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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ㅣ 공연예술신서 7
헤롤드핀터 / 평민사 / 1996년 5월
평점 :
절판
평민사가 출판한 해롤드 핀터의 전집이 9권까지 있는데 그 중 몇 권을 읽었다. <생일파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니 훨씬 낫다. 영화만 봤다면 중간에 꺼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배우들이 느낌을 잘 살려 연기를 했기 때문에 주인공이 의식이 파괴되는 과정이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8권에 실려있는 여러 작품 들 중 <배신>(betrayal)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핀터는 영국 출신의 극작가로 수많은 작품을 썼다. 그의 작품에 있어 three dots, pause, silence는 작품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핀터의 언어 사용은 놀라우며 군더더기가 없다.
<배신>은 1979년에 초연되었으며 줄거리는 간단하다. 총 9장으로 이루어진 이 극은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이 역행한다. 주인공 에마와 제리는 불륜 관계였고 에마의 남편인 로버트는 에마와 로버트가 베니스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 제리가 실수로 보낸 편지를 받고 둘 사이를 알아챈다. 에마에게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는 제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제리는 로버트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1장은 1977년 후반 봄이며 제리와 에마가 선술집에 앉아있다. 둘은 이미 헤어진지 2년이 지났으며 에마는 로버트가 그동안 바람을 피웠던 사실을 알아채고 그와 이혼하려 한다. 제리와 에마는 둘 사이의 옛 사랑을 회상한다. 3장의 장소는 1975년 겨울 제리와 에마가 밀회를 즐기려 구입한 아파트안이다. 이들은 이제 몇년간의 불륜에 지쳐 헤어지려고 한다. 4장은 1977년이며 5장은 1973년, 9장은 1968년 로버트와 에마의 집이다. 관객은 애정이 식어 차가워진 에마와 제리의 관계가 점점 열정적이었던 때로 되돌아가는 것을 본다. 관객은 그들의 정열의 결말을 이미 보았기에 점차 뜨거워지는 정열은 오히려 환멸로 느껴진다. 따라서 끝까지 보고 나면 인간의 정열을 조소하고 싶을 지경에 이른다. 제목처럼 극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배신이 나온다.
이 극은 핀터가 당시 런던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에 근거해 썼으며 극중에서 제리는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문학 매니저이고, 로버트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출판업자, 에마는 화랑 경영자, 제리의 아내는 의사로 등장인물 모두 성공한 지식층이다. 중상층의 흔들리는 우정, 혹은 진부한 멜로드라마의 주제를 핀터는 극 전개의 시간을 다르게 하여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1장. # 에마 : 내 생각한 적 있나요?
제리 : 생각할 필요가 없지
에마 : 아, 그래요?
제리 :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오. 어쨌든 난 잘 지내는데 당신은,,,?
에마 : 좋아요. 정말로 잘 지내요.
9장 # 제리 : 날 보고 있는 당신을 한번 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미 난 삼켜졌고, 점령당했고 케이오당했어. 소중한 사람, 나의 보석. 당신은 정말로 눈부셔. 난 더 이상 잠잘 수도 없어. 잘 들어 진정이야. 난 걷지도 못하고, 불구가 되고, 결국 파멸할지도 몰라. 난 쪼그라들었다가 점차 마비될 거야. 내 인생은 당신의 손에 달렸어. 그런데 당신은 날 내쫒아. 긴장상태로 몰아넣고 있어. 긴장상태가 어떤 건지, 그게 무언지 알기나 해? 알아? 그건...공허의 왕자, 부재와 외로움이라는 왕자가 통치하는 곳이야. 난 당신을 사랑해.
에마 : 남편이 문 밖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