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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13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옥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는 Half of a Yellow Sun 이다. 꼬박 7시간 동안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배고픔도 참았다. 주인공들은 전쟁 피난민이 되어 고생하는 장면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나는 이렇게 따뜻한 곳에 살며 마음껏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 부엌찬장에 놓인 다양한 그릇, 옷장에 걸린 알록달록한 옷들.....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 쓸모없어질 물건들이 주위에 가득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한 여성 작가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나이지리아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었으며 그녀는 그곳에서 부족함 없이, 아니 매우 풍족하게 자라났다. 그러므로 아디치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난한 아프리카 여성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부유한 그녀의 삶을 투영함과 동시에 평범한 나이지리아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최상층과 최하층의 삶을 어찌나 절묘하게 교차시키고, 연결시키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비아프라 공화국’ 을 아는가? 책을 읽으며 처음 비아프라 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문득 바르가스 요사가 쓴 <염소의 축제>가 떠올랐다. 그 책에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32년간 통치한 트루히요라는 독재자가 나오는데, 그런 인물은 당연히 허구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트루히요는 실제 인물이고 도미니카를 32년을 통치하였다. 비아프라 공화국은 남부의 이그보 종족이 나이지리아루터 독립하여 1967년~1970년간 존속했던 아프리카의 실제 나라이고 나는 소설을 통해 참혹했던 나이지리아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이지리아는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지만, 독립 후에도 나이지리아를 자기 영향권에 두고 싶은 영국은 식민 지배에 협조한 북부 출신에게 정부를 넘겨준다. 이에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남부 출신 군인들이 반발하여 쿠테타를 일으키고, 북부 출신들이 이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자 남부는 ‘비아프라 공화국’을 세워 나이지리아로부터 독립하려고 한다. 4년에 걸친 싸움에서 영국을 등에 업은 나이지리아와 달리 비아프라는 기아와 온갖 물품 부족에 시달리다 결국 무너지고 만다.
소설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부 출신의 민족주의자 대학 교수 오데니그보, 그 집의 일꾼인 열세 살 소년 하인 으그우, 오데니그보의 연인 올란나, 올란나의 쌍둥이 언니 카이네네, 카이네네의 연인인 영국인 리처드. 이들이 겪는 사랑과 독립을 위한 투쟁이 소설을 끌고 나간다. 두 쌍의 부부와 으그우, 평화로운 삶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갈등들은 서로를 갈라놓으나 이들은 전쟁을 겪으며 결국 그런 일들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에 대한 용서로 나아간다. 소설에는 완벽한 인물이 없다. 아무리 멋지고 착한 사람에게도 비열한 혹은 약한 모습이 있다. 작가는 나이지리아의 역사뿐만 아니라 사람이 가진 본성까지 날카롭게 묘사한다. 작품엔 군더더기가 없다. 올란나와 카이네네의 감정을 간단한 동작이나 말 한 마디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전쟁의 비참함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우리의 세계와 너무 동떨어져 보여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잘려 나간 딸의 머리를 호리병에 넣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엄마, 머리가 잘려 나간 것도 모른 채 도망치다 쓰러지는 몸뚱이, 군인들에게 강간당하는 여자, 단백질 부족으로 배가 부풀어 오르다 죽어가는 아이, 매일 승리한다고 거짓말을 해대는 라디오, 거리에서 보이는 즉시 전투병으로 끌려가는 어린 소년...
하지만 폭탄이 떨어지고, 공습 경보가 울어대는 중에서도 사랑과 양보가 존재한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키우며, 교육을 시킨다. 얼굴을 씻고, 끼니를 끓이며, 이웃을 돌본다. 어려움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하며, 서로의 아픔을 기꺼이 껴않는다. 민중들은 믿었다. ‘비아프라 공화국’이 승리할 것이라고. 조금만 참고 견디면 독립할 것이라고. 민중들은 군인들에게 자신의 먹을 것을 기꺼이 내어 주고, 군인들의 횡포를 견디었다. 그들은 몰랐다. 지배층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기 바빴다는 사실을. 강대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원조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은 패배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기차역이 없는 마을에 기차역을 만들어 내거나 도시가 정복당한 순서를 바꾸기도 하였지만, 그 시대를 규정할 만한 중요한 사건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그녀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으로 등장인물의 성격을 구상한 적도 없다고 말한다. 아, 세상의 모든 전쟁은 추악하다.
* “너희 외삼촌이랑 결혼하고 나서 난 다른 여자가 나타나서 날 쫓아내지나 않을까 항상 걱정했어. 하지만 너희 외삼촌이 내 삶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어. 내 삶은 내가 바꾸고 싶을 때에만 바뀌는 거야.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외숙모.”
“내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이제 너희 외삼촌도 아주 조심하지.” 40. 2권.
* 우리가 죽을 때 그대는 침묵했나요?
머리에 딱지가 앉은 아이들
예순여덟 명 사진을 그대는 보았나요?
조그만 머리마나 앉았다가 썩은 낙엽처럼
바닥으로 떨어지는 부스럼을?
두 팔은 이쑤시개 같고 배는 축구공 같으며
살이 없어 피부가 늘어지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세요.
단백질 부족증이랍니다......어려운 단어,
너무나 역겨운 단어, 죄악.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어요. 광택이 흐르는
당신이 든 <라이프> 잡지에 사진이 가득하니까요.
그대는 보았나요?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나요?
그리고 돌아서서 그대의 연인이나 아내를 껴안았나요?
아이들 피부는 황갈색의 연약한 찻잎으로 변해서
거미줄 같은 정맥 혈관과 부서지기 쉬운 뼈다귀를 드러낸답니다.
벌거벗은 아이들이 웃어요, 사진사가 사진을 찍고
혼자 떠나지 않기라도 할 것처럼.
302-03.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