에게 이야기 한 편당 수명 1시간이란 조건을 걸고 이야기 내기를 시작한다. 주제는 공포, 종교, 사랑에서 천국에 이른다. 서로의 얘기에 대한 평을 하며 또 다른 죽음의 빚을 받으러 다니는 젯잘 데데와 죽음.

 

이 소설의 묘미는 전체를 아우르는 스토리일 수도, 그들이 건네는 짧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묻는다면 액기스는 둘의 대화 속에 있다 대답할거다. 처음에 죽음은 자신의 의무만을 충실히 이행하는 가면 쓴 사내에 불과했다. 삶과 사람에 대해 시니컬한. 죽음은 인간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사실 아주 커다란 행복을 놓치고 있'다고. 사실 틀린 말은 아닐거다. 게다가 첫 질문에 내기라고 답한 사람들은 더욱.

 

그러나 젯잘 데데는 대답한다. 우리가 발딛는 곳은 그리 각박한 곳만은 아니라고. 결국 노인의 말에 발끈한 죽음은 묻는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천국에 있다는 건가?" 여기서 잠깐 멈춰보자. 당신은 뭐라 대답할까? 이 곳이 천국이라고? 아니, 대부분 이 곳은 천국이 아니라 대답할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젯잘 데데가 현명하긴 했나보다. 이렇게 명쾌한 답을 내어놓았으니. "어쩌면. 하지만 당신이 미소를 지었을 때만 이를 이해할 수 있을거요."

 

그랬다. 천국이란 별게 아니었다. 내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 이 상황이 아름다움을 깨닫고 미소지을 수 있을 정도의 힘. 그거면 충분한거였다. 그러고보면 내 마음이 허락한다면 있는 곳 어디든 천국이란 말인데.. 멋진 일이다.

 

이야기란 끝나게 마련이고, 죽음이 찾아왔으니 젯잘 데데도 죽어야한다. 그러나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존재인 아이들은 할애비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죽음은 노인의 손주들에게 (또!) 내기를 건다. 해가 지기 전에 자신을 웃게 해보라고. 결과는? 때로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인게 쓰기도 읽기도 좋은 법. 이 정도면 답이 되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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