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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는 1920년대 미국의 할렘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유능했던 흑인 여성 작가 중의 한 명으로, 1929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그녀의 대표작이다. 문장은 간결하며 담담하다. 소설을 이해하려면 우선 패싱(Passing)이 어떠한 개념인지 알아야 한다. 얼굴색이 백인과 같거나 비슷한 흑인 혼혈(물라토)들이 인종 차별이 횡횡했던 미국에서 백인 행세를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특히 1920년대에 흑인들의 패싱 인구가 급격하게 팽창했다고 한다. 패싱의 증가는 전후 흑인 중산층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도 관계가 있다.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인물들도 뉴욕 맨해튼 할렘 지역에서 살고 있는 중산층 흑인 여성들이다. 그들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남편을 두고 있으며, 자녀의 교육에 열을 올리고, 흑인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자선 모금 바자회도 여는 등 백인과 남부럽지 않는 생활을 유지한다. 따라서 이러한 흑인 중산층들은 백인만 출입할 수 있는 몇몇 장소에 들어갈 수 없는 제한이 있었을 뿐, 그들만을 중심으로 우아하고 품위있는 삶을 살고 있다.
소설에는 다양한 패싱이 등장한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클레어이다. 클레어는 백인 아버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생김새로만 보아서는 백인이다. 그녀는 부모를 잃은 후 백인 행세를 하며 아름다운 외모로 국제 금융가인 존 벨루와 결혼하여 딸 하나를 둔 여성이다. 그녀는 백인 상류층 여성으로 신분 상승에 성공했으나, 남편은 철저한 인종주의자로서 흑인을 끔찍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위장된 그녀의 삶은 숨이 막히다.
또 다른 여성은 아이린은 완벽한 흑인 중산층 여성으로 사람들은 그녀를 이탈리아 사람, 스페인 사람, 멕시코 사람, 또는 집시로 여길 뿐 결코 흑인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흑인 정체성을 지키고, 흑인 남자와 결혼하지만 편의에 따라 흑인 출입이 금지된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 등을 이용할 때만 ‘패싱’ 행세를 한다. 아이린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안정과 지속성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흐트러뜨리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고, 억제한다.
이 두 여성이 십년이 훌쩍 지나고 시카고의 백인 전용 고급 호텔 옥상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치며 사건은 시작된다. 그들의 교류를 통하여 패싱을 하는 흑인들의 불안함, 소외감, 분노, 절망을 보여준다. 흑인 아이가 태어날까봐 임신 내내 끔찍한 불안에 시달리는 뮬라토 여성들, 흑인에 대한 자부심과 수치심 사이의 양가적 감정, 인종적 편견이 가득한 사회 분위기 등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소외받아야 되었던 그들의 역사를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다. 단지 피부색으로 우월함과 열등함을 나누는 일부(라고 믿고 싶다) 사람들의 생각은 얼마나 저급한가, 금발과 파란 눈동자와 하얀 피부가 가장 아름답고 순수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믿음은 얼마나 맹목적인가. 피부색과 인종을 따지지 않는 시대가 오기는 할까? 나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
# “‘패싱’에 관해서는 정말 알 수 없어요. 우리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용서해요. 우리는 그것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찬미해요. 우리는 묘한 혐오감을 느끼며 그것을 피하면서도 보호해요. ”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