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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 없는 출산 - 우리는 출산을 모른다
목영롱 지음 / 들녘 / 2021년 2월
평점 :
# 1. 생명평화 운동의 마중물
책 고를 때도 느꼈지만, 책 읽는 내내 저자의 분노가 강하게 느껴졌다. 저자가 겪은 상황이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도 불편한 마음으로 읽다가 중간 즈음, 저자를 향한 자비심이 생겼다. 저자의 고통에 (특히 남자로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아울러 위로해주고 싶다.
산후조리를 도와주신 이모님이 저자에게 "애 아빠 기 좀 세워주라"고 말씀하신다. 밖에서 일하니까. 저자도 밖에서 일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제 기는 누가 세워주나요?' 묻는다(120쪽). 이 장면에서 찡했고, 내가 세워주고 싶었다. 진심으로. 저자와 따로 연락하여 해원解怨하고 싶다.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우리 출산 문화 현실을 잘 드러내준다. 이건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이후에는 생명평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생명을 억압하는 죽임의 질서에 맞서, 생명살림의 문화를 일구어가는 거다. 생명감수성의 고양, 이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책은 고발에 집중되어 있다. 후속 작업은 생명감수성 증진 모색과 대안 보여주기 등 운동적 차원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비판을 넘어 대안을 찾아내고 누려야 한다. 정말 의미 있는 대안은 말이 아니라 실제 사는 삶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진 못 해도 우리가 처한 현실, 또 우리가 만들어가는 삶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 서평은 그러한 단초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내 경험을 바탕으로 장황하게 썼다는 점을 고려해주길 바란다.
# 2. 산파 아빠의 임신출산육아
저자와 나는 유사한 정황이 좀 있다. 책에서 <82년생 김지영>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나도 아내도 82년생이다. 비슷한 가부장적 배경 아래 있다. 저자와 2살쯤 차이나는 것 같고, 아이도 2살 차이난다. 저자는 강원도 양구, 나는 홍천이다. 홍천 중에서도 안쪽이라 읍까지 좀 걸린다. 가보진 않았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부인과는 차로 40분 걸린다. 실질적 분만 취약 지역이다.
다른 점은 나는 남자다. 병원에는 막달에 한 번 갔고, 집에서 출산했다. 병원을 비롯한 어디에서도 굴욕적인 느낌을 받지 않았다. 내진 한 번 해보지 않았고, 조산사도 없었다. 아니, 내가 조산사였다. 2017년 5월, 집에서 아내와 내가 아이를 낳고 받았다.
이 말을 하면 다들 놀란다. 특히 아내와 둘이서 출산했다는 점에서 더욱. 나도 처음엔 아이 낳는 과정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이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런데 지금, 아이가 한 명 있는 상태에서는 더 어려울 것 같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그러려면 부모만으로는 버겁다. ^^;
물론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은 건 아니다. 아내가 밤 10시부터 진통해서 아침 8시에 낳았는데, 그 중간중간 문자와 전화로 도움주신 선생님이 계셨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대형병원에 차 태워줄 마을 이웃이 있었다. 그렇기에 가능했고, 이런 방식의 출산을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집엔 자동차도 없다. 마을이라는 관계망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출산에 대해 제대로 말하려면, 앞뒤로 이어지는 임신과 육아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출산만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어떤 마음과 준비 가운데 임신하게 되었는지, 출산 이후 어떻게 육아해나가는지 역시 출산 만큼 중요하다.
임신 20주 즈음, 처음으로 조산원에 가봤다. 이에 대해서도 놀라는 사람 많다 ^^; 초기에는 어떻게 했냐는 것인데, 그때는 우리가 알아서 조심히 잘 지냈다. 중기쯤 되어 출산을 어디서할지 알아볼 겸 간 것이다.
강원도에는 조산원이 없어서 서울에 있는 오래된 조산원으로 갔다. 거기서 뵌 조산사 아기 할매는 대뜸 우리에게 '건강하고 공기 좋은데 사니까 둘이서 집에서도 나을 수 있겠네' 하셨다. 우린 그때만 해도 그저 덕담으로만 들어뒀다.
아기 할매는 우리에게 첫 질문으로 "임신한 걸 알게 됐을 때 마음이 어땠나요"' 물으셨다.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주 놀랍고 감사하다"고 했다. 매우 반가워하시며 특히 아빠가 그런 마음 갖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엄마들보다도 아빠들 반응이 좋지 않을 때가 많다. 부담스럽다거나. 그런 마음이면,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그게 다 태교다. 그래서 태교신기에서 아비의 마음가짐을 강조한 거다. (그 말을, 남녀의 우열보다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 비로소 생명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났고, 몇 달이 지나며 부부 간의 큰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린 생명이 잉태되는 그 때를 기억한다. 참 황홀하고 경이로운 순간이다. 둘이 하나되며 충만한 기쁨 가운데, 생명이 생겨난다는 것,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가.
둘이 하나되었더니 새로운 생명이 생겼다. 한몸됐던 엄마와 아빠는 다시 둘이 되고, 또 10달 동안 하나였던 엄마와 아이도 다시 둘이 된다. 임신출산 과정은 둘이 하나, 하나에서 둘 셋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걸 보며 기독교의 삼위일체가 떠올랐다. 셋이 하나이고, 하나가 셋인 것. 그 역설적 진리를 생명 현상을 통해 느꼈다.
이런 깨달음을 아이의 이름에 담았다. '(작은) 하나하나의 얼은 (큰) 하나의 얼이다' 하여 '한얼'로 이름 지었다. 불교에서도 말하지 않나.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그렇다. 온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단지 구분하기 나름인 거다. 각 종교의 가르침들을 임신출산 과정을 통해 경험했다. (생명 현상 그 자체가 훌륭한 배움터다. 오늘날 과학 기술이 발전하지만 오히려 이를 놓치는 건 아닌가 싶다)
입덧은 생명이 생겼다는 신호다. 과거에는 입덧 아니었으면 어떻게 아이가 생긴 걸 알았겠나. 우리 몸의 지혜다. 몸이 쳐지고 거동이 불편해지지만 꼭 부정적으로만 여길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진통도 마찬가지다. 강도가 심해질 수록, 때가 이르렀다는 거다. 입덧처럼 이걸 피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통증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다. (이건 요즘 뇌과학에서 많이 밝혔다) 아이와 소통하는 통로다. 강렬하기에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엄마와 아이, 또 아빠도 한 마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아가야 너도 힘들지? 나도 힘드네. 우리 함께 힘내자' 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되야 한다. 그게 진정한 무통 주사다. (224쪽에서 무통 주사의 문제를 의료적 맥락에서 간결하게 잘 정리했다)
지금,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아내도 진통을 견디기 매우 힘들어했다. 서울 가자고, 제발 조산원 가자고 했다. 집에서 낳고 싶어한 건 아내였는데도 말이다. ^^; 그게 곧 나올 신호였고, 그때부터 2시간 안 되어 출산했다.
처음부터 집에서 아이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러면 좋긴 하지만, 시골 외진 곳까지 누가 오기도 어려웠고, 당시 나는 독립하여 사업을 시작하는 등 매우 바빴기 때문이다. 그래도 옆지기로써 호흡법 등 기본적인 교육은 받아둘 필요를 느꼈다.
현재 임신출산육아 관련 정보는 거의 엄마들만 알고 있다. 이게 심각한 문제다. 최소한 엄마만큼 알아야 하는 게 아빠다. 시키는대로 수동적으로 뒤따라가기만 할 게 아니다. 주체적으로 살피고 챙겨줄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엄마는 달라진 몸, 마음만으로도 벅차다. 모든 핑계는 정중히 사절한다. 책임 있게 살자. 아빠들아.
아빠는 생물학적 한계가 너무 크다. 사회적 왜곡 또한 그만큼 어마어마하다. 돌파할 수 있을까? 그게 관건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자기와 주변에게 기준 맞춰 놓지 마라. 적어도 엄마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는 해야 한다.
아빠들이 임신출산육아를 주체적으로 하는 것, 이게 대단히 중요하다. 엄마아빠 준비 다 해놓고 임신하는 사람은 없다. 하면서 하는 거다. 이때 아빠들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고,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빠들은 결코 버릴 수 없는 동지들이다. 자비심을 갖고 잘 품어줘야 한다)
출산 6주 전부터 보건소에서 교육도 받고, 가정출산을 준비하는 지인에게 관련 카페와 선생님을 소개받기도 했다. 1~2주 정도 공부하다보니 집에서 출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출산 관련 자료가 별로 없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충분히 많았다. 그걸 다 보고 출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특히 영상 자료가 도움됐는데, 시간이 없으니 2배속으로 보기도 했다. 다큐들 보며 감동 받아 눈물도 흘리면서 마음을 모았다. 아기 할매께 전화로 정황을 말씀드리니 내게 3가지만 잘 하면 된다며 반갑게 비법을 전수해주셨다.
36주 때, 서울에서 관련 교육이 있어서 아내와 강의 듣고, 막달 검사 받으러 병원에 갔다. 조산원에서 낳을 거라면 굳이 안 갔을 거다. 집에서 낳을 계획이었기에, 아기가 잘 있는지 아내 몸은 괜찮은지 양수 상태, 아기 위치 등 이것저것 확인차 들렸다. (아이가 하늘 보고 있었으면 둘이서 출산하는 것을 재고했을 거다)
그 병원은 저자가 출산한 병원이기도 하다. 영상과 책으로만 접했던 정환욱 선생님을 직접 뵙고 싶었으나 쉬는 날이셔서 김라현 선생님을 만났다. 비슷한 또래의 젊은 분이었는데, 우리를 적극 지지해주셨다. 거리가 멀어서 출장 갈 순 없지만, 혹시 응급상황 생기면 언제든 연락주고 오라고 하셨다. 그 따뜻한 배려가 힘이 되었다. 정 선생님이 후배와 정신을 잘 공유한 것 같아 기뻤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굴욕감을 맛보기 쉽다. 원래 다들 이렇게 하나보다 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것이지 사실 수치스럽다. 따지고 보면 안 해도 되는 것인데 의사가 편하기 위해서 시행되는 시술이 대부분이다. 의자와 침대 등 병원 구도 자체가 그렇다.
게다가 남자 의사라는 점은 또 다른 정서적 불편함이 있다. 아내는 예전부터도 여자 의사에게가겠다고 했다. 아무리 의사라도 남자라는 그 자체가 어려운 거다. 훨씬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건만, 병원에서 그걸 기대할 수 있겠나.
모든 병원이 그런 건 아니다. 괜찮은 병원과 조산원도 곳곳에 있다. 인격적이고 생명 존중하는 병원을 잘 찾아보고 가야 한다. 아니면 굴욕 당하기 십상이다. 저자가 경험한 안양의 그 조산원은 잘 모르는 곳인데, 지인들이 경험한 다른 곳들은 별 문제 없었다. 그리고 요즘은 둘라 활동가들이 좀 생겼다. 이 분들을 만나는 것도 괜찮다. 경험과 지식이 있으시니까 여러모로 든든해진다.
저자 말대로(204쪽), 현대의학에서 출산은 질병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출산이 질병인지 생각해 볼일이다. 나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출산은 그저 생명 현상이다. 오히려 병원에 가는 순간 환자가 되어 버린다. 가운 입고 건물에 갇힌 순간 환자다.
물론 현대 의학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분명 있다. 또 종종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만에 하나 있는 건 확실하다. 그렇다고 그걸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또 출산은 차라리 육아에 비하면 해결책이 명확하다. 출혈 등 어떤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게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에 비해 육아는 제각각이다. 좀 더 기다려야 하는지, 병원에 가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훨씬 어렵다. 우는 걸 달랠 때에도 최대한 맞춰줘야 하는지, 어느 정도는 울더라도 참고 가르쳐야 하는지 등등.. 모유가 잘 안 나올 때 대처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유축기를 써라 마라 등, 훨씬 혼란스럽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열 올라와 보면 정말이지 내가 대신 아프고 싶어진다. 말도 못 하는 아이가 아파하면 멘붕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논지는 약간 흔들린다. 출산은 죽음을 넘나들 수고, 많은 이들이 이 과정에서 숨을 거두기도 했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다가 출산이 질병이 아니고, 산모가 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이에는 약간의 간극이 있다. (그걸 더 좁혀야 하는데 그러려면 병원의 절대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료 권력에게 우리의 생명 주권을 빼앗기면 안 된다. 이는 먹을거리를 비롯한 삶의 양식과 맞물리는데 뒷부분에서 더 언급하겠다.)
자연주의 출산을 지향하는 병원에서는 '텃밭'을 만들어야 한다. 생명과 교감하는 장이 주어져야 한다. 책에서는 '밭 매다가 아이 낳으러 간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하지만, 사실은 거기에 핵심 원리가 담겨 있다. 병원 건물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자연에서 적절하게 활동하는 게 필요하다. 특히 김매는 자세가 아이가 내려 오기에 참 좋다. 중력 방향을 떠올려보라. 똥 눌 때도 쪼그려 앉아서 싸는 게 가장 잘 나온다.
옛날 이야기들을 무작정 배격할 것도, 옹호할 것도 아니다. 현대 의학의 성과는 취하고, 옛 전통의 지혜도 배워야 한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상호보완'이라는 걸 유념해야 한다. 금기에 대해서도 가부장적 폐해라고 여길 수도 있으나 충분한 쉼과 안전 등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면 좋겠다.
내 결론은 집에서 출산해도 괜찮다. 다만 엄마 이상으로 아빠가 공부+준비해야 한다. 모든 아빠는 둘라다. 성실하냐 게으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덩그러니 혼자 견디는 것과 절대적으로 공감해주는 존재(둘라)가 있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크다(215쪽).
또한 응급 상황에 대한 대비를 잘 해야 한다. 가까운 대형 병원이 어디인지 파악해두고, 막달검사 등을 통해서 여러 가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는 걸 권한다. 현대 의학을 적절하게 활용하라. 드물지만 충분히 대화가 통하는 병원이 있다. 이런 걸 아빠가 부지런히 알아봐야 한다)
저자는 돈이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181쪽), 꼭 그렇지도 않다. 임신하면 정부지원금을 주는데 의료 계통에만 쓸 수 있다. 우리는 20주에 조산원 한 번, 36주에 막달검사 한 번. 그 외에는 쓸 데가 없어서 한약을 지었다. 집에서 출산하면 돈도 따로 더 준다. 선택하기 나름이다. (보통은 병원에서 출산하면, 그 지원금을 병원이 받는다)
출산 후 산모도우미 이모가 2~3주 정도 오셨다. 경제적 상황이 여유 있진 않아서 산모도우미가 오실 때 내가 종종 일하러 나갔다. 그 외에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도움은 없었다.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었는데, 받지 않아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엄마도 아빠도 고생 많이 한다. 잠도 적게 자는데, 할 일은 끊임없이 주어진다. (차라리 출산이 쉬웠다. 우리집도 우울증 왔다 ㅠㅠ)
엄마의 경우는 모유수유, 이 하나만 해도 충분하다. 나머지 시간에는 잠 충분히 자고 잘 쉬어야야 한다. 나머지 전부는 아빠 몫이다. 밥, 청소, 빨래, 안마, 아이랑 놀아주기 등등. 그러고 경제생활까지 어떻게 하냐고? 그게 우리 고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비율이 맞는다. 아무리 아빠가 한다고 해도 엄마가 가만 있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이미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집은 분유 안 먹였고, 천 기저귀 썼다. 빨래 널어놓으면 주변에서 신기해했다. 요즘도 이런 거 쓰냐고. 똥 기저귀 치우는 거? 그거 그냥 일회용으로 싸서 버리는 정도는 손쉬운 일이다. 똥 묻은 천 기저귀를 빡빡 손으로 빨고, 가끔씩 삶아준다. 아기와 환경에 덜 부담주고 싶었다. 그로 인한 댓가는 분명하다. 힘들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살 순 없다. 각자 철학과 정황에 맞게 살면 된다. 다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아빠가 집안살림을 당연마땅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난 사실 책 보면서, 저자 남편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니 엄마가 더 힘든 거다. 개인적 문제도 있지만, 사회문화적인 문제도 있다. 그래서 마을이 필요하다. 선후배가 이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배우고 도우며 함께 할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참 적절하다. 특히 아빠들의 경우, 선배 아빠들의 경험담과 잔소리+격려를 듣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나만 혼자 그렇게 힘든 게 아니라는 점에서 진한 동지애를 느낄 수 있다(직장에서 눈치보는 건 책에서 잘 다루니까 생략한다.)
# 3.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다
도시화, 현대화된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니다. 이웃과 잘 모르고 지낸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하는 경우가 드물다. 요즘은 소통도 SNS를 통해서 많이 한다. 관계를 깊이 맺는 게 쉽지 않다. 마을이라고 하는 관계망이 파괴된지 오래다.
내 경우는 마을이 없었다면 출산 과정도, 육아도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마을이 필요하다. 엄마아빠 뿐만 아니라 이모삼촌, 언니오빠 형누나, 동생들과 어르신이 함께 살아야 한다. 밥 먹을 때, 집에서는 잘 안 먹는데 밖에 나가선 잘 먹는 아이들이 있다.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갑자기 안 먹던 반찬을 잘 먹기도 한다.
아이는 하나를 보아도 힘든데, 둘 본다고 해서 두 배로 힘들어지지 않는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품앗이를 할 수도 있다. 다양한 기질들이 어울리며 사회성도 발달하고, 양육자들도 더 넓은 관점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좀 쉴 수 있고 여유가 조금은 생긴다.
마을에서 아이들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밥상이 있다면 더욱 좋다. 먼저 온 사람들이 나중에 온 아이 밥 먹여주면, 그때 엄마아빠가 밥 편히 먹을 수 있다. 밥상은 진짜 중요하다. 아이 보면서 밥 차리고 밥 먹이고 설거지하면 또 밥 차려야 한다.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가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 단위에서 해결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면 도시와 농촌도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저출산은 국가적 문제가 됐다. 하지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 문제보다 훨씬 더 어렵다. 단순히 돈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다. 출산 휴가나 지원금 뿐 아니라 주거 교육 취업 등 총체적으로 생명이 살기 적합한 환경이 되어야 한다.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무척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출산율이 증가하진 않을 수 있다. 출산이라는 자체가 사람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원해도 안 될 수 있고, 원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거다. 모르는 일이다.
생명 감수성, 인간과 자연의 공존 생태계가 회복되고 고양되어야 한다. 홀로, 혹은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온생명이 함께 생명살림의 문명을 일구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자본과 국가의 횡포에 맞설 수 있어야 하고, 서로 연대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저 멀리 있는 그 무엇보다, 우선 우리 몸과 마음의 평화가 필요하다. 분노와 적개심을 넘어 사랑과 자비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꿈 같은 이야기지만, 그게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쉬울 거다. 남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게 더 쉬우니까.
출산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 자체가 비인간화 되어 가고 있다. 생명의 상품화 현상은 너무도 만연하다. 죽임의 질서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이 책을 통해 그러한 횡포를 깨닫고, 함께 저항하며 평화를 노래하는 전사가 되어야 하리라. 이 책을 보며 우리의 존재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