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존 카첸바크 지음, 나선숙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 10계명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이것은 '애거서 크리스티' 등이 한창 활약하던 시절의 오래전 얘기라, 지금처럼 다양하고 스피디한 작품들과는 별 상관없는 케케묵은 조항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10계명의 대부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 재미있는데, 그 중에서도 범인은 반드시 초반부에 나와야만 한다는 조항은 특별히 눈여겨볼 만 하다. 추리소설이 작가와 독자간의 페어플레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만큼, 막판에 난데없이 등장하는 범인이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제프리 디버'나 '마이클 코넬리', 또는 '댄 브라운' 같은 최근 작가들의 작품도 각자 스타일은 달라도 이 부분 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물론 이 점 때문에 오히려 초반부터 범인을 손쉽게 예측하게 되는 역효과가 발생하면서, 작가들은 덕분에 반전에 반전을 꾀하는 등 점점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존 카첸바크'라는 작가는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한다. 2002년도에 발표되었으니, 10년전 작품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한 정신분석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작가가 무슨 꿍꿍이로 이런 스토리를 끌고가는건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영문도 모른채 누군가에게 갑자기 죽음을 강요받는다는 설정 자체는 흥미로운데, 주인공이 그 원인과 상대를 파헤쳐가는 과정에서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자꾸만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그런 느낌...

중반부 이후 펼쳐지는 주인공의 변신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자 준비된 노림수에 해당한다. 노련한 분석가로서의 역습은 제목이 시사하는 모든것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나이나 이전 삶을 고려하면 사실 납득하기 어려운 생뚱맞은 전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는 핵심 등장인물들이 주인공을 제외하면 고작 서너명(그 서너명조차도 존재감이 엑스트라 수준으로 미미하다)밖에 되지않는다는 점이 작가의 무리수를 뒷바침하고 있다. 이런 소수의 인물들로 나올 수 있는 변수가 거의 없다보니, 작가가 과연 어떤 식으로 마무리를 지을지 걱정마저 들 지경이었다.

결국 우려했던만큼 범인이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의 강도는 약했지만, 비교적 긴 분량임에도 독자의 시선을 계속 붙들어매는 작가의 뚝심있는 필력은 평범함을 넘어선다. 10계명의 조항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호감을 준다. 아마도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한 권 정도는 더 찾아 읽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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