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대미술의 상실
톰 울프 지음, 박순철 옮김 / 아트북스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작가는 1975년에 이미 현대 미술은 상실되었다고 말한다. 와우~ 그가 언급하는 작가들은 2000년대인 지금까지도 굉장한 작가들로 여겨지고 있는데, 30년 전에 이미 그들을 날카롭게 비판한 작가가 있었다니 놀랍다. 그의 글은 신랄하며, 재치있고, 예술가에 대한 독자들의 맹목적 존경심에 의심을 품게 한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고백하기를, 자신은 최소한 미술에 있어서 만큼은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라고 믿어왔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그는 깨달았다. 현대미술은 ‘아는 것이 곧 보는 것’이라고.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완전히 문예적 성격을 띄게 되었으며, 그림이나 다른 작품은 오직 문의를 예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기에.
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책을 읽다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간단히 말하면 미술보다 이론이 먼저란 소리다. 작가는 현대미술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가차없이 쏟아 놓은 후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예언한다. 2000년이 되어 만약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나 현대 미술관이 1945년부터 75년 사이의 위대한 미국 미술 회고전을 열게 되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폴록, 드 쿠닝, 존스가 아니라 그린버그, 로젠버그, 스타인버그(이론가들)가 될 것이라고. 그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이론의 설명서들이 액자에 걸려 있고, 그 옆에 화가들의 작품을 축소한 조그만 복사화가 있을 것이라고.
물론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예언은 틀렸다는 것을. 그러나 작가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실 나의 경우 폴록이나 로스코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처음 접했을 때 그림들이 가진 의도와 의미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론을 애써 떠올리며 감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림 자체를 즐기기는 어려웠다. 만약 화가가 혹은 미학가가 제시하였던 이론을 몰랐다면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미술교사로 분한 줄리아 로버츠는 거대한 폴록의 작품을 보며 감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체 그녀가 느꼈던 감동은 그가 살아왔던 삶이었을까, 그가 추상주의의 선두자로 떠올랐기 때문일까, 이론가의 이론을 먼저 접했기 때문일까, 작품에 마구 뿌려진 물감들의 자유로운 선이었을까,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드리핑 기법 때문이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 모두 실언을 합시다.” 그래. 이론도 중요하다. 알면 보인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이론을 몰라도 볼 수 있다. 나에게 끌리는 그림이 좋은 것이지, 화가가 유명하다고 해서 그림이 좋은 것은 아니다. 톰 울프의 책은 처음인데, 보석을 발견한 기분. 2013년을 이토록 멋진 책과 함께 마무리한다.
# 그 어떤 작품도, 심지어 잭슨 폴록이나 윌렘 드 쿠닝의 작품도, 그때의 이론만큼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기념비가 되지 못했다. 작품들은 ‘조연’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론들은 ‘멋있었다.’ 55
# 특히 그린버그는 절대적인 ‘권위’를 발휘했다. 그는 첫인상이 호감을 주는 인물도 아니었고, 말을 꺼냈다가도 우물쭈물하는 등, 기분에 따라 이야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사람들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의 산문 스타일도 비슷했다. 그는 ‘본질’, ‘순수’, ‘광학적’, ‘형식적 요소’, ‘재조정의 논리’ 그밖에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는 난해한 ‘괴팅겐 학자식’의 동의어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서 셸리(작가)라도 당황하게 만들 절망과 분노의 외침을 터뜨리곤 했다. 60
# 아직 얼굴을 찌푸리며 폴록의 작품이 ‘더럽다’, ‘혼란스럽다’ 또는 ‘추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윗동네나 아랫동네에 조금은 남아 있었지만, 이런 비난에 대해 그린버그는 훌륭히 대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든 심오하고 독창적인 작품은 처음에는 추하게 보이는 법이다.” 글쎄....그렇기도 하겠군! “그 말이.......옳아!” 문화촌의 모든 사람들이 최초에 자신이 참여하지 않았던 ‘주의’(ism)를 몇 개씩은 기억할 수 있는 아방가르드의 시대에 그린버그의 이 발언은 모더니즘의 깊은 통찰에서 나오는 금언같이 들렸다. 수집가, 미술관 관계자, 심지어 일부 화상들마저 처음에 정말로 ‘추하게’ 보았던 작품들에게서 이상한 광채를 보기 시작했다. 하여튼 미술계에서 포록이 차지하는 지위에 대해 그린버그가 옳았다면, 그린버그의 이론 자체도 옳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폴록은 이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그의 작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진! 더 평면적으로! 더 거무스름하게! 더 균일하게! 그러나 구멍은 줄이도록! (그린버그는 폴록의 그림이 완전한 평면성을 지니고 있으나 때때로 구멍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린버그는 폴록의 스튜디오에 자주 들러 ‘현장 비평’을 하곤 했다. 폴록은 곧 ‘그 자신(지난날의 잭)’과 ‘그에 대한 평판’ 사이의 경계선이 어디 있는지 알기가 어려워졌다.75
# “솔직히 말해서 요즘엔 이론이 없으면 그림을 봐도 모르겠어. ”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