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와 함께 걷다 - 평화의 눈길로 돌아본 한국 현대사
한홍구 지음 / 검둥소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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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부드러운 변화구라면,
한홍구와 함께 걷다는 앞만 바라보는 돌직구이다.

반독재, 민주화의 경험을 토대로 
같은 장소에 다른 맥락을 부여하는 글솜씨가 놀랍다.


전쟁기념관이 가지는 불편한 이름과
여전히 동족상잔의 아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마는
정치세력에 관한 날선 비꼼이 설득력을 가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눔의 집에서는
물리적 해방은 이루어졌지만, 정신적 해방은 
여전히 요원한 우리네 현실을 말해준다.
친일청산은 물론, 시대의 피해자조차 어루만져주지 못한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여전히 국가의 사각지대에서
수요 집회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이어가시는 
그분들이 존경스럽다.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는 게 아니라, 잊게할 뿐이다.
그에 가장 걸맞는 장소가 국립현충원이다.
독재와 반독재 그 사이에서 희생된 넋은 대통령과 서민을 
나누지 않는다. 그렇게 모순된 과거를 기리는 장소!
오늘도 호국영령에 대한 숭고한 넋을 추모하기 위한
국민들의 발걸음은 이어지지만, 그곳의 역설은 여전한
아픔으로 남아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은
그 자체로 궁궐중의 궁궐이었지만, 
그렇기에 그 쓰임은 불필요했다.
흥선대원군이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당백전을 발행하며
온 힘을 기울였지만, 왕조의 쇠락은 건축에 있는 것이 아닌
본인을 포함한 정치에 있었음을 그는 간과했다. 그래서일까? 
경복궁은 조선왕조 최악의 비극인 
을미사변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어졌고, 
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기까지는 
거대한 감옥으로 기능한다.

독립의 ‘독’이라도 나오면 잡혀갔을 어둑한 일제강점기
그래도 버젓이 형상을 유지했던 독립문은 
일본이 아닌 청나라로 부터의 독립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가장 크게 독립을 외쳤던 이는 불순하게도? 
이완용이었다.
그렇게 시대는 사람을 키우기도 하지만, 사람을 변하게도 한다.
그래서 그의 기막힌 인생유전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매국 행위 그 자체 뿐만이 아니라, 
그의 삶 전반에 보이는 기회주의적 엘리트의 속성일 것이다.
독립군 자녀는 3대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친일파 자녀는 3대를 넘어 부와 권력을 쥐게 된 
청산되지 못한 역사....
해방 60년이 넘어서야 친일 재산에 대한 
환수가 이루어진 현실에서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이다. 

온 국토가 박물관이라 불릴 우리나라에서 
강화도는 전시대를 아우르는 묘한 특징을 가진다. 
고인돌로부터 시작하여, 
근대 건축물인 성공회교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토착화 되어, 한국미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놀랍다.
그렇게 작은 섬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숨쉬는 땅 대한민국 
그 자체의 유구한 역사가 역시 쉬이 생겨나지 않았고, 
쉬이 사라질 수 없는 질긴 생명력을 강화도는 보여준다.

4.19와 5.16은 쌍둥이가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이다.‘
그러나 당대의 현실은 5.16에는 혁명을 
4.19에는 미완의 혁명 ‘의거’를 붙여두었다.
그렇게 반세기를 거쳐서야 다시 찾은 4.19혁명 
하지만 이름만 돌려받았을 뿐
그 혁명의 희생자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졌고, 
그 곳의 제례는 형식이 되어버렸다.
뜨거웠던 4월의 피는 이제 식어 사라진 것일까?
하지만 그 저항의 피는 광장과 촛불로 이어져 
어제를 이어가고, 내일을 이어주는 씨앗줄이 되고 있다.

억울할때, 참회할때 찾아가는 성소가 있었다.
그리고 말없이, 돈없이 받아주는 그 분이 있었다.
명동성당의 김수환 추기경님
그 분의 몫은 그렇게 단순히 종교적 사제의 역할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몸소 치유하고자 했던 시대의 양심이었다.
하지만 사라진 그 분의 그림자에서 
이제 더 이상의 포용은 허락되지 않고 있다. 
집없이 쫓겨난 도시철거민에게 
말할 수 있는, 거할 수 있었던 
지난 과거는 이제 사진 몇장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가장 먼저 서구문물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 도시가 '인천'이다. 
그리고 그 속에 차이나 타운이 있다.
근대 조선에 있어, 수많은 화교가 유입되었지만
세계 유일의 실패한 차이나 타운으로 남은 대한민국
그 곳에는 지난 정부의 탄압이 있었고, 
우리네의 편견이 숨어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흔적은 유일하게 짜장면이라는 
국적불명의 음식 속에서만 남아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교수님이 아닌 친구와 답사를 하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울분을, 때로는 환희를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아닌
나로부터의 역사를 보여주는 시간 
그래서 책은 뜨거웠고, 가벼웠고, 즐거웠다.

한홍구 교수님과 함께하는 걸음이 
여기까지가 아님을 기대하며,
짧고도 긴 독서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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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인 더 헤이그 i - 개정증보판
하지환(정재민)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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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200리에는
외로운 섬하나 이며, 새들의 고향인 독도가 있다.

섬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내국인의 입도는 
선착장으로 제한되어 있는 유인도이자 무인도가 되어 있는 섬


망망대해에 촛대마냥 솟아올라 강치와 갈매기의 주소지가 되어있는 
이곳은 현재 한국에게는 독도, 일본에게는 다케시마, 
서양에게는 리앙쿠르 라는 같은 장소, 

다른 이름이 제각각의 복잡한 사정을 이유로 따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분쟁의 역사에 관한 연원과 그 해결방법은 없을까?
이 책은 그런 측면에서 소설이지만 
독도문제에 관한 개론서가 되어준다.
그리고 적당한 로맨스, 부족한 스릴러, 넘치는 법률적 지식을 통해 
잘 비벼진 비빔밥의 묘미를 소설로서 입증해낸다.

특히나, 독도분쟁의 변곡점이 되어진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예언한 것처럼 기술한 것이나, 외교적 분쟁해결에 있어, 
미숙한 한국의 외교통상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픽션임에도 씁쓸한 현실을 일깨워준다.

더구나, 한국의 독도영유에 관한 일본의 단계적 도발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흥미로웠다. 
ICJ(국제사법재판소)로의 소송관할권을 위임시키기 위하여 
일본은 국지도발을 일으키고 이를 통한 국제분쟁지역화를 
공식화하며, 뒤이은 유엔안보리의 ICJ 권고를 받아낸다. 
여기까지의 일본의 전략에 한국은 속수무책 마냥 당하고 만다.

지금의 매스미디어에서 말하여지는 것처럼 
한국은 일본의 단독제소의 효과는 없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지만, 
결국 국제여론에 밀리어 한국은 헤이그의 ICJ의 법정에서
일본과 마주하게 된다. 

과거에는 IF가 없다고 하지만, 미래에는 IF가 있다.
과거를 반추하여,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이 현재에 있기 때문이다.
독도문제에 있어서도, 조용한 외교, 강한외교가 각각의 논리로 오늘을 마주한다. 

무엇이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외교에 있어서만큼은 IF를 가정한
최대의 실리가 무엇인지는 항상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결론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주인공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반전의 키워드 ‘가락국기’도 
소송에서는 결국 등장하지 않는다. 
온전히 현실에 기반한 결과를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작가의 배려에 뾰로퉁한 심술을
보태지만, 7년의 산고 끝에 나온 이 책의 완성도에는 
뜨거운 박수를 보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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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 X파일 -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이상호 지음 / 동아시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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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자는 참으로 외로운 직업이다. 
끝없이 감시하는 자이면서도 끝없이 감시당하는 
우리 사회의 고독한 파수꾼 기자! 

그래서 그의 책은 눈물이 많았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누구도 행동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그 홀로만의 외침!!
그의 메아리는 돌고 돌아, 결국 세상을 깨우지만
그가 겪어야 했고, 헤쳐 나가야 했던 질곡의 시간은 너무 독했다.

게다가 상대는 언제나 거물이다.
그것도 무서우리만큼 거대해서, 
범인은 감히 대적할 수 있을까라는
우리 사회의 만사S통 SBS와 삼성...!

홀로 부닥치고, 깨어지고 , 참아야했던 
그 시간의 절절함이 때로 종이를 넘어 
독자로 하여금 분노 이전에 가엷음을 느끼게 한다. 

‘이제 그만 편하게 살아도 될 만큼의 치열함을 
당신은 보여주었습니다.‘ 라고 위로 하고 싶지만

그는 여전히 기자이고, 기자이고 싶어서
MBC가 아닌, 손바닥뉴스로 
그리고 이제는 골방 스튜디오의 발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모든 기사에 목숨을 걸고 임한다는 그의 결기는
그렇게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다.

전두환의 비자금을 찾아서, BBK 의 진실을 찾아서, 
故장자연 죽음의 억울함을 찾아서, 
아직도 찾아야 할것이 많고, 밝혀야 할 것이 많은
그의 뜨거운 삶을 나는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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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강역과 지리
방학봉 지음 / 정토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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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참으로 어렵다. 그리고 불편하다.

발해의 강역과 지리라는 표제아래 
지도 한 장 없는 편집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렇게 수면제 하나를 톡 털어 마시는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잠이 깨어나는 걸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른 위기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발해의 대륙경영에 관한 잊혀진 기억을 
더듬는 설레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지리서임에도 불구하고, 
발해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동모산의 실증부터 글머리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동모산은 어떠한 곳인가?
바로 태생부터가 당과의 항쟁으로 시작했던 
발해의 전승유적지인 동시에 고왕 대조영이 
발해를 세운 개국유적지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한 낱 지방제후국으로 역사 편입시킨 
중국의 동북공정은 시작부터가 모순에 부닥치는 걸 
말있는 역사와 말없는 땅이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 발해의 수도였던 구국, 현주, 상경, 동경의 
지리적 위치를 상세히 규명한다. 
그것은 문헌적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잊혀진 발해, 묻혀진 발해의 옛 주소를 다시 찾고자 하는 
노교수의 헌신과 노력이 빛나는 학문적 작업이기도 했다.

발해사라고는 전공하지 않는 국내의 빈약한 환경 
고고학적 성과라고는 모두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 홀로 정리하고, 이루어낸 성과로서
그의 방대한 실증자료와 저서목록은 그래서 더욱 놀랍다.

더욱이 발해의 5경과 10부 그리고 3개의 독주주를 서술함에 있어, 
관할 62주를 모두 나열하며, 그 지리적 위치를 구당서, 신당서는 
물론 일본서기 속 사신의 직책으로부터 유추하고, 실증해내는 
역사학자로서의 풍부한 식견은 마치, 미해결 살인사건을 
척척 해결해내는 명탐정 누구를 떠오르게 한다.

그만큼 공백의 역사, 그리고 망각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게다가 뜻밖에도 혹은 당연하게도 
북한에서의 발해 유적지가 여전히 다수 산재해있다는
사실은 발해가 고구려의 별종이라는 구당서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역사임을 다시 자각하게 해준다.

또한 발해의 호수와 산을 고증하며,
그 경계에 있어, 여전히 점선을 그어야 하지만
드넓었던 강역을 영유했던 발해의 장대함은
더욱 지울 수 없는 팩트로 다가온다.

그러한 발해의 멸망이 서기 926년! 
지금으로부터 1000년 하고도, 100년이 가깝게 지나간 시간
여전히 어려운 한자를 해독하며, 
따가운 햇살을 내리 쬐며, 얼어붙은 동토를 밟아가며
우리가 발해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화려한 과거에 취하자는 것도, 
화려한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닌 
우리 역사를 온전히 복원해야 한다는

당위로 부터의 출발일 것이다.

더불어 그 끝에는 역사 속 남북국 시대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의 남북 분단의 통일 과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 되지 못했기에 망한 고구려와 백제
나누어졌기에 망한 신라
모두가 한민족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분열되었기에, 대륙을 포기하게 된 한반도에서의 역사 
그리고 옛 조상의 실패....!

그래서 발해통, 발해박사,방학봉 교수의 저작은 
비단 지리와 강역에 그치지만 발해를 포기한 우리의 역사는 
여전히 분열된 민족사임을 강하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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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3 - 완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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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이라고 외쳤다. 
그렇다면 그에 가장 걸 맞는 사례는 십자군 전쟁이 아니었을까?
맹목적인 믿음이 보여주는 인류사에 있어 더없이 덧없었던 전쟁
그렇게 100년을 넘도록 이어진 십자군 전쟁의 승자는 
아편의 종말이 죽음이듯, 

원래의 그 자리 그대로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면서도, 
인류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
수많은 오류와 오판 속에서, 
수많은 패배와 승리가 교차하는 전장 속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본래의 종교 전쟁을 넘어, 
각 문화의 전수자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터득해간다.

그렇게 십자군의 아이콘이자 전설이 되어버린 
사자왕 리처드가 활약했던 3차 십자군 전쟁이 지나가고, 
종교전쟁에서 경제 전쟁으로 성격이 바뀌었던 
베네치아의 4차 십자군 전쟁, 
중세시대의 균열을 예고하는 반동의 5차 십자군 전쟁
그리고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외교전으로 진행된 프리드리히 황제의 6차 십자군 전쟁
더불어 마지막 십자군이자, 마지막으로서의 순수한 십자군이고자 했던 

프랑스 루이왕의 7차, 8차 십자군 전쟁으로 길고 길었던 십자군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즐거움은 이러한 십자군의 역사를 
그대로의 역사가 아닌, 
오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뒤집어보는 역사이기에 흥미롭다.

사자왕 리처드에 있어서 그의 십자군에서의 
눈부신 성과와 용맹함은 칭찬하지만, 
결국은 용맹함으로 자신을 상하게 하고, 
결국은 실지왕으로 불리고마는 
동생 존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마는 어리석음은 
역사의 기묘한 우연이라고 할까?

더불어 오귀스트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는 
프랑스왕 필립2세는 십자군에 있어서는 소극적이었지만 
결국 프랑스의 남북 통일을 이끄는 주요한 업적을 남기었음은 
역사의 승자가 과연 누구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해상왕국 베네치아의 기반을 닦은 4차 십자군 전쟁은 
한 지도자의 헌신이 얼마만큼 그 도시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죽음이후의 화려한 칭송보다는 콘스탄틴노플에서 직위조차 새겨지지 않은 무덤가에 묻힌 도제 단돌로의 삶은 그래서 더욱 숙연하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에서의 가장 큰 비극적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5차 십자군 전쟁은 종교자체가 가지는 광기 속에 인간이 얼마만큼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소년 십자군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순수함 혹은 철없음을 어른들의 더러운 잇속으로 노예상에게 팔아버리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처연하다. 

외교는 총성없는 전쟁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피한방울 흘리지 않은 십자군 전쟁이 바로 독일황제 프리드리히가 이끌었던 6차 십자군 전쟁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시칠리아라는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문명의 중립지역에서 자라난 지도자 프리드리히의 유연한 사고였다. 더불어 그는 당대의 세계인이자 지식인이었으며, 재능에 걸맞는 인재등용으로 종교의 차별 없이 이슬람교도조차 관료로 채용할 줄 아는 기독교 세계에서의 뛰어난 이단아였다. 

이에 교황은 잇따른 종교적 사형판결인 파문을 내렸지만, 그는 적재적소의 위협과 강화만으로 목표한 예루살렘을 탈환한다. 그렇게 당대에 있어서는 가장 가혹한 판결이 내려졌지만, 십자군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그의 위상은 후대에 있어 더욱 높이 평가받는 역설을 낳는다.

십자군에 명멸했던 수많은 지도자들, 그중에서는 다수의 순교자도 생겨났지만, 정작 성인의 반열에 오른 건 프랑스왕 루이가 유일하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실로 파괴적이다. 

뛰어남과는 전혀 동떨어진 의미에서의 이 파괴는 그의 십자군 원정의 실패가 중근동의 기독교 세력의 방어력을 현격히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귀결된다. 더불어 프리드리히 만큼의 유연함이었다면, 승리가 담보되었던 상황에서도, 십자군으로서의 순수함을 강조하며, 승리보다 패배를 선택하는 그의 고지식함은 이슬람세력에게는 축복으로 바뀌어졌다. 그렇게 포로가 되고, 죽음조차도 십자군 원정 중에 맞이하게 된 그의 삶은 결국 교황에게서 성인의 칭호를 부여받게 된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다분히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을 판단한다는 의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그 책을 읽은 지도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십자군을 응원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는 
친절한 교수님이 설명해주는 자상한 역사이야기와 같다.
누구의 판단이든, 누구의 행동이든 
방대한 자료에 기반한 실증과 그것이 후대에 끼친 영향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전설과 민담이 섞인 흥미로운 가십을 꼭꼭 넣어주는 센스는 그가 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임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더불어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는 무편무당한 역사가로서의 서술방식은 오랫동안 물든 서구우위의 오리엔탈리즘을 세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준다.

로마인 이야기 이후에도 부단한 저술활동으로 
지혜의 갈증을 적셔주는 노작가 시오노 나나미
그분의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하며....감사한 마음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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