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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희곡선
최용훈 지음 / 북코리아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페미니즘 희곡선>. 최용훈이 번역하였고 북코리아에서 2001년 발행하였다. 책에는 세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제목이 시사하듯 여성의 정체성과 자아를 찾아가는 작품들이다. 이 중 두편만 소개해보자.
<셜리 발렌타인>은 영국 출신 윌리 러셀의 작품이다. 극은 2막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작품 전체가 셜리라는 42살 중년 여자의 모놀로그로 이루어진다. 그녀의 두 자식은 다 컸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아내와 엄마로 살아왔으나 여전히 자식들과 남편은 그녀를 요리를 해주는 가정부쯤으로 취급할 뿐이다. 무엇이든 요구하면 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1막- 셜리는 집에서 벽이랑 대화를 하며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항상 식탁 위에 찻잔이 놓여 있어야 하고 목요일 밤에는 엷게 썬 고기 요리가 나와야 한다. 오늘은 목요일. 셜리는 오늘 고기를 준비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고기를 샀는데 일이 생겨 고기를 개의 먹이로 주었기 때문에 감자튀김과 달걀프라이를 만들고 있다. 그녀가 요리를 하면서 벽에게 얘기하는 것은 그리스 여행에 관한 것이다.
그녀의 친구 제인은 남편이 게이임을 알게 되어 이혼하였고, 그 뒤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거침없는 성격의 여성이다. 그녀가 그리스에 2주간 여행을 가기로 했다면서 함께 가자고 셜리에게 말하자 그때부터 셜리의 고민은 시작된다. 그녀는 이주 동안이나 그리스에 가겠노라고 말하면 남편이 아마 바람이라도 피우려는 줄 알거라면서 거절한다. 그러나 제인은 셜리의 비행기표까지 마련하고 그녀에게 준다. 셜리는 남편이 당연히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내일 그녀에게 비행기표를 돌려주려고 결심한다. 남편이 집에 오자 그녀는 감자튀김과 달걀 프라이를 주며 오늘은 고기를 준비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남편이 “이런 쓰레기는 안 먹어”하더니 접시를 식탁에서 밀어내버린다. “밤낮으로 뼈빠지게 고생을 해도, 집에 들어오면 마누라가 식사라고 뭘 주는 줄 알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셜리는 무릎에 쏟아진 음식물을 바라보며 그리스에 가겠노라고 결심한다.
그녀는 시내에 나가 여권을 만들고 상점에서 멋진 속옷도 산다. 거기서 그녀는 이웃집 여자 길리안을 발견한다. 길리안은 허풍이 심한 여자로 으스대길 좋아한다. 길리안은 셜리에게 참견을 하며 그녀가 산 슬립을 보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진짜 실크라고 하겠어요” 라며 무안을 준다. 그리고 “밀란드라(셜리의 딸)에게 잘 어울리겠어요”라고 말한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말도 못했을 셜리는 자신도 모르게 내일 애인과 그리스로 2주간 밀월여행을 떠나는데 거기서 자신이 입을 거라고 말하며 상점을 나와버린다.
집에 돌아와 짐을 챙기고 있는데 집을 나가 남자친구와 살던 딸이 돌아온다. 셜리는 딸에게 제인과 함께 그리스에 갈 거라고 하자 “정말 부끄러운 일이에요. 두 명의 중년 여성이 자기들끼리만 그리스에 간다고요? 정말 혐오스러워요.” 딸이 화를 내며 집을 나가자 그녀는 갑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래 정말 청승맞은 짓일지도 모른다고. 무엇 때문에 가는거지? 그냥 여기 있는 게 더 쉬울지도 몰라. 안전하고, 위험 없는 곳에 말이야’ 그녀가 제인에게 안가겠다고 전화를 하려는 순간 길리안이 셜리를 방문한다. 셜리는 길리안에게 지금 남편은 집에 없으며 비밀을 누설하러 온 거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길리안은 셜리에게 예쁘게 포장된 꾸러미를 건내주며 말한다. “당신이 가지세요. 셜리. 한 번도 안 입은 거에요. 난....용기가 없었어요. 오, 셜리. 나도 그래 보았으면 했다구요. 당신만큼 용기가 있었으면 하구요. 셜리, 당신은 용감해요. 당신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셜리가 포장을 풀자 그 안에는 진짜 실크 드레스가 들어있다. 셜리는 자신이 중년 아줌마라고 생각했지만, 길리안의 눈에는 더 이상 이웃에 사는 셜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용감한 셜리, 셜리 발렌타인이 된 것이다. 그녀는 두려움의 벽을 넘는다. 그리고 남편에게 결국 말하지 못한 채 이주동안 남편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제인과 떠난다.
2막-셜리는 지금 그리스 해변가에 있다. 제인은 비행기에서 한 남자를 만나고 그의 초청을 받아 그리스에 도착하자마자 셜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버린다. 그러나 혼자에 익숙해진 셜리는 외롭지 않다. 그녀는 혼자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바다를 보며 와인을 마시며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즐긴다.
레스토랑에서 영국에서 온 다른 관광객들이 햇빛이 너무 뜨겁고, 해변은 너무 습기가 차다고 끊임없이 불평하자 그녀는 말한다. “실례합니다면, 올림픽 경기 보셨죠? 올림픽 경기를 창안한 게 그리스인 아니던가요?”.....영국인요? 말도 하지 마세요. 그리스인들이 도로를 닦고, 도시를 건설하고, 사원을 세울 때 영국인들은 무엇을 했죠? 겨우 음부 가리고 뛰어다니고, 기린 뿔 가지고 땅이나 뒤척였어요.“ 셜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것이다. 2주간의 시간이 흐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제인과 공항으로 온 셜리. 셜리는 제인에게 왜 삶을 허송하는 거냐고 묻자 그녀는 남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셜리가 대답한다. ” 쓸데없는 소리. 그렇게 된 것은 남자 때문이 아니야......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라고. 난 알아. 외출할 때, 상점에 있을 때, 함께 자란 사람들을 만날 때, 야채를 사기 위해 가게에 서 있을 때, 우린 “어떻게 지내?”하고 인사하지. 그러면 모두 “좋아”하고 말하지 않니? 좋은 척하는 거지 뭐. 야채가 신선하고, 올해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고, 애들도 팔다리 멀쩡하게 잘 자라고, 경찰에게 잡혀 가지 않았기 때문에 말야. 그래서 우린 “좋아”라고 말하지.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똑같은 거야. 우린 대부분 진짜 죽기 훨씬 전에 죽어버리는 거지. 우릴 죽이는 것은 바로 이 쓰지 못하고 끌고 다니는 삶의 무게인 거야.“
셜리의 가방이 꼬리표를 달고 콘베이어 벨트에 놓여진다. 벨트를 따라 플랩을 통과해서는 검은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가방을 보며 셜리는 알았다. 그것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몸을 틀어 다시 그리스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영국인 관광객들이 들어와 술을 주문하고 메뉴를 들여다보며 불안해할 때 ”감자튀김과 달걀 프라이를 해 드릴까요?“ 라고 말하면, 그제야 그들은 마음을 놓는다.
셜리의 마지막 독백. “안녕하세요. 난 한때 어머니였어요. 한때 당신의 아내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시 셜리 발렌타인이 됐답니다. 함께 한잔 하시겠어요?”
또 다른 작품은 <혼자사는 세 여자>(The cemetery club)이다. 미국 작가 이반 멘첼의 작품으로 남편을 잃은 세 중년여성의 삶과 애환,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좌절을 담고 있다. 2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이다, 루실, 도리스가 주인공이다.
아이다는 남편이 죽은 지 1년이 지났고, 루실은 3년, 도리스는 4년이 되었다. 이들은 한 달에 한번 남편의 무덤을 방문한다. 루실의 남편은 생전에 바람을 피우고, 루실을 힘들게 하였기 때문에 루실은 남편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틈만 나면 남자와 데이트하려고 애를 쓴다. 반대로 도리스는 남편을 잊지 못해 괴로워한다. 루실은 죽은 남편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한 도리스를 어리석다고 하고, 도리스는 남자나 꼬시고 다니는 루실을 경멸한다. 아이다는 남편을 추억하며, 루실과 도리스를 품어주는 여성이다.
세 여성은 어느 날 공동묘지에서 죽은 아내를 추모하고 있는 동네 이웃 샘을 만나고, 루실은 샘을 유혹하려 한다. 그러나 샘은 아이다에게 관심을 보이고, 아이다와 그는 사랑에 빠진다. 루실과 도리스는 샘과 아이다가 어울리는 것은 아이다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하고 샘을 만나 그러지 말라고 충고한다. 아이다가 힘들고 고통받을 거라고. 샘은 아이다에게 연락을 뜸하게 하고 나중에 도리스와 루실이 샘을 만나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걸 안 아이다는 소리친다.
도리스 : 우린 그저....
아이다 : 내가 원했던 건 어떻게 되는 거지? 너희들 그걸 잠깐이라도 생각해봤어? 너희들이 내 인생 책임질꺼야?
루실 : 우리가 걱정한 건 그저....
아이다 : 걱정은 무슨 얼어 죽을! 너희들이 날 걱정한 거니? 자기들 생각밖에 없는 것들이.
(도리스에게) 내가 묘지에 안 가구. 내 인생을 찾으려는 게 그렇게 못마땅해!
(루실에게) 그리고 너, 샘이 니가 아니라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게 견딜 수 없었던 거지?
아이다는 화를 내지만, 둘을 용서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샘이 아이다를 방문한다.
샘 : 음....난....저....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저 와서 당신을 만나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내가....말하고 싶은 건.....당신과 이대로 끝내기는 싫다는 겁니다.
아이다 :(단호하게) 이미 끝난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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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 아이다. 당신과 이곳에서 보낸 그날 오후가 아내가 죽은 이래로 내겐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어요. 함께 외출했던 밤들은 행복했다구요. 당신과 만날 때마다 죽은 아내의 모습은 희미해졌죠. 그게 내게 생긴 변화였습니다. 처음으로 다른 여자를 죽은 아내와 비교하지 않게 된 겁니다.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행복했으니까요.....난 그게 두려웠소.
-생략-
아이다 : 바로 지금 어딘가에서 당신의 아내와 내 남편도 한바탕 웃어제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들은 다시 만남을 시작한다. 그리고 도리스는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난다. 루실, 아이다, 샘은 도리스의 무덤을 방문한다. 아이다와 샘이 약속이 있어 먼저 떠나고 루실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 도리스의 무덤 곁 의자에 앉는다.
# 루실: 참 좋아 보이지? 해가 가기 전에 결혼할 거라구들 그래. 근사할 거야....어울리는 한쌍이 될거야. 이제 자주야 못 만나겠지. 이게 다 뭐야 (루실 덩굴에서 잎을 떼어낸다. 동작이 점점 빨라지다가 결국은 마구잡이가 된다.) 나뭇잎은 떼어내서 뭘해? 남은 평생 무덤이나 돌보면서 지내야 하는 거니? 빌어먹을, 매달 여길 와야 하는 거냐구!(흐느끼기 시작하면서, 나뭇잎, 돌멩이, 닥치는 대로 움켜쥐고 무덤을 치면서 통곡한다. 마침내 울음을 멈추고 일어선다. 천천히 슬프게) 니가 그리울 거야. 도리스. (애써 침착하려 한다) 하지만 매달 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여기서 참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지? 무슨 상관이람. 이제 다 잊어버릴 거야!.....네가 춤추던 모습만 기억할게. 날 욕하던 모습만 기억할게. 치킨을 꺼내 놓던 모습만.....그래...언제든...또 보자. 그리고 그 이 만나거든.....전해 줘....내 작별 인사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