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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 북미 최후의 인디언이 천 년을 넘어 전한 마지막 지혜
위베르 망시옹.스테파니 벨랑제 지음, 권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몇 해 전 일본 가서 놀란 게 있다.
차를 타고 차도로 진입하려 기다리고 있는데, 인도를 지나는 자전거가 우리 때문에 멈춰섰다.
나 같으면, 혹은 한국에서는 그런 상황에서 자전거가 차 앞으로든 뒤로든 지나간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자전거가 움직였다. 의아했다.
옆에 있던 분이 한국에서나 그렇게 빨리 가려 하고, 여기서는 다 저렇다고 하신다. 심지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충격이었다. 나는 다들 나처럼 생각하며 살 줄 알았는데, 그건 내가 아는 곳만 그럴 뿐이었던 거다.
나와 한국을 세계라는 넓은 틀에서 다시 보았다.
객관적으로 보니 '빨리빨리' 문화는 아주 일부였다.
그 후로 낯선 세계, 다른 문화를 만나는 게 소중해졌다.
무심결에 익숙한대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잘 생각해 볼 기회를 얻으니까.
이 책도 그러한 기대를 갖고 읽었다.
저자 중 한 명인 위베르 망시옹은 프랑스 사람인지, 캐나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가 살아온 문화나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나 크게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상품을 구매하고, 컴퓨터와 전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문명에서 산다는 점이 그렇다.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 크리족 사람들 이야기가 여기 있다.
그들의 주거 공간, 양육, 사냥 등의 생활은 낯설다. 건강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도 그렇다.
개인주의 문화가 아닌 공동체 문화라서 그런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사냥을 했을 때, 다 가져 가지 않고 일부만 가져 간다. 사냥에 실패한 사람에게도 고기를 나눠준다.
집으로 돌아갔을 땐 구분이 되지 않는 거다.
또 소유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
예를 들어 음식은 배고픈 사람의 것이다. 먹을 것이 있을 땐 반드시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는다.
사냥은 육체의 허기나 즐거움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생명을 잇고 나누는 경건한 행위다. 종교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동물을 죽이고, 그걸 먹어야 목숨을 이어가는 크리족에게는 죽음이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게 삶의 일부로 여겨진다.
책을 보고 배우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레 배우는 거다.
돌과 나무에 깃든 정령을 숭배하는 것을 미개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차분히 들여다보면 우습게 볼 게 전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이 건강한가? 생명을 상품으로 바꾸는 순간, 우린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다른 세계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정신없는 현대 문명에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도 한 번 여유를 갖고 책장을 넘기면 좋을 것이다.
달콤하지 않아서 많이 팔리지 않을 수 있는 책이지만, 참 소중한 책이다.
이런 책을 번역하여 출간하고, 특히 재생종이로 인쇄해준 출판사 사람들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