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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 아웃케이스 없음
톰 포드 감독, 니콜라스 홀트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영화 <싱글맨>(2009)을 보았다. 톰 포드 감독, 콜린 퍼스, 줄리앤 무어, 니콜라스 홀트, 매튜 구드 등 유명 영국 배우들이 총 출연한다. LA에 사는 동성애자인 영국 교수가(콜린퍼스) 16년간 함께했던 파트너(매튜 구드)를 자동차 사고로 잃고 하룻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톰 포드는 세계적인 게이 디자이너로 이 영화가 첫 데뷔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퍼스가 입는 수트와 와이셔츠, 안경이나 반지 등 소품들이 무척 멋있다. 퍼스는 우리에게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착한 남자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검은 뿔테를 쓴 교수 역할인데 역시나 착해 보인다.
남들이 보기엔 완벽한 조지는 애인을 잃고 힘들어하다가 어느날 아침 눈을 뜨자 자살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권총을 준비하고, 장례식 때 입을 자신의 수트도 미리 챙겨놓는다. 그러나 그는 하루를 보내면서 순간순간 삶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입술을 예쁘게 칠한 조교, 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마트에서 만난 멋진 스페인 남자, 자신을 기다리는 오랜 친구 찰리(줄리안 무어), 그리고 자신을 무척 따르는 제자 케닌(매튜 구드). 조지의 눈에 세상은 잿빛이지만 이들을 만날 때마다 색깔은 컬러로 변한다. 카메라는 사람들의 눈을 클로즈업한다. 밤이 되고 집에 돌아온 조지는 침대에서 자살하려고 입에 권총을 넣으나 앉은 자세가 불편해 이리저리 자세를 바꾼다. 베개를 뒤에 대고, 욕실에도 들어가보고, 침낭까지 가져다놓지만 결국 만족할 만한 자세를 발견하지 못해, 맥주를 마시고 다시 시도해 볼 요령으로 바에 간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제자 케닌을 만나고 그와 함께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 물에 흠뻑 젖은 그들은 조지의 집에서 샤워를 하고 함께 맥주를 마시다 잠든다. 새벽 3시쯤 잠을 깬 퍼스는 케닌이 소파에서 자신의 권총을 품에 앉은채 자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 때 조지는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이렇게 완벽히 명확한 적은 드물었다. 짧은 순간들이 지나가고 침묵이 소음을 뒤덮는다. 생각보다 느낄 수가 있다. 사물은 매우 선명하고 세상은 너무 새롭다. 실재라고 한 것처럼 순간을 지속시킬 순 없다. 내가 붙잡으려 하지만 다른 것들처럼 희미해질 뿐. 순간을 즐기며 삶을 사니 그게 날 현재로 되돌려 놓는다. 이제야 모든 것은 정확히 의도했던 대로 되는 것임을 안다.’
찰스에게 썼던 작별 편지를 불에 태우고 침대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때 심장마비가 찾아오고 그는 죽는다. 살기로 결심했을 때 죽음이 찾아오는 이 아이러니. 손톤 와일더의 <우리읍내>가 생각난다. 만약 내가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하루를 보낸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초라한 삶이어도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조지의 오랜 친구로 나온 찰스 역은 줄리안 무어가 맡았는데 보는 내내 누군지 몰랐다. 예전의 순수한 모습은 다 어디로 갔나. 여전히 매혹적이나 내가 기억하던 줄리안 무어는 아니다. 니콜라스 홀트와 매튜 구드의 눈빛과 얼굴은 너무 매혹적이라, 남자가 봐도 반할 만하겠다. 영화는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그리고 있으나, 그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보편적인 사랑과 죽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배우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들을 너무 멋있게 찍어 담배 소비를 권장하고 있다. 또한 럭키 스트라이트, 진토닉, 위스키를 얼마나 맛있게 마시는지. 또 음악은 어찌나 좋은지-stillness of mind- 집들은 또 얼마나 호화로운지. 게다가 매력적인 배우들까지. 영상미가 넘쳐난다.
디자이너 출신이라 그런지 모든 요소에 아름다움을 부과하려고 애를 쓴 느낌이다. 비극으로 끝나기 때문에 결말이 전혀 마음에 들지는 않지는 미학적으로는 꽤 괜찮았다. 영화 제목만 보고는 당연히 이성애자들의 사랑이고, 사랑하는 여인을 잃어 슬퍼하는 남자의 삶을 그린거라고 추측했는데. 역시 편견은 무섭구나. 외국인 친구를 제외하면 내 주위에는 게이 친구들이 없다. 아니면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수도. 삶은 사랑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미워하고 비난할 시간이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우리 삶. 감사하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