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빌 - [초특가판]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니콜 키드먼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보문고에서 석지영 교수님이 쓴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를 훑어보았다. 와우~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서울대를 졸업한 의사 아버지와 이대를 졸업하신 어머니. 6살 때 가족 전체가 이민을 갔고 발레, 피아노를 배우며 인내심과 훈련하는 방법을 알게 된 그녀. 예일대를 졸업하고 프랑스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다시 하버드 법대에 진학. 졸업 후 아시아 최초 하버드 법대 종신형 교수로 임명되었다. 책을 읽다보니 그녀의 노력도 있었지만 그녀의 말처럼 풍족한 집안 환경과 행운도 따랐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도 했었고 두 아이를 둔 엄마이자 교수인 석지영 교수의 삶 참 멋지구나. 더 깊게, 끈질기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덴마크 출신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Dogville) 보았다. 니콜 키드먼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라 더욱 관심이 갔다. 이 영화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다. 우선 세트를 연극무대처럼 꾸며놓았다. 록키 산맥에 위치한 작은 도그빌이라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것인데 집들은 바닥에 그려진 선으로 표시된다. 배우들은 가상의 문을 닫고 열며, ’모세‘라는 개 역시 멍멍거리는 소리와 바닥에 그려진 개 모양의 그림만 나올 뿐이다. 집들이 모두 선으로만 표시되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도그빌 마을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줄거리는 네이버에서 퍼옴) 가난하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도그빌에 어느날 밤 그레이스(니콜 키드먼)가 나타난다. 그녀는 지금 마피아에서 쫒기고 있다. 밤늦에 혼자 산책을 하던 톰은 총소리를 듣고 그녀를 발견한다. 그녀가 지금 쫒기고 있다는 사실을 안 그는 그녀를 숨겨주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녀를 그곳에서 살게 한다. 그레이스는 친절하고 마을 사람들의 잡일을 도와주어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좋아한다. 그레이스 또한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좋아하며 자신을 돌봐주는 톰에게 애정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경찰관이 그레이스의 사진을 벽에 붙이고, 마을 사람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레이스에게 현상금까지 붙자 사람들의 태도는 점점 변한다. 그녀를 숨겨주는 댓가로 그녀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고, 마을 남자들은 그녀를 밤마다 성폭행한다. 견디다 못한 그레이스는 도망가려 하나 실패하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개 목걸이를 씌우는 비정상적인 행동까지 한다. 그레이스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들킨 톰은 그레이스를 마피아에게 신고하고, 마을 사람들은 마피아를 기다린다. 현상금을 받을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는 그들 앞에 마피아가 나타난다. 여기서 반전. 그레이스는 사실 마피아 두목의 딸이었는데 사업을 물려받기 싫어 도망친 것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하고 마을을 한바퀴 둘러본다. 더러운 세상을 피해 시골로 숨었지만, 결국 모든 인간은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마을 사람들 모두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마을이 모두 불타고, 오직 개 모세만 살아남는다. 그녀는 모세를 죽이지 말라고 하며 영화는 끝난다.

   리뷰들을 읽어보니 그레이스는 신을 상징하고, 인간의 악을 벌하기 위해 왔다는 글들을 보았다. 굳이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인간의 나약함, 이기심, 악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씁쓸한 영화이다.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는 비열함. 나는 너보다 도덕적이라는 우월감. 욕망을 참지 못하는 이기심을 마을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통하여 잘 보여주었다. 영화지만 연극적 요소를 너무나 잘 살린 영화이다. 카메라는 쉼없이 흔들리며 공포에 질린 그레이스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한다. 마을 사람들의 옷과 얼굴은 더럽다. 마을 사람들 중 단 한명이라도 그레이스의 편일 수 없었을까? 감독은 모든 사람은 변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익을 다투는 인간보다 차라리 동물이 더 나은 존재인가? 도그빌을 보며 나는 절대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자신이 없다. 나 또한 오만하고,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이니까.

  좋은 영화를 보았다. 인간 내면을 보여주는 면에서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홍상수 감독은 그중에서도 주로 남자들을 더 비꼰다. 남자들의 직업은 교수, 감독, 작가 등이 많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일반인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또 일반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디를 가나 자신을 숭배하는 팬이나 여제자가 등장하고, 이들은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여자와 자기 위해서 으스대고, 허풍을 치고, 철학적이고 유식한 말들로 현혹한다. 여자들은 당연히 넘어간다. 왜? 그럴 듯해 보이니까. 이 세상에 이런 부류들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인간의 내면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무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약해지지 마 약해지지 마
시바타 도요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0살이 넘으니 시간이 빨리 흐른다. 지난 토요일엔 영어모임에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자신있게 31살이라고 얘기했다. 집에 와서 자다 생각하니, 어머 나 32살이잖아 깜짝 놀랐다. 이젠 나이가 나를 추월하고 있다. 어른들이 내가 지금 몇살인지 생각해봐야 된다고 하셨던 말씀이 절실히 다가온다. 어느 소설에선가, 누군가는 더 이상 자신의 나이를 세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언가 성취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내 나이가 몇인지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다. 30대가 되면 인생이 참 짧다 라는 말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이를 먹어간다. 부모님은 어느새 늙어버리셨다.

  사무엘 울만은 ‘청춘’이란 시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양상을 말한다고 외쳤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이며 신념과 더불어 젋어지고 의혹과 함께 늙어간다. 그리하여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파도 위에 올라 있는 한 팔십세라 할지라도 그대는 청춘으로 끝날 수 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이냐. 80대에도 청춘으로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6시간씩 첼로를 연습했다고 한다. 특히 96세의 나이로 죽는 날까지 매일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습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죽기 몇 년 전 한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인데, 왜 아직도 그렇게 연습하십니까?” 그러자 카잘스는 대답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의 연주 실력이 아직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라네” 위대한 사람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성실한 태도가 그를 정상의 위치로 만든 것이다.

  가끔 고령의 나이에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여 화제가 되는 분들이 있다. 시바타 도요라는 일본 여성의 예가 좋겠다. 그녀는 1911년 도쿄 출신으로 올해 102살이다. 도요는 2010년 99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마』를 출간하였다. 이 시집은 지금까지 150만부가 넘게 팔렸다. 100세의 나의 모습이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때까지 살아 있기도 힘든데. 도요는 아들이 취미로 권해 90세가 넘어서야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는 바쇼의 ‘하이쿠’처럼, 이해인 수녀의 시처럼 단순하고 쉽다. 그래서 한 단어 한 단어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몇 개 소개하자면,

 

 * 바람과 햇살과 나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 약해지지 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도요의 시를 읽다보니 다시 힘이 난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에겐 멋진 꿈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꿈이 현실이 되면,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그러다보면 우린 영원히 청춘인 것이다. 봄이 멀지 않았구나. 3월이 오면 새 싹이 솟고, 햇볕은 부드러워지고, 바람은 살랑거리겠지. 인생은 즐거운 것. 마음을 비우면 인생은 가볍다. 햇빛 속으로, 햇빛을 바라보며 살아야지. 차근차근, 성실하게 삶을 걸어가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미니즘 희곡선
최용훈 지음 / 북코리아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페미니즘 희곡선>. 최용훈이 번역하였고 북코리아에서 2001년 발행하였다. 책에는 세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제목이 시사하듯 여성의 정체성과 자아를 찾아가는 작품들이다. 이 중 두편만 소개해보자.

   <셜리 발렌타인>은 영국 출신 윌리 러셀의 작품이다. 극은 2막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작품 전체가 셜리라는 42살 중년 여자의 모놀로그로 이루어진다. 그녀의 두 자식은 다 컸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아내와 엄마로 살아왔으나 여전히 자식들과 남편은 그녀를 요리를 해주는 가정부쯤으로 취급할 뿐이다. 무엇이든 요구하면 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1막- 셜리는 집에서 벽이랑 대화를 하며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항상 식탁 위에 찻잔이 놓여 있어야 하고 목요일 밤에는 엷게 썬 고기 요리가 나와야 한다. 오늘은 목요일. 셜리는 오늘 고기를 준비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고기를 샀는데 일이 생겨 고기를 개의 먹이로 주었기 때문에 감자튀김과 달걀프라이를 만들고 있다. 그녀가 요리를 하면서 벽에게 얘기하는 것은 그리스 여행에 관한 것이다.

    그녀의 친구 제인은 남편이 게이임을 알게 되어 이혼하였고, 그 뒤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거침없는 성격의 여성이다. 그녀가 그리스에 2주간 여행을 가기로 했다면서 함께 가자고 셜리에게 말하자 그때부터 셜리의 고민은 시작된다. 그녀는 이주 동안이나 그리스에 가겠노라고 말하면 남편이 아마 바람이라도 피우려는 줄 알거라면서 거절한다. 그러나 제인은 셜리의 비행기표까지 마련하고 그녀에게 준다. 셜리는 남편이 당연히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내일 그녀에게 비행기표를 돌려주려고 결심한다. 남편이 집에 오자 그녀는 감자튀김과 달걀 프라이를 주며 오늘은 고기를 준비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남편이 “이런 쓰레기는 안 먹어”하더니 접시를 식탁에서 밀어내버린다. “밤낮으로 뼈빠지게 고생을 해도, 집에 들어오면 마누라가 식사라고 뭘 주는 줄 알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셜리는 무릎에 쏟아진 음식물을 바라보며 그리스에 가겠노라고 결심한다.    
    그녀는 시내에 나가 여권을 만들고 상점에서 멋진 속옷도 산다. 거기서 그녀는 이웃집 여자 길리안을 발견한다. 길리안은 허풍이 심한 여자로 으스대길 좋아한다. 길리안은 셜리에게 참견을 하며 그녀가 산 슬립을 보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진짜 실크라고 하겠어요” 라며 무안을 준다. 그리고 “밀란드라(셜리의 딸)에게 잘 어울리겠어요”라고 말한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말도 못했을 셜리는 자신도 모르게 내일 애인과 그리스로 2주간 밀월여행을 떠나는데 거기서 자신이 입을 거라고 말하며 상점을 나와버린다.

   집에 돌아와 짐을 챙기고 있는데 집을 나가 남자친구와 살던 딸이 돌아온다. 셜리는 딸에게 제인과 함께 그리스에 갈 거라고 하자 “정말 부끄러운 일이에요. 두 명의 중년 여성이 자기들끼리만 그리스에 간다고요? 정말 혐오스러워요.” 딸이 화를 내며 집을 나가자 그녀는 갑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래 정말 청승맞은 짓일지도 모른다고. 무엇 때문에 가는거지? 그냥 여기 있는 게 더 쉬울지도 몰라. 안전하고, 위험 없는 곳에 말이야’ 그녀가 제인에게 안가겠다고 전화를 하려는 순간 길리안이 셜리를 방문한다. 셜리는 길리안에게 지금 남편은 집에 없으며 비밀을 누설하러 온 거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길리안은 셜리에게 예쁘게 포장된 꾸러미를 건내주며 말한다. “당신이 가지세요. 셜리. 한 번도 안 입은 거에요. 난....용기가 없었어요. 오, 셜리. 나도 그래 보았으면 했다구요. 당신만큼 용기가 있었으면 하구요. 셜리, 당신은 용감해요. 당신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셜리가 포장을 풀자 그 안에는 진짜 실크 드레스가 들어있다. 셜리는 자신이 중년 아줌마라고 생각했지만, 길리안의 눈에는 더 이상 이웃에 사는 셜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용감한 셜리, 셜리 발렌타인이 된 것이다. 그녀는 두려움의 벽을 넘는다. 그리고 남편에게 결국 말하지 못한 채 이주동안 남편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제인과 떠난다.

   2막-셜리는 지금 그리스 해변가에 있다. 제인은 비행기에서 한 남자를 만나고 그의 초청을 받아 그리스에 도착하자마자 셜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버린다. 그러나 혼자에 익숙해진 셜리는 외롭지 않다. 그녀는 혼자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바다를 보며 와인을 마시며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즐긴다.

   레스토랑에서 영국에서 온 다른 관광객들이 햇빛이 너무 뜨겁고, 해변은 너무 습기가 차다고 끊임없이 불평하자 그녀는 말한다. “실례합니다면, 올림픽 경기 보셨죠? 올림픽 경기를 창안한 게 그리스인 아니던가요?”.....영국인요? 말도 하지 마세요. 그리스인들이 도로를 닦고, 도시를 건설하고, 사원을 세울 때 영국인들은 무엇을 했죠? 겨우 음부 가리고 뛰어다니고, 기린 뿔 가지고 땅이나 뒤척였어요.“ 셜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것이다. 2주간의 시간이 흐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제인과 공항으로 온 셜리. 셜리는 제인에게 왜 삶을 허송하는 거냐고 묻자 그녀는 남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셜리가 대답한다. ” 쓸데없는 소리. 그렇게 된 것은 남자 때문이 아니야......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라고. 난 알아. 외출할 때, 상점에 있을 때, 함께 자란 사람들을 만날 때, 야채를 사기 위해 가게에 서 있을 때, 우린 “어떻게 지내?”하고 인사하지. 그러면 모두 “좋아”하고 말하지 않니? 좋은 척하는 거지 뭐. 야채가 신선하고, 올해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고, 애들도 팔다리 멀쩡하게 잘 자라고, 경찰에게 잡혀 가지 않았기 때문에 말야. 그래서 우린 “좋아”라고 말하지.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똑같은 거야. 우린 대부분 진짜 죽기 훨씬 전에 죽어버리는 거지. 우릴 죽이는 것은 바로 이 쓰지 못하고 끌고 다니는 삶의 무게인 거야.“

   셜리의 가방이 꼬리표를 달고 콘베이어 벨트에 놓여진다. 벨트를 따라 플랩을 통과해서는 검은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가방을 보며 셜리는 알았다. 그것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몸을 틀어 다시 그리스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영국인 관광객들이 들어와 술을 주문하고 메뉴를 들여다보며 불안해할 때 ”감자튀김과 달걀 프라이를 해 드릴까요?“ 라고 말하면, 그제야 그들은 마음을 놓는다.

   셜리의 마지막 독백. “안녕하세요. 난 한때 어머니였어요. 한때 당신의 아내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시 셜리 발렌타인이 됐답니다. 함께 한잔 하시겠어요?”

 

   또 다른 작품은 <혼자사는 세 여자>(The cemetery club)이다. 미국 작가 이반 멘첼의 작품으로 남편을 잃은 세 중년여성의 삶과 애환,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좌절을 담고 있다. 2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이다, 루실, 도리스가 주인공이다.

   아이다는 남편이 죽은 지 1년이 지났고, 루실은 3년, 도리스는 4년이 되었다. 이들은 한 달에 한번 남편의 무덤을 방문한다. 루실의 남편은 생전에 바람을 피우고, 루실을 힘들게 하였기 때문에 루실은 남편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틈만 나면 남자와 데이트하려고 애를 쓴다. 반대로 도리스는 남편을 잊지 못해 괴로워한다. 루실은 죽은 남편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한 도리스를 어리석다고 하고, 도리스는 남자나 꼬시고 다니는 루실을 경멸한다. 아이다는 남편을 추억하며, 루실과 도리스를 품어주는 여성이다.

   세 여성은 어느 날 공동묘지에서 죽은 아내를 추모하고 있는 동네 이웃 샘을 만나고, 루실은 샘을 유혹하려 한다. 그러나 샘은 아이다에게 관심을 보이고, 아이다와 그는 사랑에 빠진다. 루실과 도리스는 샘과 아이다가 어울리는 것은 아이다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하고 샘을 만나 그러지 말라고 충고한다. 아이다가 힘들고 고통받을 거라고. 샘은 아이다에게 연락을 뜸하게 하고 나중에 도리스와 루실이 샘을 만나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걸 안 아이다는 소리친다.

 

도리스 : 우린 그저....

아이다 : 내가 원했던 건 어떻게 되는 거지? 너희들 그걸 잠깐이라도 생각해봤어? 너희들이 내 인생 책임질꺼야?

루실 : 우리가 걱정한 건 그저....

아이다 : 걱정은 무슨 얼어 죽을! 너희들이 날 걱정한 거니? 자기들 생각밖에 없는 것들이.

(도리스에게) 내가 묘지에 안 가구. 내 인생을 찾으려는 게 그렇게 못마땅해!

(루실에게) 그리고 너, 샘이 니가 아니라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게 견딜 수 없었던 거지?

아이다는 화를 내지만, 둘을 용서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샘이 아이다를 방문한다.

샘 : 음....난....저....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저 와서 당신을 만나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내가....말하고 싶은 건.....당신과 이대로 끝내기는 싫다는 겁니다.

아이다 :(단호하게) 이미 끝난 걸요.

-생략-

샘 : 아이다. 당신과 이곳에서 보낸 그날 오후가 아내가 죽은 이래로 내겐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어요. 함께 외출했던 밤들은 행복했다구요. 당신과 만날 때마다 죽은 아내의 모습은 희미해졌죠. 그게 내게 생긴 변화였습니다. 처음으로 다른 여자를 죽은 아내와 비교하지 않게 된 겁니다.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행복했으니까요.....난 그게 두려웠소.

-생략-

아이다 : 바로 지금 어딘가에서 당신의 아내와 내 남편도 한바탕 웃어제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들은 다시 만남을 시작한다. 그리고 도리스는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난다. 루실, 아이다, 샘은 도리스의 무덤을 방문한다. 아이다와 샘이 약속이 있어 먼저 떠나고 루실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 도리스의 무덤 곁 의자에 앉는다.

 

# 루실: 참 좋아 보이지? 해가 가기 전에 결혼할 거라구들 그래. 근사할 거야....어울리는 한쌍이 될거야. 이제 자주야 못 만나겠지. 이게 다 뭐야 (루실 덩굴에서 잎을 떼어낸다. 동작이 점점 빨라지다가 결국은 마구잡이가 된다.) 나뭇잎은 떼어내서 뭘해? 남은 평생 무덤이나 돌보면서 지내야 하는 거니? 빌어먹을, 매달 여길 와야 하는 거냐구!(흐느끼기 시작하면서, 나뭇잎, 돌멩이, 닥치는 대로 움켜쥐고 무덤을 치면서 통곡한다. 마침내 울음을 멈추고 일어선다. 천천히 슬프게) 니가 그리울 거야. 도리스. (애써 침착하려 한다) 하지만 매달 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여기서 참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지? 무슨 상관이람. 이제 다 잊어버릴 거야!.....네가 춤추던 모습만 기억할게. 날 욕하던 모습만 기억할게. 치킨을 꺼내 놓던 모습만.....그래...언제든...또 보자. 그리고 그 이 만나거든.....전해 줘....내 작별 인사를 말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릴처칠 희곡집 공연예술신서 18
카릴처칠 / 평민사 / 1998년 5월
평점 :
절판


  <카릴 처칠 희곡집>은 이지훈이 번역하였고 평민사가 1998년 발행하였다. 카릴 처칠은 1938년 영국 태생으로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이 책에는 Cloud nine Vinegar Tom 두 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클라우드 나인>은 1979년에 처음 공연되었지만 작품의 내용은 현대에 더 잘 들어맞을 정도로 그 당시 고정관념을 철저하게 뛰어넘는 작품이다. 극에서 다루는 성은 거침없다. 동성애, 형제자매간의 근친애, 공동생활 등이 나오며 지배나 종속이 아닌 평등으로서의 성의 관계를 탐구한다. Cloud nine은 직역하면 아홉번째 구름 위지만 은어로는 ’오르가즘‘을 나타낸다. 즉 클라우드 나인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며, 일방적으로 독점하거나 지배와 수단의 목적이 되서는 안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극은 2막으로 되어 있는데 1막은 빅토리아 시대이며 장소는 영국의 식민지령인 아프리카이다. 2막은 100년을 뛰어넘은 영국 런던의 현대이나 등장인물들에게는 오직 25년이 흘렀을 뿐이다. 1막- 부부 사이의 이성애가 강조되고 그것만이 유일한 사랑의 관계로 인정된다. 클라이브는 남편, 아버지, 주인, 총독으로 아프리카를 다스리는 인물이다. 여성들의 자리는 위축, 종속되어 노예와 같다. 그의 아내 베티는 ’내 작은 비둘기‘로 불리며(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아버지와 남편에게 노라가 장난감 인형 아내 취급을 받았던 것처럼) 딸 캐시는 심지어 인형으로 무대에 등장하는데 이는 인격 자체가 없는 여성의 존재 위치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여성들은 흑인 하인 조슈아에까지 무시를 당한다. “마님의 치마 밑에 두 다리가 있어요” 아들 에드워드는 남자이기 때문에 강하게 키워지지만, 정작 에드워드는 인형놀이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손더스 부인이라고 불리는 캐롤라인은 남편을 사별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인이다. 클라이브는 손더스 부인과 바람을 피우지만 당당하다. 그녀는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성을 즐긴다. 해리는 클라이브의 친구로 모험가이다. 그는 베티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에드워드의 가정교사 엘렌은 베티를 사랑하나 자신의 동성애적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해리와 결혼한다. 그렇게라도 베티 옆에 남아있고 싶어서. 클라이브가 절대적으로 믿었던 흑인 하인 죠수아는 자신의 가족이 영국군에 의해 몰살당하자 클라이브를 총으로 쏘며 1막이 끝난다.

   2막- 런던의 현대이며 빅토리아와 에드워드는 어른이 되었고, 베티는 노인이다. 새로운 인물 빅토리아의 남편 마틴, 빅토리아의 여자친구 린, 빅토리아의 아들 타미, 린의 딸 캐시, 그리고 에드워드의 남자친구 게리가 등장한다. 1막의 억압과 금기는 많이 풀렸고 동성애도 자유로운 듯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노력이 필요하다. 린(레즈비언)과 빅토리아, 에드워드(게이이자 린과 빅토리아 두 명의 여성과 성관계도 하는)는 자신들의 아들딸들과 공동체를 구성하며 베티는 이 모두를 포용하며 함께 살기를 제안한다. 성의 완전한 해방을 처칠은 70년대에 이미 보여준 것이다. 그녀의 자유롭고 편견 없는 생각이 놀랍기만 하다. 대사 몇 개.

 

# 해리 : 그리고 당신은 안전이고, 빛이고, 평화고, 집이야.

베티 : 하지만 난 위험해지고 싶어요.

 

# 베티 : 저 사람들 시간이 제법 걸리는군요. 난 언제나 남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애

 

# 클라이브 : 캐롤라인, 만일 당신이 독화살에 맞는다면 내가 무얼 할지 알아? 너의 죽은 몸에 성교를 하고 나도 독이 옮아 죽을 거야. 캐롤라인, 넌 냄새가 좋아. 날 무섭게 해. 넌 이 대륙처럼 캄캄해. 신비스러워, 반역적이야. 네가 밤에 말을 달려 내게 올 때, 내 품에서 기절을 했을 때. 내가 네 침대 속에 들어갈 때, 모기장을 들칠 때, 내가 들어간다, 들어간다고 말할 때, 오, 날 가로막지마, 캐롤라인, 나를 들어가게 해줘.

 

# 베티 : 아니요 ,초대받을 때까지 기다릴 것 없어요. 그냥 비공식적으로 들르세요. 내 주소를 드릴까요? 난 처음 만난 남자들에게 내 주소를 주지는 않아요. 당신은 낯선 사람은 아니야. 에드워드 친구의 친구니까. 내가 당신에겐 다른 세대로 보이겠지만 당신은 에드워드보다는 나이가 위로 보이는구만. 난 결혼한 지 너무도 오래돼서 사람들과 사귀는 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답니다. 만일 그런 일에 딱 맞는 정답이 없다면 새로 하나 발견해 내야겠지요. 내 어머니가 매력적이기에는 나이가 들어도 한참 들었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내가 어머니 나이가 되니 그 생각이 전혀 맞지가 않군요.

 

   <비네가 탐>은 1976년에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왜곡된 역사를 다시 쓴 것으로 17세기의 마녀 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여성 학살극이 실제로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 사회의 억압과 학살의 역사임을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마녀사냥은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극은 21개의 장면과 7개의 노래로 구성된다.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아 장면들은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것이 아닌 중단시키며 낯설게 하기 효과를 거두고 있다. 노래 역시 극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그것은 현재의 목소리이다. 따라서 몇 개의 장면이 지난 다음에 등장하는 노래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효과를 거둔다. 언어는 간결하고, 최소한의 무대장치를 사용하며, 여백의 미를 강조한다.

   늙은 과부인 조운, 미혼모이자 딸인 알리스, 산파이자 민간 치료사인 엘렌. 거듭된 임신으로 낙태를 시도하는 매 맞는 아내 수잔. 아버지가 정해 주는 상대와 결혼을 거부하는 주체 의식이 있는 부잣집 딸 베티가 나온다. 이들은 모두 결혼 제도 바깥에 있거나, 결혼제도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들로, 모두 그 사회의 일탈자들이다. 이들을 사회적 위협으로 느끼고 마녀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대 체제에 순응하는 평범한 사람들로 소작농인 잭과 마저리 부부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틀의 보호를 받는 체제 순응자들로 자신의 이익(재산을 증식하고 계급 상승시키려는 욕구)과 이기심(잭은 알리스를 범하려고 했으나 그 욕구가 좌절) 을 위해 조운과 알리스를 마녀로 몰아간다. 민간 치료사 엘렌 역시 마녀로 몰린다. 17세기는 막 배출되기 시작한 남자 의사들이 민간 치료사들을 마녀로 몰아 마녀사냥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엘렌이 마녀로 몰리는 것이다. 엘렌을 찾아 위안 받기 원하는 베티 역시 마녀로 몰린다. 그러나 베티는 부유한 집 딸이고 남자 의사의 치료를 받기 때문에 마녀에서 제외된다.

    마녀사냥은 약 300년동안 5만명 이상의 여성들을 교수형, 화형, 수장시켜 죽였다. 그리고 이 학살극은 20세기에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로 재현되었다. 조운, 알리스, 엘렌, 수잔...그들은 마녀가 아니다. 이 극은 마녀가 나오지 않는 마녀에 관한 극이다. 비네가는 식초라는 뜻 외에 어떤 사람의 말, 태도, 기질이 호의적이지 않을 때도 이 말을 쓴다. 탐은 숫고양이의 별칭이다. 따라서 비네가 탐은 시쿤둥한 숫고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조운이 키우고 있는 늙은 고양이의 이름이 바로 비네가 탐으로 작품에서 탐을 언급하지만 실제 고양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하지 않는 고양이를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하면서 처칠은 이 작품이 마녀가 등장하지 않는 마녀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알리스 : 한달에 한번씩 피흘려야 되는 것. 그걸 벗어날 수는 없어. 아프거나 임심으로 배가 불러지는 것 외에는 그 고통을 벗어날 길은 없지. 그리고 마침내 늙어 버릴 때까지는 방법이 없는데 그건 훨씬 더 나쁜 거야. 늙은 어머니가 옷을 갈아 입을 때 정말 쳐다볼 수가 없어. 만일 내가 남자였다면 난 런던이나 스코틀랜드로 가버렸을 거야. 그리고 절대로 돌아오지 않아. 내가 남자라면 여자를 꿰어차고 숲으로 들어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닥터 : 히스테리는 여성의 연약함입니다. 희랍어로는 히스테리온이라고 하죠. 자궁이란 말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피는 체액에 불균형을 가져옵니다. 여성의 몸에서 매달 생성되는 나쁜 가스는 뇌로 올라가서 환자의 느낌과는 전혀 반대되는 행동을 야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월경혈로 나오게 되면 환자는 깨끗이 평정을 되찾게 됩니다. 오늘 밤 아가씨는 물집이 생길 거에요. 그리곤 나을 거에요. 곧 결혼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될 겁니다.

 

# 마저리 : 그럼 그년이 마녀인 게 증명된 건가요?

엘렌 : 누가 마녀인지 아닌지를 난 말할 수 없어요. 나는 거울을 주고 당신들이 거울 속에 비치는 것을 봤을 뿐이죠.

잭 : 녹스 할멈 그년을 봤어

마저리 : 그년이 마녀인 게 증명됐어

엘렌 : 보고 싶은 걸 보러 와서, 봤으니 됐죠? 이제 마음이 편안하신가요?

 

우리나라 극단 TNT는 이 극을 공연하면서 작품 이름을 마녀사랑이라고 바꾸었고 마지막 부분을 추가하였다.

 

# 잭 : 마녀는 누구:

모두 :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마저리 : 미혼모

엘렌 : 이혼녀

조운 : 노처녀

은정 : 세고 강한 여자

문숙 : 여성해방운동가

구디 : 남녀 평등운동가

팩커 : 뚱뚱한 여자

구디 : 못생긴 여자

잭 : 남자 기 죽이는 여자

팩커 : 남자 거세시키는 여자.

 

지금도 우리곁에 수많은 마녀가 있다. 그리고 이들이 눈에 거슬리고, 불편하여 제거하고 싶어하는 마녀 사냥꾼 또한 가득하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마녀가 되기 쉽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신 공연예술신서 7
헤롤드핀터 / 평민사 / 1996년 5월
평점 :
절판


   평민사가 출판한 해롤드 핀터의 전집이 9권까지 있는데 그 중 몇 권을 읽었다. <생일파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니 훨씬 낫다. 영화만 봤다면 중간에 꺼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배우들이 느낌을 잘 살려 연기를 했기 때문에 주인공이 의식이 파괴되는 과정이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8권에 실려있는 여러 작품 들 중 <배신>(betrayal)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핀터는 영국 출신의 극작가로 수많은 작품을 썼다. 그의 작품에 있어 three dots, pause, silence는 작품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핀터의 언어 사용은 놀라우며 군더더기가 없다.  

<배신>은 1979년에 초연되었으며 줄거리는 간단하다. 총 9장으로 이루어진 이 극은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이 역행한다. 주인공 에마와 제리는 불륜 관계였고 에마의 남편인 로버트는 에마와 로버트가 베니스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 제리가 실수로 보낸 편지를 받고 둘 사이를 알아챈다. 에마에게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는 제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제리는 로버트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1장은 1977년 후반 봄이며 제리와 에마가 선술집에 앉아있다. 둘은 이미 헤어진지 2년이 지났으며 에마는 로버트가 그동안 바람을 피웠던 사실을 알아채고 그와 이혼하려 한다. 제리와 에마는 둘 사이의 옛 사랑을 회상한다. 3장의 장소는 1975년 겨울 제리와 에마가 밀회를 즐기려 구입한 아파트안이다. 이들은 이제 몇년간의 불륜에 지쳐 헤어지려고 한다. 4장은 1977년이며 5장은 1973년, 9장은 1968년 로버트와 에마의 집이다. 관객은 애정이 식어 차가워진 에마와 제리의 관계가 점점 열정적이었던 때로 되돌아가는 것을 본다. 관객은 그들의 정열의 결말을 이미 보았기에 점차 뜨거워지는 정열은 오히려 환멸로 느껴진다. 따라서 끝까지 보고 나면 인간의 정열을 조소하고 싶을 지경에 이른다. 제목처럼 극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배신이 나온다.

    이 극은 핀터가 당시 런던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에 근거해 썼으며 극중에서 제리는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문학 매니저이고, 로버트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출판업자, 에마는 화랑 경영자, 제리의 아내는 의사로 등장인물 모두 성공한 지식층이다. 중상층의 흔들리는 우정, 혹은 진부한 멜로드라마의 주제를 핀터는 극 전개의 시간을 다르게 하여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1장. # 에마 : 내 생각한 적 있나요?

제리 : 생각할 필요가 없지

에마 : 아, 그래요?

제리 :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오. 어쨌든 난 잘 지내는데 당신은,,,?

에마 : 좋아요. 정말로 잘 지내요.

 

9장 # 제리 : 날 보고 있는 당신을 한번 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미 난 삼켜졌고, 점령당했고 케이오당했어. 소중한 사람, 나의 보석. 당신은 정말로 눈부셔. 난 더 이상 잠잘 수도 없어. 잘 들어 진정이야. 난 걷지도 못하고, 불구가 되고, 결국 파멸할지도 몰라. 난 쪼그라들었다가 점차 마비될 거야. 내 인생은 당신의 손에 달렸어. 그런데 당신은 날 내쫒아. 긴장상태로 몰아넣고 있어. 긴장상태가 어떤 건지, 그게 무언지 알기나 해? 알아? 그건...공허의 왕자, 부재와 외로움이라는 왕자가 통치하는 곳이야. 난 당신을 사랑해.

에마 : 남편이 문 밖에 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