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릴처칠 희곡집 공연예술신서 18
카릴처칠 / 평민사 / 1998년 5월
평점 :
절판


  <카릴 처칠 희곡집>은 이지훈이 번역하였고 평민사가 1998년 발행하였다. 카릴 처칠은 1938년 영국 태생으로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이 책에는 Cloud nine Vinegar Tom 두 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클라우드 나인>은 1979년에 처음 공연되었지만 작품의 내용은 현대에 더 잘 들어맞을 정도로 그 당시 고정관념을 철저하게 뛰어넘는 작품이다. 극에서 다루는 성은 거침없다. 동성애, 형제자매간의 근친애, 공동생활 등이 나오며 지배나 종속이 아닌 평등으로서의 성의 관계를 탐구한다. Cloud nine은 직역하면 아홉번째 구름 위지만 은어로는 ’오르가즘‘을 나타낸다. 즉 클라우드 나인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며, 일방적으로 독점하거나 지배와 수단의 목적이 되서는 안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극은 2막으로 되어 있는데 1막은 빅토리아 시대이며 장소는 영국의 식민지령인 아프리카이다. 2막은 100년을 뛰어넘은 영국 런던의 현대이나 등장인물들에게는 오직 25년이 흘렀을 뿐이다. 1막- 부부 사이의 이성애가 강조되고 그것만이 유일한 사랑의 관계로 인정된다. 클라이브는 남편, 아버지, 주인, 총독으로 아프리카를 다스리는 인물이다. 여성들의 자리는 위축, 종속되어 노예와 같다. 그의 아내 베티는 ’내 작은 비둘기‘로 불리며(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아버지와 남편에게 노라가 장난감 인형 아내 취급을 받았던 것처럼) 딸 캐시는 심지어 인형으로 무대에 등장하는데 이는 인격 자체가 없는 여성의 존재 위치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여성들은 흑인 하인 조슈아에까지 무시를 당한다. “마님의 치마 밑에 두 다리가 있어요” 아들 에드워드는 남자이기 때문에 강하게 키워지지만, 정작 에드워드는 인형놀이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손더스 부인이라고 불리는 캐롤라인은 남편을 사별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인이다. 클라이브는 손더스 부인과 바람을 피우지만 당당하다. 그녀는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성을 즐긴다. 해리는 클라이브의 친구로 모험가이다. 그는 베티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에드워드의 가정교사 엘렌은 베티를 사랑하나 자신의 동성애적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해리와 결혼한다. 그렇게라도 베티 옆에 남아있고 싶어서. 클라이브가 절대적으로 믿었던 흑인 하인 죠수아는 자신의 가족이 영국군에 의해 몰살당하자 클라이브를 총으로 쏘며 1막이 끝난다.

   2막- 런던의 현대이며 빅토리아와 에드워드는 어른이 되었고, 베티는 노인이다. 새로운 인물 빅토리아의 남편 마틴, 빅토리아의 여자친구 린, 빅토리아의 아들 타미, 린의 딸 캐시, 그리고 에드워드의 남자친구 게리가 등장한다. 1막의 억압과 금기는 많이 풀렸고 동성애도 자유로운 듯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노력이 필요하다. 린(레즈비언)과 빅토리아, 에드워드(게이이자 린과 빅토리아 두 명의 여성과 성관계도 하는)는 자신들의 아들딸들과 공동체를 구성하며 베티는 이 모두를 포용하며 함께 살기를 제안한다. 성의 완전한 해방을 처칠은 70년대에 이미 보여준 것이다. 그녀의 자유롭고 편견 없는 생각이 놀랍기만 하다. 대사 몇 개.

 

# 해리 : 그리고 당신은 안전이고, 빛이고, 평화고, 집이야.

베티 : 하지만 난 위험해지고 싶어요.

 

# 베티 : 저 사람들 시간이 제법 걸리는군요. 난 언제나 남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애

 

# 클라이브 : 캐롤라인, 만일 당신이 독화살에 맞는다면 내가 무얼 할지 알아? 너의 죽은 몸에 성교를 하고 나도 독이 옮아 죽을 거야. 캐롤라인, 넌 냄새가 좋아. 날 무섭게 해. 넌 이 대륙처럼 캄캄해. 신비스러워, 반역적이야. 네가 밤에 말을 달려 내게 올 때, 내 품에서 기절을 했을 때. 내가 네 침대 속에 들어갈 때, 모기장을 들칠 때, 내가 들어간다, 들어간다고 말할 때, 오, 날 가로막지마, 캐롤라인, 나를 들어가게 해줘.

 

# 베티 : 아니요 ,초대받을 때까지 기다릴 것 없어요. 그냥 비공식적으로 들르세요. 내 주소를 드릴까요? 난 처음 만난 남자들에게 내 주소를 주지는 않아요. 당신은 낯선 사람은 아니야. 에드워드 친구의 친구니까. 내가 당신에겐 다른 세대로 보이겠지만 당신은 에드워드보다는 나이가 위로 보이는구만. 난 결혼한 지 너무도 오래돼서 사람들과 사귀는 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답니다. 만일 그런 일에 딱 맞는 정답이 없다면 새로 하나 발견해 내야겠지요. 내 어머니가 매력적이기에는 나이가 들어도 한참 들었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내가 어머니 나이가 되니 그 생각이 전혀 맞지가 않군요.

 

   <비네가 탐>은 1976년에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왜곡된 역사를 다시 쓴 것으로 17세기의 마녀 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여성 학살극이 실제로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 사회의 억압과 학살의 역사임을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마녀사냥은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극은 21개의 장면과 7개의 노래로 구성된다.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아 장면들은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것이 아닌 중단시키며 낯설게 하기 효과를 거두고 있다. 노래 역시 극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그것은 현재의 목소리이다. 따라서 몇 개의 장면이 지난 다음에 등장하는 노래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효과를 거둔다. 언어는 간결하고, 최소한의 무대장치를 사용하며, 여백의 미를 강조한다.

   늙은 과부인 조운, 미혼모이자 딸인 알리스, 산파이자 민간 치료사인 엘렌. 거듭된 임신으로 낙태를 시도하는 매 맞는 아내 수잔. 아버지가 정해 주는 상대와 결혼을 거부하는 주체 의식이 있는 부잣집 딸 베티가 나온다. 이들은 모두 결혼 제도 바깥에 있거나, 결혼제도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들로, 모두 그 사회의 일탈자들이다. 이들을 사회적 위협으로 느끼고 마녀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대 체제에 순응하는 평범한 사람들로 소작농인 잭과 마저리 부부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틀의 보호를 받는 체제 순응자들로 자신의 이익(재산을 증식하고 계급 상승시키려는 욕구)과 이기심(잭은 알리스를 범하려고 했으나 그 욕구가 좌절) 을 위해 조운과 알리스를 마녀로 몰아간다. 민간 치료사 엘렌 역시 마녀로 몰린다. 17세기는 막 배출되기 시작한 남자 의사들이 민간 치료사들을 마녀로 몰아 마녀사냥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엘렌이 마녀로 몰리는 것이다. 엘렌을 찾아 위안 받기 원하는 베티 역시 마녀로 몰린다. 그러나 베티는 부유한 집 딸이고 남자 의사의 치료를 받기 때문에 마녀에서 제외된다.

    마녀사냥은 약 300년동안 5만명 이상의 여성들을 교수형, 화형, 수장시켜 죽였다. 그리고 이 학살극은 20세기에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로 재현되었다. 조운, 알리스, 엘렌, 수잔...그들은 마녀가 아니다. 이 극은 마녀가 나오지 않는 마녀에 관한 극이다. 비네가는 식초라는 뜻 외에 어떤 사람의 말, 태도, 기질이 호의적이지 않을 때도 이 말을 쓴다. 탐은 숫고양이의 별칭이다. 따라서 비네가 탐은 시쿤둥한 숫고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조운이 키우고 있는 늙은 고양이의 이름이 바로 비네가 탐으로 작품에서 탐을 언급하지만 실제 고양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하지 않는 고양이를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하면서 처칠은 이 작품이 마녀가 등장하지 않는 마녀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알리스 : 한달에 한번씩 피흘려야 되는 것. 그걸 벗어날 수는 없어. 아프거나 임심으로 배가 불러지는 것 외에는 그 고통을 벗어날 길은 없지. 그리고 마침내 늙어 버릴 때까지는 방법이 없는데 그건 훨씬 더 나쁜 거야. 늙은 어머니가 옷을 갈아 입을 때 정말 쳐다볼 수가 없어. 만일 내가 남자였다면 난 런던이나 스코틀랜드로 가버렸을 거야. 그리고 절대로 돌아오지 않아. 내가 남자라면 여자를 꿰어차고 숲으로 들어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닥터 : 히스테리는 여성의 연약함입니다. 희랍어로는 히스테리온이라고 하죠. 자궁이란 말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피는 체액에 불균형을 가져옵니다. 여성의 몸에서 매달 생성되는 나쁜 가스는 뇌로 올라가서 환자의 느낌과는 전혀 반대되는 행동을 야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월경혈로 나오게 되면 환자는 깨끗이 평정을 되찾게 됩니다. 오늘 밤 아가씨는 물집이 생길 거에요. 그리곤 나을 거에요. 곧 결혼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될 겁니다.

 

# 마저리 : 그럼 그년이 마녀인 게 증명된 건가요?

엘렌 : 누가 마녀인지 아닌지를 난 말할 수 없어요. 나는 거울을 주고 당신들이 거울 속에 비치는 것을 봤을 뿐이죠.

잭 : 녹스 할멈 그년을 봤어

마저리 : 그년이 마녀인 게 증명됐어

엘렌 : 보고 싶은 걸 보러 와서, 봤으니 됐죠? 이제 마음이 편안하신가요?

 

우리나라 극단 TNT는 이 극을 공연하면서 작품 이름을 마녀사랑이라고 바꾸었고 마지막 부분을 추가하였다.

 

# 잭 : 마녀는 누구:

모두 :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마저리 : 미혼모

엘렌 : 이혼녀

조운 : 노처녀

은정 : 세고 강한 여자

문숙 : 여성해방운동가

구디 : 남녀 평등운동가

팩커 : 뚱뚱한 여자

구디 : 못생긴 여자

잭 : 남자 기 죽이는 여자

팩커 : 남자 거세시키는 여자.

 

지금도 우리곁에 수많은 마녀가 있다. 그리고 이들이 눈에 거슬리고, 불편하여 제거하고 싶어하는 마녀 사냥꾼 또한 가득하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마녀가 되기 쉽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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