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미닛 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2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요즘 국내에 번역소개되는 크라임스릴러 장르의 대부분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미권 또는 일본의 철지난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소재가 고갈난 미국영화계에서 뒤늦게 눈을 돌려 쓸만한 작품들을 발굴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국내출판계에서도 이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모감독이 판권을 구매했다느니, 영화화가 결정됐다느니 하는 기약없는 광고문구도 넘쳐나고, 발표된지 10년이 넘은 소설들도 마치 최신작인양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독자들로서는 그동안 몰랐던 실력있는 작가들을 새롭게 접한다는 의미에서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출판기획자들에 의해 경쟁적으로 무분별하게 선택된 작품들은 과장광고와 졸속번역 등, 적지않은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잘 모르는 작가의 소설을 읽고자 할 때에는 먼저 구글을 통해 작가의 공식웹사이트를 살펴보고 프로필과 원작의 출판년도 등을 확인하는 버릇이 자연스레 생겨버렸다.

'로버트 크레이스'라는 작가도 이번에 처음 접하는데, 1953년생이니 2006년에 발표된 본작은 거의 50대중반에 접어들 즈음 집필이 되었다는 얘기다. 작가의 나이와 출판년도를 알게되면 작품의 배경이랄까 작가의 사고방식 등에 대해 사전에 어느 정도 이해와 준비가 된 글읽기가 가능하다.

이 작품은 일단 플롯 자체가 너무나 단순하고, 익숙하며, 또한 캐릭터를 입체적인 인물로 그리는데 있어서도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일생을 은행털이와 자동차절도, 그리고 마약 등 그야말로 쓰레기같은 제멋대로의 인생을 살아왔다는 주인공이, 초반에 등장하자마자 마치 정의의 사도가 된 듯 아들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않는 모습은 너무나 생뚱맞아서 감정이입하기가 힘들 정도다. 소설의 대부분은 두 주인공이 의혹을 파헤치는 조사과정으로 채워져있으며, 복선이나 액션도 거의 없다. 의외의 범인도 그리 놀랍지않고, 예측가능한 스토리가 그저 예상했던 결말로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은근한 매력이 있다. 이렇다할 임펙트도 없이 계속되는 조사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않게 읽혀지는 것은 이 작가의 내공이 결코 만만치않음을 보여준다. 태양이 내리쬐는 무덥고도 따뜻한 LA의 여러 모습과 함께 시종일관 낭만적인 느낌이 살아있는데, 얼마전에 읽었던 마이클 코넬리의 '블랙 에코'가 생각나기도 했다. 드라마각본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대사들이 군더더기없이 깔끔하다. 특히 묘지에서 두 주인공이 함께 울면서 마침내 교감을 이루는 장면은 이 책의 매력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책을 덮고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쁜남자로 그려지면 더욱 흥미로울 주인공이 시종일관 바른생활맨으로 행동하니 시시한 면도 있지만, 고전적인 스토리라인과 작가의 밝은 시선이 훨씬 돋보이고 마음을 편하게 한다. 문득 주인공이 즐겨입었다는 토미바하마 셔츠에 레이밴 웨이페어러 선글라스 차림으로 헐리우드거리를 거닐고 싶어진다. 


작품의 주요장소로 등장하는 헐리우드 사인 (Hollywood 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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