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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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그와 달리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존재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기 위하여 걷는다. 아니 길이 거기에 있기에 걷는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그것은 오직 순간의 떨림 속에만 있는 내면의 광맥에 닿음으로써 잠정적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포기하는 행위다. 걷기는 어떤 정신상태, 세계 앞에서의 행복한 겸손, 현대의 기술과 이동수단들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즐기는 센스를 새롭게 해준다. 21

 

* 평소의 모든 활동과 일상적인 임무, 체면상 필요한 일이나 남들에게 신경쓰는 일 따위는 물론, 하던 일마저 손에서 놓아버린다. 길에서 떠나는 사람은 익명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즐기고 함께 길을 가는 동행이나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외에는 더 이상 그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는 입장이 된 것을 즐긴다. 30

 

 * 사실 걷는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다가 거처를 정한다. 저녁에 멈추는 발걸음, 밤의 휴식, 그리고 식사는 매일같이 새롭게 달라지는 거처를 체험적 시간 속에 새겨놓는다. 걷는 사람은 시간을 제 것으로 장악하므로 시간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 33

 

* 걷는 사람은 시간의 부자다. 그에게는 한가로이 어떤 마을을 찾아들어가 휘휘 둘러보며 구경하고 호수를 한바퀴 돌고 강을 따라 걷고 야산을 오르고 숲을 통과하고 짐승들이 지나가는 목을 지키거나 혹은 어느 떡갈나무 아래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 시간의 하나뿐인 주인이다. 34-5

 

* 그래서 로돌프 퇴퍼는 그의 아름다운 저서 <지그자그 여행>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꼬집어 말해준다. '여행을 할 대는 배낭 이외에 활기, 쾌활함, 용기, 그리고 즐거운 마음을 충분히 비축해 가지고 떠나는 것이 매우 좋다.' 49

 

*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페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이렇게 볼 때 걷는 것은 여러가지 풍경들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91

 

* 어떤 지역의 관광수입 증가는 흔히 도로 기반시설의 정비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런 시설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은 보행자를 고려에 넣지 않는다. 그들이 볼 때 보행자란 특별히 할당해놓은 지역에서만 걷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 이외에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로만 생각되는 것이다. 145

 

* 보도는 산책의 온갖 리듬들을 모두 다 수용하는 열린 공간이다. 나이 많은 노인의 느린 걸음이나 어린아이의 정신없는 질주, 서둘러 일터로 가는 직장인의 분주한 발길, 길을 가다가도 호기심을 끄는 것이 있으면 끊임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는 관광객의 무사태평, 일용할 양식처럼 사소한 일상들을 수집하고 저장하는 산책자의 느긋한 걸음. 좁은 보도에서, 수많은 회랑과 복도에서, 이 다양하고 때로는 서로 상충되는 리듬들이 서로 부딪친다.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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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20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메라 들고 하루 종일 걸을 때도 있어요.ㅎㅎㅎ너무 걸어서 고관절에 물차서 아팠던 적도 있었지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