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슬픈 외국어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사상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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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루키의 책을 펼친다. 그의 에세이는 소설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김훈 작가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사랑하듯. 무심한 듯한 말투가 좋고, 소소한 자기 생각을 꾸밈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좋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서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마라톤, 재즈, 영화, 여행, 음식 이야기가 주요 소재인 것도 마음에 든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차곡차곡 읽다보니 다른 에세이집에서 읽었던 내용이 또 등장하기도 한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다시 읽어도 즐거우니까. 하루키의 글은 깔깔거리기보다 피식 웃음이 나는 정도인데, 그 정도 웃음을 지속적으로 선사하는 그의 은근한 유머감각은 얼마나 위대한가.

  <이윽고 슬픈 외국어>는 그가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1991년부터 몇 년간 체류하면서 잡지사에 틈틈이 연재하였던 수필들을 모은 것이다(그 기간에 그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태엽 감는 새>라는 두 소설을 완성하였다). 작가는 미국과 일본의 문화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자신이 겪은 일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과연 그렇겠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일본과 한국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일요일 오후, 나른한 몸을 기대고 커피를 마시고 빌 에반스의 음악을 들으며 하루키의 수필을 읽고 있자니 근사한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는 느낌이다. 와우~책 한 권이 주는 힘이란 이토록 굉장하다. 귀여운 하루키 아저씨.

 

* 그리고 프린스턴에 와서 편한 건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경우 이외에는 거의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돈 이야기가 사람들의 화제에 오르는 일이 극히 드물다. 거꾸로 말하면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돈 이야기만 한다는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무라카미 씨는 베스트셀러를 써서 부자니까 이 정도쯤이야” 하는 말을 듣는다.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말해 쓸데없는 참견이다. 나는 1600cc 작은 차를 타고 다녔는데, 여러 사람으로부터 “무라카미 씨는 돈이 있으니까 이런 거 말고 좀 더 비싼 차를 사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내 맘이다. 굳이 비싼 차가 싫은 건 아니지만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에 즐겁게 몰고 다니니까 다른 사람에게 이런저런 말을 들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런 점에서는 “돈? 아아, 그러고 보니 세상에는 돈 같은 것도 있었군요” 하는 프린스턴의 학자인 척하는 분위기는 정말 안심이 된다. 그런 건 위선적이지 않느냐, 이 세상에 돈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지 않느냐, 라는 말을 듣는다면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모두 돈 얘기를 그다지 입 밖에 꺼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면 물질적인 영리추구를 본체만체하면서, “세상이 전부 돈으로만 움직이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하고 고집스레 살아가는 것이   본래 인텔리의 사명이 아닌가, 당연한 자세가 아닌가 하고 문득 생각하곤 한다.

  결국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일본에서는 지적 계급성이라는 것이 거의 해체돼버렸다. 전후 얼마 동안은 그런 것도 어느 정도는 시스템으로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공산주의나 음악다방이나 순수문학 같은 것의 소멸과 호응하듯이 어느 틈엔가 슬며시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지적 계급성이 사러져버리면 계급적 스노비즘 같은 것의 존재 의의도 사라져버린다.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이라 하면, 계급적 스노비즘의 잔존 기억을 대중에게 돌려 ‘베를린 장벽의 파편’처럼 상품으로 조금씩 팔아치우고 있는 거대 유통, 정보 자본뿐이다. 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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