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 臣下
류기성 지음 / 바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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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는 간신과 충신사이 어디쯤 있는 것일까? 아마 항상 그 경계에 있지 않을까?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애국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에 방아쇠를 당겼다고 하는 데 과연 그는 이 잣대로 보면 어디에 있을까? 언젠가 간신은 왕이 만든다고 들었는데 이는 똑같은 신하가 간신이 될 수도 충신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권력자가 그 균형을 잡아주지 않으면 밑에 있는 신하는 한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는 말일 것이다.

 

조선시대 천한 출신으로 최고의 권력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인물이 류자광이다. 세조의 총애로 왕의 가장 측근으로 권력을 행사하였고 총 5명의 왕을 모셨고 당시 최고의 품위인 정1승록대부 대광’(왕의 자문관으로서 당시 영의정에 준한 자리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특별보좌관 정도 되는 자리라고 함)까지 했던 유능한 정치 지도자였던 그도 말년은 초라했다.

 

저자는 그의 삶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간신의 모습이 아니라 왕을 위한 충정과 홀로 남은 어미를 향한 효가 가득 찬 충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공신의 업적과 부를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썼으며 사리사욕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를 시기했던 무리들도 이런 그를 알았고, 누구보다 왕들은 이런 그를 알고 있었기에 그를 총애했다고 한다. 다만 그가 천한 출신(서얼 곧 그는 어머니가 몸종출신이었다고 한다.) 이었기에 높은 관직에 오늘 때마다 많은 반대에 부딪쳤고 많은 공을 세웠지만 정승이나 삼사 대간 같은 주요 관직에는 오르지 못했다.

 

형태는 다르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흐름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른바 권력을 잡는 자리는 정해져 있고 그들이 휘두르는 권력은 오늘날에도 살벌하다. 인재를 골고루 사용해야 하지만 파벌은 항상 만들어지고 권력은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저자는 시대가 바뀐 지금에는 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간신이라는 굴레를 벗겨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그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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