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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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려고 하나보다. 겨울이 마지막 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 눈을 뿌리고, 차가운 바람을 불어넣지만 어디선가 슬금슬금 봄내음이 난다. 금방이라도 땅이 부풀어 올라 새 잎이 쏘옥 솟아날 것 같다. 겨울 내내 희곡과 시를 읽고 있다.

   유진 오닐의 Long day's journey into night(밤으로의 긴 여로) 를 읽었다. 너무도 유명한 책이라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3이제야 읽는다. <느릅나무의 욕망>도 마찬가지. 이 희곡은 오닐이 세번째 부인과 결혼 12주년을 기념하여 그녀에게 바친 작품이다. 책을 펼치면 첫장에 오닐이 부인에게 바치는 헌정사가 들어있는데, 얼마나 멋진가. ‘사랑하는 카롯타, 당신과 지내온 12년 간은 내게 있어 빛으로의, 사랑으로의 여행이었소. 당신이 내 감사의 뜻을, 그리고 내 사랑을 알아주리라 믿소.’ 이것보다 더 근사한 선물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 게다가 이 작품으로 유진은 사후에 퓰리처상까지 받았으니 말 다했다. 극의 내용은 유진의 자서전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의 사후 25년 후에 발표하도록 했으나 미망인에 의해 1995년 발표되었다.

   유진의 삶을 잠깐 살펴보자면, 오닐의 아버지 제임스 오닐은 어릴 때 아일랜드 출신의 농민이었던 부모와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나 그의 아버지는 미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족들을 남겨둔 채 홀로 아일랜드로 건너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어린나이에 가장의 책임을 진 그는 기계공으로 일하면서 혹독한 생활고에 시달렸기 때문에 돈에 집착하는 성격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한 기회에 연극배우가 되었고 그 방면에서 꽤 성공했다. 그러다 엘란 퀸랜이라는 수줍음 많고 감수성 예민한 여인을 만나 결혼하여 세 아들을 얻었는데 그중 한 아들은 죽고 막내 아들이 유질 오닐이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순회공연을 다니며 연극에 관심을 가지던 오닐은 8살 때 어머니가 마약중독자가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는 비뚤어진 성격이 되었다.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형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방탕한 생활을 하던 그는 1996년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으나 곧 퇴학당하고 니체 등에 심취했다. 그는 부두 노동자, 선원 등의 생활을 하면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이 때의 경험들은 후에 그의 작품(지평선 너머 등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방랑생활을 끝내고 지방신문기자로 일하던 중 페결핵에 걸렸고 요양원에서 치료를 한다. 그 뒤로 작품창작에 열중했고 세번의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1953년 그의 세번째 부인에게 선물했던 <밤으로의 긴 여로>의 완간을 보지 못하고 호텔방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삶은 이 작품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한 가족의 하룻동안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분위기는 절망과 체념이다. 돈에 집착이 강하고 보수적인 아버지 제임스 티론, 남편의 인색함과 직업상의 이유로 이리저리 떠돌아야 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가정을 가지지 못한 어머니 메어리. 그녀는 점점 소녀시절을 그리워하며 신경이 분열되어 가는 아편중독자이다. 반항적이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제이미, 예민한 성격에 염세적 사고방식을 지닌 폐결핵 환자 에드먼드. 가족들은 현재 상태를 비관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린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용서하지 못하는 애증의 비극이 작품을 감싸고 있다.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던 과거가 극이 진행됨에 따라 밝혀지고 그들의 절망감은 점점 심해진다. 어머니는 아편 주사를 맞고 예전 소녀 시절로 돌아간 착각에 빠져 독백을 하고, 아들과 아버지는 술에 취해 그런 어머니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극이 끝난다.

    극은 총 4막으로 되어 있다. 1막은 1912년 8월의 어느 아침 8시 30분 티론의 여름용 별장 거실이다. 2막 1장은 12시 45분 경, 2장은 1장보다 30분쯤 후이다. 3막은 저녁 6시 30분 경이며 4막은 한밤중쯤이다.

   희곡을 읽으며 각자의 처지와 상황들이 이해가 되었다. 어렸을 적의 가난함 때문에 돈에 집착하는 제임스도 불쌍했고-자식들에게까지 심하게 인색하긴 하다. 예를 들면 에드먼드가 폐렴에 걸려 요양원에 들어가야 되는데 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립요양원을 권하는 장면등- 평생을 여기저기 떠돌며 호텔에 머물러야 했던 메어리도 안쓰러웠다. 그녀는 수녀가 되기를 원했지만 제임스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점점 삶에 지치면서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 그리하여 현실에 대한 탈출구로 아편을 선택하는 것이다. 구두쇠 아버지와 아편 중독자 어머니를 둔 제이미와 에드먼드.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마음 아프고 화가 났을까. 그들의 빈정대는 말투와 제멋대로 사는 것은 부모에게 자포자기해서이다.

   이 작품은 한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무리 행복한 가정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행이 있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해 매일 늦게 들어올 수도 있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치맛바람을 날리며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압력을 넣는 어머니가 있고, 자식들을 온통 학원에 맡기고 관심을 전혀 갖지 않는 어머니일 수도 있다. 오락만 좋아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아들도 있고, 부모에게 거짓말만 하고, 멋내기를 좋아하는 딸일 수도 있다. 도박에 빠진 할아버지나 다단계에 속은 할머니가 있을 수 있고, 이혼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삼촌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가족은 너무 많고, 모두 긴밀하게 엮여져 있기 때문에 나 하나 잘한다고 해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의 정의를 찾아보니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이라고 나와 있다. 일상에서 충분한 만족을 누리려면 방법은 하나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 욕심이 생기면 만족할 수 없다. 50평대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70평대를 원한다. 에쿠스를 모는 사람은 아우디가 타고 싶다. 버리지 않고서는 만족할 수 없다. 가족이나 친구의 행동을 판단하고 고치려고 하면 기쁨을 느낄 수 없다. 내 맘대로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야 한다. 마음 비우기. 그래서 어렵다.

 

# 티론 : 잘 돌아왔다. 혼자 있자니 쓸쓸하더구나. 아니 그래, 이 밤중에 아비를 혼자 내버려 두고 나가 버리는 자식이 어디 있니? 지각도 없지. 불 끄라고 하지 않았느냐! 댄스 파티를 하는 줄 아니? 이런 한밤중에 온통 휘황찬란하게 불을 켜두다니, 다 돈 낭비야

에드먼드 : 휘황찬란하다고요? 겨우 전구 한 개에요, 한 개. 자기 전까지는 현관에 불을 켜 놓는 법이라구요. 하마터면 모자걸이에 무릎을 부딪힐 뻔했어요.

티론 : 이 방 불이 충분히 거기까지 비친다. 말짱한 정신이면 문제없어. 취했으니까 그렇지

애드먼드 : 말짱하면요? 전 환한 게 좋아요.

 

# 메어리 : 전 수녀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천주님의 부르심을 믿는다고요. 자신이 생기도록, 가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마리아님께 기도했다고 말씀드렸어요 -생략- 그랬더니 원장님은, 단순한 공상이어서는 안된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그렇게 자신이 있거든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다른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고 파티나 무도회에도 참석해서 즐겁게 지내는 가운데 마음을 시험해봐. 그렇게 일이년을 지내고 나서도 자신이 있거든 돌아와. 그때 다시 의논하자꾸나’ -생략-이건 졸업하는 해 겨울의 일이었어요. 그리고 봄이 되자 어떤 사건이 생겼어요. 그래요, 생각나는군요. 제임스 티론과 사랑에 빠져 얼마 동안은 행복했어요. (그녀는 슬픈 꿈을 꾸듯 앞을 응시한다. 티론은 앉은 채 몸을 조금 꿈틀거린다. 에드먼드와 제이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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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 Endgame : A Play in One Act
사무엘 베켓 지음, 최경룡.김용성 옮김 / 동인(이성모)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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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 베켓의 Endgame(막판)을 읽었다. 베켓은 <고도를 기다리며>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남자가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린다는 내용인데 그 고도가 무엇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관객들은 사실주의극에서 느끼지 못했던 참신함을 느꼈고, 베켓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었다. 사람들이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라는 질문에 베켓은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작품은 난해하다고 여겨졌지만, 희곡들을 읽다보니 이제 조금은 익숙하게 다가온다. 베켓의 글은 헤롤드 핀터와 비슷한 것 같다. 둘 다 간결한 문체를 쓰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 수도 없다.

   <막판> 또한 난해한 극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네명의 인물들은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삷을 살고 있다. 장님인 햄이 등장하고, 햄의 아들이자 하인과 같은 존재인 클로브가 있다. 클로브는 햄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도망가려 하나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햄의 부모인 내그와 넬은 쓰레기통에 살며 햄에게 의지한다. 이들은 무의미한 행동과 말을 반복한다. 그들의 언어는 분절되었다. 베켓이 이 극을 통하여 우리하게 전달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시인은 시를 읽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 시는 잘못 쓰여진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담 이 극은 잘못 쓰여진 것인가? --

   햄과 클로브의 반복된 대화는 현대인이 집과 직장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나? 햄에게 학대를 받으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클로브의 모습은 폭력을 행사하는 배우자와 부모를 증오하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 걸까? 쓰레기통 안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외치는 내그와 넬은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된 노인들을 묘사하는 것일까? 인간은 희망을 바라지만 결코 희망은 없다는 것을 베켓은 말하고 싶은 것일까?

 

# 햄 : 그건 그렇고 기분이 어때?

클로브 : 괜찮아요.

햄 : 기분이 정상이야?

클로브 : 괜찮다고 말하잖아요.

햄 : 난 좀 이상해. 클로브

클로브 : 예.

햄 : 충분히 갖지 않았어?

클로브 : 예! 근데 뭐 말입니까?

햄 : 이....이.....것 말이야.

클로브 : 전 항상 갖고 있었어요. 안가지고 계세요?

햄 : 그렇다면 그걸 바꿀 이유는 없네

클로브 : 끝날지도 몰라요. 평생동안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이야

햄 : 나 좀 준비시켜 줘. 가서 이블을 가져와. 클로브!

클로브 : 예

햄 : 더 이상 먹을 거 안 줄 테다

클로브 : 그러면 우린 죽어요

햄 : 죽지 않을 만큼만 주지. 넌 항상 배고플 거야

클로브 : 그러면 우리는 죽지는 않을 거에요. 제가 가서 이불을 가져올게요.

햄 : 안돼! 매일 너한테 비스킷 하나씩 줄거야. 한개하고 절반.

너는 왜 나와 함께 있는 거지?

클로브 : 갈 곳이 없으니까 그렇죠

햄 : 넌 항상 내 곁을 떠나려고 해

클로브 : 저도 노력중이에요.

햄 : 넌 나를 사랑하지 않아

클로브 : 아니에요

햄 : 한때는 나를 사랑했었지

클로브 : 한 때!

 

# 햄 : 내 자리로 돌아가!(클로브는 중앙으로 의자를 민다)

여기가 내 자리야?

클로브 : 예, 여기가 당신 자리에요.

햄 : 내가 정 중앙에 있어?

클로브 : 재 볼께요

햄 : 대충! 대충!

클로브 : (의자를 약간 움직이며) 여기요!

햄 : 나는 대략 중간에 있지?

클로브 : 그런 것 같아요

햄 : 그런 것 같아요! 나를 정 중앙에 놓으란 말이야!

클로브 : 가서 줄자를 가져올께요/

햄 : 대강! 대강! (클로브는 의자를 조금 움직인다)

바로 중앙에 갖다 놔!

클로브 : 됐어요!

햄 : 난 왼쪽으로 조금 더 멀리 간 것 같아(클로브는 의자를 약간 움직인다)

이젠 오른쪽으로 조금 더 멀리 간 것 같아 (클로브는 의자를 약간 움직인다)

앞쪽으로 조금 더 나온 것 같아 (클로브는 의자를 약간 움직인다)

이제 조금 더 뒤로 간 것 같아 (클로브는 의자를 약간 움직인다)

거기 서 있지마.(바꿔 말하면 의자 뒤에 말이야) 등골이 오싹하구만

(클로브는 의자 옆에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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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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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 밀러(1915-2005)의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고, 영화로도 보았다. 1985년에 만들어진 영화에서 윌리는 더스틴 호프만이 맡았는데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다. 아서 밀러는 한때 마를린 먼로와 결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때 언론들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정신과 뛰어난 육체의 결합’이라며 난리를 피웠다. 밀러와 나이차이가 엄청 났던 먼로는 밀러를 연인이자 아버지로 여겼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은 4년 만에 파탄이 났고, 그녀는 나중에 자살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의 유명한 작품이다. 대충 내용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읽고 나니, 마를린 먼로가 밀러에게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좋은 작품이라 더 부연 설명할 것도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아버지 윌리가 불쌍해 눈물이 났다. 내용은 간단하다. 극은 하루동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때 윌리의 회상장면이 계속 등장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주인공은 아버지 윌리, 어머니 린다, 큰아들 비프, 작은아들 해피이다. 윌리는 한평생 세일즈맨으로 여러 도시들을 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그가 잘나갔던 젊은 시절에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큰아들 비프는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풋볼 선수로 활약할 터였다. 윌리는 두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특히 비프를 끔찍히 사랑한다. 자식들을 대범하게 키운다며 비프가 럭비공이나 물건들을 훔쳐와도 괜찮다고 하고, 비프가 무면허로 운전을 해도 개성이 있다고 칭찬한다. 오히려 삼촌 벤이 방문하자 자식들을 자랑하려고 그들에게 목재와 모래를 훔쳐오라고 시키기도 한다. 그들을 훈계하지 않고 모든 행동들이 최고라고 마냥 치켜만세운다. 옆집에 사는 찰리의 아들 버나드는 윌리에게 비프가 수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낙제할 거라며 공부를 시키라고 설득하나 윌리는 비프가 낙제할 리가 없다며 오히려 모범생인 그를 놀린다. 비프는 결국 수학에 낙제하고 다급하게 출장을 간 윌리를 찾아 보스턴으로 온다. 그러나 보스톤 호텔방에서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비프는 충격을 받는다. 윌리는 너무 외로워서 그랬다고, 저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비프는 ‘아버지는 위선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비프는 어느 대학도 들어가지 못하고 집을 떠나 도둑질을 하여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며 목적없는 삶을 산다.

   미국 대공항이 터지고, 윌리는 더이상 예전처럼 돈을 벌어올 수가 없다. 그에겐 아직 갚아야 할 할부금이 조금 남아있다. 해피는 여자나 밝히는 바람둥이가 되었고 비프는 34살이 되었지만 아무 직장 없이 빈둥거리며 떠돌다 집에 잠깐 들린다. 작품은 비프가 집에 들렸을 때 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다. 윌리는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너는 좋은 아이란다. 너는 굉장한 사람이 될 거다. 아빠가 믿으니까” 윌리는 끊임없이 진실을 부정하며 비프에게 희망을 건다. 비프는 아빠의 잘못된 교육으로 누군가에게 명령 듣는 것도 싫어하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끈기도 없지만 윌리는 비프가 언젠간 성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찰리의 아들은 변호사가 되었는데 왜 비프는 그렇지 않은지 이해할 수 없다. 회사에서 쫒겨난 빌리는 찰리가 일자리를 주겠다는 것도 거절한다. 남에게 기죽기 싫어하여 으스대고, 자존심 강한 성격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윌리는 자꾸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정신분열 속에서 성공한 자신의 형 벤을 본다. 아버지가 미쳤다고 말하는 두 아들들에게 어머니 린다는 화를 내며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아들들의 성공만을 바랬던 윌리. 그리고 자신의 꿈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윌리. 그는 한밤중에 마당에 씨앗을 심으며 다시 한번 새로운 꿈을 재촉한다. 그리고 비프의 사업 자금을 대주기 위해, 차를 몰고 나가 자살한다. 보험금을 주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윌리는 죽기까지 꿈을 버리지 못했다. 비프가 자신은 아버지가 생각하는 그런 아들이 아니라고, 제발 현실을 깨달으라고 울며 소리치지만 윌리는 너는 성공할 거라고 끝까지 주장한다. “제발 절 좀 놓아주세요. 예? 더 큰일이 나기 전에 그 거짓된 꿈을 태워 없애버릴수는 없나요? ”

   그가 자살한 날은 모든 할부금을 다 갚고 드디어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가지게 되는 날이었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던 윌리. 그러나 그는 잘못 가르쳤다. 그는 자신은 최고의 세일즈맨이 될 것이고, 아들들에게 늘 큰 꿈을 심어주니 그들이 잘못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과거에 묻혀 살았다. 그들이 공부에 최선을 다하도록 인도하는 대신, 무조건 잘한다고 칭찬하고 치켜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가정들의 모습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의 ‘성공’을 위한다. 이때의 성공을 측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자식들이 성공시키기 위해서 부모들은 거침이 없다. 맞벌이를 하고, 빚을 내어 유학을 보내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아낌없이 사준다. 누군가 교육을 그렇게 시키면 안된다고 충고하면, 당신이나 잘하라며 비웃는다. 그들은 자식들에게 모든 물질을 다 쏟으며 헌신하기 때문에 자식들이 기대에 부응해 ‘당연히 성공’할 것이고, 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윌리처럼. 그리하여 조금 버릇이 없어도 눈감아 주고, 바른 길보다는 쉬운 길로 가게 하고, 착한 사람보다는 약은 사람이 되기를 가르친다.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정서적인 교류 대신 물질적인 교류로 맺어지고 있다. 이들이 자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또 얼마나 많은 윌리가 생겨날 것인가. 윌리의 꿈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잘못되었다.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윌리.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무시를 당하지만 아들들에게는 자신이 최고의 세일즈맨이라고 허세를 부려야 했던 윌리. 아서 밀러의 날카로운 눈은 시대를 꿰뚫어 본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윌리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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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정전 - 할인행사
왕가위 감독, 장국영 외 출연 / 우리엔터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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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루고 미루다 뒤늦게 왕가위의 <아비정전>을 보았다. 제목만 봐서는 도저히 무슨 얘기지 알수가 없다. 영어 제목은 Days of being wild이다. 훨씬 낫군. 누군가 와일드한 나날들을 보낸단 말이지?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스타일리쉬하다. 방금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그래픽 디자인과를 졸업하였다고 나와 있다. 어쩐지...카메라는 대부분 초라하고 낡은 홍콩의 뒷골목이나 방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화보처럼 보인다. 주인공들의 대사와 카메라가 얼굴을 비추는 각도와 조명, 심지어 음악까지 완벽하다. 시시껄렁한 사랑 이야기도 그의 손을 거치면 아름답게 피어난다. 그런 면에서는 홍상수 감독과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본 왕가위 영화들을 생각해보니 <화양연화>, <해피 투게더>, <중경삼림>이다. 일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만 쏙쏙 골라 본 셈이군. 그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배우들은 장국영, 양조위, 장만옥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모두 ‘떴다’. 그리고 배우들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요즘 작품들을 보니 외국 배우들과 영화를 많이 찍고 있다. 프랑스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가 왕가위 감독 작품이었더니. 세상에.

   그동안 본 4편의 영화 중 <화양연화>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중경상림>에서 양조위가 비누와 수건에게 말을 거는 장면을 제외한다면. 왕가위 감독의 가장 위대한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이 4편 중에서 하나를 언급한다. 글쎄, 가장 좋은 작품이 뭔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지만, <화양연화>에서 나왔던 풍경들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특히 장만옥이 냄비를 들고 국수를 사러 홍콩 골목길을 걸을 때, 아름다운 그녀의 아울렛과, 빗소리, 국수가 담겨 있는 냄비, 좁은 골목길의 계단, 영화를 보고 나서 얼마나 홍콩에 가고 싶던지. 홍콩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국수집이 보이면 빠짐없이 들어가 국수를 먹고 싶었다. 결국 홍콩에 갔지만 뒷골목에서 국수를 먹지는 않았다. 막상 길거리에 앉아 먹으려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은 늘 중심에 사랑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들은 헤어지고, 죽고, 그리워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쓸쓸하고 허무한 사랑, 궁극적으로는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삶을 차갑고 냉소적인 시선이 아닌,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유치한 대사들도 진실되게 느껴진다. 배우들은 대부분 말이 적다. 감독은 대화보다는 나레이션, 음악, 움직임, 시선을 통하여 관객에게 다가간다.

   <아비정전>의 주인공은 유덕화, 장국영, 장만옥이다. 아비(장국영)은 어렸을 때 입양되었고 양어머니로부터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삐딱하게 살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여자나 꼬시는 청년이다. 그에게는 아무 계획도 없고, 또 그럴 의욕도 없다. 수리진(장만옥)은 극장 매표소에서 일하는 아가씨인데, 아비가 낭만적인 말로 꼬셔서 결국 그의 연인이 된다.

 

아비 :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까

아비 : 오늘 밤 꿈에 날 보게 될꺼에요

(다음날) 수리진 : 어제 밤 꿈에 당신 본 적 없어요,

아비 : 물론이지 한숨도 못 잤을테니

 

   역시 카사노바는 말을 잘한다. 그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아비에게 결혼하자고 하나, 아비는 싫다고 한다. 아비에게 사랑은 그 한순간일 뿐이다. 수리진은 상처받고 떠나나 그를 잊지 못해 힘들어한다. ‘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아비 집 근처를 순찰하는 한 경찰관(유덕화)이 그의 집 앞에서 서성이는 수리진을 발견하고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경찰관은 수리진을 사랑하게 되나 그녀는 알지 못한다. 루루는 전문 댄서로 아비와 우연히 만나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아비가 독신주의자이고,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친어머니를 늘 만나고 싶었던 아비는 마침내 양어머니가 친어머니의 주소를 알려줘, 루루를 버려두고 필리핀으로 떠난다. 경찰관은 예전부터 원했던 선원이 되어 출항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간다. 필리핀으로 간 아비는 친어머니가 자신을 만나길 거부하자, 필리핀 차이나타운을 떠돌며 하루하루 건달처럼 살아간다. ‘가정부는 어머니가 집에 없다고 했지만 내가 집을 나설 무렵 뒤에서 누군가 날 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다시 돌아오진 않겠지만 단 한번이라도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싫으시다면 나도 내 얼굴 보여주지 않는다.’

   우연히 선원이 된 경찰관과 만난 아비는 함께 식사를 하고, 아비는 그 식당에서 불법 여권을 받으려고 한 남자를 기다린다. 그는 거래를 하다 돈을 주지 않고, 상대방을 칼로 찔러 여권을 빼앗고 도망친다. 엉겹결에 같이 위험에 처하게 된 경찰관은 그와 함께 기차에 오른다. 경찰관이 잠깐 다른 사람에게 다음 정차역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러 간 사이, 아비는 아까 자신이 찔렀던 남자 동료의 총에 맞는다. 그는 죽어가며 경찰관과 이야기를 주고 받고, 경찰관이 수리진을 기억하냐고 묻자, 그는 나중에 그녀를 만나면 자신은 다 잊었다고 전해주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비는 죽는다. 경찰관은 배를 타 선원이 되고, 수리진은 경찰관에게 전화를 걸지만 아무도 받는 사람은 없다.

   영화를 보고 나니, 쓸쓸한 마음이다.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 때문에 아비는 여자들을 쉽게 버리고 상처를 주는 것인가? 인생을 자포자기한 아비가 불쌍하였다. 그의 마음속은 친엄마와 양엄마에 대한 애증으로 가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어머니의 사랑을 얻지 못했다. 방금 장국영의 프로필을 보니, 그의 실제 삶과도 비슷하다고 나온다.

  영화에서 장국영이 속옷 차림으로 맘보 춤을 추는 장면은 유명하다. 이때 나오는 음악이 ‘Maria Elena’인데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멜로디이다. 자살로 생을 마친 장국영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건 웃지도 못하겠고.

   아비정전 비하인드 스토리. 다른 블로거의 글을 보니, 왕가위 감독은 당시 홍콩 뒷골목의 자금을 지원받아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그들은 피튀기며 총싸움하는 전통적인 느와르 필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당대 배우였던 사람들이 내노라 하는 홍콩 느와르 스타였기 때문에. ‘유덕화, 장국영, 양조위, 장학우’ 게다가 제목까지 being wild였으니. 그러나 영화가 개봉되자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주윤발의 쌍권총 액션이 아시에서 유행을 끌고 있었는데, 이 영화는 마지막에 장국영이 총 한 발 맞아 죽는 장면 외에는 폭력적인 면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환불을 요청했고, 흥행에 참패했다. 조폭들을 열이 받아 왕가위 감독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왕가위는 필리핀에서 2년간 숨어 지내야 했다는 놀라운 뒷이야기가 있다. 영화 맨 마지막에 양조위가 등장하는데, 이는 속편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속편은 커녕 감독이 죽게 생겼으니. 나중에서야 아비정전이 재평가를 받아 새롭게 태어났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로 여겨졌다고 하니, 정말 재밌는 세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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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 아웃케이스 없음
톰 포드 감독, 니콜라스 홀트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영화 <싱글맨>(2009)을 보았다. 톰 포드 감독, 콜린 퍼스, 줄리앤 무어, 니콜라스 홀트, 매튜 구드 등 유명 영국 배우들이 총 출연한다. LA에 사는 동성애자인 영국 교수가(콜린퍼스) 16년간 함께했던 파트너(매튜 구드)를 자동차 사고로 잃고 하룻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톰 포드는 세계적인 게이 디자이너로 이 영화가 첫 데뷔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퍼스가 입는 수트와 와이셔츠, 안경이나 반지 등 소품들이 무척 멋있다. 퍼스는 우리에게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착한 남자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검은 뿔테를 쓴 교수 역할인데 역시나 착해 보인다.    

    남들이 보기엔 완벽한 조지는 애인을 잃고 힘들어하다가 어느날 아침 눈을 뜨자 자살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권총을 준비하고, 장례식 때 입을 자신의 수트도 미리 챙겨놓는다. 그러나 그는 하루를 보내면서 순간순간 삶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입술을 예쁘게 칠한 조교, 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마트에서 만난 멋진 스페인 남자, 자신을 기다리는 오랜 친구 찰리(줄리안 무어), 그리고 자신을 무척 따르는 제자 케닌(매튜 구드). 조지의 눈에 세상은 잿빛이지만 이들을 만날 때마다 색깔은 컬러로 변한다. 카메라는 사람들의 눈을 클로즈업한다. 밤이 되고 집에 돌아온 조지는 침대에서 자살하려고 입에 권총을 넣으나 앉은 자세가 불편해 이리저리 자세를 바꾼다. 베개를 뒤에 대고, 욕실에도 들어가보고, 침낭까지 가져다놓지만 결국 만족할 만한 자세를 발견하지 못해, 맥주를 마시고 다시 시도해 볼 요령으로 바에 간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제자 케닌을 만나고 그와 함께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 물에 흠뻑 젖은 그들은 조지의 집에서 샤워를 하고 함께 맥주를 마시다 잠든다. 새벽 3시쯤 잠을 깬 퍼스는 케닌이 소파에서 자신의 권총을 품에 앉은채 자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 때 조지는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이렇게 완벽히 명확한 적은 드물었다. 짧은 순간들이 지나가고 침묵이 소음을 뒤덮는다. 생각보다 느낄 수가 있다. 사물은 매우 선명하고 세상은 너무 새롭다. 실재라고 한 것처럼 순간을 지속시킬 순 없다. 내가 붙잡으려 하지만 다른 것들처럼 희미해질 뿐. 순간을 즐기며 삶을 사니 그게 날 현재로 되돌려 놓는다. 이제야 모든 것은 정확히 의도했던 대로 되는 것임을 안다.’

    찰스에게 썼던 작별 편지를 불에 태우고 침대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때 심장마비가 찾아오고 그는 죽는다. 살기로 결심했을 때 죽음이 찾아오는 이 아이러니. 손톤 와일더의 <우리읍내>가 생각난다. 만약 내가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하루를 보낸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초라한 삶이어도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조지의 오랜 친구로 나온 찰스 역은 줄리안 무어가 맡았는데 보는 내내 누군지 몰랐다. 예전의 순수한 모습은 다 어디로 갔나. 여전히 매혹적이나 내가 기억하던 줄리안 무어는 아니다. 니콜라스 홀트와 매튜 구드의 눈빛과 얼굴은 너무 매혹적이라, 남자가 봐도 반할 만하겠다. 영화는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그리고 있으나, 그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보편적인 사랑과 죽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배우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들을 너무 멋있게 찍어 담배 소비를 권장하고 있다. 또한 럭키 스트라이트, 진토닉, 위스키를 얼마나 맛있게 마시는지. 또 음악은 어찌나 좋은지-stillness of mind- 집들은 또 얼마나 호화로운지. 게다가 매력적인 배우들까지. 영상미가 넘쳐난다.

   디자이너 출신이라 그런지 모든 요소에 아름다움을 부과하려고 애를 쓴 느낌이다. 비극으로 끝나기 때문에 결말이 전혀 마음에 들지는 않지는 미학적으로는 꽤 괜찮았다. 영화 제목만 보고는 당연히 이성애자들의 사랑이고, 사랑하는 여인을 잃어 슬퍼하는 남자의 삶을 그린거라고 추측했는데. 역시 편견은 무섭구나. 외국인 친구를 제외하면 내 주위에는 게이 친구들이 없다. 아니면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수도. 삶은 사랑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미워하고 비난할 시간이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우리 삶. 감사하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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