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기독교
베리 칼렌 지음, 배덕만 옮김 / 대장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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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기독교

베리 칼렌 지음 배덕만 옮김


이 책은 먼저 신자들의 전통에 대한 간략한 역사를 말한다. 그리고 이 전통의 신학적 핵심 과 제자도에 대한 설명과 그 전통이 현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적고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영적인 체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의 삶, 그리고 자발적으로 예수님처럼 복음전도를 감당하는 신앙공동체 양성이다. 특히 신앙 공동체 구성원들의 일상적 삶과 실천을 통해 복종, 양육, 협조와 봉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제도권 안에서 안주하는 교회를 비판한다.


이들은 먼저 주님과 함께 변두리에 머물라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 시대의 중심 문화속으로 들어갈 때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믿음의 본질을 놓치고 현상유지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세상과 타협한 교회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없게 된다. ‘지나치게 상업화된 기독교’ 그리고 기독교를 일종의 올바른 사상정도로 보는 합리주의를 신자들의 교회 전통들은 반대한다. 순례의 백성, 살아 있는 믿음을 위해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본질을 상실한 기존의 기독교 안에서 생존 하려고 몸부림친다. 그들은 급진적 선택, 곧 예수의 길, 십자가의 길 만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삶 가운데 반드시 성령의 힘을 덧입어야 함을 말한다. “오소서, 성령님. 새롭게 오셔서 당신의 생명을 통해 우리를 자유롭게 하사, 당신의 뜻대로 되게 하소서.”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다시 올 하나님 나라의 삶을 준비하며 또한 이 땅에서 그러한 삶을 실제로 살려고 노력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마음이 깨끗하게 되어 고난과 위험을 기꺼이 감당하게 된다.


그러한 이상적인 공동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초대 교회를 통해서 그 이상을 발견한다. 시간과 역사의 단절을 극복하고 초대 교회의 종말론적 성찰과 성경에 기초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성경 말씀은 성령에 의해 생기를 얻을 때, 오늘날에도 초대 교회와 같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하게 된다. 이들의 표현처럼 교회가 시대와 권력에 타협할 때 교회는 정말 죽는다. 다만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경에 따른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에 영에 의해 변화 되어야 한다. 이럴 때 교회는 초대 교회가 된다.


루터와 캘빈이 교회의 개별 성도들의 삶보다 교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강조했다면 아나뱁티스트들은 삶의 전 영역에서 신자가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성을 맺는데 중점을 둔다. 이들은 참된 교회의 모습을 이처럼 그리스도를 닮은 참된 증인들의 모임으로 보았다. 참된 교회는 세상 한복판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신실한 교제 가운데 말씀이 올바로 수용되고 구체화하는 곳으로 보았다. 이들은 사색보다는 실천을 ‘합리주의적 신학’을 지양하고 관계중심의 실존주의적 성서신학을 추구한다. 오직 성서만을 권위의 원천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조직 신학보다 성서신학을 선호한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가 누구며 그가 육신에 거하고 있을 때 어떤 일을 했고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의해 정의한다. 예수는 모든 신학적 사고의 규범이며 핵심적 맥락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깨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바르게 교정했고 그 결과 하나님과 의롭게 된 신자간의 연대 가능성 및 책임을 다시 허용했다. 이제 믿음을 통한 은총에 의해 새롭게 된 신자는 신적 본성에 참여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칭의 은총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뒤틀린 관계를 교정하는 것이라면 성화 은총은 현재의 구원에 대한 기독교 가르침의 절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성령의 목적은 신자의 삶이 가능한 한 많이 그리스도의 삶과 연합되도록 하는 것이며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삶과 신자의 삶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칭의 은총은 법적으로 십자가상에서 완성된 성자의 사역이며 반면 성화은총은 현재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서 활발하게 지속되는 성령의 사역이다. 전자는 하나님 앞에서 개인의 상대적 지위에 변화를 가져오며 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자자신의 실제적인 존재자체의 변화를 가져 온다고 말한다.


이들은 ‘생활 방식과 제자도’를 강조한 ‘복종의 해석학’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이 해석학의 목적은 추상적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사도 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신앙고백문이나 전통을 인정하지만 제한적인 것으로 보고 새로운 학문, 새로운 성령의 인도하심, 그리고 계속해서 자기 부정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것을 포함한 모든 신앙고백문과 해석학적 장치들을 계속 점검하려고 한다. 성서의 자료는 ‘일차적으로 자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명제나 신적 인증을 획득한 법전 모음이 아니라 ~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역사를 통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관점에서 자신들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자신들끼리 그리고 하나님과의 상호작용 이에 대한) 반성과 분석의 기록이며 산물이다. 그리고 성서는 참된 기독교의 토대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교회내에는 강한 신념이 존재하지만 형식화된 신학, 특히 조직적이고 사색적인 성향의 신학에 대해선 기본적인 반감이 존재한다. 교회는 성서에 따른 계시 자체로부터 결코 독립할 수 없는 신앙의 이차적 언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서의 권위를 중심으로 연합해야 하며 교리적 차이 때문에 분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들은 제자도를 강조하는데 그 초점은 믿는 바를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한 개인의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이며~ 그의 정신이 예수의 가르침과 연결되는 것이고 그의 삶 전체가 예수의 권세를 중심으로 재구성되며 그가 예수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고 예수의 사명에 기꺼이 참여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생활에서 성서에 근거한 적절한 훈련이 필요하다.


이 시대 기독교 신학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해석이 아니라 실천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항상 세상과의 차이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이 차이는 민족적 충성이나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성경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지는 데서 기인한다.


초기의 신앙으로 그리고 초대 교회로 돌아가려는 이들의 몸부림이 가슴으로 느껴지는 책이다. 권력과 시대의 요구에 쉽게 변해 버리고 조직화하며 대형화하여 역동성을 잃어가는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이 안타깝다. 이들의 말대로 교회는 효율성이 아니라 관계성에 집중하며 한 생명에 대한 사랑을 놓치지 말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생명력을 덧입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신자들은 새롭게 종말론적 신앙생활을 통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그의 다스림 받는 삶을 배워 나가야 한다. 문장들이 다소 길고 복잡하고 학문적인 용어들도 많아 현실감이 떨어져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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